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아르노와 시릴 모두 한스의 얼굴에 소총을 겨누었다. 아르노가 외쳤다.
“사..사살할까요?”
한스 부대의 전차병들은 지금쯤 도하한 독일 병력들의 연료 보급을 받고 신나게 파리 시가지를 쏘다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기동 불가가 되었던 티거도 용케 궤도를 수리 받고 헤이든, 벤, 루이스, 프란츠는 티거에 탑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스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자신을 향한 두 개의 총구를 바라보았다. 방아쇠만 당기면 그 안에서 총알이 뱅글뱅글 회전하면서 튀쳐나와 한스의 이마뼈를 뚫고 순식간에 커다란 구멍을 낼 것이 분명했다.
시릴이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키가 작네요.”
베른 중령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사살하지 말게.”
베른 중령은 한스의 철모를 벗기고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한 웅큼 당겼다. 한스는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내..내가 뭘 했다고!!’
생전 한 번 본적도 없는 자가 자신을 이토록 증오하고 있었다. 한스는 공포감에 질린 눈으로 베른 중령의 오른손에 있는 칼을 바라보았다.
베른 중령이 시뻘개진 얼굴로 이를 갈며 프랑스어로 중얼거렸다.
“남의 수도를 짓밟아 놓을 때는 꽤나 즐거웠겠지?”
베른 중령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한스의 얼굴에 피를 토하듯이 소리쳤다.
”여긴 우리 땅이야!!!”
한스는 대충 불어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 베른 중령이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무..무슨 소리지?”
“막상 죽을 생각을 하니 네 놈도 두렵나?”
베른이 왼손으로 한스의 머리카락을 더 세게 쥐어 당기고는 칼을 이마에 갖다대고 말했다.
“네 놈 머리 가죽을 벗겨주지!!!”
타앙!
골목에 루거 권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어?”
베른 중령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한스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고 베른 중령은 그 위로 쓰러졌다. 아르노가 비명을 지르며 한스를 조준했다.
“우..우와왁!!!”
한스는 베른 중령의 멱살을 잡고 일어났다. 덩치가 큰 베른 중령은 좋은 엄폐물이 되었다. 아르노와 시릴이 비명을 지르며 소총을 쏘았다.
따앙!! 땅!
총알은 베른 중령의 등을 뚫었고 한스는 시릴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탕! 탕!
시릴은 총을 맞고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아르노가 소총으로 한스를 겨누었다.
“어···어···”
뒤쪽에서는 플로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쪽이다!! 이 쪽에 놈들이 있다!!”
독일군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났다. 아르노는 벌벌 떨며 소총을 땅에 떨어트리고 양 손을 들었다.
“쏘..쏘지마!!!”
한스는 베른 중령의 멱살을 손에서 놓고는 아르노에게 권총을 겨눈 채로 천천히 걸어갔다. 한스의 귀를 감고 있는 붕대는 피로 물들어있었고 여기저기 파편을 맞아서 긁힌 몰골은 사람이 아니라 유령에 가까웠다. 아르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죽는구나..’
그 때 골목 뒤에서 슈타이너 분대가 우르르 몰려왔다.
“저기다!!”
슈타이너가 아르노를 발로 걷어차서 엎어뜨리고 무릎으로 눌렀다.
“이 망할 놈이..”
한스는 아르노를 겨누고 있던 권총을 내려놓고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플로리안이 외쳤다.
“대대장님!! 괜찮으십니까!!”
한스가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르노 전차 중대는 파리 시가지 내에서 잔당을 소탕하고 중전차들은 연료가 보급되고 궤도가 수리되는 즉시 남쪽으로 향해서 프랑스군의 역습을 막아야하네. 다시 출발하지.”
그 때 슈타이너가 한스를 보고 외쳤다.
“한스, 아니 소령님! 제 분대가 엄호해드리겠습니다!”
한스가 자전거를 일으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한스는 다리가 휘청이고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쓰러졌다.
“소령님!!”
한편 슈타이너에게 얻어맞고 엎드려있던 아르노는 한스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저 악마가 왜 나를 살려둔거지?’
1938년, 아르노는 자신의 17살짜리 아들을 보며 자신의 아내에게 그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때 이후 내 인생은 거저 주어진거나 다름없어.”
아르노의 아내가 물었다.
“그 이야기 수십 번째야. 그런데, 그 때 강철 호랑이인가 그 사람 어떻게 되었다고 했지?”
다시 1918년 4월, 들것을 든 두 담가병이 한스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 때 한스의 눈에는 자신의 전차병들이 보였다. 이름은 모르지만 2중대에 있던 녀석들이었다. 그들은 한 민간인 여자의 팔을 르노 FT 전차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스가 중얼거렸다.
“저..마..막아야 해..”
담가병이 외쳤다.
“소령님 조금 있으면 진통제를 놓아드리겠습니다!!”
한스의 동공이 작아졌다. 차마 더 이상 이 광경을 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아무도 말리지 않는 거야?’
한스가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비명 소리는 한스의 귀에도 들렸다. 한스는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아아악!!!”
담가병이 외쳤다.
“빨리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벌써부터 파리 북부에는 전선기자들도 보였다. 전선기자들은 신문에 올리기 위한 사진들을 촬영하기 위해 슐츠의 병사들에게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저 높은 건물에 병사들이 철십자 깃발을 휘날리는 사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에펠탑 근처로 가서 북부에서 도하한 병사들과 남부에 있던 병사들이 조우하는 모습도 찍고 싶습니다!”
전선기자들의 부탁에 슐츠 대위가 모리츠 분대원들 에베렛, 브랜틀리에게 말했다.
“이 철십자기를 저 건물 꼭대기에 꽂고 사진에 잘 나오도록 양 쪽에서 들고 있게!”
전선기자가 외쳤다.
“바람에 휘날리는 것 처럼 철십자기를 잘 펼쳐 주셔야 합니다!!”
에베렛과 브랜틀리는 같이 철십자기를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근데 어디서 누군가가 외쳤다.
“밥이다!!!”
“호밀빵이야!!!”
“톱밥 없는 빵이야!!”
그 말에 슐츠의 중대원들은 우르르 그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슐츠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외쳤다.
“기다려!! 가지마라!!!명령이다!!”
에베렛과 브랜틀리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철십자 깃발을 떨어트리고 그 쪽으로 달려갔다. 독일 병사들이 우루루 군화발로 철십자 깃발을 짓밟았고 크라우제는 실수로 이 광경을 사진으로 찍었다.
퍼엉!!
‘어···어???이런건 신문에 못 싣는데?’
슐츠는 멋쩍은 표정을 짓다가 철십자기를 자기가 직접 손으로 들었다.
“자 마음껏 촬영하십시오!”
한편 프랑스군은 파리를 되찾기 위해 파리 남쪽에 있는 독일군을 향해 포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빌헬름 크렙스의 폭격기는 엉또니에 있는 프랑스 포병대를 향해서 폭격을 하라는 임무를 받고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빌헬름은 파리 상공을 비행하며 목을 내빼고 난장판이 된 파리를 바라보았다.
‘딱 한 개만 떨굴까..’
빌헬름은 손이 근질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솔직히 포병대에 폭탄을 떨어트리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었고 예전부터 민간인들에게 폭탄을 쏟아붓고 싶었다. 빌헬름은 파리의 모든 폭탄을 떨어트리고 민가가 모여있는 곳에 자신의 폭격기를 꼴아박고 시원하게 불타오르는 상상을 하였다. 시체가 녹아내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건물 시체에 깔려서 발버둥치는 것을 생각하며 빌헬름은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빌헬름은 그냥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재밌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시는 이걸 못 타겠지..’
빌헬름은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접어두고 엉또니로 비행했다. 그리고 엉또니에서 빌헬름을 호위하는 전투기들은 프랑스의 전투기 편대와 치열한 공중전을 펼쳤고 빌헬름은 신나게 엉또니에 폭탄을 떨어트렸다. 빌헬름은 목을 길게 빼고 지상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조금 뜨거울 걸세!!”
한편 파리 곳곳에서는 여전히 프랑스 잔존 병력과의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부전선 출신 정예병 브랜틀리가 오스카 바르크만과 함께 건물에 기대어 잠시 쉬고 있는데, 젊은 프랑스 여자 둘이 손짓을 했다.
“거기 잘생긴 독일인! 이 쪽으로 와요!!”
브랜틀리는 여자를 만난 것이 오래되었기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내가 안아주지!!”
그 때 오스카 바르크만이 먼저 앞서서 가더니 개머리판으로 두 여자의 허리를 내려쳤다.
“꺄악!!”
브랜틀리가 당황해서 멈칫했다. 하지만 바르크만은 태연한 표정으로 한 여자의 치마를 걷어보았다. 그 여자의 다리에는 루거 권총이 묶여 있었다. 브랜틀리가 이것을 보고는 이를 갈았다.
“이 시발년들이..”
바르크만이 브랜틀리에게 말했다.
“둘다 소대장님한테 끌고 가게.”
그렇게 바르크만은 두 프랑스 여자를 총으로 위협하며 베르너 중대의 장교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로 데리고 갔다.
한편 한스는 대피소에서 치료를 받으며 누워 있었다. 플로리안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한스에게 현재 전차 부대의 상황을 보고했다.
“현재 티거가 궤도 교체 작업 중에 있습니다! 1중대에 기동 가능한 전차는 마크 전차 3대, A7V는 1대, 생샤몽 2대입니다!”
“2중대 상황도 알아보고 와서 보고하게. 지금 기동 가능한 오토바..아니 장갑차가 있으면 이 쪽으로 가져 오게.”
“넵! 알겠습니다!”.
‘장갑차 찾으려면 최소한 3시간은 걸리겠지..그 때까지만 쉬어야겠다..’
한스가 10분 정도 휴식을 취한 그 때, 크뤼거 연대장이 한스를 보러 대피소에 와서 말했다.
“이보게 파이퍼 소령! 심한 부상을 당했나?”
“괘..괜찮습니다!”
크뤼거 연대장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지금 전투가 한창인데 이렇게 대피소에서 쉬고 있길래 총이라도 맞은 줄 알았군. 헛헛”
한스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서 각 잡힌 자세로 대답했다.
“지..지금 전령이 장갑차를 가지러 온다고 해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악!”
그 때 한스의 눈앞에는 뷔싱 장갑차가 나타났다.
‘아..아니 이렇게 빨리?’
뷔싱 장갑차의 전차병이 밖으로 나와서 경례를 하고 외쳤다.
“대대장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자전거를 탄 플로리안은, 자신이 장갑차를 빨리 발견해서 이 쪽으로 데려온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씨익 웃고 있었다. 의무병이 옆에서 말했다.
“출혈이 심해서 한 시간 정도는 더 휴식하시는 것이..”
크뤼거 연대장이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헛헛헛 아주 유능한 병사들이군!”
한스는 경례를 하고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장갑차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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