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프의 정령 1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소리가 크게 들려오자 일행은 자연스럽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바닥이 갈라지고 있군!”
넓은 꽃밭의 이미지가 가득했던 바닥 한 부분이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놀랍게도 바닥은 굵은 균열이 일직선으로 쫘악 하고 생김과 동시에 좌우로 갈라졌다.
쩌저적-――
잠시 후, 소리가 가라앉고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일행은 조심스레 바닥이 갈라진 부근으로 다가갔다.
“계단이야.”
“휘유~ 여기가 가장 밑 바닥인 줄 알았는데 또 아래야?”
“설마 저 안에서부터 또 탐험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꽤 깊어 보이는데요?”
일행이 드러난 계단을 내려다보며 수군거리기만 하자 로빈이 일행을 제치고 먼저 계단을 밟으려 했다.
그러나 카이의 저지로 인해 로빈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런 그를 향해 바이탈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한마디 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인제 와서 앞장서겠다고? 앙?”
로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니 내가 앞장서려 했던 것뿐이오.”
곧바로 야유가 쏟아졌다.
“헹!”
“어련하시겠어.”
“어이구, 몸 둘 바를 모르겠네그려.”
절레절레······.
“······.”
자신을 향한 지극히 부정적인 카이 일행의 모습에 로빈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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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대략 지하 이 층 정도 되는 길이의 계단을 내려간 일행은 천천히 내부를 살펴보았다.
랜턴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소 좁은 실내는 등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았다.
천장에 입구에서 보았던 야명주가 빼곡히 박혀 있었던 것이다.
계단 아래에는 모두 네 개의 석문이 존재했다.
일행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굳게 닫혀있는 네 개의 석문중, 가장 커다란 문으로 다가갔다.
옆으로 당겨야 열리는 문임을 가까이 다가가 알아챈 카이가 무심코 카쿤에게 물었다.
“이번엔 열어도 되는 거요?”
그러자 카쿤이 다소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드득――
석문은 생각보다 가볍게 열렸다.
잠시 후, 활짝 열린 석문 안으로 일행의 시선이 집중됐다. 다른 석문에 비해 훨씬 컸던 만큼 안은 대단히 넓었다.
일행의 시선을 가장 먼저 끈 것은 내부를 꽉 채운 넓고 커다란 책장과 그 안을 빼곡히 채운 책들이었다.
놀랍게도 수많은 세월을 거쳤음에도 책장과 책에는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보존마법이 걸려있는 듯싶었다.
“놀랍군! 이걸 전부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황궁 서고와 비교해도 전혀 꿀릴 것이 없겠어.”
아담의 말 대로였다.
아니, 솔직히 일행은 아담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양으로 따진다면 비슷할지 모르나 가치만을 따진다면 황궁 서고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곳의 책들이 더 귀중할 게 틀림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책들 한 권 한 권이 대륙에선 찾아보기 힘든 고서와 억만금을 줘도 구할 수 없는 귀한 마법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럴 수가! 7서클 마법 서적이잖아!”
한 귀퉁이에서 조심스레 책 한 권을 빼든 멜라니가 책자 겉면 표지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아이스가 상기된 목소리로 멜라니의 말을 받았다.
“궁극의 마법, 8서클의 마법 서적도 있소.”
“세, 세상에!”
아이스의 말에 마법사인 멜라니는 물론, 솔직히 마법사가 아니기에 시큰둥했던 다른 일행까지 입을 떡 벌렸다.
아무 책이나 한 권 빼들고 있던 존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 책 한 권만 들고 나가도 앞으로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겠군.”
그러자 루이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을 받아쳤다.
“우리 둘만이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이세도 생각해야죠. 우웅~”
“······.”
빨개진 존을 뒤로하고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빼 들었던 책들을 다시 원래의 책꽂이에 꽂아 넣었다.
그리곤 너나 할 것 없이 존과 루이스만을 남겨놓은 채 다음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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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이야말로 황자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이 원하던 방이었다.
오오――
일행은 저마다 수많은 상자에 가득 담겨있는 금은보화에 온 정신을 팔았다.
상자는 정확히 열 상자가 질서 있게 놓여있었다.
그 속엔 온갖 보석과 패물들이 가득 들어있었으며 또한 벽면 구석엔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자루가 수십 개 있었는데 그 안엔 황금빛이 찬란한 금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일행은 이토록 많은 보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듯 저마다 탄성을 지으며 보물을 감상했다.
이설 또한 보물을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 없는 여인이었던지라 잠시 눈부신 보물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렇게 일행이 보물에 달려가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슬며시 자리를 뜨는 자가 몇 있었다.
온 관심이 보물이 아닌 저주의 램프에 가 있던 황자와 그를 수호하는 안토니, 그리고 수호기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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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석문을 열어보세요.”
걱정스레 자신을 부르는 안토니를 뒤로하고 아담이 수호 기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기사 하나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세 번째 석문을 열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다른 기사 하나가 접근해 안을 살펴보았다.
“이곳엔 온갖 병기들이 진열돼있사옵니다.”
기사의 말에 아담은 미련 없이 마지막 석문으로 향했다.
마지막 방인 만큼 이곳에 램프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아담의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것은 그를 모시는 안토니와 수호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담은 여전히 감탄 소리와 환호성이 들려오는 방을 흘깃 쳐다본 뒤, 천천히 마지막 석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석문을··· 열어라.”
지금껏 보이지 않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아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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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보물을 탐하고 있을 때였다.
보물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인간들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던 시저가 돌연 심상찮은 기색으로 이설의 곁으로 다가왔다.
“······시저?”
― 밖에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다.
“밖에 상황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 무덤 밖 말이다.
그제야 무덤 밖에 두고 온 이그니스 기사단을 떠올린 이설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물었다.
“정확히 말해봐.”
― 부하 녀석들의 말에 의하면 새로운 인간들이 나타났다는군. 그리고 인간 황자의 부하들은 모두 죽었다고 한다.
“······뭐?”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에 이설은 고개를 움직여 황자를 찾았다.
그러다 카이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그의 눈빛에서 그가 시저의 말을 모두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저, 넌 분명히 부하들과 따로 떨어져 있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믿을 수 없다는 카이의 질문에 시저가 콧방귀를 끼며 대답했다.
― 흥! 나와 내 부하들은 서로 떨어져 있어도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그런 것을 하찮은 너희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
시저의 마지막 말은 이설의 날카로운 시선에 의해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황자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녀의 말에 그제야 상황을 인식한 카이는 얼굴을 와락 구기며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황자가 어디 있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무리 램프를 그에게 양보했다고 하나, 이런 식으로 도둑처럼 몰래, 자신들만 쏙 빼놓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은 심히 불쾌했다.
보물이 있던 방을 빠져나오자마자 카이는 마침 마지막 문을 열고 그 안으로 한발 들어서려던 황자를 발견했다.
카이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큰소리로 외쳤다.
“전하!”
하지만 아담은 카이의 소리를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그대로 마지막 방 안으로 쓱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카이는 그대로 황자가 사라진 마지막 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카이의 외침 소리에 보물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던 일행의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다.
우르르······.
일행 모두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우리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램프를 차지하러 간 거야?”
“치사해!”
비록 램프에 대한 욕심은 버렸으나 벽화에 그려진 램프의 요정까지 본 마당이라 일행 대부분이 램프의 실체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일행은 잠시 보물을 뒤로하고 카이를 쫓아 마지막 방으로 또다시 우르르 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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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방 안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제단 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 쭉 깔린 푸른 융단 위를 걷고 있는 아담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토록 손에 넣기 위해, 바라 마라지 않던 램프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온 정신을 빼앗긴 듯싶었다.
실제로 저주의 램프는 제단 위 정 중앙에 붉은 비단 천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데 뒤늦게 도착한 다른 일행의 눈빛도 램프를 보는 순간, 몽롱하게 젖어 들었다.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탐심이 이는 이도 생길 정도였다.
그때, 아담에게 다가가려는 것을 수호 기사에게 저지당한 카이가 아담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전하! 무덤 밖에 있는 이그니스 기사단원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왠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카이는 극단적인 말을 확 내뱉었다.
한데 효과가 있었다.
제단에 거의 다다랐던 아담이 돌연 걸음을 멈추고 돌아 보았던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카이?”
“대체 무슨 말인가?”
안토니와 아담이 동시에 카이에게 물었다.
덕분에 온통 램프에 관심이 쏠렸던 일행들도 정신을 차리고 카이를 쳐다보았다.
카이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코앞에 램프를 놔둔 채, 되 돌아오는 아담을 향해 시저에게 들었던 바깥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담은 물론, 안토니와 같은 동료인 수호기사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일단의 무리들이라면 대체······.”
아담의 중얼거림에 다가온 시저가 퉁명한 어조로 말했다.
― 하나같이 몸속에 어두운 마나가 가득한 인간들과 늙은 마법사가 한 명, 그리고 꽤 많은······.
말하다 말고 말끝을 흐리는 시저의 모습에 일행은 마른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 놀랍군, 마지막에 나타난 무리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라니? 그리고 대략 몇 명이란 소린데?”
이설의 질문에 시저가 다소 창피한지 코를 벌렁거리며 말했다.
― 미안하지만 내 부하들은 다섯 이상만 넘어가면 숫자 감각이 무뎌진다. 어쨌든, 인간이 아닌 자들은 숲의 종족이라 불리는 하이엘프라는군.
“······!”
하이엘프란 소리에 일행 모두 술렁거렸다.
그러자 아담이 성큼 시저에게 다가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저, 말해주시오. 이그니스 기사단원들을 죽인 원수가 누구인지.”
“······.”
시저는 넌지시 이설을 바라보았다. 말해줘도 되느냐 라고 묻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시저가 아담을 향해 말했다.
― 그들을 해한 것은 인간들이다.
시저의 대답을 듣자마자 주먹을 불끈 쥔 안토니가 아담을 향해 다급히 말했다.
“전하, 어서 램프를 취하시고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셔야겠습니다.”
안토니의 말에 고개를 슬쩍 끄덕인 아담은 카이와 일행을 향해 다소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조급한 마음에 먼저 여기 문을 열었어요. 램프를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물론, 형식적인 질문이었지만 카이와 일행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살짝 아쉽긴 했지만 모두들 보물을 생각하며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란 것이 모두 같을 수 있겠는가.
처음과 달리 다소 편한 마음으로 램프가 놓여있는 제단 쪽으로 아담이 몸을 돌릴 찰나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행 틈 속에서 누군가가 비호처럼 튀어나와 아담을 제치고 램프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는데 누군가가 다급히 외쳤다.
“멜라니――!”
그랬다. 램프를 향해 몸을 던진 이는 다름 아닌, 멜라니였다.
- 작가의말
다들 주말 잼게 보내세요~ 드디어 이설의 정체가 밝혀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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