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되는 내전 4
“······저 여인이냐.”
뾰족한 음성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스텔라 황후였다.
그녀는 시녀, 앤이 가져온 정보에 한달음에 황자의 뉴마궁전으로 달려온 상태였다.
때마침 정원에 나와 있던 이설과 모건을 발견한 그녀는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조용히 그녀를 관찰했다.
푸른 로브를 걸친 그녀는 멀리서 봤을 땐 그저 다른 마법사와 다를 바 없었지만, 점점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가진 이설의 모습은 여인인 스텔라조차도 넋을 잃고 바라보게 할 정도였다.
같은 여자지만 가슴이 살짝 두근거릴 정도로 정말이지 매력적인 여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질투심이 일어났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분명 저 여자가 황자의 마법사가 틀림없겠구나.”
여인의 미모를 보니 황자가 그녀를 단순히 마법사로 고용한 것인지 심히 의심이 갔다.
여기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마법사든 아니든, 황자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인물임엔 틀림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저 옆에 소년은 누구냐.”
마법사가 직접 머리를 빗겨주는 것으로 보아 매우 특별한 관계처럼 보였다.
황후의 질문에 앤이 기억을 짜내는 듯 미간을 살짝 모으더니, 조심스레 대답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마법사가 꽤나 아끼는 아이인 모양이옵니다. 여기 궁전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스텔라의 표독스런 눈빛이 무섭게 자신에게 향하자 앤이 서둘러 대답했다.
“마법사의 아들인 것 같다고 했사옵니다.”
스텔라의 얼굴이 단번에 확 하고 밝아졌다.
“······확실한 것이냐?”
“소년을 대하는 태도가 보다시피 저렇듯 애틋한 것이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 생각하고 있었사옵니다.”
“재미있구나, 황자의 마법사가 매력적인 미모의 아이 엄마라니······.”
아침까지만 해도 황자에 대해 생각하며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던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이설과 모건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앤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모자지간이라기엔 너무 안 닮은 것 같긴 하지만 말이옵니다.’
* * *
“전하!”
오랜만에 본궁에서 밀린 서류를 살펴보던 아담은 다급히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기사의 모습에 고개를 들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이그니스 기사단의 한 사람인 것 같은데 새로운 얼굴인 걸 보니 얼마 전 새로 뽑은 단원인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냐?”
아담과 딱 사정거리 범위쯤에서 기사는 달려오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그쯤에서 황자의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몸에 익히기 위해 호위를 서고 있던 카이와 랄프, 바이탈이었다.
현재 세 사람의 복장은 짙은 남색으로 온몸을 도배하고 있었다.
이는 이설이 지니의 능력을 백배 사용해 직접 만들어 준 갑주로 대단히 단단한 강도를 지닌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시대의 패션 감각을 십분 발휘해 이들의 입장에선 디자인 또한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
비록, 능력을 사용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만든 작품을 바라보던 이설의 얼굴엔 흡족한 미소가 가득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마른 침을 삼키며 헐레벌떡 달려온 기사의 첫마디에 아담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신참내기는 신참내기인 모양이다.
연신 큰일 났다는 말과 함께 더 이상 대화에 진도가 나가지 않고 버벅거리는 기사로 인해 한창 짜증이 솟을 때쯤 또다시 문이 열리며 누군가 다가왔다.
안토니였다.
“전하!”
“베르티아 경!”
안토니 또한 기사와 같은 이유로 온 모양인데 매우 심각한 표정의 기사와는 달리, 그의 표정은 어딘가 조금 여유가 느껴졌다.
“드디어 그들이 그물에 걸렸습니다.”
“······!”
한순간 아담은 물론, 카이들 또한 안토니의 말을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허나 잠시 후, 덧붙인 안토니의 말에 모두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현재 반란군의 군사들 만여 명이 수도 그린피아 외곽부근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콰당――
벌떡 일어선 아담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사, 사령관은··· 그들을 통솔하는 자는 누군가요?”
“스팸 공작 각하의 예상대로 카리스토 공작이옵니다.”
비틀―-
“저, 전하!”
어릴 적 자신에게 늘 자애롭던 숙부, 라피스였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검을 들이밀며 달려오고 있다니, 정말이지 설마 했지만 아담은 결코 믿고 싶지 않았다.
“짐작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아담은 비틀거리던 몸을 추스르고 안토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우리 쪽 현재 지원 가능 군사는 몇 명인가요?”
“기사 삼천에 병사 이만이옵니다.”
이 또한 현재 상황을 예상하고 외부의 눈을 피해 병사를 성 안으로 미리 집결시켜둔 덕이었다.
“마법사까지 동원한다면 우리 쪽이 당연히 대승을 거두겠군요.”
아담의 말에 안토니가 잠시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아직 모르옵니다.”
“저들은 만 명이라 하지 않았나요?”
“현재 보고된 바로는 그렇사옵니다.”
“······뛰어난 마법사에 적보다 배는 많은 군사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아담의 말에 안토니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직 저들의 병력은 정확히 알려진 것이 아니옵니다. 게다가 기사와 병사의 비율도 정확히 보고되지 않았사옵니다. 무엇보다 지금도 저들의 병력이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내일이면 얼마나 불어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옵니다.”
안토니의 말은 거의 반 이상 맞았다.
라피스의 눈에 보이는 병력이 만 명일 뿐, 그에겐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어쌔신들과 오랜 세월 훈련 시킨 수많은 붉은 전사, 그리고 아직 그 베일이 드러나지 않은 화이트베어군단도 있었다.
안토니의 말에 아담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마법사와 군사들을 투입해 당장 저들을 처단토록 하죠.”
‘하······.’
안토니는 아담을 바라보며 피식 실소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황자 전하, 이번 전쟁을 보시며 많은 것을 배우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병법에 관해서도 좀 더 공부해 두십시오. 제국의 황제폐하라면 그 정돈 기본이옵니다.”
아담은 슬쩍 카이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 * *
“뭐라? 카리스토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황후, 스텔라는 이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듯 소식을 전해온 시녀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사실이옵니다. 지금 수도 그린피아 외곽에 반란군들··· 아니, 카리스토 공작님의 군사들이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저 훈련을 위해 수도로 들어서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이미 공작의 군사들에 의해 수도 외곽에 기거하는 팡세 자작 가가 함락되었다 하옵니다.”
팡세 자작 가는 얼마 전 할린 공작과 케이티 후작이 일 황자의 편에 서겠다 공표하자 눈치를 보다 바로 황자 쪽에 줄을 선 귀족 가문이었다.
시녀의 말을 들어보니 라피스는 이제 빼도 박도하지 못하게 반란군으로 기정사실로 된 듯싶었다.
스텔라는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사람, 조금만 더 참으면 반란군이란 오명 없이 손쉽게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을 텐데······.’
스텔라는 자신과 라피스를 돕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타국으로 향한 쌍둥이 오라비, 룩스를 떠올렸다.
조만간 뛰어다닌 결실을 맺을 때가 되어서인지 그녀의 마음은 더욱 착잡해졌다.
* * *
“와아~ 정말 많이도 몰려왔네.”
이설은 지상에서 수십여 미터가량 떨어진 상공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그런 그녀의 주위엔 수십 명의 마법사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상공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두 마탑의 마법사들로 현재 라피스가 이끄는 반란군의 주둔지를 초토화시키기 위해 그녀와 함께 이곳으로 파견된 자들이었다.
마법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플라이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고위급 마법사라 할지라도 장시간 시전하기엔 버거운 마법이었다.
“이설 님, 지시를 내려주세요.”
그녀는 다가온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쌍둥이 엘프 중 하나인 애스티마였다.
전사로 키워진 엘프들 사이에서 드물게 마법의 소질이 뛰어나 이번 일에 뽑혀 온 자였다.
애스티마를 향하던 이설의 시선이 다른 마법사들에게로 슬쩍 향했다.
이미 반수 이상이 힘에 겨운지 얼굴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가운데서 가장 힘겨워 보이는 마법사 몇몇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했다.
“애스티마님을 비롯해 방금 제가 지목한 마법사님들은 이곳으로 오고 있는 반란군의 군량미를 처리해주세요. 지상에서 애스티마님의 형제들이 도울 테니 어렵진 않을 거예요.”
“이설 님께선······.”
“저는 남은 마법사님들과 함께 저들이 주둔지로 사용하고 있는 팡세 자작 가를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거예요.”
황성으로 살아 도망쳐 온 팡세 자작이 들었으면 입에 거품을 머금을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만큼 팡세 자작 가의 저택을 빙자한 커다란 성은 꽤나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수만의 군사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웅대했다.
아마 저들도 그 점을 고려해 팡세 자작 가를 점령한 것이리라.
팡세 자작의 기름진 배를 떠 올린 이설은 전혀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마법사들을 이끌고 곧바로 자작 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
.
.
“파이어 볼!”
콰콰쾅-―
“아이스 스톰!”
후두두둑―――
콰콰콰콰쾅-―――
곧이어 성 아래는 아수라장이가 돼갔다.
갑자기 불똥이 튀고 폭탄이 터지듯 여기저기가 무너져 내려, 놀라 밖으로 뛰쳐나오니 이번엔 커다란 우박 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크아악!
으아악!
솔직히 이설 혼자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하늘을 가득 메운 마법사들은 황자의 힘을 위시한 말 그대로 과시용이었다.
게다가 마법사들은 그동안 마탑에만 갇혀 있던 것을 분풀이라도 하는 양, 신나게 상공을 누비며 마법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환한 표정들이었다.
마치 그동안 억눌렀던 무언가를 한꺼번에 표출하는 듯, 굉장히 신나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마력을 퍼붓다 마력이 떨어지면 이설이 알아서 마력을 채워주니 어찌 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자신들이 언제 이토록 마음껏 상공을 누비며 마나걱정 없이 마법을 마구 난사해본 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이설은 신나게 마법을 난사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슬쩍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저으며 간간이 공격에 가세했다.
물론, 성에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을 보이는 족족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
.
콰콰콰쾅-―
크아악!
탁!
요란한 굉음과 함께 느닷없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라피스는 마시던 차를 거칠게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때마침 누군가 황급히 들어왔다.
“각하!”
제국의 갈레노스 기사단 단장인 터너 레이어스 백작이었다.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모습이 꽤나 급하게 온 모양이다.
“레이어스 단장! 대체 이게 무슨 소리요?”
먼저 묻는 라피스의 말에 터너는 바깥 상황을 즉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연, 라피스와 살르만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은 당연지사.
“마법사가··· 그것도 수십 명이나 되는 마법사가 상공에서 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 작가의말
이번한주도 모두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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