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천재 화가가 그림을 너무 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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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론상이
그림/삽화
오후 10시 15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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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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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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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게......그림?

DUMMY

22.



‘구해올게요.’ 라고 호기롭게 말한 것에 비해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이성화가 싱긋 웃으며

‘일단 친구들한테 말해보는 건 어떨까?’ 라고 이야기했지만......


친구라. 나한테 그런게 있던가? 애초에 전생때도 친구 없이 잘 지냈던 나다.


애초에 그런 거 왜 만들어야하는지 모르겠다.


자고로 인간이란 나보다 나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시기심이 생기고, 나보다 낮은 사람은 애초에 곁에 두지 않는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보고 희열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면 말이다.


따라서 친구라는 것은, 각자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멍청이들의 모임 정도라 해야 적당하다.


“그러니까 동아리에 들어와달라고?”


유지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이 반에서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건 이녀석이 유일했기에 나는 아쉬운대로 권유했다.


......애초에 사람만 모으면 된다고 했으니까. 이녀석이 그림을 잘 그리든, 못 그리든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쪽수 채우는 용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내 말에 유지석은 멋쩍은 뒷통수만 긁어댔다. 항상 헤헤거리며 웃고다니는 놈이길래 덥석 물줄 알았건만. 예상과 다르게 녀석은 신중했다.


“미안. 그건 좀 힘들 듯.”

“......왜?”

“그게, 나 그림 졸라 못 그리거든.”


살짝 부끄러운듯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녀석.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괜찮아.”

“진짜? 그림 못 그려도 들어갈 수 있는거야?”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아무도 네 그림 안 봐.”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이정도면 녀석도 부담없이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녀석의 표정이 바뀌었다. 똥 씹은 표정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


”안 가.“

”?“

”애초에 학교 끝나고 학원 가야 해. 동아리 할 시간 없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유지석. 녀석은 시간표를 한번 확인하고는 책상 서랍에서 주섬주섬 교과서를 꺼냈다.


흠, 학교에서 이렇게나 공부를 하고 또 공부를 하러 간다고?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긴, 내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애써 녀석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며 나는 시계를 바라봤다. 조만간 조례시간이다.


그 말인 즉슨, 곧 담임이 들어온다는 소리.


담임 김석철하고는 애매하면서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애초에 그가 뭐라고 이성혁의 아버지에게 말했는지도 몰랐지만, 좋은 이야기가 아닌 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자동으로 곱지않은 시선이 향했고, 김석철도 그걸 아는지 묘하게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하여간. 그림 하나 그리려고 하는것도 이리 힘이 들다니. 세월이 흘렀어도 화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끼이익, 의자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자습을 하고 있던 학생들이 힐끗 뒤를 돌아봤다.


”야, 뭐하게?“

”홍보.“

”?“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지석을 지나쳐 교탁 앞에 섰다. 몇몇 학생들이 흥미진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성혁은 키가 꽤 큰 편이었기에 교탁에 서니 학생들이 낮게 보였다.


나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동아리 부원을 모집한다.“


내 말에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아침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있는 학생들이 비몽사몽 일어났다.


”부원은 총 5명. 선착순으로.“


선착순이라는 말이 나오자 한층 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소란스러운 상황이 불편한지 미간을 좁히는 학생들도 있었다.


”동아리?“

”자율 동아리 말하는거야?“

”갑자기 뭔 동아리래.“


이런 저런 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앞자리에 앉은 한 여학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무슨 동아리인데?“

”미술 동아리.“

”우왕. 그럼 거기서 그림 그려?”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었다. 흥미가 생긴 듯 여학생은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림 못 그려도 돼?”

“상관없어.”

“가면 그림도 가르쳐 줘?”

“아니. 각자 알아서.”

“에......그러면 뭐하러 가?”


그녀는 들고 있는 당근 모양 볼펜을 턱 끝으로 눌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림을 가르쳐달라니, 이렇게 쉽게 말해놓고 될거라 생각한건가? 자고로 나때는 그림을 배우려면 수년은 기본동안 잡일을 하고 캔버스에 못질을 하고, 화방을 청소하고, 그제야 겨우 스승님 시간이 되시던 때에—


“이제 자율 동아리 생기부에도 못 올리잖아. 대학 갈때도 아무 쓸모 없을 걸?”

“그보다 애초에 미대 지망도 아닌데 뭐하러 미술 동아리를 들어가.”

“내말이. 그리고 미대 간다 쳐도 그 시간에 미술 학원 가는 게 더 낫지 않나?”


학생들이 저마다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불쾌하군. 다수의 적의를 받는 일은 익숙하지만, 그림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받는 건 사양이다.


“그럼 들어가면 뭐해줘?”


앞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웃으며 물었다. 이제 보니 전혀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심심해서 말을 걸고 있는 듯 했다.


흠, 그런가.


나는 아직 덜 자라고, 미성숙한 놈들이라는 걸 스스로 상기시키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


“내 그림을 볼 수 있어.”

“엥.”

“심지어 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볼 수도 있지.”


그 말인 즉슨 그림 그리는 방법을 어깨너머로나마 배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건 실로 엄청난 혜택이었다.


전생에도 내게 그림을 배우겠다고 매달리던 사람들이 한 수레다. 물론 그 중에 싹수가 보이는 놈들만 골라서 가르쳤지만, 그마저도 직접 그리는 걸 보게 한 적은 없었다.


그림 역시 기술이고, 기술은 곧 능력이었으니까.

나의 재능을 아무에게나 퍼줄정도로 나는 호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푸하하하핳!”

“하핰! 쟤 뭐라는 거야!”

“와, 진짜 웃겨. 쟤 저런 애인 줄 몰랐는데.”


교실 안이 더욱 시끄러워졌다. 학생들이 너도나도 가리지않고 웃어댔다.


흠, 어쩔 수 없나. 옥석에 가린 보석도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법.


애초에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에겐 무리였다.


한없이 가벼워지고 깊이 따위는 없어진 이 시대를 통탄하며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앞문이 열렸다.


“......뭐하고 있었니?”


김석철이 딱 타이밍에 맞춰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평소에 학교도 잘 안나오는 녀석이 갑자기 앞에 서 있고, 반 아이들은 뭐가 그리 웃긴지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뭐가 뭔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석철이 나를 바라봤다.


“성혁이는 자리에 앉고. 자, 이번에 전달 사항이 있다.”


무표정으로 교탁 앞에 선 김석철. 그는 들고 온 종이를 칠판 앞에 붙이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간 고사 일정 나왔다. 날짜랑 과목 확인하도록.”

“으아아악!!!”


반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퍼졌다. 몇몇 학생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몇몇은 긴장한 얼굴로 담임을 바라봤다.


“고1 때부터 내신 차근 차근 준비해놔야 대학 갈때 편한 거 알고 있지?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학생들을 한명씩 살피던 김석철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요즘 미대는 내신도 보니까 챙겨둬라.”


이상. 이라는 말과 함께 바로 나가는 김석철. 들어온지 5분도 안되었는데 정말 중간고사인 것만 말해줄 생각이었나보다.


그나저나 미대라니. 안간다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언급하는 걸 보면 나보다 김석철이 더 미대에 가고 싶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험 소식에 학생들이 부산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다들 벌써부터 걱정과 근심이 한가득 쌓인 표정이었다. 몇명은 칠판 앞쪽으로 달려가 일정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군. 동아리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소득도 얻지 못했다. 적어도 이 반에는 동아리 할 사람이 없다는 것만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동아리 모집 공고는 붙였어?“


앞에 앉아있던 유지석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공고?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작게 한숨을 내쉰 유지석이 어깨를 으쓱였다.


”동아리에는 못 들어가도 그정도는 도와줄게.“

”오.“

”그대신 나중에 나한테도 그림 보여줘야한다?“


씩 웃으며 말하는 녀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정도쯤은 해줄 수 있었다. 본다고 그림이 닳는 것도 아니니까.


“가자.”

“어딜?”

“지금쯤 되면 시간표 외울 때 되지 않았냐?”


시간표를 보니 1교시가 미술이었다.


불과 한시간 전에 갔던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저기......!”

”?“


그때, 한 여학생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금방이라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갰다.


‘송이안’이라고 적힌 미술책을 품에 끌어 안은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서있는 것도 힘든 듯 간신히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왜?”

“그, 그게......!”


반 여자애들에 비해 키가 유달리 더 작은 편이었기에 얼굴보다는 정수리를 보는게 더 편했다.


나는 머리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로 여자를 바라봤다. 그때, 송이안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나, 나도 들어가고 싶어......!”


있는 용기를 다 쥐어짜낸 듯, 그녀의 손이 작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자, 잘 그리는 건 아니지만......그림 그리는 거 어렸을 때 부터 좋아하고, 또 재밌어해서.......”

“오.”

“피해주지 않을게! 조용히 그림만 그릴테니까 입부하게 해줘!”

“오호.”

“그, 그리고 전에 네 그림 진짜 너무 잘 그렸어! 최고야!”


마지막 말까지 완벽했다. 애초에 내게 필요한 건 머릿수 채울 부원이었기에 조용히 그림만 그린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나는 송이안을 바라봤다. 그녀는 미술책과 더불어 노트도 품에 안고 있었다.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세는 되어있다. 언제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준비하는 건 화가의 기본이니까.


“좋아.”

”저, 정말? 나 드, 들어가도 돼?“

”물론. 환영해.“

”......!“


단숨에 밝아지는 표정에 순간적으로 주변의 공기마저 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활짝 웃는 표정이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첫 부원이라는 생각에 마치 오래전 첫 제자를 받을 때가 떠올랐다. 똑똑하고 착했던 녀석이었다.


‘언젠가 스승님을 뛰어넘는 날이 오겠죠?’

‘꿈깨라. 내가 강에 빠져 죽는 날이 와도 그런 날은 안 와.’

’긴장하고 계세요. 조만간 위대한 마르코 델 피오레의 밑에서 더 위대한—‘


“......”

“서, 성혁아......?”


문득 떠오른 옛 기억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나는 그 기분을 떨쳐내고자, 눈 앞의 새로운 부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

”! 응응! 나도! 나도 잘 부탁해!!“


상기된 목소리로 내 손을 붙잡는 그녀. 그리고 동시에 품에 있던 미술책이 떨어졌다. 당연히 같이 있던 노트도.


착, 소리를 내며 노트가 펼쳐졌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첫 제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노트에 시선이 갔다.


”......?“


그리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딴게......그림?”


정말로, 발로 그려도 이것보단 잘 그렸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림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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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후회하지 않는 그림 NEW +1 7시간 전 167 9 13쪽
28 완벽한 그림과 강렬한 그림 +4 24.09.16 403 17 14쪽
27 마음을 살리는 그림 +3 24.09.15 509 22 15쪽
26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 +1 24.09.14 569 20 14쪽
25 안 팔리는 그림 +1 24.09.13 604 22 14쪽
24 텅 빈 그림 +1 24.09.12 691 20 13쪽
23 인정하기 싫은 그림 +2 24.09.11 750 21 17쪽
» 이딴게......그림? +1 24.09.10 795 28 12쪽
21 어긋난 그림 +1 24.09.09 851 27 16쪽
20 잊혀진 그림 +3 24.09.08 940 34 16쪽
19 모두를 감동시키는 그림 +1 24.09.07 1,002 38 14쪽
18 이딴 그림 +1 24.09.06 1,034 31 15쪽
17 전세계로 퍼진 그림 +5 24.09.05 1,126 37 15쪽
16 아득하고 모호한 그림 +1 24.09.04 1,226 40 20쪽
15 애들 장난 수준 그림 +3 24.09.03 1,289 38 15쪽
14 낙서도 그림 +4 24.09.02 1,468 42 18쪽
13 더 비싼 그림 +3 24.09.01 1,510 35 13쪽
12 보이는 게 전부인 그림 +4 24.08.31 1,525 39 13쪽
11 괴물같은 그림 +2 24.08.30 1,558 36 15쪽
10 수채화 그림 +1 24.08.29 1,589 47 14쪽
9 비싸질 그림 +4 24.08.28 1,621 43 16쪽
8 천재의 그림 +2 24.08.27 1,622 40 13쪽
7 옳은 그림 +4 24.08.26 1,666 45 13쪽
6 비싼 그림 +2 24.08.25 1,875 38 16쪽
5 개쩌는 그림 +5 24.08.24 1,922 41 13쪽
4 비슷한 그림 +1 24.08.23 2,123 39 13쪽
3 이상한 그림 +4 24.08.22 2,316 45 14쪽
2 첫번째 그림 +2 24.08.21 2,587 4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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