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스프
A7V 하겐의 척탄병 야닉이 열심히 개인호를 파다가 투덜거렸다.
“이렇게 파봤자 후퇴하면 말짱 도루묵 아닙니까?”
제프 디트리히가 말했다.
“그러니 무조건 지켜야지!”
오토바이병 펠릭스가 물었다.
“오늘은 설마 뜨뜻한 고기 스프 먹을 수 있겠죠? 매일 차가운 통조림 먹는 것은 질렸습니다!”
“포격 당할 수도 있으니 취식 차량은 밤 10시는 되어야 올 걸세. 그리고 집중 포격 맞기 싫으면 절대 불은 피우면 안되네.”
그 때 누군가 외쳤다.
“시발!!비행선 떴다!!”
“뭐..뭐라고??!!”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풍선 같은 저 관측 기구는 독일군의 포병 위치, 전차의 위치를 자기측 포병대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프랑스 포병의 포격이 어긋나면 계속해서 좌표를 수정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관측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니 조금만 있으면 독일군들의 대가리 위를 정확히 겨냥한 중포탄 유산탄 독가스탄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일 분이라도 빨리 격추시켜야 하는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항공대 녀석들은 뭐 하는거야!!”
느긋하게 파던 독일 병사들은 모두 부랴부랴 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핏 전차 마우스의 베겔러가 울부짖었다.
“시발!!그냥 파리 남부만 먹고 끝내면 안되었습니까!!”
마르코가 외쳤다.
“닥치고 빨리 파!!!”
이제 병사들은 삽으로 파다가 오줌이 마려워도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빈 통조림 안에 싼 다음 개인호 밖으로 내던지면서 살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편 미하엘은 후고, 디터와 함께 프랑스군의 관측용 비행선을 파괴하기 위해서 덜덜 떨며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미하엘이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나타나면 놈들은 바로 관측 기구를 하강시킬텐데..만약 하강하는 관측 기구를 향해 달려들다간 역으로 우리가 기관총 세레를 먹거나 대공포에 당할 수도..’
관측용 비행기구들은 조명탄 한 방이면 그 거대한 풍선이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불이 붙었기 때문에 적 전투기만 나타나면 비행기구들은 재빨리 고도를 낮추고 비행기구의 승무원들은 낙하산을 타고 탈출해야 했다. 미하엘은 벌벌 떨기 시작했다.
‘젠장..난 저공 비행은 잘 못하는데!’
출격 전, 미하엘은 적군이 관측용 비행기구를 하강시키면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했지만 디터만은 저공 비행을 해서라도 꼭 관측용 비행기구를 격추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우리가 돌아가면 놈들은 다시 비행기구를 상승시킬걸세! 그러니 기사도 정신에 의해 꼭 격추 시켜야 하네!”
미하엘은 자신의 옆에서 비행하는 디터와 후고의 전투기를 흘끗거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디터랑 후고는 실력이 좋으니 둘 중 하나는 격추시키겠지?’
때마침 하늘에는 구름이 많았기에 미하엘, 후고, 디터는 구름 속에서 숨어 있다가 프랑스군의 관측용 비행기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비행하기로 서로에게 신호를 보냈다.
위이이잉
갑자기 독일군 전투기 편대가 나타나자 프랑스 군인들은 낙하산을 타고 관측용 비행기구에서 뛰쳐내렸다. 그리고 지상에서는 프랑스 병사들이 서둘러 비행기구를 내리기 시작했다. 미하엘이 속으로 생각했다.
‘시발!! 늦었다!! 그냥 도망가야!!’
그런데 디터와 후고는 관측용 비행기구를 격추시키기 위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미하엘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편대를 따라서 고도를 낮췄다.
“우와와와!!!”
그 때 지상에서 독일군 전투기 편대를 향해 프랑스 포병들이 대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펑
프랑스 기관총 사수들도 저공비행하는 독일군 전투기들을 향해서 기관총을 긁어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슈 놈들!! 네 놈들을 구멍 뚫린 치즈로 만들어주겠어!!”
디터와 후고는 공중에서 시커멓게 피어나오는 검은 포연을 피해서 제각기 양 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선회해서 회피했고 미하엘만이 똥오줌을 지리며 하강하는 비행기구 쪽으로 날라갔다.
“시발 새끼들아!!!!”
미하엘은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비행기구를 향해서 조명총을 발사했다.
퍼엉!
조명총에서 날라간 작은 불빛이 커다란 비행기구에 적중하자 순식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팽팽했던 열기구가 쭈그러들더니 그 불길은 점점 번져나갔다. 파란색 원 가운데 붉은 점이 찍혀 있는 그 열기구는 그렇게 쪼글쪼글해지더나 시꺼먼 연기를 엄청나게 내뿜으며 격추되었다. 미하엘은 뒤를 돌아보고는 열기구의 격추를 확인했다. 어느덧 디터와 후고가 자신의 옆에 와서 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미하엘은 동료들과 함께 붉은 남작의 비행대대가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미하엘은 전투기에서 내리면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때 붉은 남작이 미하엘, 디터, 후고에게 다가와서 격려했다.
“제군들이 자랑스럽네!”
미하엘은 붉은 남작 뒤에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이전에 속했던 비행대대에서 미하엘과 같이 편대를 이루었던 노르만, 게르하르트, 요하임이었다.
미하엘이 속으로 생각했다.
‘요하임 녀석은 실력이 좋으니 여기 스카우트된건가? 근데 노르만, 게르하르트 저 녀석들은 왜?’
노르만과 게르하르트는 형편없는 실력 때문에 예전에 같이 편대를 이루었을 때 미하엘에게 골칫거리 그 자체였다. 붉은 남작이 말했다.
“이 친구들은 내가 새로 스카우트한 조종사들일세! 미하엘 자네의 편대에 있었다고 들었네!”
“넵! 저와 같이 비행했던 매우 뛰어난 조종사들입니다!”
미하엘은 속으로 낄낄거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저 녀석들 들어갈 편대장 새끼는 좆됐네!’
붉은 남작이 말을 이었다.
“이미 호흡을 맞춰보았으니 미하엘 자네가 여기서도 이 훌륭한 조종사들을 이끌어주게나!”
“네..넵??!”
노르만이 씩 웃으며 외쳤다.
“편대장님!다시 같이 비행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미하엘이 속으로 절규했다.
‘나인!!!!!’
한편 독일 육군 항공대가 비행기구를 격추시키기는 했지만 프랑스 포병대는 꽤 정확하게 독일군 위로 포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전차와 차량들을 모두 이동시켜 둔 것이 다행이었다.
쿠과광!! 콰과광!! 콰광!!
독일 병사들은 제각기 개인호에서 귀를 막고 아가리를 벌린채로 이 포격을 견뎌야했다. 1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포탄이 떨어지며 천둥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모든 땅이 진동하고 시커멓게 튀어올랐다. 어떤 병사들은 개인호 안에서 희번득 눈을 까뒤집으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으아악···으아악..”
그래도 개인호가 아니라 여럿이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호에 있는 병사들의 상태는 조금 괜찮았다. 프란츠가 외쳤다.
“여기까지 내려와서 이게 뭔 고생입니까!!”
바그너가 외쳤다.
“조금 있으면 휴전할거라는 소문도 있네!!”
쿠과광!!콰광!! 콰과광!!
한스 또한 병사들과 같이 호에 들어가서 이 포격을 견디고 있었다. 얼굴이 시꺼멓게 되고 입을 커다랗게 벌린 채로 귀를 막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은 뭉크의 그림에나 나올법한 광경이었다. 한스는 명색이 대대장이라 겁에 질려도 손톱을 물어뜯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귀만 막고 있었다. 속이 웅웅거렸고 토할 것 같았다.
쿠구궁!!콰광!!쿠궁!!
‘젠장!! 이럴줄 알았으면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는 건데!!’
차라리 포격으로 인해서 통신선이 두절된 것이 다행이었다. 통신선이 두절되지 않았다면 사령부에서는 한스의 전차 부대에게 빠른 속도로 파리 남부를 점령하라고 명령이 내려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파리 남부쪽에 있는 프랑스 병력들은 최정예였고 르노 전차들도 많이 남아 있었다. 르노 전차는 가장 작지만 시가지에서는 그 어떤 전차보다도 유용했다. 파리에서는 지금 지옥과도 같은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린 쉬지도 못하고 맨날 싸웠는데 이번에만 보병들이 알아서 하면 안되나?’
프란츠가 울부짖었다.
“저 새끼들이 우리를 증오하는 것을 보십시오!! 휴전이 될 리가 있겠습니까!!”
“원래 때릴 때는 몰라도 두들겨 맞을 때는 아픈 법이지!!”
“오늘 밥 먹긴 글렀군..”
“여기 통조림이라도 좀 먹게!!”
지금 병사들이 숨어 있는 호 안에는 먼지가 그득해서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병사들은 통조림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포탄이 근처에서 터질 때마다 통조림 안으로 후드득 모래와 먼지가 쏟아졌다.
바그너가 말했다.
“다 먹지 말고 남겨놓게!! 계속 배급 못 받을 수도 있네!!”
병사들은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남은 통조림에 겉옷을 덮어 두었다.
쿠구궁!!! 콰광!!!
어느덧 밤이 되었음에도 포격은 끊이질 않았다. 한스가 손전등을 켜고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밤 9시였다.
“오늘 취사차 오는건 글렀네.”
밥을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프란츠가 울부짖었다.
“으아악!!아악!!”
“닥쳐!! 통조림도 못 먹던 때를 생각해!!”
그러다 갑자기 포격이 그쳤다.
“그..그쳤어?”
포격이 그쳤다고 끝이 아니었다. 아까 전에 설치해둔 철조망이 전부 망가졌기 때문에 병사들은 다시 철조망도 설치하고 호를 파야 했다.
삼십분 뒤, 누군가 외쳤다.
“밥이다!! 밥이야!!”
전차병들은 미친듯이 밥을 받기 위해 달려나갔다.
“비켜!!”
“새치기 하지마!!”
그런데 갑자기 천둥소리와도 같은 엄청난 포격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은 반합도 떨어트리고 미친듯이 호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취사병들도 병사들을 따라 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콰광!!쿠구궁!!
130명 분의 식사가 담겨 있는 취사차량이 포탄을 맞고 박살이 났다. 병사들이 먹을 수 있었던 뜨거운 고기 스프가 바닥에 놔뒹굴었다. 두 시간 뒤, 다시 포격이 끝나고 병사들은 박살난 취사 차량을 보고는 프랑스군이 있는 쪽을 향해 울부짖었다.
“시발 놈들아!! 이건 너무 한 것 아니냐!!!”
한스도 이 처참한 광경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이 나쁜 놈들!!”
하루종일 죽을 고생을 하며 설치해 둔 철조망들도 전부 박살이 나 있었다. 바이스 중위가 외쳤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그너도 말했다.
“맞습니다!! 빨리 파리를 완전 점령해야 합니다!! 여기만 있다간 결국엔 뚫립니다!!”
한스도 박살난 취사차량을 보며 이를 갈았다. 한스는 소령이 되었음에도 아직까지도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는 것은 불편했지만 취사차량이 망가진 것만은 참을 수 없어서 속에서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 올랐다.
“조만간 파리 남부를 점령하고 따뜻한 고기 스프를 먹을 수 있을 것 이다!!”
“와아!!!”
바이스 중위가 기대에 찬 눈으로 외쳤다.
“호..혹시 어떤 방법으로 파리 남부를!”
바이스 중위의 말에 한스는 속이 뜨끔했다. 사실 딱히 작전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이다.
“사...사령부랑 통화해보고 말해주겠네!”
“넵!!”
한스가 대대 지휘소에 도착해보니 비쩍 마르고 앞니가 빠져있고 얼굴은 시커멓게 먼지 투성이가 된 통신병이 외쳤다.
“통신선을 재가설했는데 다시 두절되었습니다!”
‘이런 젠장!!’
그 때 오토바이를 탄 전령이 한스에게 전갈을 보내왔다. 첩보에 따르면 파리 남부에는 르노 전차로 이루어진 전차 부대가 있고 그 수는 최소 30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한스는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삼십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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