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 울프 퀸 1
다각다각다각―――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갑주로 중무장을 한 일단의 기사들이 빠르게 말을 달려 해변 마을에 들어섰다.
정확히 카이 일행과 로빈이 이끄는 무리가 마을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마을 사람들은 요즘 들어 낯선 이방인들이 자주 마을을 찾아오자 다들 긴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묘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살짝 기대심과 물욕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번엔 기사들이네.”
“어디 왕자님이나 공주님이 행차하신 건가?”
“쉿! 조용들 해봐.”
“······.”
현재 마을엔 에릭에게 잠시 고용돼 말을 몰던 사람들과 오트룸까지 로빈 일행을 배로 안내했던 어부들까지 모두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도 촌장이 나섰다.
“마을을 대표하고 있는 촌장이올시다.”
제아무리 기사라 해도 전혀 기죽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가 살짝 담긴 말투였다.
안토니가 괘념치 않고 미소지으며 물었다.
“얼마 전에 우리 같은 이방인을 오트룸까지 배로 안내한 적이 있소?”
제법 정중한 태도에 촌장이 보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소만, 혹··· 귀하들께서도 오트룸으로 가셔야 하는 게요?”
“그렇소. 우리도 그곳까지 안내해주시면 감사하겠소.”
설마 하고 물은 질문에 역시나 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촌장이 마차를 중점으로 시립하고 서 있는 기사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 모두를··· 말씀하는 게요?”
“그렇소.”
안토니의 대답에 촌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추 자신이 보기에도 붉은 갑주로 온몸을 중무장한 기사들이 오십여 명이다.
마부와 그들을 따라온 시비들까지 모두 합하면 대략 칠십은 돼 보이는 대인원이었다.
그제 자신들이 오트룸까지 안내한 일행보다 좀 더 많은 수였지만 가능할 것 같다.
아니, 한번 해본 일이라 이번엔 쉬웠다.
계산을 마친 촌장이 먼저 흥정을 걸었다.
“한 배당 10골드요.”
“······.”
뜬금없는 촌장의 말에 안토니는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 잠시 멍하니 촌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말뜻을 알아챈 마을 사람들이 잠시 술렁였다.
촌장이 말한 액수는 이틀 전, 로빈 일행에게 받은 수고비에 두 배였기 때문이다.
꿀꺽.
혹시나 하는 기대로 마을 사람들의 반짝이는 시선이 일제히 안토니에게로 향했다.
안토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때 묻지 않은 시골 영감인 줄 알았더니······.’
왜 아니겠는가.
본래 순수한 바닷사람이었던 촌장이다.
항시 자급자족하던 마을에 때아닌 금전 풍이 불게 된 이유는 모두 로빈 일행이 다녀간 뒤에 일어났다.
돈맛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행여 또다시 돈 되는 일이 생기면 악착같이 기회를 붙잡겠다고 은밀히 다짐하기까지 했다.
“좋소. 한 배당 10골드씩 쳐 드리겠소. 대신, 오늘 밤 우리가 머물 곳을 무상으로 지원해주시오.”
사람들과 촌장의 눈꼬리가 휙 치켜 올라갔다.
사실 흥정을 하기 위해 애초에 액수를 높여 말한 것이다.
그런데 깎지도 않고 한 번에 수락하다니······.
머물 곳을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로빈 일행도 그냥 아무런 대가없이 공터를 빌려주지 않았던가.
촌장은 서둘러 안토니와 황자를 며칠 전 그 공터로 안내했다.
.
.
.
어젯밤 안토니는 에릭의 시종 죠이에게서 제법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목적지가 오트룸의 몬스터 계곡이란 얘기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놀랐던지.
오트룸 자체도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두려운 곳이다.
한데 그곳에서도 가장 무서운 곳이라 알려진 몬스터 계곡이라니!
처음으로 안토니는 이번 여행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전해 들은 황자는 완강히 그의 말을 거부했다.
다행히 크레이뇽의 무덤이 있는 곳까지 비교적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로빈이란 자가 안다는 말에 그를 찾기로 결정했다.
황자 일행 중엔 흔적을 찾는 데 있어 대단히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가 한 명 있었다.
다름 아닌··· 안토니였다.
안토니는 카페라 제국이 보유한 네 명의 소드 마스터 중 한 사람으로 특이하게도 암살자 집단인 어쌔신 출신이었다.
추적과 잠입이 특기인 그는 누군가를 찾는 데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카이 일행이 향한 행방을 별달리 헤매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러한 능력 때문이었다.
결국, 안토니는 이번에도 자신의 추적술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
로빈이 이끄는 무리가 긴 터널처럼 생긴 터널처럼 생긴 동굴 입구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오트룸에 발을 들여놓은 지 이틀째 되는 오후였다.
계곡을 바로 옆에 낀 동굴 입구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꽤 깊어 보였다.
넓이는 장정 네 사람이 나란히 서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간간이 만난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제법 많은 힘을 소모한 일행은 로빈의 지시 아래 하나둘 자리를 잡아 쉬기 시작했다.
“이곳이 바로 몬수터 계곡을 질러가는 지름길이자 가장 안전한 길이오.”
술렁――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동굴이 안으로 뻥 뚫렸단 얘기요?”
“그렇소.”
여기저기에서 중구난방으로 질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길이가 어느 정도 됩니까?”
“이 안엔 몬스터가 없는 것이 확실한 거유?”
“오늘 안에 크레이뇽의 무덤에 도착하는 거요?”
“이곳에 동굴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
로빈이 한 손을 들어 얼른 제지했다.
이어서 잠시 심호흡을 한 로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굴의 길이는 제법 깁니다. 쉬지 않고 걷는다면··· 하루가 조금 못 되는 거로 알고 있소. 당연히 우린 중간에 쉬기도 하고 야영을 해야 하니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거요.”
술렁술렁―――
하루 정도면 굉장한 길이다.
또다시 사람들이 술렁였지만 계속되는 로빈의 말에 이내 잠잠해졌다.
“크레이뇽이 살아있을 당시 무덤을 만든 일꾼과 설계사를 위해 그가 직접 이곳에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일종의 마법진을 설치했다고 하오. 말하자면 이곳은 그들이 지나다니던 길이라 할 수 있소.”
카이 일행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특히, 설계사의 후손인 카쿤은 눈에 띌 만큼 흔들렸다.
카쿤이 손을 번쩍 들어 질문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거요?”
당연히 궁금했던 사항이기에 사람들은 모두 로빈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로빈은 잠시 망설이다 체념한 듯 짧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당시, 무덤을 만드는 일에 동원된 일꾼의 책임자가 내 선조 되시오.”
술렁술렁―――
로빈이 말한 여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은 대게 설계사나 일꾼들이 할 일을 마치고 크레이뇽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거로 추측했다.
하지만 카쿤은 로빈의 말에 동조했다.
자신의 선조 또한 멀쩡히 살아나와 할아버지를 낳고 또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을 낳지 않았는가.
그 뒤로도 사람들의 질문은 계속됐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모두의 관심사는 역시 크레이뇽의 업적이 담긴 고서와 돈이 되는 마법 아이템, 그리고 보석과 마지막으로 지금껏 의문과 베일에 싸인 저주의 램프였다.
이 모든 것에 로빈은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덕분에 로빈이 이끌던 무리 전원은 예전보다 더한 사기로 충만해졌다.
.
.
어느 정도 피로를 푼 일행은 근처 계곡에서 충분한 식수를 길어와 또다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이때 로빈의 곁으로 카쿤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건의할 것이 있소.”
무의식적으로 카쿤의 말을 무시하려던 로빈은 문득, 마법사가 둘이나 끼어있는 파티란 것을 떠올리고 관심을 표했다.
“말해 보시오.”
“동굴 안에 설치된 크레이뇽의 마법진은 이미 이백 년도 훨씬 전에 설치된 마법진이오.”
“······?”
“그것이 영구 마법진인지, 혹은 정해진 수명이 다한 마법진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소.”
로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요점이 무엇이오?”
“먼저 정찰조를 짜서 앞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알아본 후에 움직이는 게 나을 듯싶소만.”
로빈이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그리되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잖소.”
“일행이 죽어 나가는 거 보다야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이 훨씬 낫잖소.”
“하아······.”
로빈이 미간을 꾹꾹 누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로빈을 중심으로 이루었던 몇몇이 다가왔다.
마법사 멜라니와 그의 동료 폴, 그리고 클레이 용병단원 전원이 관심을 표하며 다가왔다.
그러자 카쿤의 뒤로도 카이와 루이스, 존이 따라붙었다.
쪽수에서 다소 밀렸지만 마치 두 패로 나눈듯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다가온 사람들 가운데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한, 클레이 용병단의 알렉스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지금껏 우리는 몬스터가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정찰 없이 잘 처리해왔소. 헌데 지금에 와서 굳이 시간을 낭비하며 움직일 필요가 있겠소?”
로빈이 즉시 동의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이에 카쿤도 한마디 했다.
“지금까진 그래도 장소가 넓었지만, 동굴 안은 협소하기 그지없는 곳이오. 그런 좁은 공간에서 적절한 대응을 한다는 것은 불가하오.”
계속되는 카쿤의 부정적인 말에 로빈이 용병들과 카쿤이 속한 파티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다수결로 정하도록 합시다.”
“······.”
.
.
십 여분 후, 카쿤은 어두운 표정으로 일행의 곁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이 로빈과 같은 생각들이었던 것이다.
즉, 지금처럼 직접 부딪히며 빠르게 나아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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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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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처음 동굴 입구 또한 넓다고 생각했는데 삼십 여분을 걷다 보니 조금씩 더 넓어지더니 종국엔 성인 남자 열 명이 드러누워도 넉넉할 정도로 넓어졌다.
하지만 발아래 땅은 여전히 울퉁불퉁하고 때로는 심하게 경사진 곳도 있었다.
일행은 램프와 임시로 만든 횃불을 들고 조심스레 이동했다.
.
.
한창 이동 중에 존의 곁에 바짝 서서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루이스가 앞에서 걷고 있던 이설을 무심코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법사들은 대게 체력이 약하던데··· 서리 언니는 힘들지도 않나 봐······.”
그러면서 이설과 나란히 걷고 있던 아이스를 힐긋 쳐다보았다.
한데 신기하긴 아이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아이스 씨도 마법산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다들 잔뜩 긴장한 상태로 걷던 중이었다.
때문에 루이스가 중얼거린 목소리는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스가 대변하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하하··· 체력이 약하니 마법의 기운을 사용해 걷는 중입니다.”
“아하!”
사실,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체력을 지닌 게 맞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체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일일이 변명하면 질문이 끝도 없이 생기기에 아이스는 그렇게 둘러댔다.
그보다······.
아이스의 시선이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이설에게로 향했다.
그녀야말로 놀라웠다.
분명,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숨소리도 처음처럼 규칙적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여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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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설 본인 스스로도 놀라는 중이었다.
본래 산보다 강이나 계곡을 좋아하던 그녀였다.
당연히 등산과는 담을 쌓고 지냈고 걷는 것을 엄청 싫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질 체력······.’
한데 몇 시간째 강행군하는 지금, 당연히 힘들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걸으면 걸을수록 무한한 에너지가 온몸에 축적되는 기분이다.
‘흠, 이런 기분··· 괜찮네?’
아무래도 지니가 된 이후로 몸에도 이상 변화가 온 것 같다.
그리고··· 몸이 힘들지 않고 가벼우니 여유도 생기고 마음도 즐거워지는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이설의 시선이 흘깃 곁에서 걷고 있는 아이스를 바라보았다.
몰랐는데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에게 제법 유쾌한 성정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간혹, 불쑥불쑥 던지는 농담이 재미있었다.
덕분에 이설은 행군하는 내내 긴장도 사라지고 오히려 즐거웠다.
그러나 뒤쪽에서 바짝 따라오던 카이는 그렇지가 못했다.
그는 한마디 말없이 걷는 내내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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