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합니다. 전하~
“휘유~ 기관이 제대로 발동했다면 분명 저 안에서 화살 같은 것들이 슝슝하고 튀어나왔을 거야.”
끄덕끄덕.
바이탈의 중얼거림에 다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만약, 터널 중간쯤 다다랐을 때 기관이 발동했다면 반 이상이 꼬치구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설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입구 기관을 모두 해제한 것을 알지만, 일행은 걷는 내내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완전히 터널을 빠져나온 다음에서야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닦아냈다.
“아하하··· 덥지도 않은데 땀이 왜 이렇게 나지? 아하하······.”
존의 말에 땀을 닦아내던 일행의 행동이 순간, 멈췄다.
그러고 보니 무덤 안은 놀랍게도 무덤 밖과 아주 딴판이었다.
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원했다.
“흠흠··· 자네도 체질이 나랑 비슷한 모양이군. 흠흠······.”
레이스가 촘촘히 달린, 새하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아내던 안토니가 뻘쭘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한마디 했다.
그때, 마침 시야에 와 닿은 석문을 가리키며 바우가 물었다.
“다음 관문은··· 이 안인가?”
모두의 시선이 석문으로 향했다.
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석문은 아무런 문양도 그려져 있지 않은 평범한 석문처럼 보였다.
그런데 흔한 손잡이 하나 달려 있지 않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살짝 난감했다.
그때, 석문과 벽 사이에 틈을 발견한 카이가 설계도면을 응시하고 있는 카쿤에게 말했다.
“옆으로 밀어야 열릴 것 같소만······.”
그러자 카쿤이 왼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니요. 우린 이곳으로 가야 하오.”
설계도면을 조심스레 접어 바지춤에 집어넣은 카쿤은 의아해하는 일행을 뒤로하고 그대로 석문을 지나쳐 가장 구석진 곳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일행의 시선에 끝을 알 수 없는 구불구불 나 있는 돌계단이 보였다.
지탱할 수 있는 난간이 없는 것은 기본, 걸음을 옮길 수 있는 폭 또한 매우 좁아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계단이었다.
거기다··· 계단의 경사도는 왜 이리 심한지, 계단 끝에 다가가 살짝 시선을 아래로 가져가니 눈이 핑핑 도는 것이 아찔할 정도였다.
“······길이 이곳밖에 없나요?”
어지러운지 아담이 손을 머리에 가져가며 물었다.
그러자 카쿤이 방금 지나쳐온 석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문을 열면 아래로 직행으로 갈 수 있는 열쇠가 있을 겁니다.”
“엥? 그런데 왜 여기로 온 게야?”
바우의 투덜거림에 카쿤이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했다.
“여기 무덤 안엔 수많은 방이 존재하네. 그리고 그 수많은 방 하나하나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
“하지만 이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면··· 그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공간에 도달할 수 있다네.”
“······.”
이설이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석문을 통해서 가면 무조건 위험한 방으로만 가게 돼 있는 건가요?”
카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설계도면에 의하면··· 석문 안에는 수많은 열쇠가 천장에 매달려 있을 겁니다. 열쇠는 잡아당기는 식으로 되어있는데 아무거나 무턱대고 잡아당기면 곧바로 죽음의 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이탈이 제대로 깎지 않아 토돌토돌 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쿤 형님이 제대로 된 열쇠를 가려내면 될 거 아니요?”
랄프의 커다란 손바닥이 오랜만에 바이탈의 뒤통수와 작렬했다.
빡――
“크악!”
“야 인마, 카쿤 형님이 무슨 수로 그런 거까지 알 수 있겠냐?”
“우씨!”
꽤나 아팠는지 바이탈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랄프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들을 아담이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뭐야, 이거 너무 쉽잖아.”
자신들 앞에 이미 황자와 카이 일행이 앞서갔다는 사실을 로빈 일행도 알고 있었다.
해서, 힘을 비축하자마자 서둘러 무덤 안으로 진입했다.
한데 생각보다 쉽게 입구를 돌파하자 저마다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카이 일행이 입구의 기관을 해체한 탓임을 깨닫지 못했는지··· 어쨌든, 그들도 결국 황자와 카이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석문 앞에 도달했다.
역시나 카이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석문에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석문이 밀려야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낸 일행.
로빈의 오랜 동료, 토마스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하하! 이것 봐, 열린 흔적이 없는 것을 보니··· 먼저 간 녀석들이 다른 길로 간 모양인데?”
석문의 육중한 무게로 인해 만약 수 시간 전, 한 번이라도 열린 적이 있다면 흔적이 남아있어야 했다.
토마스의 말에 일행 대부분이 환호했지만 로빈과 용병 알렉스의 표정은 어두웠다.
현재 로빈 일행은 그 수자 확 줄어, 로빈과 토마스, 그리고 멜라니와 폴이 운 좋게 살아남았으며, 스네이크 슬레이터라 불리던 스나프가 죽고 하멜과 그의 파티를 이뤘던 동료 보리스가 현재 로빈 일행에 끼어있었다.
그리고 클레이 용병단에선 한 명을 제외한 알렉스와 A급 용병 두 명이 아직 정정하게 살아남았다.
이렇게 총 아홉 명의 생존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잠깐!”
토마스가 다른 일행과 힘을 합쳐 석문을 열려 하자, 로빈이 이를 말렸다.
“왜?”
“······뭔가 이상해.”
자신의 말에 찡그리는 토마스를 뒤로하고 로빈은 부랴부랴 품을 뒤져 한 장에 노랗게 빛이 바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순간, 일행의 시선이 모두 로빈이 꺼낸 종이로 향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종이였다.
일행의 눈빛이 번득였다.
종이 위에 뭔가 복잡한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는데 흡사 무슨 설계도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게 뭐요?”
알렉스의 물음에 멜라니가 받아쳤다.
“혹시 무덤의 설계도면 아니에요?”
모두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당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이것은 설계도면이 맞소.”
오오――
놀라운 일이었다.
카쿤의 설계도면 되에 또 하나의 설계도면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들은 카쿤에게 설계도면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일행의 얼굴에 밝은 기색이 감돌았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쪽짜리라고 할 수 있소.”
“그게 무슨 뜻이죠?”
로빈은 설계도면을 일행의 앞에서 살짝 흔들어대며 말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내 선조께서 이곳을 설계한 자의 설계도면을 몰래 베껴 옮긴 것이오.”
아주 잠깐 벙찐 얼굴로 입을 벌리고 로빈을 바라보던 일행.
하지만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로빈을 옹호했다.
“흠흠··· 베꼈으면 뭐 어떻소? 어쨌든 설계도면은 맞잖소.”
하멜의 말에 로빈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소. 선조께서 급한 마음에 옮기신 터라, 자신이 아는 내용은 머릿속에 담으시고, 모르는 내용만 간추려 이곳에 그려놓으셨소.”
“······!”
급 어두워지는 일행의 모습에 토마스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그,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네. 안 그렇소들?”
하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설계도면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던 자신들이다.
때문에 토마스의 말에 비로소 일행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맞소. 실은 설계도면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는데 뭘.”
끄덕끄덕――
그때, 멜라니가 불쑥 물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다 있겠죠?”
로빈이 종이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글세···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이것을 보니 또 아닌 것도 같소.”
그가 가리킨 부분엔 네모난 석문이 다소 삐뚤삐뚤하게 그려져 있었다.
한데··· 거기엔 화살표와 함께 간단한 메모가 적혀 있었다.
― 열쇠의 방.
한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못 알아볼 정도로 악필이었다.
겨우 글씨를 알아본 토마스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됐네. 이 석문을 열면 열쇠의 방이 나타난다는 뜻 아니겠어? 자, 당장 열어보자고.”
그러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용병, 이든이 석연찮은 얼굴로 말했다.
“이봐요. 열쇠의 방이라 적힌 곳에 엑스표가 되어있고, 여기 화살표 표시에 동그라미가 되어있잖소. 이걸 보면 뭘 암시하는지··· 모르겠소?”
토마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만은 로빈으로 족했다.
그때였다.
“이봐! 여기 계단이 나 있어!”
화살표를 보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멜라니가 화살표가 가리킨 방향을 살펴보다 계단을 발견했다.
그러자 로빈 일행은 황자와 카이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계단 입구에서 또다시 실랑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
― 왠지 기분이 좋지 않군.
아슬아슬한 계단을 이설과 모건을 태운 상태에서 내려가던 시저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일행의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기, 기분이 좋지 않다니? 왜, 왜에에?”
벽에 바짝 등을 기댄 채 바닷게처럼 옆으로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던 바우가 곧바로 시저의 말에 반응했다.
그러자 옆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바이탈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겠지.”
행여, 이런 아슬아슬한 곳에서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다면 전혀 대책이 없었기에 일행의 가슴은 조마조마했다.
― 정말이지 겁들이 굉장히 많군.
한데 그때였다.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 구간을 신경 써서 내려가느라 정신없는 일행이다.
그런 일행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 갑자기 시저가 계단을 번개같이 질주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타―아앗――
꺄아아아――――
으아아아――――
시저의 등위에 타고 있던 이설과 모건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모, 모거언!”
“이서얼!”
“저, 저런!”
찰나에 일어난 이 황당한 상황에 남겨진 일행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찌나 빠른지 이설과 모건을 태운 시저의 모습이 어느새 까마득히 점이 되어 저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다만, 탁탁탁 내려가는 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이설과 모건의 비명 소리가 그들이 아직 살아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일행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금껏 겁을 먹고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가던 일행의 발걸음이 자연, 빨라졌다.
그때,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토니가 수호기사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안 되겠다. 먼저 내려가 볼 테니 너희들은 전하를 부탁한다.”
“······베, 베르티아 경?”
놀란 아담이 안토니를 불렀으나 이미 안토니는 놀라운 속도로 계단 아래로 빠르게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기다리시오~ 내가 가오오~~”
“······!”
저 말은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
앞서 내려간 이가 이설과 모건··· 밖에 없었기에 일행은 모두 알 수 있었다.
한데 또 그때였다.
뒤쪽에서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에 아담이 바라보니··· 잔뜩 굳은 얼굴의 카이가 보였다.
카이는 아담의 곁을 지나치며 빠르게 중얼거렸다.
“실례합니다. 전하.”
“······?”
잠시 후, 아담은 물론, 그를 수호하던 수호기사들까지 입을 쩍 벌리고 카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섭도록 엄청난 속도로 카이가 계단을 달려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걱정 반, 놀라움 반 섞인 눈으로 서 있던 아담의 귓가에 일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전하.”
“······!”
은발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됐던 마법사 아이스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실례합니다. 전하.”
“······실례합니다. 전하.”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아담은 자신이 가장 꼴찌로 남겨졌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작가의말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어어어어엄처어엉난~~~~ 힘을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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