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편을 사수하라! 2
바우가 묻자 카이가 꽉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배편은 있소.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서라비아로 떠나는 배가 더 늘었소.”
“근데 표정들이 왜들 그래? 음식 앞에 두고 그런 식으로 굴면 벌 받아. 얼른 속 시원히들 말 못 하겠나?”
카이가 골치 아프다는 듯 손으로 미간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서라비아 행 선박이 하루에 총 두 번에서 세 번으로 늘어나긴 했는데··· 예약을 해야 한다는군.”
카쿤이 눈매를 모으며 물었다.
“예약하면··· 어느 정도나 기다려야 하오?”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군.”
콰앙――
“빌어먹을!”
“이런!”
“젠장!”
“일주일 동안 부멘에서 뒹굴어야 한다는 소리야 지금?”
“어이가 없네!”
카이는 일행의 흥분이 가라앉길 잠시 기다렸다가 이어서 말했다.
“우선 예약은 해놓은 상태요. 정확한 날짜 통보는 우리가 현재 묵고 있는 곳을 적어놨으니 그쪽으로 연락이 올 것이오.”
“······.”
또다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다른 방도는 없소?”
혹, 다른 류를 통해 좀 더 빨리 배에 오를 방법이 없는지 묻는 소리다.
“······현재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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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피곤을 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 일행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푹신한 침대임에도 불구하고 모건을 제외하고 누구 하나 쉽사리 잠드는 이가 없었다.
루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저··· 서리 언니.”
“······음?”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피식.
“뭔데?”
무슨 대단한 질문을 하려는지 루이스는 잠시 뜸을 들이고 힘겹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건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인데요.”
“······.”
“언니 같은 마법사들은 대부분 결혼도 안 하고 평생 쭉 혼자 지낸다면서요?”
“······?”
“······진짜 그래요?”
‘허얼······.’
루이스가 눈을 빛내며 재차 물었다.
“혹시 언니도 결혼 안 하실 거예요?”
“······.”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이설은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마법사들은 결혼하지 못하는 거요?”
“······?”
이 남자는 또 왜······.
카이의 말 같지도 않은 질문에 피식 웃은 이설의 고개가 카이에게로 향했다.
“······안 주무셨어요?”
카이와 이설은 마주 보고 있던 이층침대에서 각기 아래층에 있어, 고개만 돌리면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였다.
다만, 불을 끄고 있는 상태라 서로의 모습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구별할 줄 아는 카이는 이설의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마법사들은 결혼하지 못하냐고 물었소만.”
“······?”
이설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루이스가 슬쩍 한마디 했다.
“언니, 카이 아저씨가 굉장히 대답을 듣고 싶은가 봐요. 얼른 대답해주세요.”
그제야 카이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하지만 질문을 회수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설이 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마법사가 수녀도 아니고··· 결혼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마는거지. 마법사는 뭐 사람도 아니래요?”
“······.”
그 말을 끝으로 이설은 루이스가 또 어떤 질문을 할지 몰라 노골적으로 잔다고 광고했다.
덕분에 그녀는 이내 흡족해하는 카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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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행은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후, 배를 탈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먼저 카이가 제안했다.
“밤새 생각한 일인데··· 예약명단을 확보해서 우리보다 앞쪽에 있는 예약자들을 찾아가 순서를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떨까?”
곧바로 우려의 의견들이 쏟아졌다.
“예약자들이 순순히 순서를 바꿔줄까?”
“예약명단은 또 어떻게 확보하고?”
“한두 명도 아니고 우린 아홉 명이잖아요.”
카이의 말에 동조하는 이도 있었다.
“명단 정도는 제가 어떻게 알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아이스였다.
“······어떻게요?”
루이스가 반문하자, 아이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까 언뜻 보니 접수원이 젊은 여인이더군요.”
“······그런데?”
“제가 좀 잘생기지 않았습니까? 지금껏 제 미남계로 이루지 못한 일은 없었습니다.”
우우우――――
“자제 그렇게 안 봤는데 왕자병이 있었구만?”
“진심이세요?”
일행의 재미있는 반응에 아이스가 호쾌하게 웃으며 실제 계획을 말했다.
“하하하! 이거 간만에 농담 한 번 했는데··· 안 먹히는군요. 사실, 현혹마법을 상대에게 걸 생각입니다.”
“······.”
그제야 일행의 황당해하던 얼굴이 제자리를 찾았다.
“좋습니다. 하나씩 해보도록 합시다. 먼저 예약자 명단부터 구해온 후에 다음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합시다.”
카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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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아이스는 그의 장담대로 너무도 쉽게 예약명단을 구해와 일행을 놀라게 했다.
“우선 트래져 헌터나 크레이뇽의 무덤이 목적이 아닌 자들을 추려보도록 합시다.”
“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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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두 이것 좀 봐.”
평소 안 하던 일을 해선지 때마침 뒷 목이 뻐근하고 슬슬 짜증이 나려던 일행은 바이탈의 외침에 반색하며 시선을 모았다.
“뭔데?”
바이탈은 명단이 적힌 서류를 바닥에 쫙 펼쳐 보이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자, 여길 보라고. 오늘 날짜에 바비 네이트란 자가 열 자리를 예약한 게 보이지?”
“······?”
모두가 명단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바이탈은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바닥에 펼쳐 보였다.
“자, 이건 내일 날짜로 된 예약명단이거든? 여길 보라고.”
“······?”
잠시 후, 바이탈이 가리킨 곳을 살펴본 일행의 눈이 어느 순간, 부릅떠졌다.
예약명단에 전날 예약했던 바비 네이트란 이름이 버젓이 올라 있었던 것이다.
일행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른 날짜도 확인했다.
“뭐야, 이 사람! 일주일 후 예약명단에도 이름이 있어! 그것도 열 자리씩!”
루이스의 외침에 이어서 바우도 큰 소리로 말했다.
“허허··· 여기 날짜마다 바비 네이트가 끼어있는구먼. 이곳 부멘에 네이트란 성이랑 바비란 이름이 흔한가 봐?”
그럴 리가 있겠는가.
부멘에 여러 번 방문했던 카이와 랄프, 바이탈은 ‘네이트’가 어느 가문의 이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랄프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이곳 영주의 가문이 아마 네이트였지?”
“뭐야, 영주가 암표 장사라도 하는 건가?”
이설도 한소리했다.
“필요도 없는 배편을 예약한 후에 표를 구하지 못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몇 배로 비싸게 되파는 거겠지.”
그러나 루이스가 투덜댔다.
“이해가 안 가요. 이건 티가 너무 나잖아요. 이거 불법 아닌가요?”
카이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곳 부멘은 헤이젤 네이트란 영주가 다스리는 지역이오.
이곳에서만큼은 영주의 말이 곧 법이요, 진리란 뜻이지. 그리고 저 바비 네이트란 자는··· 영주 아들 이름이오.”
“······.:”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다소 우울해진 일행.
그 틈에서 이설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지금 우리로선 참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행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이설이 계속해서 말했다.
“잊었어요? 지금 우린, 바비같은 자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아―――
돈을 더 주고서라도 예약 표를 넘겨받기 위해 명단이 필요하지 않았던가.
이때 필요한 자가 바로··· 바비같은 자다.
일행은 바비의 행실이 맘에 들지 않았으나 조금 전과는 달리, 한층 밝아진 얼굴로 다시 의논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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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배 시각을 보니 앞으로 세 시간 후에 출항하는 배가 있군요.”
시간이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바비가 예약한 자리는 열 자리뿐.
그사이 다른 자가 표를 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일행은 서둘러야만 했다.
“나와 랄프가 영주 성에 다녀올 테니 모두 짐을 챙기고 기다리고 있으시오.”
카이의 말에 루이스가 걱정스레 말했다.
“이미 누군가가 먼저 표를 사 갔으면 어쩌죠?”
“그렇다면··· 다음 시간에 출항하는 배편을 구해오겠소.”
하지만 카이와 랄프는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여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얼굴엔 분노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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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녀석이 안 팔겠대?”
바이탈의 질문에 랄프가 이를 바득 갈며 말했다.
“한사람 당 5골드로 총 45골드를 달라더라.”
“에엑?”
“그거 미친 새끼 아냐?”
현재 서라비아 왕국 행 배표는 일 인당 1골드였다.
성수기 전에는 30실버 정도 했으니 세배 이상 금액이 오른 셈이다.
한데··· 현재 1골드 하는 배표를 다섯 배 이상을 불렀으니, 날강도나 다름없었다.
“두 배나 세배 정도는 예상했는데··· 다섯 배라니······,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네.”
“지금껏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왔다는 뜻이잖아?”
일행의 말에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녀석 말로는 반짝 벌이라더군.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식으로 돈을 벌 수 있겠냐고 아주 당당히 말하더군.”
“아주··· 찢어 죽일 놈이구먼.”
바우의 말에 적극 동감하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일주일을 버티다가 9골드만 소비하고 서라비아로 향하느냐, 아니면 배가 아프지만 45골드란 거금을 들이고 일주일을 버느냐······.
일주일이면 많은 것이 변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랬기에 일행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배가 아프긴 하지만 그냥 45골드에 배편을 구하는 게 낫지 않겠어?”
바이탈의 말에 루이스가 손가락으로 셈을 하며 말했다.
“이곳에서 일주일을 버틴다 해도 숙박비에 식비를 포함하면··· 거의 비슷하게 지출이 나가는데요?”
“······.”
여관과 식당도 성수기라 평소보다 배는 비쌌다.
그때, 이설이 나섰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일행의 고개가 휙 소리가 날 정도로 이설에게로 향하였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왠지 평소와 달리 다소 섬뜩한 기운이 그녀에게서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설이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원하던 서라비아로 당장 떠날 수 있고, 괘씸하기 짝이 없는 영주 아들 녀석의 눈물을 쏙 빼도록 혼내줄 방법!”
“······!”
일행의 어깨가 절로 떨렸다.
“이런 걸 제가 있던 곳에선 일거양득,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고 하죠.”
“······?”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일행은 아무도 그 방법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아니,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일행은 이설의 말대로 서라비아로 떠나는 마지막 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
서라비아 행 배는 생각보다 대단히 커다란 배였다.
사람은 물론, 마차와 동물까지 수용 가능할 정도로 넓고 규모가 컸다.
이설은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타이타닉 호를 떠올리며 신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배정된 선실을 보는 순간, 신기해하던 즐거움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일행에게 배정된 선실은 모두 두 개.
6인실 한 개와 4인실 한 개였는데··· 아무리 실용적으로 꾸며져 있었어도 너무나 좁았다.
하지만 이설을 제외하고 아무도 이에 대해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에겐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이설은 볼을 잔뜩 부풀리고 선실로 들어갔다.
좁지만 제법 실용적으로 꾸며진 선실 안은,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진 이층침대가 양쪽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은 탁자 하나와 짐을 수용할 수 있는 수납장 하나가 전부였다.
“깨끗하네요. 전 여기 사용할게요.”
오른쪽 침대 위로 풀쩍 올라가는 루이스의 모습에 이설은 바로 아래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성인 한 사람이 부동자세로 누우면 딱 맞을 크기의 좁은 침대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루이스는 그래도 야영하는 것보다 좋은지 연신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전 이쪽을 사용할게요.”
뒤늦게 들어온 모건이 겸연쩍은지 씨익 미소지으며 맞은편 침대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설의 시선이 자동으로 남는, 자신의 맞은편 침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문득, 카이를 포함한 네 사람이 한방을 썼던 날이 떠올랐다.
똑똑――
“······!”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사념에서 깬 이설.
그녀는 후닥닥 선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떡하니 마주친 카이!
- 작가의말
앗! 만우절이네요. 벌써 4월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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