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천재 화가가 그림을 너무 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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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론상이
그림/삽화
오후 10시 15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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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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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도 그림

DUMMY

14화.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해진 상태였다. 그렇지만 학교 안 불빛은 꺼질 생각도 안하고 반마다 다 켜져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자퇴하겠다며 학교를 나왔다가, 다시 제발로 걸어들어오다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겨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일단 미술실로 가볼까.’


학교로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를 할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학교에 있는 이유는 영감을 위해서, 더 좋은 그림을 위해서일 뿐 대학이 목표가 아니었으니까.


‘미대 안 간다고요?’

‘네.’

‘흐음······.좋아요. 바로 유학 가면 되니까.’


리움 갤러리를 박차고 나온 뒤, 학교로 향하려는데 서한미가 따라나왔다.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학교까지 걸어가려고요?’ 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걸어가는 길도 모른다.


그렇게 갤러리에 왔었을 때처럼 그녀의 차에 타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유학이요?’

‘네. 보통 프랑스나 이탈리아쪽으로 많이 가죠? 성혁 학생은 생각해둔 곳 있어요?’


이탈리아. 전생의 내가 있던 피렌체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탈리아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성혁 학생 그림에서 뭔가 그런 느낌이 났거든요.’


서한미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고, 나는 떨떠름하게 따라 웃을 뿐이었다. 그런 느낌이 무슨 느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내 그림에서 미약하게 나마 피렌체의 느낌이 난다는 뜻일테니까.


피렌체에 살았던 내가, 다시 그곳으로 가게 된다라.


500년이 흐른 지금, 피렌체가 어떻게 변했을지 감이 안왔다. 내가 사랑하던 아틀리에가, 내가 사랑하던 스승님의 화방이, 내가 애증했던 메디치 가문이······


다 없어졌을테니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려는 걸 애써 다잡았다. 비록 500년의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내게 피렌체는 그 어느때보다 살아있는 도시였다.


아직도 아르노 강에 눈에 선할정도로.


드르륵, 나는 미술실 문을 열었다. 문이 잠겨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열려있었다.


“다 말랐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다름아닌 내 그림이었다. 나는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며 천천히 감상에 잠겼다.


나무, 풀, 하늘, 빌딩······작은 묘목은 이제 없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완벽히 똑같았다.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그것이 내 신념이자, 내가 그려왔던 그림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지 못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끊겼을 정도로 내게 이 신념은 중요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책장에 다양한 종이와 물감, 붓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탁, 소리를 내며 이젤을 끌어당겼다. 미술실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진 이젤 위에 종이를 올렸다.


보이는대로 그린다, 보이는대로······


‘그리고 싶은 거 있어요?’


서한미의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다.


‘내면을 좀 더—’


산드로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책상 위에 나뒹굴러져 있는 연필 하나를 집었다. 정돈되지 않은 연필이었지만, 지금은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하고 난 뒤에 종이를 마주봤다. 연필을 들어 종이위에 올렸다.


“.......”


그러나 내 손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가슴 아래께부터 무언가가 단단히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종이 위에 그리려는 것을 막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신 한번 연필을 질끈 잡았지만, 더 나아가는 건 없었다.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이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 아니, 못 그린다.


보이지 않는 걸 그려야한다면······


······대체 뭘 그려야하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기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몇번이고 연필을 다시 잡아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막막하다.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물이 차오르듯이 점차 차올랐다. 턱끝까지 물이 잠긴 것 마냥 몸이 무겁고 답답해져갔다.


“성혁아?”


그 순간, 미술실 문이 열리고 미술 교사 이성화가 들어왔다.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술실 불이 켜져 있길래 설마 하고 왔는데······.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네. 괜찮아요.”

“근데 너 지금 뭐하고 있었니?”


이성화가 떨떠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식은땀을 흘리며 연필을 쥐고 있는 학생. 게다가 그 앞에는 종이까지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생각해보니 허락을 안 받았군.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몰라도 화방에 있어서 예절은 꼭 지키던 나였다. 하지만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종이를 꺼내다 썼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일어났는데, 이성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옆으로 왔다.


“아무것도 안그렸네? 아니면 이제 막 그리려던 중이야?”

“......못 그리던 중이였어요.”

“못 그린다고?”


내 말에 이성화가 머리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 모습에 나는 옅게 비소를 띄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게 있어요.”


끽해야 서른, 그 즈음 보이는 여자다. 그림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애초부터 고민을 털어놓을만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성화는 흐음, 하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림 그리는 사람 중에도 자기가 뭘 그리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많거든.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어떻게요?”

“의뢰를 받는거지. 그냥 아무나 붙잡고 그림 그려주겠다고 하는거야.”

“......싫은데요.”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와버렸다. 그도 그럴게 전생에도 내 그림 한 장은 높은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다들 내 그림을 얻으려고 안달복달이었다고.


그런데 오히려 내가,

그것도 먼저,

그림을 그려주라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이성화가 웃으며 답했다.


“전에도 느낀거지만 성혁이는 그림 그릴 때 항상 진지한 거 같아. 맞니?”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림을 가볍게 그리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왜? 가볍게 그리면 안돼?”


이성화가 웃으며 교탁쪽으로 갔다. 그러더니 두꺼운 노트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뭐지. 나는 의심 반, 경계 반인 눈으로 노트를 하나씩 펼쳐봤다.


평범한 아이디어 스케치북이었다. 어떤 페이지에는 크로키가 있었고, 다른 페이지에는 그냥 단어들만 툭툭 써져있기도 했다.


“아이디어 스케치도 가볍게 그리는 것부터 시작이잖아. 낙서를 하다가 시작되는 것처럼.”

“......그거랑 그림이랑은 다르죠. 말 그대로 이건 그림보다는 낙서 수준이니까요.”

“낙서도 그림이지. 꼭 색칠하거나 밑그림을 그리는 것만 그림이라는 법은 없으니까.”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스케치북을 계속 넘겼다. 스케치북은 한 사람의 생각, 사상, 신념이 담겨 있는 책. 그녀가 그리고 싶은 게 무엇인지 느껴졌다.


“그림에 너무 힘이 들어가있으면 결국 지치게 돼.”


평소와는 살짝 다른 목소리 톤. 사뭇 다른 느낌에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스케치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치면 포기하게 되고.”

“.......”

“그림은 원래 재밌는거잖아. 그치?”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내 침묵에 머쓱해졌는지, ‘그럼 뒷정리 꼭 하고 나가야 해!’ 라고 애써 밝게 웃으며 나갔다.


물끄러미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종이에 고정시켰다.


그림은 재미있는 것······.


그림 그리는 건 늘 재밌었다.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옮긴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벅차 올랐으니까.


하지만 그림 자체가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게 재밌었던거지.


“.......”


나는 연필을 다시 쥐었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



“워낙 선생님들께서 잘해주시고, 또 학생을 위해 열심히 해주신 덕에 작년에도 좋은 성과가 났습니다.”


제원고등학교의 교장, 최상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교직원들을 바라봤다.


한달에 한번씩 있는 교직원 회의. 보통은 오후에 회의를 하건만, 오늘은 꼭 아침 시간에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탓에 다들 얼굴에 피로가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본 최장석이 미간을 좁히며 창밖을 바라봤다.


제원고등학교는 나름 이 지역에서 명문이다. 비록 특목고도 아니고 자사고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사립고등학교이긴 하지만, 그 지역에서 대학교를 잘 보내는 거로 입소문을 탔다.


“벌써 계절이 흘러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데, 학교에 나무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요?”

“예. 안그래도 도심 한복판에 지어진 학교라 나무를 더 심을 장소도 없는 것 같고요.”


뜬금없는 나무 타령에 교직원들 모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어서 해석하게끔 했는데, 이번에는 나무라니.


그때 눈치가 빠른 박선생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장 선생님, 학교 내에 텃밭이라도 가꿔볼까요?”

“에헤이, 텃밭을 가꿀 시간이 있습니까? 수업 준비만 해도 바쁠텐데요?”

“그러면 동아리 활동으로라도······.”

“동아리 시간때도 공부해야죠.”


단호한 목소리로 학력신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최상서. 그는 한동안 ‘학교 나무’, ‘정서 안정’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슬그머니 본론을 꺼냈다.


“그, 여러분도 이번에 현성고등학교에서 리모델링 사업한거는 다 알고 계시죠?”


현성고등학교. 제원고등학교의 오랜 라이벌과 같은 학교였지만, 현성고 출신 유명인사들이 현성고에 발전기금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덕에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현성고 이야기가 나오자 교사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게 현성고 이야기가 회의때 나와서 좋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그쪽 교장이 하도 한번 와보라고 해서 잠깐 갔다왔더니만—”


역시나, 제원고 교장 최상서는 새로 리모델링 된 현성고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순간 백색의 대리석 바닥때문에 눈이 부시더라, 복도마다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무슨 유명 갤러리에 온 줄 알았다, 이런 곳에서 공부하면 학생들 정서가 안정될 것 같더라—


“어른인 제가 갔을 때도 좋았는데, 학업에 시달리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그래요? 이선생?”

“네? 네.”


그때, 갑자기 타겟이 미술 교사 이성화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두 눈을 깜빡이면서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듣자하니 이성화 선생님이 한때 유명한 작가님이셨다면서요?”

“저요? 아니요? 아닌데요?”

“에이, 박선생님이 다 말해줬어요. 맞죠 박선생님?”


이성화가 놀란 눈으로 박선생, 그러니까 박만석 선생을 바라봤다.


이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제원고 근무 기간만 20여년. 모르는 소문은 없다는 박만석의 귀에 이성화에 대한 소문도 흘러들어왔다.


“유학까지 갔다온 건 알고 있었는데, 작가 생활한 건 왜 이력서에 안 썼었어요? 썼으면 고민도 안하고 바로 뽑았죠.”

“하하······.작가 생활이랑 교사 생활이랑 같나요 뭐.”

“아니! 왜 달라요! 작가가 곧 교사고! 교사가 곧 작가지!”


아니, 진짜 왜이래. 이성화가 결국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 교장을 바라봤다. 안그래도 감정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난다고 학생들한테도 자주 듣던 말이었는데, 지금 이 상황에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이성화의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본 교감이 큼큼, 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나긋한 말투로 운을 띄웠다.


“그림 하나 부탁드립니다. 기왕이면 나무 그림이면 좋겠어요.”

“네?”

“마음 같아서는 리모델링을 해서! 여기 제원고를 싸아악! 바꿔버리고 싶지만! 지금 또 학생들 공부하고 있는데 공사하면 시끄럽지 않겠어요?”


실상은 리모델링 할 돈이 없는거지만, 학생들 공부를 위해서라고 잘 포장했다. 최상서의 말에 이성화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그림은 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리모델링은 못 해줘도 환경 개선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안그래도 요즘 학생들 정서 불안이다, 우울증이다 뭐 말이 많은데 그림 보면 얼마나 심신의 안정이 되겠어요?”

“그럼 그냥 그림을 사시면—”

“에헤이! 우리 학교에 이렇게 훌륭한 인재가 있는데! 뭐하러 그림을 삽니까? 안그래요 박선생?”

“맞죠, 맞죠.”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박선생의 모습에 이성화는 기가 찼다.


아니, 그림을 그려달라는 말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는 알고 하는 말인건가?


보통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림이 뚝딱 하고 나오는 것 같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 그림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스케치하고, 스케치한 것 중에서 가장 괜찮은 걸 추리고 추려서, 겨우 밑그림을 시작하고, 밑그림 한 걸 바탕으로 이제 어떤 재료로 채색을 할 건지 고민하고, 채색한 뒤에도 마무리 작업까지.


물론 그 과정 하나하나 안에서도 수정 작업이 이뤄졌고, 때로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할 때도 있었다. 그만큼 그림을 그린다는 건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이제 좀 괜찮으려나.’


그 순간, 그림을 그리다가 코피를 쏟던 이성혁을 떠올렸다. 곧바로 친구에게 업혀 보건실로 갔던 학생. 그리고 다시 미술실에 와 멍하니 종이만 바라보고 있던 학생.


이상한 학생이다.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다. 미술을 하는 학생들을 숱하게 봐왔던 그녀이지만, 이런 학생은 또 처음이었다.


‘정신과 약도 먹고 있다고 했지.’


보건 교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하지만 이성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그럴게 본 이성혁은 코피를 쏟을 정도로 체력은 약해보였어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해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그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땐 말이다.


이성화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가 모든 걸 쏟아부은 그림이 미술실 테이블에 놓여져있을터.


수채화, 평범한 학생이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정도로 정교하고 색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심지어 이성혁은 이걸 그리는 내내 창밖은 바라보지도 않았지만 그가 그린 풍경은 바깥 풍경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었다.


중간에 베어진 나무 묘목이 없었다면, 그냥 그대로 옮겨온 거라 해도 믿을정도로.


‘성혁이가 선생님한테도 미대를 안 간다고 하던가요?’


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김석철이 작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이성혁의 담임인 그는 최근 이성혁과 관련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이었다.


‘네. 혹시 미대가 돈이 많이 들다보니까 그래서 안간다고 하는 건 아닐지······.사실 그런거면 요즘 장학금도 잘되어있어서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미대 진학도 괜찮거든요.’

‘아, 그런건 아닐거에요. 워낙 잘사는 집 애라.’


혹시 미대에 안 가겠다고 하는게, 돈 때문인건가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김석철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 교사들 월급 다 합친 것보다 많이 벌걸요?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는 김석철. 그 모습에 이성화는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해가 안되었다.


돈은 있지만 재능이 없어서 미술을 그만두는 사람은 많다.

재능은 있지만 돈이 없어서 미술을 그만두는 사람은 더 많다.


그런데 돈도 있고, 재능도 있는데 왜······? 이성화는 미간을 살짝 좁힌채 인상을 썼다. 그 모습을 본 김석철이 오히려 멋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성혁이가 그림은 잘 그리던가요?’

‘아, 네. 아마 한번 보시면 진짜 놀라실 거에요. 특히 디테일을 잡아내는 부분이 일반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수준이에요. 그대로 옮겨 그리는 데 있어 프로급이고요.’

‘흠······그래요?’


이성혁의 그림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이성화를 김석철은 의심쩍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뭐, 칭찬은 좋지만 너무 바람 넣지는 마세요.’ 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바람 넣지말라고? 문득 그때의 대화를 떠올린 이성화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바람을 넣고 싶어도 애초에 미대 생각도 없다는 애한테 무슨 바람을—


“그러면 다음달까지 부탁합니다, 이선생.”

“네······네?”

“자,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죠.”

“아, 아니. 잠깐만요—”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이성화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미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그림 기대할게요.” 라든가,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그려요.” 라고 넌지시 말했다.


자리에 앉아서 두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 이성화에게 교장 최상서는 “화이팅!”이라고 말하며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폭풍같던 교직원 회의가 끝나고 이성화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안그래도 학교 일만 해도 바쁜데 갑자기 그림을 그리라니.


더군다나 이제는 그리고 싶은 그림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편두통을 느끼며 회의실을 빠져나와 무의식적으로 미술실을 돌아봤다.


‘어라, 미술실 불이······안 끄고 갔나?’


아직 등교시간까지는 좀 남은 상태. 이성화는 저 멀리 미술실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혁이 불러서 이야기 좀 해야겠어. 미술실 사용하는 건 좋지만 불은 꼭 끄고 가라고······?’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린 문. 그리고 이성화는 두 눈을 의심했다.


“......안녕하세요.”

“어, 어······?!”


어제 보았던 모습 그대로 앉아있는 이성혁이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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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오후 10시 5분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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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 +1 24.09.14 569 20 14쪽
25 안 팔리는 그림 +1 24.09.13 604 22 14쪽
24 텅 빈 그림 +1 24.09.12 691 20 13쪽
23 인정하기 싫은 그림 +2 24.09.11 749 21 17쪽
22 이딴게......그림? +1 24.09.10 794 28 12쪽
21 어긋난 그림 +1 24.09.09 850 27 16쪽
20 잊혀진 그림 +3 24.09.08 939 34 16쪽
19 모두를 감동시키는 그림 +1 24.09.07 1,002 38 14쪽
18 이딴 그림 +1 24.09.06 1,032 31 15쪽
17 전세계로 퍼진 그림 +5 24.09.05 1,125 37 15쪽
16 아득하고 모호한 그림 +1 24.09.04 1,225 40 20쪽
15 애들 장난 수준 그림 +3 24.09.03 1,289 38 15쪽
» 낙서도 그림 +4 24.09.02 1,468 42 18쪽
13 더 비싼 그림 +3 24.09.01 1,510 35 13쪽
12 보이는 게 전부인 그림 +4 24.08.31 1,524 39 13쪽
11 괴물같은 그림 +2 24.08.30 1,558 36 15쪽
10 수채화 그림 +1 24.08.29 1,588 47 14쪽
9 비싸질 그림 +4 24.08.28 1,620 43 16쪽
8 천재의 그림 +2 24.08.27 1,622 40 13쪽
7 옳은 그림 +4 24.08.26 1,666 45 13쪽
6 비싼 그림 +2 24.08.25 1,875 38 16쪽
5 개쩌는 그림 +5 24.08.24 1,922 4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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