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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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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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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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진

DUMMY

“이게 무슨···. 산이 왜 이래요?”


나는 산 모양 스티로폼 판넬에 새겨진, 어린아이들이 크레파스로 삐죽삐죽 그려놓은 듯한 풀 그림들을 훑어봤다.


“그동안 멀리서만 봐서 이상한 줄도 몰랐지? 이 산은 주요 배경도 아니고 등장인물이 들르는 장소도 아니라서 이렇게 대충 생성된 거야.”


“그럼 이대로 냅둬도 되는 건가요?”


“안 돼. 사소한 디테일이 이 웹소설 세계의 퀄리티를 결정짓는 법이니까.”


설 팀장은 아까 설치한 지옥불 카메라 앱을 켜라고 종용했다. 꺼림칙한 마음으로 앱을 눌러보니 의외로 평범하게 카메라가 켜졌다.


“저 산을 찍어.”


상사의 말에 허둥지둥 폰을 들어 올렸다. 어두워서 초점이 잡히질 않아 몇 번 씨름하다가 간신히 찰칵, 소리를 냈다.


“그 어플로 사진을 찍으면 저승시청 웹소설국 A/S 부서로 전송돼. 거기 소속 차사들이 확인하고 몇 시간 내로 수정해 줄 거야.”


그의 말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뭐랄까, 내 머릿속 저승은 재판을 주구장창 받으며 육체적 정신적 고문 장소가 잔뜩 있는 곳이었는데.


“저승이 꽤 신식이네요, 앱도 활용을 다 하고?”


“우린 언제나 신식이었어. 애당초 이승보다 ‘시청’을 더 빨리 세웠다고. 죽은 지 얼마 안 된 망자들이 저승에도 시청이 있냐고 놀랄 때마다 열 받는다니까.”


저승이 무슨 미개발 구역인 줄 알아? 투덜대던 설 팀장이 고개를 들어 살짝 푸른빛이 돌기 시작한 하늘을 보곤 걸음을 재촉했다.


도심 쪽으로 돌아올 즈음엔 날이 많이 밝아진 후였다. 시장은 이미 새벽 장사를 시작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는 빈 건물로 들어가 엑스트라 백성들이 입을 법한 중세 유럽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갈 거니 변장을 해야 한다는 둥, 공무원증은 벗지 말고 안에 숨겨 목에 걸라는 둥 설 팀장의 당부가 끊이질 않았다. 이래서 귀에 피날 것 같다는 표현이 있는 거구나···.


나는 밋밋한 연갈색 치마를 휘날리며 시장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마치 연극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색해 죽을 것 같다.


나보다 다섯 걸음은 앞서 걷던 설 팀장이 우뚝 선 걸 보고 따라 멈췄다. 길거리 가판대 앞에서 물건들을 유심히 살피던 깐깐쟁이 상사가 메스를 달라는 수술 집도 의사처럼 내게 말했다.


“김 주무관, 준비해.”


“? 돈을요?”


난 여기 화폐 없는데. 순수하게 걱정하는 내 얼굴을 본 설 팀장이 잠시 할 말을 잃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카메라 켜라고···. 애초에 부하 직원한테 돈 내라는 상사가 어딨어?”


“어어, 취직한 제 지인들 썰 들어보면 은근 있을 듯··· 요?”


“뭐? 이승은 어쩌다 그 모양이 됐‒, 아니다, 이리 와서 잘못된 부분부터 찾아봐.”


그의 검지가 가리키는 대로 가판대 물건을 살펴봤다. 그릇, 수저, 포크 등 부엌용 생필품이 종류별로 늘어져 있었다.


별문제 없어 보이는데? 옆에서 날 빤히 쳐다보는 설 팀장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아씨, 나 틀린 그림 찾기 게임도 못하는데. 폰을 쥔 손에서 땀이 얕게 뱄다.


새벽에 그릇 같은 거 파는 게 이상한 일인가? 과일이나 야채 같은 신선 제품들은 새벽시장에서 자주 파는데 부엌 물건들은 파는 걸 못 본 것 같기도? 아니 근데 그릇 포크 좀 판다고 엄청나게 문제일 것 같진 않은데?


내가 고민하는 사이 가판대에 손님들이 한 5명 정도 오갔나, 그때까지 난 아랫입술을 꾹 다물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뭐라도 말 안 하면 또 화낼 거야, 뭐라도 해야. 한바탕 야단을 각오하면서 설 팀장의 새까만 눈을 마주 봤다.


힘이 팍 들어간 내 손을 힐끔 본 팀장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바코드가 언제 발명된 줄 알아?”


웬 생뚱맞은 소리지? 그 와중에도 나는 설 팀장의 목소리가 그다지 화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이런 거나 알아차리고 신경 쓰는 나 자신이 조금 싫어졌다.


“···? 아뇨?”


“나도 몰라.”


뭐야? 그럼 왜 물어보는 건데?


“그렇지만 중세 유럽 배경인 세계에서는 쓰일 일이 없겠지. 적어도 컴퓨터가 발명된 후에 바코드가 쓰일 테니까.”


“그렇ㅈ··· 아!”


미친 거 아냐!? 나는 등골이 서늘해져 바로 앞에 있던 그릇을 들어 올렸다. 옆면에 버젓이 바코드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내 손에 들린 것뿐만이 아니다. 가판대에 진열된 다른 그릇들, 수저, 포크 하나하나에 바코드 스티커가 앙증맞게 붙어 있었다.


“아니 이런···. 평소에 파는 물건에 바코드가 붙어있던 게 당연해서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했어요.”


놀랍다 김너바나, 이 정도로 멍청했나? 27년간 살면서 늘 새로운 나의 두뇌 능력 기가 막힌다. 그만 놀라고 싶다! 이건 뭐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스스로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바코드를 앱으로 찍었다.


〔접수되었습니다^^〕


액정 위로 떠오른 안내창에 확인을 누르며 한숨을 뱉었다. 설 팀장이 무어라 더 말하려는 것 같기에 일단 입을 막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에서 이런 현대 문물이 나오는 거죠?”


잠시 진한 눈썹을 들어 올리며 날 내려다보던 설 팀장은 약간의 침묵 후에 대답해 주었다.


“빙의자는 엄연히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았던 현대인이니까, 오로지 빙의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세계관이 그 영향을 받는 거야.”


“그럼 저희는 이렇게 로판 세계관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현대 문물을 잡아 찍어야 하는 거군요? 아까 산처럼 어설픈 배경 요소들도 찍고.”


“현대 문물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적인 물건도 나올 때가 있어. 로맨스판타지에 어울리지 않는 건 다 잡는다고 생각해야 편해. 망자가 빙의자의 삶에 적응해서 현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흐려지면 우리 일도 점차 줄어들어.”


뚝, 뚝 하는 소리를 내며 목 스트레칭을 한 설 팀장이 바로 이동하자며 걸음을 옮겼다.


난 그를 부지런히 쫓아가며 다른 가판대에서 은근슬쩍 판매되는 손선풍기 사진을 찍었다. 이건 좀 신박한데.


아무튼 팀장은 괜히 팀장이 아니었다. 그는 경보에 가까운 걸음으로 시장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중세 유럽풍 로판 세계관에서 판매되어선 안 될 물건들을 귀신같이 잡아냈다.


도대체 경험이 어느 정도 쌓여야 이 정도 경지에 오르는 거지? 나는 체력 부족 이슈로 숨을 몰아쉬며 신발가게를 돌아봤다.


“김 주무관! 너 앞에 그거! 운동화!”


설 팀장 목소리를 듣자마자 N사 운동화가 시야에 들어왔다.


“유명 브랜드 운동화도 막 이렇게 팔리네요? 이래도 돼요?”


“유명 브랜드는 꼭 잡아야 해, 그 브랜드 소속 국가 저승이 컴플레인 걸면 골치 아파. 나도 알고 싶지 않았어.”


마지막 말이 뼈아픈데. 나는 브랜드 로고가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었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꼭 불법 주차 사진 찍어서 신고하는 것 같지 않나?


내내 마음속을 부유하던 기묘함의 원인을 깨달아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쯤, 옆에 서 있던 행인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오늘따라 시장에 사과가 안 보이네. 벌써 철이 지났나? 그럴 리가 없는데?”


“사과? 황궁에서 새벽 장이 열리자마자 전부 사 갔어.”


“왜?”


“황녀 전하가 사과를 좋아한다고, 황궁에서 수도에 파는 사과란 사과는 다 쓸어갔다던데. 폐하의 명이라는 소문이 돌더니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 황녀 말인가?”


오, 데이지 황녀 이야기다. 어제 황녀와 남주의 첫 만남 이후로 못 봤는데, 어떻게 되었으려나? 못 봐서 아쉽다.


나와 설 팀장은 게 걸음걸이로 행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황녀가 수상하다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황가를 욕보이는 말이라는 자각이 있는지, 수군대는 목소리가 급격히 작아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행인들 쪽으로 더 기울다 설 팀장 팔과 부딪혔다.


“앗, 죄송‒”


사과하다가 팀장 팔 끝에 달린 손을 봤고, 그 손이 휴대폰을 들고 있고, 그 휴대폰 화면에 지옥불 마이크 어플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순간 말을 잃었다.


“동의 없는 녹음은 불법 아닌가요?”


“우린 합법이야!”


“이렇게 폰 들이대면 들키잖아요.”


“여기 사람들한테는 이곳 세계 바깥에서 가져온 개인 물건들이 안 보여. 그냥 자기네들 쪽으로 손 뻗고 있는 내가 미친놈으로 보이겠지.”


그러니까 그 미친놈으로 보이는 게 문제 아니냐? 기가 차서 내가 조용해지자 행인들의 수다가 슬며시 들렸다.


“흥, 안 그래도 황녀 전하 때문에 흉흉한 소문이 돈다는 거 모르나?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는 황녀에게 돈 쏟아부을 바에 우리 굶어 죽는 빈민가 사람들 좀 구제할 것이지. 머리 좀 굴리면 바로 생각할 수 있는 정책 아닌가?”


“목소리 낮춰, 누가 듣겠어! 우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마냥 입 다물고 살아야지. 똑똑해서 황궁으로 끌려갔다 죽은 네 번째 황후 꼴 나고 싶나?”


삐빅!


설 팀장의 휴대폰에서 날카로운 알림이 울리더니 화면이 붉게 변했다. 잡았다, 하고 중얼거린 내 상관이 짓궂게 웃었다.


“김 주무관, 방금 저 엑스트라들 대화에서 오류 찾았어?”


“? 감히 죽은 황후를 들먹이며 욕한 거요?”


“그건 저놈들이 도덕적으로 아웃인 거고. 내용과 별개로 속담을 썼잖아.”


“속담을 쓰면 안 돼요?"


휴대폰 화면이 오류 사항을 쓰라는 팝업창이 떴다. 설 팀장이 양손의 엄지로 부지런히 글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건 아니지만, 저놈들은 하필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속담을 입에 담았잖아.”


나는 몇 초 동안 조용히 있다가 뒤늦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 여긴 한글을 안 쓰니까 한글을 논하는 속담이 나오면 안 되죠!”


바쁘게 타자를 치고 확인까지 누른 설 팀장이 빠르게 검지를 입술 위로 올렸다. 그 손짓에 머쓱해져 괜히 뒷머리를 긁었다.


“그럼 이제 다른 곳으로 가자.”


팀장이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놓고 등을 돌렸다. 나도 따라가려는데, 시선 끝에 아름답게 물결치는 백발과 샛노란 금발이 덜컥 걸렸다.


나도 모르게 다리를 움직이는 걸 잊고 그쪽을 쳐다봤다. 이곳의 젊은 여자들이 머리에 종종 쓰는 두건을 쓰긴 했지만, 특유의 반투명한 백발을 완전히 가려주지 못했다.


“잠시만요, 팀장님, 저 사람들‒”


내 외침에 설 팀장이 돌아왔다. 내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던 상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생기가 싱그러운 젊은 남녀로 분장한 데이지 황녀와 남주가 서로를 향해 웃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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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 업무 +1 24.08.29 9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 10) 사진 24.08.27 10 1 11쪽
10 9) 사과 24.08.26 1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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