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 울프 퀸 4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서로의 얼굴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이 강한 몇몇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설과 시저를 바라보는 눈에 힘을 주고 지켜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소개하려던 이설.
그녀는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떠올리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 나는, 777대 지니, 이설 황이라고 해. 이 세계에선 랜프의 정령으로 통하지.
지니가 된 이후, 두 번째로 자신의 진정한 신분을 밝히는 그녀였다.
물론, 첫 번째는 씨도 먹히지 않았고··· 이번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였지만 말이다.
한데 시저는 지니란 존재에 대해 아는 모양이다.
― 놀랍군, 지니라니······.
― 쉿! 놀라운 건 너야. 그리고 미안하지만··· 나에 관한 것은 비밀이니 작게 말해주기 바래.
이에, 놀랍게도 커다란 시저의 눈빛에 다소 미안한 기색이 흘렀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금 진지한 눈빛으로 돌아온 시저.
시저는 아주 잠깐, 생각에 잠긴 듯 조용하더니 이내 이설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세우며 나직이 말했다.
― 거역할 수 없는 기운을 가진 그대 이설이여, 그대의 뜻에 따라 난, 자이언트 울프 퀸, 시저는··· 그대를 섬기겠노라.
“······!”
아주 잠시, 시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이설.
그녀를 비롯해 조용하던 주변이 곧이어 시저가 하는 말뜻을 알아채고 시끄러워졌다.
시끌시끌――
그 가운데··· 누군가 외쳤다.
“바, 방금 건··· 몬스터를 부리는 테밍 마법이야! 저런 마법은 흑마법사나 가능한 것 아냐?”
“······흑마법사?”
현재 대륙의 흑마법사들은 딱히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어둠의 계열을 통해 이루어지는 마법이 대부분인 터라 대륙에선 거의 배척을 하고있는 상태였다.
사람들은 흑마법이라는 말에 저마다 혼란스러워했다.
반면에 카이 일행은 흑마법사 운운하던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로빈과 예전부터 동료였던 얼뜨기 토마스란 자로, 평소 카이 일행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자 중 하나였다.
토마스는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던 일행 가운데 이설이 울프들을 손쉽게 다루자 자신도 모르게 심통이 났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좋지 않은 말을 뱉어낸 것이다.
그러다 일이 커지는 듯 하자 살짝 잠시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멜라니가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쳐댄 것이다. 그러자 귀가 얇은 몇몇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때, 로빈이 나섰다.
“조용! 조용!”
“······.”
카이 일행과 마찬가지로 잔뜩 인상을 찡그린 로빈이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상황에서 흑마법사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소! 중요한 것은, 마법사님 덕분에 우리가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오!”
그러자 누군가 반론했다.
“그러면 뭐합니까? 내 친구 매트는 이미 저 몬스터 새끼한테 당해 죽었습니다!”
바우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게 우리 탓이냐?”
바이탈도 한마디 거들었다.
“완전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보따리도 내놓으란 격이잖아, 이거!”
술렁술렁――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바우와 바이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어딜 가나 꼭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
“흥! 저런 능력이 있었다면 왜 처음부터 나서지 않았던 거지? 진작 나섰다면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없었을 거 아냐!”
멜라니였다.
그녀의 말에 죽은 친구를 운운하던 남자가 또 나섰다.
“내 말이 그거요! 진작 저 여자가 나섰다면 내 친구는 물론, 다른 팀의 동료들도 현재 살아있었을 것 아니오!”
술렁술렁――
다소 억지가 있는 소리였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쉽게 이들의 말에 휘말렸다. 한데 그때였다.
― 명령을 내려다오. 그대, 시저의 주인이 원한다면 시끄러운 저들을 당장 처리해주겠다.
“······!!”
사람들의 입이 쏙 들어갔다.
그때, 이설의 찡그렸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꿀걱.’
사람들은 대번에 변하는 이설의 표정에 다시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이설이 누군가를 지목했다.
“······너!”
‘움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지목당한 양, 저마다 어깨를 움찔했다.
그러다 자신이 아님을 깨닫곤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지목을 당한 당사자는 그렇지 못했다.
멜라니······.
그녀는 느닷없이 자신을 가리키는 이설의 행동에 눈이 튀어나오라 부릅뜨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루이스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서리 언니! 그 아줌마 우리 귀여운 검둥이들한테 확 줘버려요!”
순간, 당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이언트 울프들의 강렬한 포스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은··· 우연이었을까?
‘우리 귀여운 검둥이라니······.’
이설은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다시 멜라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멜라니.”
자신을 부르는 이설의 목소리에 멜라니는 마치 천둥소리를 들은 듯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기세등등했던 그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생각 같아선 너와 저기 저 아저씨들까지··· 모두 시저의 먹이로 던져주고 싶어.”
지목된 이들의 어깨가 절로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오늘은 시저를 만난 기쁜 날이야.”
멜라니의 얼굴에 빠르게 안도감이 번졌다. 그때, 이설이 한마디 덧붙였다.
“참, 내가 살던 곳엔 먹을 땐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어. 다음에 또 만나면 음식을 모욕한 그 다리를 확 찢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그 열등감 좀 가라앉히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
놀라 바들바들 떨어대는 멜라니를 뒤로하고 이설은 카이와 일행을 가리키며 시저에게 말했다.
“내 동료들과 당장 여길 뜨고 싶어.”
놀랍게도 시저는 이설이 하는 말의 의미를 금세 알아챘다.
시저는 곧바로 블랙 자이언트 울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
그러자 새카만 털빛을 자랑하는 블랙 자이언트 울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카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훌쩍 몸을 날려 오는 것이 아닌가.
휘익――
훌쩍――
‘흠칫!’
이설의 말뜻을 몰랐던 카이와 일행은 갑자기 거대한 자이언트 울프들이 자신들을 향해 단체로 다가오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때, 이설이 환한 얼굴로 시저의 넓은 등위에 올라탔다.
“헛!”
“켁!”
이설의 간단한 행동으로 일행은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
하지만······.
“우, 우리더러 지금··· 이 녀석들 등에 올라타란 말이오?”
당황하며 묻는 카이의 말에 이설이 턱을 치켜들며 대답했다.
“여기 남아서 저 꼴통들이랑 함께 천천히 오던지요. 강요는 안해요.”
“······!”
그녀의 그 한마디는 즉각 효과가 있었다.
일행 모두 두 번 생각할 것 없다는 듯, 즉시 짐들을 챙기고 조심스레 자이언트 울프의 등에 올라탔다.
존과 그의 동료로 수가 맞지 않았으나 루이스와 존이, 모건이 카이와 함께 함으로 대충 쪽수가 맞았다.
그러나 바이탈은 자신과 짝을 이룬 자이언트 울프의 눈이 다른 녀석들과 달리 갓 생긴 상처로 인해 외눈이란 사실에 잠시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녀석은 자신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던 그 녀석이었던 것이다!
찝찝한 마음에 바이탈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녀석의 털을 슬쩍 쓰다듬으며 애처롭게 말했다.
“아하하··· 아, 아깐··· 고의가 아니었다. 저,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건··· 너, 너도 알지? 하하······.”
후우욱―――
대답 대신 자이언트 울프에게서 비웃음 비슷한 세찬 콧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저 밑에서 피어 올라왔다.
바이탈은 결국, 녀석의 털을 꽉 움켜잡으며 신의 이름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오, 젠장! 신이시여~!’
그때, 바이탈의 옆에서 자이언트 울프의 등에 올라타던 라프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바이탈을 태운 외눈박이 자이언트 울프의 입가가··· 히쭉 찢어지는 괴현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
.
.
잠시 후, 로빈과 무리들은 카이 일행이 자이언트 울프를 타고 바람처럼 앞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침묵하며 그렇게 잠시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쉽게도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사삭―――
사삭, 사삭, 사사사삭――――
“······!”
“뭐, 뭐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마치 무언가 벽을 타고 빠르게 다가오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일행은 다시금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동굴은 온갖 마물들이 기거하는 서식처였다.
다만, 자이언트 울프 특유의 기운으로 지금껏 마물들이 숨죽이고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울프들이 사라진 지금, 마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 만난 고기떼처럼 활개를 펴기 시작했다.
누군가 로빈을 향해 울분을 토하듯 외쳤다.
“안전한 길이라며!”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로빈을 원망하는 소리가 속출했다.
“이게 다 저 녀석 탓이야! 저 녀석의 꼬드김만 아니었다면 이곳으로 오지도 않았어!”
“차라리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낫지, 여긴 이상한 마물들 천지잖아!”
로빈을 옹호하는 자도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로빈이 아니었다면 크레이뇽의 무덤이 오트룸에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게 아냐!”
비방과 옹호하는 목소리가 한데 섞이며 주변을 시끄럽게 했지만, 로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따라붙을 때부터 이런 상황은 염두에 두었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저들은 로빈에게 있어, 마물이나 몬스터를 상대할 때 필요한 방패막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유독 한 사람에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로빈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어느 한 곳을 노려보았다.
그곳엔 아직도 자신이 잘났다고 떠들고 있는 마법사, 멜라니가 존재했다.
그녀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카이 일행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예로, 존과 그의 동료들이 있지 않은가.
로빈은 처음부터 자신이 카이 일행을 무시했던 사실은 잊고, 멜라니만 원망했다.
그때, 수상한 소리의 근원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휘익――
누군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횃불을 던졌다.
툭!
횃불은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지며 주변을 한번 싹 훑은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횃불 주변으로 퍼져있는 흉물스러운 마물들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
“으헉! 거, 거미 아냐?”
“무슨 거미들이 저렇게 커!”
사람보다 더 큰 거대한 거미들이었다.
게다가 한 두 마리가 아니다.
벽과 천장, 바닥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궁수!”
로빈이 다급히 궁수들을 찾았다.
하지만 궁수들은 단 한 사람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아니, 나서질 못했다.
“나를 비롯해 다른 활잡이들은 보다시피 거동조차 힘드오.”
로빈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빠르게 훑었다.
그곳엔 어깨와 한쪽 팔을 심하게 다쳐 작은 단도조차 쥐기 힘들어 보이는 남자와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자들이 벽에 기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 볼썽사납게 널브러져 있는 활과 화살만이 그들의 주 무기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안전하게 좀 더 뒤로 물러나 계시오.”
어쩔 수 없이 로빈은 궁수들을 포기하고 곧바로 고까운 마음으로 마법사를 찾았다.
그러자 멜라니와 폴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마법을 날리기 시작했다.
뒤에선 클레이 용병단들이 저마다 검을 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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