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원
카이 또한 볼일이 있어 들린 용병 길드에서 이설을 만나 적잖이 당황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자 뒤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여어! 우리 자주 봅니다?”
바이탈이었다.
이설은 어색한 미소로 살짝 인사를 건넨 후, 벽보에서 대충 전단지 몇 장을 떼어내고 이들을 지나쳤다.
그러다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랄프였다.
“오! 마법사님!”
“아, 안녕하세요?”
이설이 그냥 지나치려 하자 랄프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
“잠시만요, 뭘 떨어트리셨습니다.”
바닥에 흘린 무언가를 랄프가 주워, 손에 쥐고 흔들었다.
조금 전 이설이 떼어낸 전단지 중, 하나였다.
“아, 고마워요.”
한데 이설이 손을 내밀었지만 랄프는 바로 돌려주지 않고 뜻하지 않은 질문을 건넸다.
“혹시 여기 구한다는 파티에 합류하실 생각이십니까?”
랄프의 말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바이탈이 잽싸게 다가와 랄프의 손에서 전단지를 뺏었다.
탁――
“바이탈!”
바이탈은 랄프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전단지를 훑어보았다.
잠시 후, 전단지를 훑어본 바이탈이 눈을 빛내자 카이도 조금 관심을 보였다.
그때, 이설이 다소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조금 무례하다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이설의 말에 랄프가 난색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우리와 상관이 있는 일이다 보니 미처······.”
“상관이 있다니요?”
이때, 카이가 바이탈의 손에서 전단지를 뺏어 들었다.
그러길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이 전단지··· 내가 붙인 거요.”
“······.”
이설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세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를 카이는 표정 없는 얼굴로, 랄프는 미소 띤 얼굴로, 바이탈은 뭐가 재미있는지 잔뜩 신난 얼굴로 바라보았다.
“······여성은 파티에 받지 않는다고 되어있소만.”
‘아! 그 전단지!’
이설도 싫다는 파티에 들어갈 생각 없었다.
한데 우연히 전단지가 딸려온 모양이다.
“카이!”
“야 인마!”
여성이긴 하지만 이설의 실력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들이다.
카이의 성급한 말에 랄프와 바이탈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핀잔했다.
이에 이설이 속으로 웃으며 한마디 했다.
“보수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단지 마법사로서의 호기심 때문이랄까? 생각 있으시면 밥 아저씨 여관으로 찾아오세요.”
“······!”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놀랄 만한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제 마법 서클은 현재 5서클 마스터랍니다.”
“······!”
이설의 이 한마디는 세 남자를 흔들기에 아주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쳐흘렀다.
“5, 5서클 마스터!”
“휘유~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현재 대륙에 존재하는 마법사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마법사를 꼽는다면 6서클 마스터 존바르담 스팸이 있다.
소식에 의하면 그조차 마스터 반열에 오른 것은 불과 몇 달 되지 않았다고 한다.
카이와 랄프, 바이탈은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법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었다.
마법사는 귀한 인력으로 3서클 마스터만 돼도 웬만한 귀족 가에서 대접받으며 살 수 있다.
4서클 이상이면 왕궁의 궁중 마법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5서클 마스터라니!
.
.
.
.
.
그날 저녁, 만원인 식당 탓에 방에서 식사하고 있던 이설에게 카이가 찾아왔다.
자신을 찾아도 랄프나 바이탈이 올 거라 예상했던 그녀는 조금 의외의 시선을 보냈다.
“출발은 정확히 사흘 후······.”
“잠시만요, 식사 좀 마저 끝내고요.”
“······.”
카이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무슨 여자가 혼자 있는 방에 외간 남자가 들어왔는데 저리도 태연할까? 마법사여서일까?
카이는 이설을 향해 끝없이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에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덕분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그녀를 종종 화나게 했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두근두근······.
‘젠장!’
또 시작이다.
어제부터 심장이 고장 났는지 두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게다가 가슴 한곳에 생전 느껴보지 못한 울렁이는 증상까지 일어났다.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평소엔 잠잠하다가 저 여인을 떠올리면 느닷없이 발작한다는 것이다.
그때, 이설이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가까이 다가왔다.
두근!
심장 소리가 더 커지고 빨라졌다.
“······어디 아프세요?”
“······아니오.”
이설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조금 전보다 카이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디가 아픈지··· 식은땀도 흘리는 것 같다.
이설은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카이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흠칫!’
진심 놀랐다.
카이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이설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다.
탓――
“······!”
묘한 정적이 흘렀다.
이설은 너무도 민망해 어쩔 줄 몰라 하다 불쑥 입을 열었다.
“전할 말씀이 뭐죠?”
처음으로 카이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 미안하오. 갑자기 놀라서······.”
“아니요. 제가 미안하죠. 그보다 잠깐 외출해야 하니까 서둘러 말씀해주세요.”
“······.”
아니라고 하지만 이설의 목소리는 이미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속으로 오만가지 욕을 해대고 있었다.
그 증거로 장소와 출발 시각을 전해 듣자마자 이설은 카이를 매몰차게 쫓아냈다.
쾅―――
뒤끝 작렬하는 그녀의 성격이 여지없이 발휘된 것이다.
***
사흘 동안 이설은 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주로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낸 것인데 생각보다 필요한 것이 많았다.
혼자 여행할 때야 보는 눈이 없으니 지니의 능력을 사용하면 됐지만, 일행이 생긴 이상, 굳이 이목을 끌 이유가 없잖은가.
없던 침낭이 손짓 한 번에 생기고, 음식이 뚝딱 생겨봐라.
제아무리 마법사라 해도 그런 마법이 없다는 것쯤은 다들 안다.
사흘 동안 고생해서 마차에 짐을 실은 이설은 약속 시각에 늦지 않게 서둘러 움직였다.
.
.
.
.
.
“······늦는군.”
카이의 말에 바이탈의 눈이 샐쭉해졌다.
“아직 시간 안 됐는데?”
“······.”
정확히 약속 시각까진 십 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는다고 뭐라 따질 그들이 아니다.
그런데··· 저 조급해하는 모습은 뭔가?
카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바이탈과 랄프, 모건은 그런 카이를 재미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정해진 파티원들은 모두 모인 상태였다.
현재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이설밖에 없었다.
다각다각―――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자 돌연 어두웠던 카이의 안색이 살짝 밝아졌다.
그러자 깜짝 놀란 랄프와 바이탈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 녀석!’
랄프와 바이탈이 서로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지었다.
‘좋아하는군.’
바이탈이 입만 뻥긋 신호를 보내자 랄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저런 카이의 모습은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
.
.
두 사람의 짐작이 맞았다.
카이는 지난 삼 일간 자신에게 일어난 증상의 원인을 결국 알아냈다.
이설을 떠올릴 때마다 일어나는 증상!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했지만, 그녀를 볼 수 없었던 사흘 동안··· 확실히 깨달았다.
이설··· 그녀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틀째 되는 날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밥 아저씨의 여관까지 찾아갔다.
온종일 식당 안에 죽치고 앉아 이제나저제나 그녀를 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갖은 핑계를 대며 그녀가 묵고 있는 방으로 찾아가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카이의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
.
.
“······제가 늦은 건가요?”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카이의 모습에 이설이 매우 미안한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이에, 랄프와 바이탈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저 연애고자 녀석!’
‘어이없군. 어이없어. 저러니 여태 여자가 없지.’
이들을 구원한 것은 모건이었다.
“안녕하세요! 제때 오셨어요.”
“어머, 모건~ 그런데··· 너도 가는 거니?”
물론, 그녀 입장에선 모건이 가면 좋다.
말동무도 할 수 있고,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꼬마다.
하지만 현재 모건의 나이는 십 오세.
그렇다면 파티원 모집 전단지에서 언급하던 성년이상 이란 문구는 뭐란 말인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설의 시선에 카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애써 외면했다.
이때 랄프가 나서서 파티원들을 소개했다.
카이와 랄프, 바이탈과 모건을 빼고 새롭게 파티원에 합류한 사람은 모두 네 명이었다.
그들 중 세 명은 원래 한팀이었고 멋들어진 은발의 남자는 이설처럼 혼자였다.
세 명의 일행 중 반갑게도 여자가 끼어있었다.
이설은 한층 고무된 표정으로 이들의 소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루이스라고 해요. 이슬이라는 뜻인데 아버지께서 새벽의 아침이슬처럼 맑고 상큼하게 크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물어보지도 않은 이름의 뜻까지 척척 말하는 것으로 보아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이설을 제외한 팀의 홍일점 소개에 이어, 푸른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카쿤이라 하오. 나이는 서른다섯에 본명은 카나크온. 그냥 짧게 카쿤이라 부르시오. 그리고 내 주특기는··· 기관해체요.”
‘기관해체!’
사람들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기관해체가 특기라니, 기관설계라면 몰라도 해체가 특기라는 말이 이설은 재미있게 들렸다.
하지만 분명, 카쿤이라 자는 이 파티에 중요한 담당을 할 사람이다. 무엇보다 이설은 다른 의미에서 카쿤을 보고 감탄했다.
‘와! 많아야 이십 대 중반 정도 될 것 같은데··· 서른다섯이라니! 최강 동안!’
하지만 반대인 사람도 있었다.
“험험험······.”
헛기침으로 이목을 끌고 자기소개를 시작한 이는 사 오십 대로 보이는 땅딸막한 중년 남자(?)였다.
“커험, 내 이름은 룬바우툼이라네. 뭐 카쿤처럼 편하게 바우라고 부르든가. 험험··· 나이는 카쿤과 동갑이니 형님이나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되고. 험험······.”
“······!”
모두 경악했다.
‘사기다!’
‘저 얼굴이 어째서 삼십 대 인 거야?’
‘거짓말!’
아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파티원의 모습에 루이스가 변호했다.
“호호··· 바우 아저씨는 실제로 서른다섯이에요.”
철썩――
“아얏!”
모두의 얼굴에 이제 경악에 이어 황당함이 겹쳤다.
자신을 비호하던 루이스의 엉덩이를 바우가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철썩 내리친 것이다.
“이잉, 뭐예요! 자꾸 처녀 엉덩이 함부로 때리지 말랬죠!”
“나야말로 자꾸 아저씨, 아저씨 하지 말랬지? 너··· 그러다 내가 장가도 못가면 네 녀석이 나한테 올 텨?”
“꺅! 미쳤어요?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더러······.”
“······.”
끝날 것 같지 않은 이들의 행태는 다행히 카쿤의 중재로 멈출 수 있었다.
그러자 안도 한 일행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은발을 멋들어지게 늘어트린 남자에게 향했다.
‘우왕, 이쁘다!’
은발의 남자를 향한 이설의 첫 느낌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일통한 남자는 남자답다기보다는··· 여자처럼 매우 아름다웠다.
때문에 이쁜 것을 좋아하는 이설의 관심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한데··· 남자의 아름다운 외모는 다음에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비하면 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스라고 합니다. 나이는··· 비밀입니다.”
‘캬악!’
천상의 목소리가 이러할까?
감미로운 하모니가 귓가에 착착 감겨오는 것이 절로 온몸을 전율케 했다.
그때, 몽롱한 목소리로 루이스가 질문했다.
“직업이 뭔가요? 보다시피 저희는 모두 트래져 헌터인데··· 아이스 씨는······.”
“마법삽니다.”
“······!”
이이 그의 직업을 알고 있는 세 남자를 제외하고 모두가 감탄했다.
이설은 다른 의미에서 아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로선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마법사였다.
‘바이올렛 말로는 마법사들은 미남 미녀가 많다더니··· 정말이었네.’
이설은 아이스의 옷차림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왕 마법사로 설정을 한 이상, 본보기로 삼을 셈이었다.
그런데 아이스의 패션은···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이설로서도 여간해선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유난했다.
로브를 선호하는 마법사와 달리 아이스는 새하얀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안에 갖춰 입은 옷들 또한 하얀 셔츠에, 바지도 하얀색, 무릎까지 오는 부츠도 하얀색이었다.
‘밥맛없군.’
사실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다.
아이스는 어젯밤 갑자기 끼게 된 파티원이다.
실력 좋은 마법사라는 이유로 랄프가 받아들인 자기도 했다.
한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그를 반대할 것을 하고··· 후회된다.
내색하진 않았으나 이설의 시선이 자꾸만 아이스에게 향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작가의말
매일 12시 5분에 올립니당.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