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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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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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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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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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13

작성
24.08.2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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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2) 업무

DUMMY

“술 드셨어요?”


“아뇨?”


이 사람 눈도 좀 풀린 것 같은데. 마음 한구석에 의심을 피우며 고개를 저었다.


“전 춤 출 줄 몰라요. 유치원 때 꼭두각시 춤이나 춰봤나. 그게 단데.”


플루토키아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이참에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혹시 아나요, 연회장에서 춤춰야 할 일이 생길지.”


···진짜 취한 거 아냐?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쳐다봤지만 플루토키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한 마디 더 핀잔을 던지려고 입을 연 순간 테라스 문이 벌컥 열렸다.


“‒여기서 농땡이 피우고 있었냐. 당장 안 나와?”


머리가 살짝 헝클어진 설 팀장이 양팔로 문을 잡은 채 쏘아붙였다. 희번덕대는 눈이 무척 앙칼져 보인다.


“팀장님, 한 곡 추시지 않겠습니까?”


이 와중에 성별 상관없이 평등하게 플러팅을 날린 플루토키아는 설 팀장에게 순식간에 귓불을 잡혀 아픈 소리를 냈다.


일 참 순탄하게 흘러가는군. 나는 아웅다웅하는 두 남성을 두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연회장 정중앙에서 데이지 황녀와 남주-마티스 경과 춤을 추고 있었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황녀가 춤을 제법 춘다는 걸 알겠다. 오히려 남주가 미세하게 뚝딱이고 있었는데, 황녀에게 팔려있는 정신만 좀 수습한다면 제대로 출 듯하다.


난 식도를 타고 기어오르는 하품을 꾹 참으며 기둥에 등을 기댔다. 이대로 평화롭게 계속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정말로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된다면 웹소설로 쓰이지 않겠지?


***


내가 대학 졸업 직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넌 동사무소 같은 곳 책상에 조용히 앉아서 하는 일이 어울린다.”


일단 말해두자면 동사무소는 행정복지센터로 이름이 바뀐 지 오래고, 공무원은 조용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랬으면 지금 내가 상사 두 명이랑 달리는 마차 지붕에 올라가 반쯤 매달려있지도 않겠지.


그래도 황가의 마차라 그런가, 온갖 화려한 금붙이들이 여기저기에 붙어있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뭐 붙잡고 있을 게 많은 건 장점이다.


여러 장식품에 몸 이곳저곳을 찔려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건 단점이고. 어째 마차 탈 때마다 인권이 깎이는 기분인걸.


돌부리에 차인 마차가 순간 덜컹거렸다. 강렬한 현타로 장식품을 느슨하게 잡고 있던 나는 공중으로 5cm 정도 떠올랐지만, 플루토키아가 붙잡아준 덕에 안전히 착지했다.


나를 향해 순간 손을 뻗었던 설 팀장이 도로 거두며 눈살을 찌푸렸다.


“조심해라, 그러다 너 머리 깨져서 집 주소를 저승으로 옮기고 내 진짜 동료가 되는 수가 있어.”


“오···. 근데 팀장님, 이 마차 어디로 가는 거예요?”


“공작저. 거기서 티파티 열리잖아.”


티파티라. 뭔가 활자로만 봤던 단어를 음성으로 들으니 낯설군.


“티파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모자 장수랑 했던 거 아녜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제가 앨리스고 팀장님이 모자 장수인 거죠? 모자가 잘 어울리실 것 같긴 한데.”


“···뭐 이런 신규가 들어왔지···. 우리가 티파티를 왜 해? 데이지 황녀가 공녀에게 티파티 초대를 받아서 따라가는 거지. 공작저에서 이상한 물건이나 대사 확인할 거야.”


저 멀리 보였던 화려한 저택이 점점 선명해졌다. 다른 건물들보다 정원이 배로 크고 화려한 걸 보면 공작저가 맞는 것 같다.


나는 어플을 미리 켜두려고 폰 화면을 열다 움찔했다. 종일 사진 어플을 켜고 있던 탓에 배터리가 바짝 닳아있었다. 어우, 내 마음도 바싹 줄어드는 기분이야···.


“팀장님, 혹시 보조 배터리 가지고 계세요?”


“왜? 부족해? ···아직 30%나 남아있잖아, 뭘 벌써부터 엄살이야.”


“30%‘나’가 아니라 30%‘밖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별 소릴 다한다며 투덜대던 설 팀장이 보조배터리를 던져줬다.


가장자리에 조그맣게 ‘저승시청 웹소설국’이라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프린팅되어 있었는데, 숫자는 거의 벗겨져서 보이지 않았다.


전화와 인터넷이 되고, 컴퓨터와 휴대폰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저승이라니. 심지어 이런 부가적인 가전 기구도 자체적으로 만들고 말이야.


하늘이 돌연 뒤집어지는 출퇴근길과 업무 내용만 아니었어도 정말 어디 시청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기분이 들 거다.


나는 멈춰 선 마차에서 내리는 황녀의 정수리를 힐끔 내려다봤다. 이 거리면 들키지 않겠지? 살짝 떨어진 곳에서 뛰어내렸다.


맞은편에 서서 정중히 인사를 올린 시녀들이 유리 온실로 안내하겠다며 이동하는걸,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려다 어깨를 덥석 잡혔다.


“우린 우리 업무가 따로 있지?”


설 팀장의 목소리가 어쩐지 스산하다. 주변 기온이 몇 도는 떨어지는 것 같은데.


나는 조금씩 멀어지는 데이지 황녀와 플루토키아의 뒤통수를 아쉽게 힐끔대다 팀장의 뒤를 따라갔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던 달큰한 냄새가 진해지고 있었다. 몇 번을 더 킁킁대고 나서야 과자를 굽는 향임을 깨달았다.


공작저의 부엌은 매우 복작였다. 사람이 많은 건 아니지만 한 사람마다 부엌 여기저기를 쏘다니느라 바쁜 탓이다.


나는 설 팀장의 손짓을 따라 활짝 열린 부엌문 맞은편의 나무 기둥 뒤로 숨었다.


“들어가면 사람들이랑 부딪혀서 들키겠는데. 여기서도 내부가 다 보이니까 적당히 숨어서 보자.”


“데뷔당트 때처럼 변장은 안 하나요?”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쉴 틈도 없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안 돼. 우리가 들어갔다간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다닌다는 걸 바로 들킬 테고, 걸리적거린다면서 쫓겨날 거다.”


속사포로 말을 쏟아낸 설 팀장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부엌 내부가 멀리서도 보인다지만 어떻게 찍는다는 건지 의아했는데, 두 손가락으로 카메라 화면을 확대하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확대된 화면으로 부엌 여기저기를 비춰보다, 밀가루 포대를 짊어진 청년이 무어라 소리치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 보고 그쪽으로 폰을 돌렸다.


“저희 밀가루 이렇게 많이 써도 되는 거예요?”


메인 요리사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밀가루 범벅인 손을 털며 대꾸했다.


“무려 황녀 전하께서 오신 티파티인데 밀가루를 아껴선 되겠나.”


“그렇지만 밀가루 값이 최근에 좀 올랐잖아요. 좀 아껴둬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앞으로 더 오를지도 몰라요.”


“아니 왜?”


청년이 요리사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나무 뒤에 숨은 우리에게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긴 했지만.


“주변 나라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신문기사 못 보셨어요? 농부들이 병에 걸려 밀을 재배할 수 있는 인력이 줄고 있대요.


우리 제국 국경에 사는 이들도 진작 감염되었다는 소문이 있어요.”


···전염병? 어안이 벙벙해졌다. 별문제 없으니 유리온실로 이동하자는 팀장의 말을 들을 때까지, 나는 여물 먹는 소처럼 청년의 말을 곱씹었다.


잠깐만, 이 세계에서 전염병이 돌면 나도 마스크 써야 하나? 다행히 집에 쟁여놨던 게 남아있기는 한데.


유리온실은 그리 멀지 않았다. 우리는 막 구운 과자를 들이려는 시녀 뒤를 졸졸 따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온실 특유의 따뜻한 공기가 순식간에 폐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가씨들 뒤에 멀찍이 서있는 플루토키아를 단박에 알아봤다.


나사가 미묘하게 풀려있던, 어젯밤 테라스에서 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반듯한 모습이었다. 누가 보면 여기 캐릭터인 줄 알겠는데.


데이지 황녀는 영애들에게 둘러싸여 무언갈 쉴 새 없이 말하는 중이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대화 주제가 식물임을 알았다.


우리의 빙의자는 영애들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이름의 유래인 식물들을 척척 맞추고, 액세서리로 착용한 이파리들의 종류도 다 꿰뚫는 중이었다.


“이승에서 플로리스트였다더니, 관련 지식은 제대로 공부했나 보군.”


설 팀장의 중얼거림을 듣자 조금은 납득이 갔다. 그런데 황녀는 약초에 제일 관심을 두지 않았던가?


혹시 황녀는 전염병 소식을 미리 접한 게 아닐까.


티파티를 연 주최자인 공작 영애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데이지 전하께선 식물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그러고 보니 황가의 상징도 식물이지요.”


“아직 지식이 그리 해박하지 않아 부끄럽네요. 한창 공부해야 하는 수준이랍니다.”


데이지 황녀는 찻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말괄량이 산골 소녀가 저렇게 우아하게 행동하기 위해서 수많은 날을 노력했겠지.


나는 속으로 박수를 치며 테이블 위에 놓인 디저트들을 대강 훑었다.


“저희가 잡초로 취급하는 풀 중에서도 귀한 약초가 많아서요. 많은 제국민들이 식물에 관심을 가진다면 삶의 질이 더 개선될 것이라 믿어요.”


음식에도 딱히 이상한 건 없어 보이고, 주변 인테리어에 엉뚱한 게 있을까 싶어 돌아보려던 순간 목소리 하나가 날 붙잡았다.


“역시 황녀 전하는 저희와 다르시네요.”


방금 뭐야? 비꼰 거야? 나는 고개를 획 돌려 작게 웃고 있는 영애를 쳐다봤다.


티파티 주인인 공작 영애가 당황하는 걸 봐선 사전 협의가 이뤄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데이지 황녀는 덤덤했다. 나는 분위기를 망가뜨리고도 당당히 차를 마시는 엑스트라 영애를 째려보다가 귓불을 잡혔다.


“저쪽은 신경 쓰지 마, 지금은.”


귓불을 도로 놔준 설 팀장이 턱짓으로 황녀를 가리켰다.


“저 상황을 타파해야 하는 건 빙의자의 몫이야. 황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 않는 한 지켜봐야 한다고.


그 지켜보는 일도 플루토키아 몫이고, 우린 우리 일이 따로 있잖아.”


그렇긴 해요. 시무룩하게 대꾸하자마자 돌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전하! 괜찮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13 폭거
    작성일
    24.08.30 13:30
    No. 1

    벌써 마지막회. 가독성이 좋은 글이네요! 작가님 실제로도 문창과 나오신건가요? 다음 글이 기대되는 글입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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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꽃밭 24.09.03 8 0 11쪽
15 14) 마석 24.09.02 7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0 1 11쪽
» 12) 업무 +1 24.08.29 9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11 10) 사진 24.08.27 9 1 11쪽
10 9) 사과 24.08.26 10 1 10쪽
9 8) 면담 +1 24.08.23 10 1 11쪽
8 7) 중립 24.08.22 11 1 11쪽
7 6) 조작 24.08.21 9 1 11쪽
6 5) 알현 24.08.20 9 1 11쪽
5 4) 조연 24.08.19 11 1 10쪽
4 3) 최악 24.08.18 1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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