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21
추천수 :
15
글자수 :
113,713

작성
24.09.10 17:10
조회
7
추천
0
글자
12쪽

20) 영웅

DUMMY

제국을 1년 동안 지독히 괴롭혔던 역병, 이를 해결할 치료제.


운 좋게 병에 걸리지 않은 일부 수도 사람들이, 해결책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장례식이 끝나고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파가 어찌나 몰리던지. 제발 자신들에게 그 약을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전염병이 무서워 서로 4인 이상 모이지도 않았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다니, 얼마나 간절한 건지···.


“황녀 전하, 한 숟갈만 드세요. 이러다 정말 쓰러지시겠어요.”


황녀를 모시는 시녀들도 간절히 애원했다.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시녀가 떠준 수프 한 숟갈을 내려다보는 금안에 생기는 없었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아, 메리. 이거 치워줘.”


침대에 걸터앉아 수프 그릇과 숟가락을 든 강아지상 시녀-메리가 울먹이자, 그 옆에 서 있던 고양이상 시녀-키아나가 차분히 말했다.


“황궁 사람들이 데이지 황녀 전하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영웅이시니까요.”


“내가?”


헝클어진 옆머리를 부여잡은 황녀가 영혼 없이 웃었다.


“영웅이시고말고요. 마티스 경께서 가져온 약이 바로 황녀 전하의 도안대로 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키아나가 조심스럽게 황녀에게 다가갔다.


“전하께서 저희를, 제국을 구하셨어요.”


“···그렇지 않아. 난 원료가 되는 하나뿐인 약초를 둘째 오라버니께 쓰려고 했어. 칭송받을 자격도 없다고···.”


지금 황녀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시녀들 맞은편에서 메리와 키아나가 서로 염려의 눈빛을 교환했다.


“원래 전염병 치료제로 쓰려고 꽃을 키우고 약 제조법을 개발하면 뭐 해? 정작 오라버니가 쓰러지시자 다 포기하고 내 가족을 위해 쓰려고 했는데! 심지어 오라버니를 구하지도 못했어!”


황녀의 손이 탁해진 제 백발을 더 헝클어뜨린다. 급하게 그릇을 내려놓은 메리가 황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 제지했다.


“전하, 다이앤투스 황자님을 구하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어요. 쓰러지시기 1시간 전부터 심장병 치료제를 만들기 시작했더라도, 약이 덜 완성되 황자님을 구하지 못했을 거예요. 황녀님 탓이 아니에요.”


황녀의 손등은 여러 약초를 만지느라 살짝 얼룩이 져 있었다. 살짝 부르튼 그 피부가, 그간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데이지 전하, 전하께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저와 키아나가 힘껏 도울게요.”


메리와 키아나가 황녀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저흰 데이지 꽃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걸 잊지 마세요.”


시녀들에 품에 끼인 황녀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울기 직전의 모습이었지만 자못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었다.


내가 설 팀장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안, 황녀는 전속 시녀들과 서로 품어줄 만큼 친해졌구나. 그 과정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나는 세 명이 서로를 얼싸안은 동안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왔다.


그간 침울했던 마음이 약간은 나아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껄끄러운 플루토키아를 거의 못 봐서 황녀궁이 아닌 본궁까지 가볼 용기가 샘솟았다.


지금쯤이면, 그래, 남주가 가져온 치료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겠지. 난 황궁에서 직급 높은 사람들은 다 모였다는 본궁의 커다란 회의실로 뛰어갔다.


굳게 닫힌 회의실 문 양쪽으로 기사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겠지만, 지금 난 저들에게 보이지 않지.


경비하는 기사들 사이로 씩씩하게 들어가 쭈그려 앉았다. 대놓고 문을 열어 들어가기엔 힘들 것 같아 내 귀를 문에 슬쩍 갖다 대었다.


“—그게 정말인가? 단 한 방울로 역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예, 황궁 내 환자들을 대상으로 먹여본 결과, 한 방울이면 충분합니다. 매우 귀한 약초인 만큼 효과도 강렬해서, 아주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평소보다 더 딱딱한 남주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탁자에 무거운 유리병을 쿵 하고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이 정도 양만으로도 수도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겠지요. 약초 하나에 나오는 양이 꽤 많습니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제국 내 긴급 환자들을 먹일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기사단장 말대로 당장 급한 환자들을 치료할 순 있겠군. 그렇지만 아직 경증인 환자들은 어떡하나? 또 이 전염병이 또 발병한다면? 이젠 그 약초가 없을 텐데 어디서 구하지?”


“그건 일단 제국 내에 약초를 더 찾아보고 생각하시죠.”


황태자의 목소리가 염려를 가로막았다. 어쩐지 텐션이 살짝 올라가 있는 것 같은데.


“제 누이가 개인적으로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찾아낼 줄은 몰랐습니다. 이거 한 방 먹었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문 너머로 엿듣는데도 회의장 안이 순식간에 싸해진 게 느껴진다. 분위기가 이 모양이 되려면, 역시 황제에게 말한 거겠지?


황자에 앉기 위해선 역시 기존쌔여야 하나보다. 즐거워진 마음을 굳이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황태자가 말했다.


“마티스 경. 처음 약초를 발견한 곳이 어디라고 했죠?”


“로우라 고원입니다. 작년에 황녀께서 백성들을 치료하기 위해 몰래 나가셨던 걸 모시고 오는 과정에서 발견했습니다. 또한 데이지 황녀 전하께서 어릴 적에 지내셨던 곳 근처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군락지가 있는지 확인해 보려 했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미처 찾지 못하고 귀환했습니다.”


원로 귀족들이 오오, 하며 낮게 탄성을 내는 게 들렸다. 약간의 소란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황태자가 나서 정리했다.


“그렇다면 일단 로우라 고원을 중점으로 군락지 탐색을 진행하도록 하지. 수색팀은—”


“—제가 꾸려도 되겠습니까? 부디 허락해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아바마마, 형님.”


3 황자의 목소리다.


“예전에 데이지를 데리러 갔던 경험이 있어 그 일대 지리는 나름 익숙합니다. 제가 가면 찾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거예요.”


“요즘 별일이구나, 다이앤투스.”


놀리는 기색이 다분한 말에도 3 황자는 전처럼 흥분하지 않았다.


“예. 철 좀 들었습니다.”


문틈으로 황태자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긴급한 시안인 만큼 수색팀이 꾸려지자마자 나가겠다며, 그 인원을 뽑는 회의는 해질녘까지 계속됐다.


나는 얼얼해진 귀를 문에서 때고 일어났다. 그만 엿들어도 될 것 같군. 내가 문에서 멀리 떨어지자마자 귀족들이 회의장 문을 열고 우르르 나왔다.


남주는 회의장에서 맨 마지막으로 나왔는데, 얼굴빛이 붉은 노을에 물든 데다 눈꼬리까지 쳐져 꽤 피로해 보였다.


미남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자니 아이러니하게도 플루토키아 생각이 났다. 며칠째 머리카락 한 올마저 보이지 않는 게 정상인가?


황녀궁에서 본궁으로 넘어올 때, 얼굴 부닥칠지도 모른다고 나름 각오했는데.


이쯤 되니 나는 그간 무시하고 있던 한 가지 가설을 인정해야 했다. 플루토키아는 날 피하고 있다.


내가 불편해할 거라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본인이 불편한 걸 수도 있고.


남주는 내 예상대로 황녀궁을 향해 걸어갔다. 다만 들어가진 않고, 텃밭에 서서 황녀의 방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갈 수 있으면서, 마치 하늘의 별을 보듯 막연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내 기분도 조금 이상해졌다.


저 남자가 내 친구였다면, 야! 당당하게 굴어!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고 있어! 하고 등짝을 몇 번 때렸을 텐데.


나는 산들바람에 남주의 금발이 보기 좋게 휘날리는 걸 감상하다, 저 건너편에서 시녀들의 부축을 받고 나오는 황녀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지, 나랑 마주친 게 아니라 남주를 본 거구나.


“···오랜만에 뵙네요, 마티스 경. 회의는 잘 끝나셨나요?”


“예.”


솔직하게 대답한 남주가 황녀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데이지가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또다. 소설의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이 화원에서-텃밭에서 마주하는 모습은. 황궁에 자주 있지도 못했던 내가 이와 비슷한 장면을 몇 차례나 목격한 장면.


이 정도로 반복해서 떠먹여 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황녀의 화원은, 텃밭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장소로 쓰이며, 이들의 사랑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란 것을.


“왜 그동안 절 찾아오지 않았죠?”


“···제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멋대로 일을 진행한 걸 저렇게 표현한다고? 아니 네가 도박을 했냐 바람을 피웠냐. 순간 치솟아 오르는 잔소리를 이 악물고 참았다.


“제가 충동적으로 꺾은 약초를 제 자리에 쓰이도록 한 게 죄라고 생각해야 편하다면, 그러세요.”


데이지 황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다소 의외의 말에 남주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렇지만 그 행동 덕에 지금 제 숨이 쉬어지네요. 공을 세웠으니 죄는 사해드릴게요.”


약초로 오빠도 살리지 못하고, 역병 치료제도 만들지 않았다면 정말 숨 막혔겠지.


한결 누그러진 황녀의 목소리에, 양옆에 있던 시녀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친다. 그래, 우리도 눈치가 있지. 나도 남주에게서 몇 발자국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발을 뒤로 내빼다, 뒤통수에 뭔가 퍽, 하고 닿았다. 단단해서 세게 부딪혔지만 겉은 부드러워 아프진 않은···.


뭐지? 사람 가슴팍이랑 부딪힌 것 같은데?


반사적으로 뒤돌려던 순간, 이마에 얕은 숨결이 스쳐 지나갔다. 내 몸이 바로 뻣뻣해지는 걸 느끼면서 눈동자를 위로 천천히 올렸다.


어쩐지 자꾸 생각나던 새빨간 눈과 마주친 순간.


“우리 이 정도로 떨어져 있던 건 처음인데,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요?”


본격적으로 애정을 요구하는 황녀의 목소리는 아득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내 뒤에서 날 내려다보는 플루토키아의 얼굴이 유독 가까운 탓일까.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는 내 어깨를 잡고서 심연을 들여다보듯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왜, 왜요.”


말을 더듬거리자 내 어께에 올라와 있던 손이 사라졌다. 그제야 자신이 나와 얼마나 가까웠는지 깨달은 그가 슬금슬금 멀어진다.


“또 우시는 줄 알고···.”


“저 운 적 없는데요!?”


가녀린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리기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상하게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려, 황녀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나 왜 이러지? 좀 더 어른스럽게 굴 순 없나? 같이 일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사에게 이따위로 굴면 안 되지! 껄끄럽긴 하지만!


“그럴 리가요. 언제나 당신 생각을 한 걸요. 그러지 않았다면 치료제를 만들지도 못했을 겁니다.”


남주가 건네는 말, 황녀가 받아치는 말들에는 애정이 줄줄 새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두 사람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가 문득 불길해졌다.


지금 완전 키스 타이밍 아니냐?


···보고 있어도 돼? 키스신은 우리가 자리를 좀 피해줘야 하는 거 아냐? 내 동공과 멘탈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황녀와 남주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는데, 가쁘게 들이마시던 풀 내음에서 이상한 향이 섞여 들어왔다.


뭐지? 두어 차례 킁킁대며 숨을 크게 들이쉬던 난 플루토키아와 재차 눈을 마주쳤다.


보자마자 우리가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왜 탄내가 나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9/13 휴재 24.09.13 3 0 -
24 23) 노인 24.09.16 2 0 11쪽
23 22) 생각 24.09.12 4 0 11쪽
22 21) 화재 24.09.11 8 0 11쪽
» 20) 영웅 24.09.10 8 0 12쪽
20 19) 친우 24.09.09 7 0 11쪽
19 18) 황자 24.09.06 8 0 11쪽
18 17) 간섭 24.09.05 7 0 12쪽
17 16) 서천 24.09.04 11 0 12쪽
16 15) 꽃밭 24.09.03 8 0 11쪽
15 14) 마석 24.09.02 7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0 1 11쪽
13 12) 업무 +1 24.08.29 8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11 10) 사진 24.08.27 9 1 11쪽
10 9) 사과 24.08.26 10 1 10쪽
9 8) 면담 +1 24.08.23 9 1 11쪽
8 7) 중립 24.08.22 10 1 11쪽
7 6) 조작 24.08.21 9 1 11쪽
6 5) 알현 24.08.20 9 1 11쪽
5 4) 조연 24.08.19 11 1 10쪽
4 3) 최악 24.08.18 11 1 11쪽
3 2) 작명 +1 24.08.18 14 1 10쪽
2 1) 면접 24.08.17 14 1 10쪽
1 프롤로그 +1 24.08.17 18 1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