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헤롤트와 베르너의 거래
빌리 헤롤트가 태연하게 말했다.
"제 고향 친구 라우스가 기숙사장으로 있었던 기수입니다."
빌리 헤롤트는 장교들이 맨날 군사 학교 시절 있었던 일을 자랑하듯이 떠들어대던 것을 기억하고는 대충 둘러댔다.
"군사 학교 시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베르너가 되물었다.
"라우스! 내 아들 녀석의 친구입니다! 라우스가 기숙사장으로 있었던 기수면 78기 맞습니까?"
'네 놈이 장교가 맞다면 이 질문에 걸려들지 않겠지!'
빌리 헤롤트가 걸음을 멈추고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베르너를 쳐다보았다.
"일단 중요한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지도에는 인근 마을들과 파르티잔이 점령한 마을, 소련군에게 협조하는 마을, 파르티잔 근거지에 대한 정보가 전부 들어 있었다. 베르너의 수염이 꿈틀거렸다.
'이..이건?'
"이것이 확실한 정보입니까?"
"헤롤트 특임대의 임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헤롤트는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지만 속으로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네 놈도 충분히 얻어가는 셈이지?'
베르너는 그 지도를 들여다보고는 재빨리 전화기로 달려가 이 정보를 보고하고 상부에 공격을 허가해달라는 요청을 내렸다. 그리고 베르너의 대대는 상부에 공격을 허가 받았고 그 날 파르티잔 근거지를 모조리 쓸어버렸다. 베르너는 이 상황을 매우 흡족해했다.
'좋았어!! 훈장은 확정이다!!!'
여기저기 파르티잔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파르티잔들의 총기 또한 얻어낼 수 있었다. 빌리 헤롤트와 특임대원들은 아무 말 없이 이 광경을 지켜 보았다. 여자 파르티잔인 피크가 미친듯이 저항하고 있었다.
"꺼져!! 저리 가!!!"
이미 잡힌 남자 파르티잔들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피크는 혹시나 무슨 일을 당할까봐 일부러 더 난폭하게 반응했다. 베르너가 말했다.
"최근 전선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던데 바로 이 파르티잔들이 벌인 일이었군...헤롤트 대위, 이 사실을 총리에게 꼭 보고해주십시오!"
"물론 이는 모두 보고할 것 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에 친소련파 공산주의자들은 민간인 학살을 우리 군에게 덮어씌우는데 당치도 않은 소리지! 저 여자는 심문해야 하니 이따가 내 대대 지휘소로 데려오게."
베르너는 권총을 들고는 파르티잔 이고르에게 걸어갔다.
"네 열 손가락이 모두 성할때 아는 정보를 모두 털어놓는게 좋을거다."
이고르가 베르너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패배했지만 항복하지는 않는다!"
베르너는 이고르의 이마에 총을 겨누었다. 그 때 옆에 있던 피크가 자신의 친구인 이고르를 바라보았다.
"이고르!"
베르너는 이 광경을 보며 씨익 웃었다.
"둘이 연인이라도 되나?"
피크는 이고르와 친구 사이였던 것 이다. 베르너는 자신의 대대 지휘소로 피크와 이고르를 데려가서 추악한 짓을 했다. 그리고는 이고르를 대대 지휘소 밖으로 끌고 나가게 한 다음 권총을 이고르의 머리에 발사했다.
타앙!
뇌의 골수, 두개골, 피가 뒤로 뿌려지며 이고르는 시체가 되었다. 빌리 헤롤트는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에서는 땀이 줄줄 나고 있었다. 물론 빌리 헤롤트는 이고르라는 이 파르티잔을 동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베르너라는 정신 나간 새끼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까봐 걱정이었다. 베르너는 빌리 헤롤트와 함께 대대 지휘소로 다시 들어가서는 피크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한 번 맛보시겠습니까?"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빌리 헤롤트 대위, 수첩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상부에 이번 전투를 보고서로 올려야 하니 절차 상 확인 작업이 필요합니니다!"
빌리 헤롤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수첩은 보안을 위해서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아! 그걸 잊었군! 하긴 수첩을 소지한 상태로 소련군이나 파르티잔을 상대로 특수 임무를 벌이다가 포로로 잡히면 정보가 다 넘어가니 당연하지! 하하하!! 아하하하!! 내가 특수 임무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 실수를 했소!"
빌리 헤롤트도 억지로 웃으며 베르너의 장단을 맞춰 주었다.
"아하하!!"
빌리 헤롤트는 손에서 줄줄 흐르는 식은 땀을 슬쩍 군복에 닦았다.
베르너는 자신의 책상에 앉고는 권총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언제라도 바로 권총을 발사할 수 있을 각도였다.
"빌리 헤롤트 대위! 우리 사이에 신뢰가 생긴다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소."
결국 빌리 헤롤트는 베르너 앞에서 피크라는 파르티잔 여자에게 추악한 짓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싫어!! 꺼져!!! 그만해!!!"
거사가 끝나고, 피크는 바닥에 쓰러졌다. 베르너는 씨익 웃으며 빌리 헤롤트에게 담배를 권했다.
"소련군과 파르티잔에게 협조하는 민간인으로부터 정보를 구하는 임무는 매우 위험할 것 같소."
빌리 헤롤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슬쩍 닦아내며 말했다.
"위험하지만 독일 제국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소."
빌리 헤롤트는 조만간 기회를 본 다음 베르너의 대대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완전히 정신나간 새끼...빨리 탈출해야 한다!! 그 얼간이 녀석들(특임대)은 냅두고 혼자만 튀는게 낫겠다!!'
빌리 헤롤트는 자신의 특임대원들이 점점 골치아파지기 시작했다. 자신도 통제가 힘든 녀석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새끼들이 마을에서 너무 문제를 일으켰던 것 이다. 이렇게 설치다가 소련군이나 파르티잔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특임대에는 빌리 헤롤트를 잘 따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 녀석들한테도 거짓말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거짓말은 산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저 쪽에 오토바이가 한 대...'
베르너가 파르티잔에게 노획한 보드카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내가 헤롤트 대위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소만..."
그렇게 베르너는 빌리 헤롤트에게 한 잡낭을 주었다. 그 안에는 독일 대위의 군사 수첩이 있었다. 헤롤트는 식은 땀을 흘리며 이 군사 수첩을 보았다. 앞으로 이 수첩을 쓰면 될 것 이었다. 하지만 저 베르너라는 새끼는 무슨 목적으로 이 수첩을 주는 것 인가?
베르너가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작전 수행에 있어서는 가짜 수첩이 있는게 좋지 않겠소? 아, 이걸 잊을 뻔 했군."
베르너는 빌리 헤롤트에게 소련군의 군복과 무기, 소련군 장교 포로에게서 노획한 수첩까지 주었다. 헤롤트 특임대원들도 입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소련군의 군복이 있었다. 헤롤트는 전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는 특수 임무 수행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베르너가 헤롤트에게 말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소."
그렇게 헤롤트 특임대는 소련 군복, 무기, 그 외 여러 가지 물품을 받고는 군용 트럭을 타고는 떠났다. 클라우스 켈러는 아니꼬운 눈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왜 루프트바페 참새 새끼한테 저렇게 많은 물품을 주는 거야!!!'
베르너는 담배를 씹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새끼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 한스 파이퍼 그 새끼한테 치명타가 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빌리 헤롤트가 장교 수첩까지 얻어낸 이 때, 오토 파이퍼는 아직도 페비틴 부작용 때문에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전차 부대의 연료가 떨어져서 보급을 기다리는 와중에 오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중대장 몰래 수류탄과 MP40만 들고는 소련군과 한창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구역으로 들어갔다.
쿠궁!! 쿠과광!!!
포격은 계속해서 공기를 진동시켰고 페비틴의 효능은 오토의 혈관을 확장시켰다. 심장이 펌프질을 하며 피를 뇌까지 솟구치게 만들었다.
쿵! 쿠웅! 쿵! 쿠웅!!
오토는 빨리 피를 보고 싶은 마음에 이 회색빛 도시의 저격수에 대한 두려움은 안중에도 없어졌다. 지금 보고 싶은 것은 그저 소련군의 피였다. 오토는 징이 안 박힌 군화로 갈아신고는 폐허가 된 도시를 은밀하게 달렸다. 날카롭게 공기를 울리며 지나가는 소총 소리, 기관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오토는 직감적으로 적군의 위치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트드득 트드드드드득
연사력이 어마어마한 소련군의 PPSh-40 따발총 소리였다. 오토는 그 따발총 소리가 들린 골목으로 은밀하게 향했다. 그 소련군은 반대 방향에서 오는 독일군의 보병 분대에 주목하고 있었다. 오토는 MP40을 들고는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골목에는 소련군의 발자국이 있었다. 발자국으로 보건데 한 명, 혹은 최대 두 명이었다.
트드드드드드득
골목 안에서 따발총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장전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오토는 골목으로 몸을 돌리고는 MP40을 긁었다.
트드등 트드등
"억!"
그 소련 병사는 총을 맞고 쓰러졌다. 오토는 재빨리 튀어나와서 소련 병사 위에 올라타고는 목을 졸랐다.
"크아아 크아..끄아..."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소련 병사는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오토는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1년치 분비되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이내 소련 병사는 온 몸에 힘이 빠지더니 축 처졌다. 오토는 그렇게 소련군의 PPSh-40과 탄창을 노획하고는 골목길을 빠르게 뛰어갔다.
아직도 페비틴의 약효는 오토의 뇌를 완전히 조종하고 있었다. 시가지 건물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소총 소리는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오토는 소련군의 군화 발자국을 발견했다. 군사 학교 시절에 배운 내용에 의하면 발자국이 이 정도 간격을 두고 있으면 대충 대여섯명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토라면 평상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을 저지르게 된다. 오토는 하늘을 향해 PPSh-40을 긁었다.
트드드득
탄피가 후드득 떨어졌고 오토가 러시아어로 외쳤다.
"모두 손들고 나온다!!!"
오토는 그 외에 다른 한 마디 말도 덧붙이지 않고 하늘로 PPSh-40을 겨눈 채로 기다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건물 안에서 양 손을 들고 있는 소련 병사 다섯 명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웃긴게 이 새끼들은 홀스터에 권총이랑 수류탄도 있었다.
오토가 아무리 페비틴을 먹고 뇌에 맛이 갔지만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만약 발자국이 저렇게 찍혀있다면 이미 오토의 위치는 엄폐한 소련 병사들에 의해 발각되었을 것 이다. 하지만 놈들은 아직 총을 쏘지 않았다. 겁에 질렸거나 아니면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 이다. 후자라면 어찌되었건 죽은 목숨이었기에 오토는 밑지지 않는 도박을 한 것 이었다.
어쩌면 포식자가 사냥감이 겁에 질려서 팬티에 지린 똥오줌 냄새를 맡은 것 일 수도 있었다. 수 많은 전투를 통해 오토는 적이 베테랑인지 겁에 질린 상태인지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오토는 뒤로 소련군 다섯 명을 줄줄이 포로로 잡고는 근처에 있는 보병 소대에게 인계하고는 중대 지휘소로 돌아왔다.
'이제 연료 보급되었으려나?'
중대 지휘소로 돌아오고 오토가 물었다.
"연료 보급은 어떻게 되었 악!!!"
슐레프 중대장이 오토의 귀를 잡아당겼다.
"페비틴 있는거 다 꺼내놓게."
오토가 꾸물거리자 슐레프 중대장이 호통쳤다.
"당장 주머니 뒤집게!!"
오토는 결국 자신의 소대원들 몫의 페비틴까지 모조리 슐레프 중대장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오토는 소대원들이 점거한 저택으로 들어간 다음 자신의 양말 속에 숨겨둔 페비틴을 확인하고는 씨익 웃었다. 알프레트가 이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소..소대장님이 미쳤다!!'
에밀과 요하네스도 페비틴을 먹고는 눈에 맛이 간 상태였다.
"계급장 때고 한 번 붙을까!!"
에밀의 말에 요하네스는 주먹을 날렸다.
퍼억!!
"저 새끼들 말려!!!"
몇 시간 뒤, 페비틴 약효과 떨어지고 오토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신이 나갔군!!!'
약효가 떨어지자 무기력해지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오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약을 끊어야 한다...'
오토는 양말 속에 넣어둔 페비틴을 꺼냈다. 이는 오토만의 몫이 아니고 소대원들의 몫도 포함된 분량이었다. 오토는 이걸 땅에 떨어트리고 군화발로 밟아서 으깼다. 오토의 군복 소매에는 소련군의 피가 말라붙어가고 있었다. 군복이 검은 색이라 티는 나지 않았지만 구역질이 났다.
이제 이 도시는 거의 점령이 완료되었고 슐레프 전차 중대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오토는 이 저택을 점거하는 동안 고생한 아주머니에게 군용 식량을 내밀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 동안 폐를 끼쳐서 죄송했습니다."
오토의 소대원들 또한 아주머니에게 웃으며 외쳤다.
"집 더럽게 써서 죄송합니다!"
아주머니는 오토의 소대원들이 너무 싫어서 옆집에 머물다가 돌아온 상태였다. 아주머니는 막상 음식을 받자 마음이 약해졌다.
'이들도 전쟁터에서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게 아니겠지...다들 엄마가 있을텐데...'
"고..고맙네.."
하지만 이고르를 생각하면 독일군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졌기에 아주머니는 마음을 다잡았다. 오토는 아주머니에게 군용 식량을 주고 충분히 값어치를 지불하는 것을 뿌듯하게 느꼈다.
'그래! 독일 제국군은 절대로 민간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그런 군대가 아니다! 이들을 공산주의와 스탈린으로부터 해방할거야!'
그렇게 오토와 소대원들은 전차를 기동할 준비를 하였다. 아주머니는 군용 식량 꾸러미를 들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아...아니?"
아주머니가 없는 동안 집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아주머니가 아끼던 커튼은 북북 찢어서 병사들이 똥을 닦거나 손에 묻은 기름을 닦는데 쓰였다. 심지어 아주머니의 속치마와 속옷까지도 재질이 부드러워서 병사들이 거기다가 손을 문질러서 시커먼 자국을 남겨둔 상태였다. 어떤 녀석들은 심지어 욕구를 해소한 다음에 속치마 자락으로 그걸 닦아내기도 했다.
마루 바닥은 징 박힌 군화가 하도 세게 왔다갔다해서 여기저기 흠이 파여 있었다. 커튼, 쇼파, 모든 것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화장실에는 똥무더기가 있었다. 집에 대대로 내려오던 그림에는 여자 가슴이 그려져 있었다.
아주머니가 창문으로 가서 목청껏 외쳤다.
"이 시발 놈의 새끼들!! 천벌 받아라!! 샹 놈의 새끼들!!! 못 배워 먹은 새끼들아 네 놈들 부모가 이렇게 가르쳤냐? 망할 새끼들아!! 이 &*^&%^$*#"
아주머니의 욕설은 전차들의 배기음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그렇게 오토는 개운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자신의 소대 전차들과 함께 앞으로 전진했다.
"1소대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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