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트리히
슐레프 중대의 전차와 차량들은 롤반을 따라서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이 도로 같지 않은 롤반에는 수 많은 궤도와 바퀴 자국이 남았다. 오토는 상부 해치 위에 걸터앉은 채로 쌍안경으로 사방을 관찰했다. 티거 뒤쪽에는 보병들이 걸터앉은 상태였다. 보병 소대장 지바고 소위가 오토의 티거 위에 한참을 걸터앉아 있다가 외쳤다.
"엔진이 너무 뜨겁네! 이러다 내 엉덩이가 다 익어버리겠어!"
다른 보병들도 궁시렁거렸다.
"맞습니다! 너무 뜨겁습니다!"
"연기 때문에 눈이 따갑습니다!"
오토가 포탑 해치 위에 걸터앉아서 쌍안경을 보며 지바고 소위에게 말했다.
"당연히 엔진룸 위쪽은 뜨겁지! 궁시렁댈거면 내리라고!"
보병, 오토바이병, 대전차포를 운반하는 포병대와 함께 같이 속도를 맞춰야 했기 때문에 롤반에는 때때로 엄청난 교통 체증이 일어나곤 했다.
"중대 정지!!!"
잠시 전차를 정비하고 연료를 주유하기 위해서 부대는 이동을 정지했다. 각 전차마다 막내들이 군용빵을 자르고 돼지기름을 발라서 5인분의 토스트를 만들었다. 오토는 요하네스가 자른 돼지기름 바른 군용빵을 먹으며 포탑 위에 걸터앉아서 앞으로 가야할 길을 바라보았다.
'존나게 머네...'
오토는 포탑 안으로 들어간 다음 해치를 닫고는 잠시 눈을 붙였다. 10분 뒤 헤드폰에서 중대장의 명령이 들렸다.
"중대 출발!!"
오토는 크랭크를 돌려 포탑 해치를 위로 올렸다.
끼기긱 끼긱
'편하게 좀 만들지...'
크랭크를 돌려서 포탑 해치를 위로 올리는 것은 상당한 약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포탑 해치를 위로 올린 다음 레버를 돌리자 해치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며 오픈되었다.
끼기긱
오토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다시 포탑 해치 위로 올라가서 걸터앉았다.
"출발!!!"
트드드등 트드등
엄청난 먼지를 뿜어내며 전차 부대가 앞으로 전진했다. 먼지 때문에 눈이 따가웠고 기침이 나왔다.
"켁켁..."
오토는 쌍안경으로 사방을 살펴보았다. 티거 뒤에는 보병들이 걸터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다들 티거가 뿜어내는 먼지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이러다 뇌도 폐도 다 병신되겠구만...'
그렇게 한참을 전진한 슐레프 중대는 이미 주민들이 대다수 피난 간 한 마을에 정착해서 휴식을 취했다. 요하네스가 지난 번에 노획했던 메밀을 이용해서 러시아 전통 음식 까샤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물 넣고 메밀을 넣고 끓이고 소금 한 스푼 넣고 라드를 넣고 한참을 끓였다.
"완성되었습니다!"
고기가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기를 먹은 느낌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는 까샤가 완성되었다. 대공황때 무료 배식소에서 배식해주던 음식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것은 제법 군침을 돌게 했다.
다른 소대도 각 분대마다 모여서 오랜만에 괜찮은 식사를 했고 앙뚜완 또한 자신의 동료들과 까샤를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한 전차병이 주민들이 모두 피난 간 마을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여기 살던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 마을의 주민들은 전쟁 이전에도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 분명했다.
"좀 불쌍하네."
앙뚜완이 말했다.
"쓸데없는 동정할 필요 없네. 나만 살아남으면 그만이지."
한 전차병이 말을 이었다.
"민간인 중에는 노인이나 어린 아이, 여자도 있네. 이들은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 가장 피해를 보고 있어."
앙뚜완이 초코 바를 씹으며 말했다.
"어차피 그들은 적일 뿐이야. 호랑이가 사냥감을 물어뜯을 때 동정할거 같나? 난 그들이 죽던 말던 아무 상관 없네."
"하긴 우리랑 다른 종족이긴 하지."
"내 생각에 슬라브인들은 항복한 포로건 민간인이건 모조리 제거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네. 이들은 도덕적으로 완전히 부패한 열등한 민족일세."
전차병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봐. 지금 독일은 볼셰비즘과 야만적인 공산주의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걸세. 그런데 슬라브인은 포로건 민간인이면 모조리 죽인다고? 그것이 볼셰비즘이랑 뭐가 다르지?"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에 의해 성격, 지능 등이 결정되네. 슬라브인들은 태생적으로 게르만인보다 열등하고 미개하고 잔혹하지. 이들은 '제거'되는게 인류를 위해서 옳네."
"난 이 새끼들이 사보타지하고 전쟁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진절머리가 나네. 솔직히 이반 새끼들은 눈을 파내어 죽이고 싶다네. 하지만 노인이나 어린 아이들은 죄가 없네. 이들은 문화적으로 교화가 가능할걸세."
"시발 같은 소련년들이 후방에서 사보타지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그런 소련 계집들은 개머리판으로 대가리를 박살내야 해."
"이 자들도 공산주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러시아 제국 시절에 러시아인들이 이룩한 문명을 생각해보게! 난 러시아 음악과 문학은 상당히 좋아했다고! 하지만 지금 이 자들이 만들어내는 조각상을 보란 말이야! 완전히 쓰레기같고 흉물스러운 조각상 밖에 만들지 못하지! 공산주의만 없애면 이들은 알아서 잘 살 걸세!"
"내 생각엔 기후가 문제야. 이런 기후에서 살면 누구라도 성격이 좆같아질 수 밖에 없네."
"근데 자네는 어느 정당 당원인가?"
"나는 사회민주당 당원일세."
"난 가톨릭 중앙당"
앙뚜완이 속으로 생각했다.
'멍청한 새끼들...슬라브인이건 게르만인이건 인간은 동정할 가치가 없어.'
앙뚜완은 한스가 미사카를 강간해서 태어난 전쟁 고아였고, 어릴 때부터 독일인이건 프랑스인이건 모두 앙뚜완을 따돌리곤 했다. 그렇게 지옥 속에서 성장한 터라 앙뚜완은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던 것 이다.
그 때, 뒷편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동료들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여자 포로야!!"
"와!! 저것 좀 봐!! 여자 포로래!"
앙뚜완을 제외한 전차병들은 우르르 구경하러 갔지만 앙뚜완은 자리에 주저 앉아서 동료들이 먹던 까샤를 한 스푼 더 퍼먹었다.
"존나 예뻐!!"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저리 꺼져!!"
앙뚜완이 뒤를 돌아보니 웨이브진 검은 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진 한 여자, 피크가 붙잡힌 채로 암사자처럼 반항하고 있었다.
"뭐지?"
"다른 부대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는데 우리 쪽 정찰병한테 붙잡혔나봐!!"
그 때 피크의 커다란 눈이 앙뚜완을 바라보았다. 앙뚜완이 물었다.
"저 여자는 어떻게 한대?"
"원래대로라면 포로는 후방쪽에 보내야 하는데...지금 우리 부대는 계속 진격해야 하는데..."
앙뚜완은 등을 돌린 다음 까샤를 한 스푼 더 먹었다.
'내가 알 바냐..'
하지만 앙뚜완은 다시 고개를 돌려서 피크라는 이름의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런 작은 소란이 있는 와중에 오토는 철갑탄 위에 담요를 올려놓고는 베개처럼 베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페비틴 금단 증상 때문에 엄청난 무기력감이 쏟아졌다. 오토는 남은 페비틴을 모조리 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한 알만 남겨둘걸!!'
오토는 위생병을 찾아갔다.
"무슨 일 입니까?"
오토가 말했다.
"페..페비틴 한 알만..."
위생병이 얼굴을 찡그리고는 말했다.
"안 됩니다!"
"반 알이라도!!"
위생병은 오토의 말을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리고 이질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 이질 환자는 계속해서 설사를 하느라 탈수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토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 시발 놈의 위생병이!!!'
오토는 손발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온 몸에 감각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이가 바글거려서 몸이 가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오토는 참지 못하고 상의를 벗고는 온 몸을 벅벅 긁었다.
'좆같네!!'
오토는 양초를 하나 켜고는 이를 하나씩 잡고는 모조리 태워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한 시간을 열심히 이를 잡으며 고생해도 어차피 잠시 뒤면 이가 온 몸에서 불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 때 슐레프 중대장이 와서 외쳤다.
"장교들 전원 집합!! T-34 30여대가 137구역으로 오고 있다!!"
'30여대?'
슐레프 중대장이 지도에 각자 소대의 위치를 표시하고는 외쳤다.
"기동 준비하고 각 소대는 표시된 위치에서 대기한다!! 놈들 전차가 나타나면 사격하고 구체적인 것은 각 소대장의 재량에 맡긴다!!"
"엔진 스타트!!"
"출발!!"
그렇게 오토의 1소대는 슐레프 중대장이 표시한 구역으로 전진한 다음 제각기 높은 참나무와 덤불 속에 숨었다. 적 전차가 발사하는 철갑탄을 최대한 도탄시키기 위해서 각 전차는 모두 45도로 티타임 앵글을 잡고 있었다.
오토가 조종수 마티아스 하사와 포수 에밀에게 물었다.
"이보게 마티아스, 에밀. 자네들은 저기 보이는 바위까지 거리가 몇 미터 정도로 보이나?"
조종스 마티아스가 조준경을 유심히 보고는 말했다.
"1700m 정도로 보입니다!"
에밀이 말했다.
"저는 1800m 정도로 보입니다!"
여유가 있었다면 미리 포탄을 쏘는 방식으로 정확한 거리를 측정했을테지만 그랬다가는 소련 전차 부대에게 아군 부대에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오토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관측반으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이..이쪽으로 곧장 올까?'
T-34의 기동 속도로 추정하건데 만약 놈들이 곧장 이 쪽으로 전진해온다면 1시간 내로 올 것이 분명했다.
'T-34는 티거로는 1500~2000미터에서도 격파 가능하다...하지만 KV-1전차가 있다면 천 미터 정도에서 사격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지금 탄약 보급반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오토, 스테판, 게오르크, 블라덱의 소대들은 제각기 300미터씩 간격을 두고 엄폐하고 있었다. 현재 슐레프 중대에 각 소대마다 티거와 판터는 한 대씩 있었다. 전방에 있는 관측반이 무선으로 정보를 보냈다.
"T-34 31대, KV-1 2대!!"
'역시나...KV-1 전차가 있었군!!! 1500미터보다 더 끌여들여야 한다...'
오토는 자신의 소대에 두 대의 4호 전차보고 뒤로 빠져있으라고 명령했다.
'어차피 4호 전차로는 T-34나 KV-1을 상대 못한다...'
이제 조준경 안으로 소련군의 전차가 기동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토의 티거는 덤불 안에 엄폐되어 있었지만, 소련군도 어쩌면 멀리서 쌍안경을 통해 이 쪽을 정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토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거리 2000m"
에밀, 마티아스, 요하네스, 알프레트 모두 긴장한 상태로 교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 철갑탄이 티거와 판터에 장전된 상태였다.
"거리 1900m 사격 명령 전까지 대기한다. 좌측 KV-1부터 사격한다."
아직 오토 외에 다른 소대들도 발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혈관이 피로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포수 에밀은 0.001초라도 빨리 철갑탄을 발사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거리 1700m"
조준경 속에서 적 전차 부대는 먼지를 일으키며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에밀이 바라보는 티거의 스코프 가운데에는 정삼각형이 7개 가로로 그려져 있었다. 이 7개의 정삼각형 가운데 가장 가운데 있는 큰 정삼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4슈트리히다. 그리고 T-34 전차의 가로폭은 3m이다. 이걸 이용해서 간단한 계산을 통해 적 전차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었다.
지금 조준경 안에서 적 전차들이 차지하는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에밀이 조준경 안에서 2슈트리히를 차지하는 T-34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현재 2슈트리히..적 전차 거리 1500m..."
"거리 1300m"
"거리 1000m"
"철갑탄 연속 사격!!!"
퍼엉!!!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88mm 주포 안에서 철갑탄이 회전하며 날아갔다.
쉬이잇!!
카가강!!
쿠과광!! 콰과광!! 카가강!!
소련군의 전차 부대는 삽시간에 엄청난 포연에 휩쌓이며 하나씩 격파당하기 시작했다.
"KV-1 한 대 격파 완료!!"
그 때 뿌연 연기 속에서 불꽃이 번쩍이더니 오토의 티거 전면 장갑에 T-34의 철갑탄이 날아온 다음 도탄되었다.
티잉!!!
엄청난 충격과 함께 오토와 전차병들은 모두 자신의 머리를 붙잡았다.
'으아아악!!!'
"연속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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