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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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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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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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생각

DUMMY

“아직 퇴근할 시간이 아닌데요?”


“네, 오늘은 일찍 끝나는 겁니다. 집에 돌아가서 쉬세요.”


그야 퇴근은 환영이지만. 나는 플루토키아에게 쏠리는 시선을 재차 바로잡았다.


“빙의자 세계관이 그 난리가 났는데, 담당자인 제가 지금 가버리는 건 좀···.”


무책임하지 않냐? 미처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낙뢰 과장이 용케 눈치채곤 웃었다.


“팀장 둘이 갔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으로썬 심신이 지친 상태라 명확한 업무 판단을 내리지 못할 거예요.”


낙뢰 과장은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지만, 눈길은 줄곧 플루토키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눈동자에도 표정이 있는 것 같군. 플루토키아에게 딱 봐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 건, 플루토키아와 단 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겠지. 나는 내 몫의 차를 다 들이키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정한 축객령이었다.


***


이제 뭐 하지?


무심천 대교 한가운데 서서, 시뻘건 저승의 하늘이 새파란 이승의 빛깔로 변하는 걸 보며 생각했다.


사실 할 거야 많지, 집안일도 밀렸고, 공부삼아 웹소설도 좀 읽어봐야 할 거고. 몸 상태도 별로야. 지금 팔다리에 힘이 없거든.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단 말이지.


무심천 수면에서 오리 가족이 평화롭게 떠다녔다. 그 옆으로 난 산책길에 바람막이를 입은 어르신들이 경보로 걷는 걸 보고 있자니 앓는 소리가 나왔다.


화려한 유럽풍 복장, 그 뒤로 숨겨진 암투, 갑작스러운 화재에 익숙해진 내 뇌가 평화로운 일상 풍경에 적응을 못 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일단 날 현실로 돌려놔야겠어.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면 좀 정신 차리지 않을까? 휴대폰을 켜 X톡에 들어갔다가 멈칫했다.


연락을 거진 다 끊었던 공시 3년 동안, 스스럼없이 연락할 친구가···. 사라졌···.


아니다, 몇 명 남아있다! 나는 친구 목록을 엄지로 빠르게 넘기다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이 지방 도시에 태어나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깔끔하게 졸업하고, 이곳(?) 공무원이 돼서 타지역으로 갈 일이 없어졌다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내 손에 모래줌처럼 남아있는 친구들은 거의 수도권에 올라가 있다는 걸. 아무래도 이 근처는 취업처가 다양하진 않은 편이라···.


대교 난간에 등을 기대고 친구 목록만 하염없이 내리다, 결국 퇴사하고 잠시 본가로 들어온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을 때까지 연거푸 했더니 나오긴 하더라. 욕은 좀 먹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문제는 카페에 가 자리를 잡은 뒤였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동창이 내게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공무원 발령이 빨리 돼서 다행이네, 우리 도시 시청에서 일하는 거야?”


여기 말고 저승! 저승이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이 대나무밭이 아님을 슬퍼하며 최선을 다해 말했다.


“어어, 비슷? 해.”


종이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휘젓던 친구의 손짓이 멈칫한다. 나는 떨리는 동공을 숨기기 위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넌 시청 어디로 발령이 난 거야?”


그 로맨스판타지과라고 있는데 말이지.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건 말하기가 좀··· 그래.”


“···시청에서 담당하는 일이 뭔데?”


망자의 영혼을 웹소설로 빙의시켜서 어쩌구··· 암튼 많은데 최대한 축약해서 말했다.


“그것도 말하기가 좀? 그래···.”


빨대를 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키던 친구가 작게 기침을 했다.


“아니, 바나야. 어차피 시청 홈페이지에 가면 각 소속마다 근무하는 공무원들 리스트 쫙 보여주잖아. 검색 좀 하면 바로 나오는 걸 뭐 하러 나한테까지 뭘 숨겨?”


아차, 위험하다. 내가 장난치는 거라 생각하는지, 작게 키득거리는 동창에게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마 난 그 리스트에 안 뜰 거야. 하는 업무 특성상 어쩔 수가 없거든?”


왜 말하면서 더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초코라떼를 마셨다. 아, 여기 초코 좀 쓰네.


“···너 국정원에서 일하냐?”


겠냐? 조각 케이크에 포크를 내리찍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동창도 진정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지 깔깔 웃고 만다.


이야기는 의외로 빠르게 환기되었다.


“공무원 힘들다는데 넌 괜찮아? 진상 민원인 뭐 그런 건 없고?”


진상은 업무 실수하는 내가 진상인 것 같은데. 아직도 데이지 황녀 이름만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철렁인다.


“나는 진상 만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고···. 일이 좀 어려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니까.”


“에이, 해본 일이면 신입이 아니지. 자신을 가져.”


아니, 내 생각엔 망자 영혼을 웹소설에 빙의시키는 일을 시키면,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신입일 것 같은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좋아? 그럼 일이 어려워도 할 만한데.”


“출신지는 다 다르긴 한데 뭐, 좋은 분들 같아, 아마.”


“고향이 다 다른가 봐? 어쩌다 이 도시 시청에서 일한대?”


고향이 문제가 아니라, 출신국 자체가 다르다. 나는 고조선 사람도 있다고 말하려다 욕이나 먹을 것 같아서 관두었다.


더 이상 말할 주제가 없군. 나는 화제의 화살표를 동창에게 돌렸다.


“너 재취업은 어때.”


“아― 짜증 나니까 묻지 마!”


스스로 머리를 헤집던 동창이 순식간에 풀이 죽었다. 그 애는 취업에 대해 더는 묻지 말라더니, 제 입으로 술술 불기 시작했다.


“지방에 일자리가 왜 이렇게 없을까, 미치겠다. 마땅한 데가 없어!”


“고향에 남으려면 장사하거나 공무원 해야 한다잖아.”


그래서 내가 공무원 한다.


“그러니까! 나도 여기가 익숙하니까, 이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고 싶거든? 큰 도시들은 너무 복잡해서 적응이 안 돼.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 눈치도 보여. 곧 아빠 퇴직인데 계속 얹혀살기도 좀 그렇고.”


“난 본가 가면 더 스트레스받아서···. 너도 부모님이랑 적당히 떨어져 살아야 맞는 경우일지도 몰라.”


내 대꾸를 듣고 길게 한숨을 쉰 동창이 창밖을 내다본다. 여기서도 무심천이 흐르는 게 보였다.


잠시 대화가 멈춘 사이, 얼음을 와그작 씹은 동창이 물어왔다.


“너도 가끔 그런 생각 하나?”


“뭐를?”


“밤에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 직전에. 내일 아침에 다시 눈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


나는 입을 떡 벌렸다.


“공시 3년 하는 동안 맨날 그랬는데? 요즘도 가끔 함.”


“그치‒? 야, 근데 이런 생각 아예 안 하는 사람도 있대. 난 이제 내가 자고 일어나면 어디 웹소설에 빙의되는 상상도 하는 수준인데.”


그 말을 듣자마자 마시던 초코라떼가 목에 크게 걸렸다. 내가 요란하게 기침하자, 더 당황한 동창이 티슈를 한 뭉텅이 건네주었다.


“갑자기 왜 그래?”


“내 업무가 늘어나는 상상을 잠깐 했더니···.”


나는 초코라떼로 얼룩진 입가를 닦으며, 동창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가 뒤집어졌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뭘 그렇게 봐.”


내 시선에 머쓱해진 동창이 볼멘 소리를 하길래 덕담으로 답했다.


“넌 꼭 오래 살아라.”


“아 너무 오래 사는 건 좀···. 적당히 살다 가고 싶다.”


“내 말이 그 말이야.”


***


MBTI 검색을 하면 I 성향이 95% 이상 나오는 나지만, 역시 친한 지인을 만나 밖에서 조금 놀고 나니 기분 상태는 제법 좋아졌다.


출근할 때도 껄끄러운 플루토키아를 어떻게 보지, 하는 걱정이 딱히 들지 않았다는 소리다. 하하,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 늘 그렇듯 타자를 바쁘게 치는 낙뢰 과장과, 종이컵을 입에 물고 있는 안립 팀장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팀장님.”


“어서 와요~ 어제 일찍 퇴근했다더니 안색이 꽤 좋아 보이네요! 잘 쉬었어요?”


“네. 감사해요.”


뭐가 감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안립 팀장이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일어섰다.


“혼자 갈까, 너바나 씨랑 갈까 고민했는데 타이밍 맞게 오셨네요. 플루토키아가 지금 입원해 있는데, 지금 같이 병문안 가시겠어요?”


“예? 어디 많이 아픈 건가요?”


어제 화재 현장 한복판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땀만 흘리던 미남의 옆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아픈 사람 두고 나 혼자 쏠랑 퇴근한 셈이잖아.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어제 내가 퇴근하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냐. 나는 정신없이 한글 파일을 채워나가고 있는 낙뢰 과장을 힐끔거렸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어제 너바나 씨가 퇴근하자마자 기절했다고 하더라고요. 아까까지 과장님이 간병하다 오셨어요.”


이런 말까지 들으면 병문안을 안 갈 수가 없다. 그렇지만 어쩐지 신경 쓰이는 주제는 묻고 넘어가야겠는데.


“저도 병문안은 가고 싶은데, 데이지 황녀네는 설 팀장님이 계속 혼자 감독하시는 건가요?”


“아, 거긴 완결 났어요.”


“예???”


아니 나 빼고 완결하는 게 어딨어! 나는 너무 기가 찬 나머지, 제정신이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본심을 쩌렁쩌렁 외쳤다.


“그 뜬금없는 불난리가 갑자기 터졌는데 완결이 어떻게 났대요!?”


헙. 나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안립 팀장과 낙뢰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신기한 마법 동물을 보듯 날 쳐다보고 있었다.


“···글 좀 써본 사람이라 그런가, 확실히 눈치가 빠르네요. 그쵸 과장님?”


눈치랑 글이랑 무슨 상관···. 살짝 기가 질린 날 두고 상관들 사이에 웃음 섞인 시선 교환이 이루어졌다.


“너바나 씨 말대로 화재가 좀 뜬금없었죠? 뭐 서민처럼 자란 황녀를 미워하는 이들은 많긴 했지만, 역병을 황녀가 퍼뜨렸다고 믿는 이들이 돌연 나타난 건 좀 갑작스럽긴 해요.”


내가 눈만 끔뻑거리고 있자, 안 팀장이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 주었다.


“황녀를 마녀라 칭하고, 황녀를 죽이기 위해 암살단을 꾸려 화원에 불까지 지를 정도면 그 과격분자 모임의 규모가 꽤 컸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간 너바나 씨가 일하면서 한 번도 그 낌새를 느끼지 못했잖아요.


웹소설의 전체 흐름을 감독하는 입장으로써, 황녀를 위협하는 무리들의 낌새도 눈치를 한 번쯤은 채야 하는데.”


“아, 맞아요, 그래서 좀 뜬금없이 느껴졌어요. 완결 직전에 뭔가 억지로 만들어진 것 같고···.”


안립 팀장이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에 내가 얼결에 정답을 말했음을 알았다.


“그 반동분자들 모임은 웹소설 전개를 망치고, 겸사겸사 플루토키아를 압박하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제작해 몰래 투입한 캐릭터들이에요.


그래서 원래라면 소설에 나올 일이 아예 없는 화재가 발생한 거죠, 뜬금없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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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 화재 24.09.11 9 0 11쪽
21 20) 영웅 24.09.10 8 0 12쪽
20 19) 친우 24.09.09 8 0 11쪽
19 18) 황자 24.09.06 9 0 11쪽
18 17) 간섭 24.09.05 8 0 12쪽
17 16) 서천 24.09.04 11 0 12쪽
16 15) 꽃밭 24.09.03 8 0 11쪽
15 14) 마석 24.09.02 8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1 1 11쪽
13 12) 업무 +1 24.08.29 9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11 10) 사진 24.08.27 10 1 11쪽
10 9) 사과 24.08.26 10 1 10쪽
9 8) 면담 +1 24.08.23 10 1 11쪽
8 7) 중립 24.08.22 11 1 11쪽
7 6) 조작 24.08.21 10 1 11쪽
6 5) 알현 24.08.20 10 1 11쪽
5 4) 조연 24.08.19 11 1 10쪽
4 3) 최악 24.08.18 12 1 11쪽
3 2) 작명 +1 24.08.18 14 1 10쪽
2 1) 면접 24.08.17 1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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