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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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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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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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9) 사과

DUMMY

“너바나 씨, 웹소설 많이 읽어보진 않았다고 했죠?”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낙뢰 과장의 팩트 공격이 날아왔다. 나는 명치를 맞은 기분으로 배를 문지르며 생각했다. 이 사람 생긴 건 순한데 은근 폭력적이야···.


이건 세삼 왜 묻는 건데. 나 잘리나? 일단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낙뢰 과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업무를 바꿔볼 의향이 있나요? 웹소설 설정을 담당하는 안립 팀장 보조하는 일이, 지금 너바나 씨한테는 버거울 수 있겠다 싶어서.”


“어, 바꿔주신다면 그 업무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음, 인정할 건 해야지. 나는 지금 웹소설 문법을 잘 모르는 상태로 웹소설 관련 일을 해야 하는 거니까.


일단 주어진 건 해봐야 한다.


“근데 설 팀장 밑으로 들어가야 해요. 괜찮겠습니까?”


아니요···? 머리로는 배워야 한다는 걸 아는데 온몸이 뻣뻣해지면서 절 노려보던 눈길이 떠오르네요. 솔직히 너무 무섭고요, 제가 이렇게 나약합니다.


도저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투정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마주 잡은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걸 느끼며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같은 사무실 안에서 일하면서 함께 업무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안다고! 그렇지만 깨지고 난 다음날에 바로 같이 일하라니?


그때 느긋한 목소리가 허를 찌르며 들어왔다.


“안 팀장이랑 일하는 것보다 나랑 일하는 게 더 나을걸.”


고개를 삐걱거리며 돌아봤다. 제발 아니길 바랐지만, 설이설 팀장이 작게 하품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설 팀장을 가까이서 보자, 쫄림과는 별개로 그의 스타일링이 눈에 들어왔다. 목폴라와 바지가 몸에 적당히 달라붙어 호리호리한 몸선이 한눈에 보였다. 꼭 어디 모델 같군.


온통 블랙인 설 팀장의 옷차림 속에서, 그의 걸음걸이를 따라 흔들리는 금빛 안경줄은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아니 이제 보니 손가락마다 낀 반지도 다 금이네.


통일신라 출신이라던 그는 자칫하면 졸부 같은 패션을 우아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돌잔치를 열 번 했나?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던 사이 설 팀장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도달했다.


한쪽 눈썹만 휙 올리며 날 내려다본 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싫나?”


“설 팀장. 왜 괜히 시비야.”


바로 제지한 낙뢰 과장이 못 말리는 아우를 보듯 작게 한숨을 쉬자, 설 팀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제 상관을 향한 장난스러운 표정은 어제 명치를 맞았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뒤끝이 없는 편인가?


“아무튼 안 팀장보다 내가 낫다는 건 진짜야. 걔가 일을 잘하는 건 맞는데 혼자서 알아서 척척 하는 타입이라, 남들도 자기 같은 줄 알아서 세세하게 못 가르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낫다.”


내게 새침한 말투로 동료를 비판하던 설 팀장은 낙뢰 과장에게 경고해 두는 것도 있지 않았다.


“방금 한 말 안립한테 말하면 안 됩니다.”


달관했다는 듯 눈웃음만 짓는 낙뢰 과장이 내게 말했다.


“설 팀장은 얼마 전까지 플루토키아의 사수로 있었어요. 신입을 가르쳐본 경력이 있으니 업무를 잘 알려줄 겁니다. 아니면 제가 가르쳐주죠.”


“허구한 날 사무실에 콕 박혀서 웹소설만 써야 하는 사람이 신입 가르칠 시간은 어디 있답니까? 지금도 쓰다 나왔죠? 빨리 돌아가요.”


설 팀장이 과장의 등을 밀었다. 낙뢰 과장이 허우적대며 미약하게 반항했지만 키 차이가 워낙 나서 먹히지 않았다.


“아니 아니, 잠깐만, 줄 거 있어!”


낙뢰 과장이 부리나케 작은 상자를 내게 건넸다. 뭐지, 환영 선물? 참치캔 미니 세트 그런 건가?


머릿속으로 참치마요 제조법을 떠올리며 상자 뚜껑을 들어 올리자, 이제 막 나온 공무원증이 홀로 놓여있었다.


문제는 공무원 시험 원서 접수를 할 때 급히 넣었던, 몇 년 전에 화장도 없이 대충 찍은 증명사진이 공무원증에 크게 박혀 있다는 점이다.


원서 접수할 때 넣은 사진 그대로 쓰는 법이 어딨어···! 인간적으로 새로 찍게 해줘야 할 거 아냐!


나는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뚜껑을 도로 덮었으나, 과장과 팀장의 의아한 눈빛을 보고 속으로 울며 다시 열었다.


“사진 잘 나왔네. 공무원증은 반드시 목에 걸고 다니세요. 안 하면 다른 저승사자들이 탈출한 영혼인 줄 알고 잡아갈 수 있으니까.”


우리 과장님은 자꾸 웃는 얼굴로 무시무시한 말을 해···. 밍기적대며 공무원증을 목에 거는 사이, 설 팀장이 긴 팔로 낙뢰 과장을 제 자리에 앉혔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괜히 머리만 긁적이다, 설 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근데 어제까지 플루토키아 씨랑 데이지 황녀 감독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거 마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감독 일은 원래 키아 혼자 담당하던 일이라 괜찮아.”


긴 팔로 낙뢰 과장을 자리에 앉히는 데에 성공한 설 팀장이 날 향해 손을 까딱였다.


“지금 김 주무관한테 필요한 업무는 빙의자 감독이 아냐. 로맨스판타지 세계관의 기본 상식을 알려줄 만한 업무가 맞지.”


김 주무관. 처음 듣는 호칭을 곱씹다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나 공무원이었지?


다들 날 ‘너바나 씨’ 혹은 ‘김 씨’라 부르는 부서에서 제대로 된 호칭을 불러주는 사람이 첫날부터 날 혼낸 상사뿐이라니.


미묘한 기분으로 그의 손짓을 따라 음악실 문 앞에 섰다. 문을 향해 한 발짝을 성큼 내딛은 설 팀장이 갑자기 발을 물렸다.


“아참.”


설 팀장은 나를 향해 돌아선 뒤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여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 잘 부탁드립니다?”


같이 일하기 전에 정식으로 인사하자는 건가? 일단 나도 허리를 마주 숙였다.


살짝 고개를 든 설 팀장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인사하자는 게 아냐. 어제 일은 진심으로 사과하지. 내가 팀원들 앞에서 김 주무관한테 지나치게 화냈어.”


뭐?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에 몸이 굳었다. 정말 무슨 상황인지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게 사과 받을 일인가? 내가 멍청한 게 아니었나? 그동안 알바는 여럿 해봤지만 누구도 나에게 사과한 적이 없는데···.


다채롭게 변하는 내 표정을 본 설 팀장이 무심하게 덧붙였다.


“내가 김 주무관이 한 작명을 지적해야 했다는 생각은 변함없어. 그렇지만 침착하게 지적을 하거나, 아예 따로 불러내서 말할 수 있었는데도 모두의 앞에서 창피를 줬잖아.”


“아···.”


“김 주무관은 그저 자신이 한 작명 실수에 관련된 업무 지적을 받았으면 될 일이야. 그렇지만 상관인 내가 화를 내며 겁을 준 데다, 모두의 앞에서 그랬으니 무안까지 줬지. 이건 불필요한 일이었어.”


나는 흐트러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간신히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괜찮으면 안 돼. 두고두고 내 약점으로 트집 잡든가 해야지.”


사과는 이제 마무리되었는지, 설 팀장이 허리를 피고 주름진 옷을 손짓 몇 번으로 깔끔하게 폈다.


다시 문을 향해 선 그가 갑자기 내 쪽을 향해 고개를 틀어 속삭였다.


“그래도 트집은 엔간하면 속으로만 해줬으면 좋겠어.”


속이 근질거렸다. 벅벅 긁고 싶지만 부위가 정확히 어디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타입의 윗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이 사람, 행동 변화가 너무 빨라 도저히 감을 못 잡겠어.


설 팀장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겠다는 듯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무거운 음악실 문이 자동으로 활짝 열렸다.


뭐야? 난 어깨로 힘껏 밀어야 열릴락 말락 하는데! 황당해진 난 달음박질로 그를 쫓아가며 물었다.


“저, 이 문 어떻게 자동으로 여시는 거예요?”


“원래 자동으로 열리던데.”


문이 사람 차별하네!


***


아직 한밤중인 수도의 거리는 무척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이 곳곳에 비추긴 했지만, 온갖 네온사인 가게 간판과 자동차 라이트에 절여진 내 눈엔 부족했다.


그래도 밤하늘에 별이 좀 떴네. 10개쯤 되려나? 손가락으로 별을 세기 시작했다.


“앞 제대로 보고 걸어. 여긴 황궁 근처라 길이 잘 닦여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울퉁불퉁한 길이 많아. 너희 이승 같은 거리를 생각하면 안 돼.”


설 팀장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안 그래도 목이 뻐근해진 터라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근데 이제부터 무슨 일을 하는 건가요?”


“빙의자를 제외한 인물들의 대사 교열, 이 세계관의 배경과 소품 교정. 쉽게 말해 편집자 같은 일을 할 거다.”


설 팀장은 내 휴대폰을 받아 가더니 순식간에 무슨 앱을 다운받아 돌려주었다.


지옥불에 타오르는 카메라 아이콘과 녹음기 아이콘이 박힌 앱 두 개가 배경 화면에 자리 잡아 있었다. 디자인 구려···!


설 팀장도 바지 주머니에서 자신의 폰을 꺼내 들었다. 요즘 저승사자들도 스마트폰을 쓰냐는 순수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나는 그가 엄지만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자유자재로 터치하는 모습을 보고 제일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삼X폰 쓰시네요?”


“차사들은 다 거기 회사 폰 써. 국산 써야지.”


그치만 옷은 애X 창립자처럼 입으셨잖아요···. 청바지는 아니긴 한데 아무튼.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도심 외곽이었다. 가로등이 사라지고, 건물들이 드물어지고, 돌들이 여기저기 깔린 흙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 산 좀 봐. 지금은 어두워서 멀쩡한 산처럼 보이지?”


설 팀장이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할 듯한 산을 가리켰다. 이제 가로등도 없어서 옆에 선 팀장도 간신히 보일 정도로 어두웠기에, 당연히 산도 시꺼먼 형태로만 보였다.


팀장은 휴대폰 플래시를 키더니 산을 비췄다. 빛이 거기까지 닿겠어요, 딴죽을 걸려다가 놀라 숨을 삼켰다.


산은, 그러니까 내가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산이 아니었다.


그 왜, 있지 않은가. 학교 강당에서 작게 열 연극 무대를 꾸민답시고 초록색 스티로폼 판넬을 잘라 만든 산. 기껏해야 무대용 소품.


그 무대용 산이 우암산 만큼이나 거대하게 부푼 채 세워져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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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황자 24.09.06 8 0 11쪽
18 17) 간섭 24.09.05 7 0 12쪽
17 16) 서천 24.09.04 10 0 12쪽
16 15) 꽃밭 24.09.03 7 0 11쪽
15 14) 마석 24.09.02 7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0 1 11쪽
13 12) 업무 +1 24.08.29 8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11 10) 사진 24.08.27 9 1 11쪽
» 9) 사과 24.08.26 10 1 10쪽
9 8) 면담 +1 24.08.23 9 1 11쪽
8 7) 중립 24.08.22 10 1 11쪽
7 6) 조작 24.08.21 9 1 11쪽
6 5) 알현 24.08.20 9 1 11쪽
5 4) 조연 24.08.19 11 1 10쪽
4 3) 최악 24.08.18 11 1 11쪽
3 2) 작명 +1 24.08.18 14 1 10쪽
2 1) 면접 24.08.17 1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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