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33
추천수 :
15
글자수 :
113,713

작성
24.09.05 17:47
조회
7
추천
0
글자
12쪽

17) 간섭

DUMMY

설 팀장과 사라도령은 별 희한한 꽃 이름들을 대며 다투기 시작했다. 주로 팀장이 저 꽃 좀 써달라고 하면, 사라도령이 갖가지 이유를 들며 퇴짜 놓는 식이었다.


그나저나 꽃 이름이 대단히 직관적이라 무슨 효과가 있는지 대충 알겠군. 방금 들린 ‘살살이 꽃’은 사람의 살을 채우는 꽃이겠지.


혼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하품을 참고 있으려니 설 팀장이 이제 퇴근하라며 등을 떠밀었다.


나는 어디선가 나타난 음악실 문을 통해 사무실로 돌아갔다. 본인 자리에 앉아 종이컵 테두리를 잘근잘근 씹던 안립 팀장이 날 발견하고 눈썹을 크게 올렸다.


“어, 왜 막내 혼자 와? 퇴근 시간이에요?”


나는 팀장의 입에서 떨어진 종이컵이 내 발치로 힘없이 굴러오는 걸 주워 쓰레기통 위에 떨궜다.


“네. 약초 개발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더라고요.”


“아잇, 설 팀장 골려주려고 일부러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었는데. 컵 버려줘서 고마워요! 지저분하니까 다음부턴 제가 치울게요. 너바나 씨도 커피 한잔할래요?”


이제 퇴근할 건데 커피를 권한다고···? 상사의 권유를 대놓고 거절하지 못하는 내 동공이 조용히 흔들리자 안 팀장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맞다, 퇴근한다고 했죠. 미안해요, 저승사자들은 퇴근 없이 종일 일해서 순간 깜빡했네요.”


···!?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저승사자들은 퇴근을 아예 안하신다고요? 그럼 안 쉬세요?? 잠은요?!”


“차사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 잠을 잘 필요가 없거든요. 음식도 딱히 먹을 이유가 없고. 그렇다고 정말로 하루 종일 계속 일하는 건 아니고. 가끔 딴짓도 해요!”


아니···, 누가 잠은 죽어서 잔다고 했냐? 죽으면 아예 못(안) 자는데!? 안 팀장이 전자제품 설명서를 읽는 것마냥 담담하게 얘기해서 더 당황스럽다.


나는 필사적으로 화제를 돌릴 거리를 찾았다. 빨리 산뜻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 그러고 보니 설 팀장님이 사라도령님이랑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요.”


말머리를 돌리려는 시도가 상당히 빤히 보이는 말이었지만, 안 팀장은 적당히 받아주었다.


“그 영감님이 일방적으로 설 팀장을 귀여워하는 거죠. 그 통일신라 남자는 까칠해서 건드리는 맛이 있거든요. 신입 저승사자 땐 쌈닭 그 자체여서 영감님한테도 많이 대들었다는데···.”


말꼬리를 늘이며 작게 키득거리던 안 팀장이 말했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서천 꽃밭에 너바나 씨를 굳이 데려가기도 하고. 너바나 씨도 거기 꽃밭 구경 잘했죠? 기억해 둬요.”


“그야 구경은 실컷 했지만···, 기억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안립 팀장은 시뻘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일하던 중 너바나 씨 혼자 남았는데 무슨 일이 생겼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이동문을 써서 서천 꽃밭으로 대피하셔야 하거든요. 가서도 영감님 옆에 딱 붙어 있는 게 베스트고요.


그, 이승에선 지진 같은 거 대비해서 대피장소를 미리 정해둔다죠?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 설 팀장은 대피 훈련 겸 날 데려갔던 건가. 설마 또 갈 일이야 있겠냐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 팀장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런데 왜 서천 꽃밭으로 피해야 하나요?”


“서천 꽃밭은 저승의 꽃밭이라 불리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 있는 중립 존이거든요. 그래서 저승의 존재가 생자를 함부로 해칠 수 없어요.


그곳의 관리자인 사라도령 영감님 가족도 생자 고용을 우호적으로 여기는 진보파거든요. 도움을 청하기도 비교적 수월하죠.”


···생자 고용을 우호적으로 여긴다고 콕 집어 말하네? 나는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느껴 눈살을 찌푸렸다.


미심쩍은 부분을 고민하려던 찰나, 뒷머리가 콱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머리를 너무 굴렸나, 두통이 오네.


피로가 급격히 몰려오는 게 분명했다. 나는 상사 앞에서 모든 생각을 접어두고 기계적으로 웃었다. 가자마자 씻고 자야지.


***


두통약 2개를 먹고 출근한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쩐지 지나치게 일찍 등교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뭘 해야 하지? 바로 현장에 가면 되나!? 나는 내 자리에 앉아 노트북 메신저를 켜 설 팀장에게 예의 바르게 연락을 취했다.


-팀장님 저 출근했습니다 오전 8:50

-팀장님 어디 계세요? 오전 8:50

-팀장님 저 어디로 가면 될까요? 오전 8:51

-팀장니뮤 오전 8:54

-바쁘실까요?? 오전 8:55


어찌하여 연락을 받지 않는가···. 나는 음악실 문을 째려보며 홀로 고민했다.


신규 혼자 맘대로 드나들어도 되는가. 갔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장소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속보] 저승시청에 입사한 신규 3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경찰 수사 시작’ 같이 나올 리 없는 기사 제목을 수십 개 자아내다, 책상 모서리에 붙은 포스트잇을 뒤늦게 발견했다.


출근하면 바로 황궁에 있는 플루토키아 쪽으로 합류할 것


꽤나 명필인 필체가 멋들어지게 적혀있다. 속으로 감탄하며 포스트잇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설 팀장의 필체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메신저에 쪽지 확인했다는 말을 남기고 음악실 문··· 아니 이동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역시 자동으로 안 열리나. 2분 남짓 기다리던 난 그냥 어깨로 문짝을 밀었다. 무겁기는 더럽게 무겁네.


문틈 사이가 어찌저찌 벌어지자 냅다 비집고 파고들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안대가 덮어 쓰인 것처럼 시야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


나는 반사적으로 벽에 바싹 붙어 서고 숨을 크게 들이쉬다 바로 기침을 터뜨렸다. 모델하우스에 가면 흔히 맡을 수 있는, 인공적인 가구 냄새가 먼지와 섞여 콧속에 들어오고 있었다.


옷소매로 코와 입을 막아 진정하던 중 암적응이 된 시야가 점차 선명해졌다. 우리 집 원룸만 한 공간에 먼지 쌓인 천을 뒤집어쓴 가구들이 질서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창고 같은데. 나는 최대한 먼지를 덜 일으키고 싶어 벽을 따라 출입문 쪽으로 조심스레 이동했다.


혹시 몰라 출입문에 귀를 맞대보니, 바깥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슬쩍 문고리를 돌렸다.


끼이익―


문을 완전히 열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황궁 복도가 나왔다. 깨끗이 청소만 되어있지 않았다면 버려진 황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근처에 사람이 없어서 땡큐긴 하지만 플루토키아는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는 거지? 나는 도둑이 된 것처럼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걸었다.


나는 와인색 카펫 위를 숨죽여 한참을 걸었다. 속된 말로 황궁 안에 쥐새끼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상태가 지속되자 내 마음속에 근거 없는 용기가 솟아, 나도 모르게 편히 발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걸음이 점차 빨라지고 있었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새벽 3시에 자동차 하나 없는 4차선 도로를 멋대로 가로지르는 쾌감이 일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상아색 기둥들을 앞지르다, 꺼진 샹들리에가 달린 아치형 천장도 올려다보고, 구석에 그려진 아기천사와도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뻘쭘해 르네상스풍 벽지로 시선을 내렸다. 수십 개의 초상화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황에서도 현 황제와 황자들, 그리고 황녀 데이지의 그림을 찾아냈다.


저런 건 언제 그렸대. 속으로 감탄하다 문득 정면을 보고 브레이크를 걸듯 발꿈치를 양탄자 위에 깊숙이 박았다. 내 몸이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우우웅—


저 앞에 커다란 덩어리 같은 것이 복도 바닥을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다. 크기가 커서 피해 가기도 애매한데.


나는 점차 잦아드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살금살금 다가갔다.


복도 벽면에 작은 불빛이 켜져 있긴 했지만, 밝기가 감성용 무드등 수준이라 물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좀 더 가까이 가고 나서야, 물체에 길게 삐죽 튀어나온 것이 사람의 다리를 깨달았다.


등골이 순식간에 차게 굳었다. 나는 발을 더 이상 내딛지 못하고 입만 뻥긋대다, 내게 보인 커다란 덩어리가 몸을 한껏 웅크린 사람의 등짝인 걸 한발 늦게 알아봤다.


“···!!”


왜, 왜 복도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지!? 나는 재빠르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쓰러진 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새파래진 안색, 푸석푸석한 백발, 가슴을 고통스럽게 부여잡고 있는 눈앞의 청년.


간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선천적 심장 질환이 있다던 제2 황자였다.


이름이 디기탈리스 라나타였나? 아까 사무실에서 짧게 훑어봤던 등장인물 명단을 떠올리며,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켜고 키패드로 119를 입력하다 순간 몸을 떨었다.


안 돼, 여긴 로맨스판타지 세계관이잖아. 119가 있을 리 없어. 어떡하지? 왜 이 드넓은 황궁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거야? 도움을 청할 수도 없어, 내가, 내가 뭘 하면 되지?!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미간을 힘껏 일그러뜨리고 있던 2 황자가 인기척을 눈치채고 내 손목을 콱 틀어쥐었다.


“!”


“빨리··· 가서, 사람···, 의원을 불러 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내 손목을 감싼 2 황자가 말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목소리에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사람? 사람을 불러오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반사적으로 오던 길을 뒤돌아보고 암담한 기분에 끝도 없이 추락했다.


침입자가 들어와서 망아지처럼 뛰노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던 복도. 소리라도 질러볼까?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팔뚝을 쓰다듬다, 내 옷차림의 문제도 깨달았다.


엑스트라 복장이 아닌, 여느 대한민국 직장인처럼 평범한 셔츠에 바지 차림. 이 상태로 로판 속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애타게 손목을 잡고 있던 2 황자의 손아귀의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죽어간다. 틀림없어.


나는 덜덜 떠는 손으로 황자를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눕혔다. 갓 태어난 아기 기린처럼 휘청이며 몸을 일으키다, 반대편에 서 있는 인영을 보고 멈칫했다.


그 붉은 안광은 어두운 복도에서도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가에 커다란 미소를 그렸다.


“플루토키아 씨‒”


“‒안 됩니다.”


내 말을 싹둑 자른 그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칼날이 비집고 들어가지도 못할 만큼 굳어있지만,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나는 자꾸만 떠오르는 예감을 억누르며 간신히 되물었다.


“뭐가···.”


“그의 부탁대로 사람을 불러와선 안 됩니다. 저희는 이야기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걸 잊으셨습니까?”


허, 나는 숨을 터뜨렸다.


“그렇지만 지금 눈앞에서 황녀의 오빠가 죽어가요, 사람은 살려야 할 것 아녜요? 사람들이 황자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쪽으로 불러놓고 뒤로 빠져있으면 되잖아요!”


“그는 빙의자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기 보단···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죠. 당신과 반대로요.”


본인의 말에 스스로 데미지를 입은 듯, 플루토키아의 얼굴에 고통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희미한 감정을 붙잡아 애원해 보려 입을 열었지만 그가 한발 빨랐다.


“그는 이 웹소설의 조연입니다. 자주 등장하던 인물도 아니죠. 죽더라도 이야기의 큰 줄기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9/13 휴재 24.09.13 3 0 -
24 23) 노인 24.09.16 2 0 11쪽
23 22) 생각 24.09.12 4 0 11쪽
22 21) 화재 24.09.11 9 0 11쪽
21 20) 영웅 24.09.10 8 0 12쪽
20 19) 친우 24.09.09 8 0 11쪽
19 18) 황자 24.09.06 9 0 11쪽
» 17) 간섭 24.09.05 8 0 12쪽
17 16) 서천 24.09.04 11 0 12쪽
16 15) 꽃밭 24.09.03 8 0 11쪽
15 14) 마석 24.09.02 7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1 1 11쪽
13 12) 업무 +1 24.08.29 9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11 10) 사진 24.08.27 10 1 11쪽
10 9) 사과 24.08.26 10 1 10쪽
9 8) 면담 +1 24.08.23 10 1 11쪽
8 7) 중립 24.08.22 11 1 11쪽
7 6) 조작 24.08.21 9 1 11쪽
6 5) 알현 24.08.20 10 1 11쪽
5 4) 조연 24.08.19 11 1 10쪽
4 3) 최악 24.08.18 12 1 11쪽
3 2) 작명 +1 24.08.18 14 1 10쪽
2 1) 면접 24.08.17 15 1 10쪽
1 프롤로그 +1 24.08.17 18 1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