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 울프 퀸 3
“이것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이자들이 음식 냄새를 풍기니까 몬스터들이 몰려왔잖아!”
이설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카이 일행은 이설이 이미 냄새를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생떼를 쓰며 아까운 음식을 발로 찬 멜라니 탓이다.
결국, 루이스가 한마디 했다.
“못된 할망구 같으니라고, 냄새차단마법은 진작에 펼쳐놨었는데 할망구 그 못된 심보로 이렇게 된 거 아냐!”
존도 거들었다.
“재수 없는 년.”
“뭐, 뭐야!”
루이스의 말에 로빈은 그제야 멜라니가 억지를 부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노골적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상황만 허락한다면 멜라니의 뺨을 한 대 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현재 처한 상황을 벗어나는 일이 급했다.
멜라니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섬뜩한 두 개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욕설이 쏙 들어가 버렸다.
일행은 잠시 후 모두 한쪽으로 물러나며 잔뜩 긴장한 채 경계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두 개의 시뻘건 눈동자가 네 개로··· 이어서 여덟 개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녀석들의 정체가 무엇이든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제일 먼저 활을 지닌 여덟 명의 궁수가 앞으로 나섰다.
한데 녀석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몬스터와 달리··· 반응이 빨랐다.
활 쏠 준비를 하기도 전에, 녀석들 중의 하나가 궁수 한 명을 향해 덮쳐온 것이다.
으아아아――
깜짝 놀란 궁수들은 로빈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달려든 녀석을 향해 활을 발사했다.
쐐에에엑―――
튕튕튕튕튕튕튕튕······!
“······!”
여덟 발의 화살은 정확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단 한발도 달려들고 있는 녀석의 몸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놀랄 틈이 없었다.
궁수들을 향해 덮쳐오던 녀석의 몸이 그대로 목표로 삼았던 궁수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쿠웅――
“으아아악!”
궁수는 온 힘을 다해 녀석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아직 이렇다 할 상처하나 생기지 않았지만, 몸 위를 짓밟고 선 존재에 대한 공포만으로도 자연스레 비명이 튀어나왔다.
한데 조금 이상했다.
곧바로 상처를 내고 물어뜯거나 할 줄 알았다.
그랬는데··· 녀석이 무슨 일인지 궁수의 몸을 깔아뭉갠 그 자세로 오연히 고개를 뻣뻣이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녀석은 거대했다.
머리통은 커다란 황소만큼 컸으며 몸집 또한 그와 비슷했다.
그리고······.
‘하얗네!’
온몸이 새하얀 털로 뒤덮인 녀석은 마치 커다란 개··· 같았다.
이설은 녀석을 보고 늑대 개를 연상했다.
몬스터라기보다 아름답기까지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일행은 어느 순간, 할 말을 잃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밑에 깔린 궁수만 죽을 맛이었다.
그때, 누군가 한 손을 들어 녀석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자, 자이언트 울프!”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녀석의 동료들이 일제히 환한 곳으로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눈앞의 하얀 녀석을 보호하려는 듯.
덕분에 사람들은 물론, 카이 일행까지 뒤늦게 드러낸 녀석들과 눈앞 녀석의 차이를 알아챘다.
크기는 비슷했지만 털 색깔이 전혀 달랐다.
우윳빛보다 더 하얀 녀석과 달리, 다른 녀석들은 전부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이었다.
그때, 누군가 또다시 말했다.
“호, 혹시··· 자이언트 울프 퀸, 시저··· 아냐?”
“에? 고서에 나오는 그 몬스터의 우두머리?”
“서, 설마!”
크르르르―――
놀랍게도 녀석들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재빨리 로빈이 일행들 속에서 외쳤다.
“녀석들에게 인성이 있는 모양이오! 섣불리 움직이지······.”
그러나 이미 마법을 발현시키는데 막 준비를 끝낸 인간이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2서클 마법사··· 멜라니였다.
그녀는 로빈의 지시를 기다리지도 않고 자신의 성질대로 공격마법을 퍼부어버렸다.
“파이어 보올!”
휘이이익―――
콰아앙―――
크에에엑!
멜라니와 가장 가까이 있던 검은 털빛의 자이언트 울프 한 마리가 그녀의 마법에 정확히 맞고 외마디 비명을 토해냈다.
“홋호호! 오거보다 못한 녀석들이 까불고 있어!”
몇몇은 멜라니의 마법에 당한 자이언트 울프가 맥도 못 추고 쓰러지자 잠시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라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쓰러졌던 자이언트 울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
녀석은 멜라니의 공격마법으로 인해 윤기가 좌르르 흐르던 털이 살짝 그을렸을 뿐, 그 바람에 적의를 가득 담아 일행을 노려보았다.
이는 새하얀 자이언트 울프도 마찬가지였다.
화이트 울프는 처음과 달리, 살기를 뿜어내며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워우우우우우우――――
화이트 울프의 하울링 폭은 대단했다.
넓은 동굴 안을 가득 메운 것도 모자라 일행을 훌쩍 뛰어넘어 저 멀리까지 퍼져나가고 있었다.
섬뜩하면서도 묘한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자 로빈이 서둘러 외쳤다.
“이, 일제히 공격준비!”
하지만 어딜 공격해야 할지를 몰랐다.
갑자기 녀석들이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녀석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빠르고 날렵했다.
무엇보다 몬스터의 정점에 서 있다는 오거보다 더 과격하고 파괴적이었으며 결정적으로··· 녀석들은 똑똑했다.
덥썩!
촤아아악―――
“크아악!”
“으허억!”
“사, 살려줘!”
이설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가 된 주변을 살짝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그녀와 모건을 제외한 일행들도 자이언트 울프들을 상대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녀석들은 이동범위가 아주 넓고 재빨라 체계적으로도 상대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몬스터를 상대했던 방식은 녀석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녀석들의 주 무기는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기다란 꼬리도 간간이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설은 사람들의 비명과 처절한 몸부림 소리에, 모건을 꼭 껴안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자신의 어깨를 감싸오는 따뜻한 감촉에 이설의 감겼던 눈이 스르르 떠졌다.
‘······카이!’
그가 살짝 거친 숨을 토해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당신이 다치도록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촤르르륵―――
그 말을 끝으로 카이는 쥐고 있던 구절편을 두 손에 팽팽하게 쥐며 이설의 앞으로 나섰다.
이설은 자신의 앞에 우뚝 서 있는 카이의 넓은 등과 어깨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두려움이 거짓말처럼 사르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잊고 있던 지니의 기운이 이설과 그녀의 품에 있는 모건을 감싸기 시작했다.
“깨개갱!”
카이가 휘두른 쇠사슬의 위력에 블랙 자이언트 울프 한 마리가 구슬픈 비명을 내며 나자빠졌다.
하지만 역시나 그뿐, 녀석은 다시 벌떡 일어나 더한 독기를 내뿜으며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이 자식아!”
촤아악――
“꺠갱!”
갑자기 등장하며 횡으로 할퀴어댄 바이탈의 주 무기, 클러우(Claws)로 인해 카이에게 덤벼들던 자이언트 울프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바이탈은 그에 그치지 않고 이번엔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단도를 울부짖는 자이언트 울프를 향해 던졌다.
휘이익――
푸욱!
“깨갱, 깨개개갱!!”
우연인지 실력인지 단도는 정확히 자이언트 울프의 커다란 오른쪽 눈동자에 푹 꽂혀버렸다.
그 기세를 잃지 않고 카이의 쇠사슬이 휘리릭 소리를 내며 날아가, 녀석의 목을 휙휙 감았다.
자이언트 울프는 끔찍한 고통과 공포에 늑대 특유의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 순간, 카이 일행은 모두 긴장해야 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새하얀 물체가 정확히 카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단숨에 점프해 왔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누군가 말했던 자이언트 울프 퀸, 시저였다.
시저는 몸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쇠사슬에 목이 감긴 채 바닥을 뒹굴고 있는 블랙 자이언트 울프에게 다가갔다.
덥썩!
“······!”
가까이 있던 카이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시저가 자신의 무기를, 동료의 목을 조르고 있던 구절편 한쪽을 커다란 입으로 덥석 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와드득!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시저가 턱에 힘을 주자 단단하던 쇠사슬이 볼품없이 끊어져 버렸다!
촤르르, 툭툭······!
시저의 이빨에 의해 끊어진 쇠사슬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나가 일행 전부를 얼게 만들었다.
크르르르르―――
시저의 시뻘건 눈동자가 노골적으로 카이와 바이탈을 향했다.
바이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또 다른 단도를 들어, 있는 힘껏 시저를 향해 던졌다.
휘이이익――――
틱.
곧바로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정면을 향해 날아오는 단도를, 단지 기다란 주둥아리로 휙 젖히자 단도가 마치 단단한 쇠 벽에라도 부딪힌 듯 가볍게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일촉즉발의 상황!
곧 시저에게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한데 다음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몸놀림이 번개 같은 시저가 누구를 먼저 공격할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던 카이와 바이탈.
한데 그 앞을 누군가 스윽 지나쳐 앞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카이와 바이탈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하였다.
이윽고 사람들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설!”
카이와 바이탈의 앞을 가로막고 선 이는··· 이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이 더 놀란 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자이언트 울프들이 갑자기 숨을 죽이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리언니.”
“마, 마법사님!”
차마 그녀가 있는 곳까지 다가가지는 못했다.
일행은 저마다 이설을 만류하며 그녀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이때, 가까이 있던 카이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이설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재빠른 이설의 제지로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카이를 향해 이설은 괜찮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시선을 시저에게로 옮겼다.
크르르······.
툭 튀어나온 잇몸 사이로 날카로운 이를 확연하게 보였으나 이설은 처음과 달리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누구도 의식하지 못했으나 이설의 몸에선 그 어느 때보다 지니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 쉬··· 널 헤치지 않아. 가만히 있으렴.
이 세계에 온 뒤로 처음으로 지니의 언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오직 시저의 귀에만 들릴 것이다.
크르?
이설은 으르렁거림을 멈춘 시저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잠시 후, 시저의 커다란 붉은 눈망울과 마주한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쓰고 있던 후드를 천천히 뒤로 젖혔다.
스르르르―――
그러자 환히 드러난 그녀의 얼굴.
술렁――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도 잊고, 처음으로 마주한 이설의 모습에 저마다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한낮 짐승일 뿐인 시저 또한 이설의 신비스러운 미모에 놀란 모양이다.
그때였다.
이설이 시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꺽.’
‘꼴깍.’
‘꾸울꺽.’
놀랍게도 시저는 이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이설이 활짝 편 손바닥으로 시저의 탐스러운 하얀 털을 쓰다듬을 때도 시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참으로 예쁘구나. 네 이름이 시저니?”
이설은 내친김에 시저의 새하얀 털에 얼굴을 묻었다.
푹신――
사람들이 경악했다.
하지만 이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시저의 몸에선 생각보다 좋은 냄새가 났다. 야생 짐승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향긋한 냄새였다.
이 놀라운 상황에 사람들은 다들 할 말을 잃고 이설과 시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뭐 더이상 어떤 놀라운 일이 생기겠나, 할 때···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 내 이름은 시저, 자이언트 울프들의 여왕이다. 그대는 누군가.
“······!”
뜨아아!
털썩――
너무 놀라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사람까지 생겼다.
시저가 말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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