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천재 화가가 그림을 너무 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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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론상이
그림/삽화
오후 10시 15분 연재
작품등록일 :
2024.08.2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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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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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그림

DUMMY

1. 



신은 나를 사랑한다.


신은 나에게 미술에 대한 재능을 주었으며,

그 재능을 꽃피울 풍족한 환경까지 선사했다.


신은 나를 사랑했고, 모든 것은 완벽했다.


"마르코, 네 그림은 정말 완벽해!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


마르코 델 피오레.

신의 사랑을 받은 화가라고 불리는 존재.


그게 바로 나였다. 


“당연하지. 내가 그린 거니까.”


녀석은 넋을 놓은채 그림을 빤히 쳐다보더니 연신 감탄어린 말들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현실을 그대로 옮겼다고 평가되어지는 풍경화는 다른 화가들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심지어는 진짜 나뭇잎인가 싶어 손으로 만지려던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내 두 눈으로 보고, 내 손끝에서 태어난 그림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내 작품을 바라봤다. 캔버스 위에는 피렌체의 아르노 강이 펼쳐져 있었다.


강물에 비치는 햇살, 강변의 나무들, 멀리 보이는 건물들까지. 


모든 것이 실제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고,

완벽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정도로 섬세하게 그릴 수 있는거야?“

”간단해. 보이는 걸 그대로 그리면 돼.“

”역시......마르코야! 너는 정말, 정말로!! 대단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던 녀석은 이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너의 정교함과 상상력은 피렌체에서 따라갈 사람이 없을거야! 그건 내가 장담해!“

“......상상?”


턱 걸리듯, 녀석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어디에 상상이 있다는거지?”

“하지만 이 정도 그림을 하루만에 그리진 못했을 거 아니야. 어느정도는 상상이 가미된.......?”


녀석의 말에 한층 더 미간을 좁혔다.


내게 그림이란 언제나 현실을 비추는 거울.

상상이라는 거짓이 담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설령 천사, 아니 성인(聖人)의 그림이여도 말이다.


"내 그림은 현실 그 자체니까. 여기에 상상 따윈없어.”

“에이, 하지만 모든 그림은 상상 없이는 그릴 수 없는 걸? 막말로 해가 지고난 뒤엔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눈이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지. 이 그림은 아르노 강이라는 걸."


더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단칼에 말을 잘라냈다.


하지만 녀석은 끈질겼다.


"마르코, 네 그림은 정말 대단해. 하지만······”

“그만.”


몸을 돌렸다. 이 다음 말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이곳을 떠나려했으나,


발걸음보다 목소리가 더 빨랐다.


“그림에 네 생각이나 감정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뭐?"

"물론 지금 네 그림도 멋있어. 완벽해. 하지만......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걸."


......하, 어이가 없군.


고개를 돌렸다. 산드로가 쭈뼛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훈수를 두는 주제에 당당히 말할 용기는 없나보지? 나는 삐뚜릅하게 입꼬리를 올린 채 녀석을 노려봤다.


알렉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

삼류 무명 화가이자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소꿉 친구.


그는 그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제에 입만 살아가지곤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하며 내 그림을 보고 훈수를 두었다.


"산드로. 대체 언제까지 '감정' 타령할 셈인데?”

“하지만 마르코. 감정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야. 예술은 그걸 표현할 의무가 있어.”

“하! 의무라. 누가 들으면 내 그림은 죗덩어리인 줄 알겠군.”

“그, 그런게 아니라—”


더욱 세게 말하자 산드로가 눈알을 뱅뱅 굴리며 말을 찾았지만, 쉽게 다음 말을 찾을 수 없는 듯했다.


허? 정말로 내 그림을 보고 죄라고 생각하는건가? 나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산드로와 내가 처음부터 어긋났던 건 아니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함께 그림을 그리며 놀았고, 누가 더 똑같이 나뭇잎을 그리나를 두고 내기를 할 정도로 마음이 맞는 친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좋은' 그림에 대한 생각이 같았으니까.


그림이란 곧 현실을 투영하는 것.

사실적인 그림일 수록 가치있는 그림.


즉, ‘좋은’ 그림이란 거울을 보듯이 똑같이 그려낼 수록 좋은 그림이었고, 얼마나 똑같냐에 따라 화가의 명성은 높아졌다.


하지만 어느 날 부터 그의 그림이 달라졌다.


아름답지만 번잡했다.

현실은 커녕 현실에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을 그렸다.


‘나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네 그림들은 너무 난잡해. 색감 역시 지나치게 환상적이지. 현실감이 없다고.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만 하는 네 그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그림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걸 그리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해야해."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정도 말에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혹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을텐데.


그는 나와 이야기를 할 때면 조심스러울지언정 결코 굽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의 말을 가볍게 코웃음쳤다.


“보이지 않는 것?”

“영혼이나 내면같이 보이지 않는—”

“하하하하!!”


배를 부여잡고 웃어댔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산드로를 바라봤다.


"영혼과 내면이라! 그래, 이제야 알겠군. 자네 그림이 안팔리는 이유는 자네의 내면이 썩어 문드러져서 아무도 사지 않는거였군!”


발작하듯 웃어보이는 내 말에 산드로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사람들이 못 알아봐줄 뿐이야.”

“그래, 그래. 언젠가는 알아봐주겠지. 그런데 언제? 네 피부가 다 썩어서 흙이 되고서야 인정을 받으려나?”


결국 녀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연극배우가 표정을 싹 바꾸듯이, 능숙하게.


“나도 자네 의견에 아주 반대하는 건 아니야. 예술가의 사상, 내면. 그런 것들 당연히 중요하지. 오죽하면 이전 세대의 사람들도 ‘마음'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그런데 말이야. ‘마음’은 어디에 있지?”


순간 산드로가 벙찐 표정을 지었고,

난 그 표정이 퍽 만족스러웠다.


본인도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꼴이라니! 스스로의 모순에 걸려든 멍청한 놈같으니라고.


나는 버벅이는 녀석을 향해 말을 쏘아댔다.


“마음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면서 마음을 그릴 수 있는가?”

“마, 마음을 그리라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담아서 그리라는 뜻인—”

“아냐, 그런게 아니네, 산드로. 마음을 담고 말고는 복잡하게 이야기 좋아하는 철학자들이나 할 법한 말이지. 그림쟁이인 우리는 사실을 담아내야 해. 그게 진짜 예술의 의무야.”


확고한 내 말에 산드로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런 그를 난도질할 마냥 더욱 쏘아붙였다.


“보이지 않는 걸 그리는 건 사기꾼들이 하는 일이야. 자네는 화가가 되고 싶은건가, 사기꾼이 되고 싶은건가?”

“......”

“이런, 죗덩어리인 그림을 그리는 건 내가 아니라 자네였나보군."

"그런게 아닌—"


반박하려고 입을 뻥끗거리는 녀석을 향해 내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리고 설령 자네도 잘 모르는 마음인가 뭔가를 듬뿍 담아 그림을 그렸다고 사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네. 중요한 건 마음이냐, 사실이냐가 아니니까."

".......그럼 뭐가 중요한데?"

"팔리는 그림이냐, 아니냐.”


나는 씩 웃으며 그림을 가리켰다.


“내 그림을 봐. 아르노 강을 화폭에 완벽히 그렸다는 이유로 이번에 메디치 가문에서도 인정받았지. 이제 정식으로 후원을 받게되었다는 말이야!”

“메, 메디치 가문?”

“그래. 네가 말한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없는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인정을 받았다는 말이야. 그런데 넌 지금 어떻지? '내면'이 담긴 그림? 그런 그림을 사줄 사람이 있을까?"


녀석은 지나치게 순수했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저 혼자 꿈 속에 사는 놈이었다.


영원히 무명 화가로 살다 죽을 놈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이해해줄 거라 믿어."


산드로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턱을 치켜들고 코웃음을 쳤다.


"잘 들어, 산드로. 네가 진정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

“지금이라도 내 발밑에 엎드려 배우는 게 좋을 거야. 사실적으로."


그림 한 점 팔지 못한 반푼이.

꿈만 쫓다가 배곯아 죽을 놈.


한때 같이 그림을 그렸던 동료로서 진심을 담아 충고했다.


"인정받지 못하는 그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네가 말하는 '내면'이란 것도 그저 네 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변명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니까."

“난......네 옛날 그림들이 더 좋아.”


아아, 또 이 소리군. 지겨워라.


“그딴 습작이 더 좋다고 말하는 놈은 너 하나뿐일 걸? 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내 그림을 좋아하고 있으니.”


산드로의 눈빛이 흔들렸다.


쯧, 불쌍한 놈. 얄랑한 신념에 사로잡혀 재능을 펼치지 못하다니. 지금도 앵무새마냥 과거를 운운할 뿐이다.


팔리지 않는 그림은 존재 가치가 없다.

팔리는 그림만이 인정받는다.


그리고 내 그림은 팔리는 그림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네. 자네는 열심히 ‘마음’을 그려보게나. 아! 참고로 난 자네 그림들을 별로 안 좋아하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나는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을 느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창백한 표정으로 서있는 녀석을 뒤로 한 채로.



*



"마르코 델 피오레, 자네의 재능은 정말 신의 사랑을 받고 있군."


로렌초 데 메디치의 찬사에 나는 그저 당연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게 된 지 몇 달.


나는 피렌체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가가 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로렌초 님. 제 눈으로 본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겠습니다."

"그래. 그래서 말인데 마르코, 우리 가문의 수호 성인인 고스마님을 그림을 그려주게나."

"......성인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자네의 섬세한 묘사라면 분명 고스마님의 모습을 완벽히 그려낼 수 있을테지.”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성인. 수백년 전의 인물.


"그게 사실 전 고스마님을 직접 본 적이······없습니다."

“하하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그러니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 아니겠나?”

“하, 하지만······.”

“걱정 말게. 상상력을 발휘하면 되네. 자네가 생각하는 고스마님의 모습을 자네의 두 손으로 그려내주게나."


별 문제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나에겐 그게 큰 문제였다. 


내 손은 오직 눈으로 본 것만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온 나는 며칠 동안 나는 성인화를 그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붓은 계속 멈췄고, 화폭은 백지 그대로였다.


"어떻게 됐나, 마르코?"

"죄송합니다. 아직......진전이 없습니다."


로렌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흐음......정말로 공을 들이고 있나보군. 좋네, 시간이 필요하다면 더 주지."


하지만 시간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내 붓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아이마냥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모든게 백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마침내 의뢰를 받은 지 반년이 되던 날. 로렌초가 나를 불렀다.


"마르코, 무슨 문제가 있나?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로렌초 님. 전...... 고스마님을 그릴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자네 실력으로 못 그릴 리가 없지 않나."

"제가 볼 수 없는 걸 그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허?”


로렌초의 미간이 좁아졌다.


"마르코, 그림은 때론 상상력을 필요로 하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것도 화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만."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습니다. 제 그림은 진실만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은 수호성인님이 진실하지 않다는 뜻인가?”

“그, 그게 아니라—”


침묵이 흘렀다. 로렌초의 표정은 실망이 가득했다. 

그 표정을 보며 나는 직감했다.


"알겠네, 마르코.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군."

"자, 잠깐만요! 제발 기회를 주십시오. 성인화만 아니면 됩니다. 다른 그림을 그리면, 그래 초상화는 어떻습니까? 로렌초님의 모습을 제가 있는 그대로—"


그러나 로렌초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림은 소통이지. 후원자와 화가 사이의 소통, 그리고 작품과 대중과의 소통. 하지만 자네의 그림엔 아무런 말도 없어.”

“......”

“이만 가보게나.“


로렌초의 단호한 어조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더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쯧, 한 평생 빈 종이만 그리고 있었을 줄이야.”


그 날로 나는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후원이 끊겼다. 그리고 그건 내 화가 인생에서 엄청난 타격이었다. 가장 힘 있는 가문으로부터 버려진 화가를 주워 갈 가문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버려졌다.


“......빈 종이? 빈 종이라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장사치 주제에······.”


나는 매일 밤 술에 취해 거리를 헤맸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술을 거하게 마신 탓일까, 딸꾹질이 계속 올라왔다. 술기운이 머리 끝까지 올라와 눈 앞이 이리저리 울렁거렸다.


"으윽......!"


그렇게 강한 두통과 함께 발을 헛디딜려는 찰나,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았다.


"마르코?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들어보니 산드로였다.


순간적으로 녀석을 보니 지난 날 쏘아붙이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말들은 비수가 되어 내게 꽂히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됐다. 됐어. 또 뭐 이상한 그림 낙서 찌끄래기나 그리고 앉아있었겠지. 이번엔 선술집에서 그림 의뢰라도 받았던게냐?”

“아, 그게 아니라······.”

“돈도 없고 배알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너 같은 걸 후원해주는 놈은 아마 아무도 없을거다!”


분에 받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괜한 분풀이라도 하지않으면 속이 뒤집혀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산드로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평소처럼 주눅이 든 표정이 아니라 어딘가 믿을 구석이 생긴 것 같은 표정.


......설마. 나는 녀석을 바라봤다.


“널 후원해주겠다고 하는 머저리가 나타난거냐? 허?”

“사실 로렌초님께서 내 성인화를 보시고는······"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너······설마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산드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코, 넌 괜찮을 거야. 네 실력이면 곧 다른 후원자를 찾을 수 있어!"

"닥쳐!"


산드로의 말을 자르며 소리쳤다.


"너, 너 지금 내가 후원 끊겨서 속으로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지? 웃기지 마. 넌 아무것도 몰라."

"마르코, 난 그저······."

"난 곧 더 큰 후원자를 찾을 거야. 내일 밤 귀족나리들의 파티에 초대받았거든. 넌 그저 네 구석에서 허구의 성인이나 그리고 있어."


마음 깊은 곳 분노와 질투가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쳐올랐다. 비틀거리며 아르노 강변을 걸었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발걸음은 흔들렸다.


"마르코! 멈춰! 거기는—!"


뒤에서 산드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꺼져! 꺼져버리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놈 주제에!"


악을 쓰며 외치던 그때.


발이 앞으로 쭉 미끄러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강에 빠졌고, 눈과 코, 입으로 강물이 폭포수마냥 흘러들어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차가운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사, 사람 살려!”


어푸어푸, 거리며 열심히 헤엄을 쳐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날, 비가 많이 왔었던 탓일까. 물살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녀석과 나는 멀찍이 떨어졌다. 저 멀리 산드로의 절규가 들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마르코—!"


강물에 뛰어들려는 그를 양옆에서 사람들이 막아세우고 있었다.


아. 점점 몸에 힘이 빠져가는 걸 느꼈다. 나는 물 속으로 가라앉는 와중에 흐릿하게 위를 쳐다봤다.


귓가에 들리는 물살 소리. 그리고 별.


'이게······ 내 최후인가······.'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로지 그림 하나뿐이던 내 인생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그려왔던가.

내 그림은, 정말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가.


나는, 나는 대체—-



*



"야, 이성혁! 수업 시간에 자지 마!"


번쩍 눈을 떴다. 눈앞의 여자가 화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뭐지······?’


으윽, 나는 두통이 이는 걸 느꼈다. 눈살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상한 공간, 낯선 얼굴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종이.


이곳은 분명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천국이라고 하기엔 눈 앞의 여자가 몹시 화가 나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여긴 지옥인가······? 고개를 갸우뚱 하는 나를 보더니 여자는 인상을 쓴 채로 내 앞에 다가왔다.


"이성혁, 너 요즘 왜 이러니? 너 미대간다고 다른 과목 수업은 안 듣겠다 이거야?”

“어······.”

“어? 지금 너 선생님한테 반말한거니?”


이상한 옷을 입고 이상한 공간에서 처음보는 녀석들이 한데 모여있는 곳.


“안되겠다. 수업 마치고 당장 교무실로 따라와!”


그렇게 지옥이라기엔 애매하고 천국이라기에도 애매한 뭔가 이상한 곳으로 오게 되었다.


작가의말

오늘 밤 9시 20분에 한 편 더 올라갑니다.

(일부 문장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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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천재 화가가 그림을 너무 잘 그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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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시간 안내: 오후 10시 15분 24.09.03 791 0 -
29 후회하지 않는 그림 NEW +1 7시간 전 168 9 13쪽
28 완벽한 그림과 강렬한 그림 +4 24.09.16 403 17 14쪽
27 마음을 살리는 그림 +3 24.09.15 509 22 15쪽
26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 +1 24.09.14 569 20 14쪽
25 안 팔리는 그림 +1 24.09.13 604 22 14쪽
24 텅 빈 그림 +1 24.09.12 691 20 13쪽
23 인정하기 싫은 그림 +2 24.09.11 750 21 17쪽
22 이딴게......그림? +1 24.09.10 795 28 12쪽
21 어긋난 그림 +1 24.09.09 851 27 16쪽
20 잊혀진 그림 +3 24.09.08 940 34 16쪽
19 모두를 감동시키는 그림 +1 24.09.07 1,003 38 14쪽
18 이딴 그림 +1 24.09.06 1,034 31 15쪽
17 전세계로 퍼진 그림 +5 24.09.05 1,126 37 15쪽
16 아득하고 모호한 그림 +1 24.09.04 1,226 40 20쪽
15 애들 장난 수준 그림 +3 24.09.03 1,289 38 15쪽
14 낙서도 그림 +4 24.09.02 1,468 42 18쪽
13 더 비싼 그림 +3 24.09.01 1,510 35 13쪽
12 보이는 게 전부인 그림 +4 24.08.31 1,525 39 13쪽
11 괴물같은 그림 +2 24.08.30 1,558 36 15쪽
10 수채화 그림 +1 24.08.29 1,589 47 14쪽
9 비싸질 그림 +4 24.08.28 1,621 43 16쪽
8 천재의 그림 +2 24.08.27 1,622 40 13쪽
7 옳은 그림 +4 24.08.26 1,666 45 13쪽
6 비싼 그림 +2 24.08.25 1,875 38 16쪽
5 개쩌는 그림 +5 24.08.24 1,922 41 13쪽
4 비슷한 그림 +1 24.08.23 2,123 39 13쪽
3 이상한 그림 +4 24.08.22 2,316 45 14쪽
2 첫번째 그림 +2 24.08.21 2,587 4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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