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여인의 깨진 두개골에서 뇌수와 피가 흘러나와 마루바닥을 적셨다. 꼬마 아이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달달 떨고 있었다.
"으아아아....으아아아..."
바르크만이 말했다.
"파이퍼 중위, 궁금한게 있소."
오토는 식은 땀을 흘리며 이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바르크만은 놀랍도록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타인이 죽는 것을 보며 대다수의 인간들은 슬퍼하는 표정을 짓더군. 난 그 감정이 이해가 안되서 말이오. 지금 러시아의 민간인들 또한 파르티잔에게 이웃을 밀고하고 처형 당하는 광경을 구경하며 즐기고 있소. 러시아 뿐만이 아니오. 미국에서 흑인 남성을 처형하고 성기를 베면 여인들은 그 기념품을 자기가 갖겠다고 아우성이었다고 하더군..참 재밌는 일이야..."
오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꼬마 아이는 고장난 메트로놈마냥 입에서 기계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으아아아...으아아아..."
일단 최대한 바르크만을 자극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바르크만은 오토가 듣던지 안 듣던지 상관도 안하고 마치 연극 배우가 독백을 하듯 말을 이었다.
"오토 파이퍼는 과연 어린 아이를 살릴 것 인가? 아니면 자신의 추악한 실수를 덮기 위해서 이 살인 행위를 묵과할 것 인가?"
오토는 바르크만을 권총으로 겨눈 상태에서 최대한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민간인 살해와 상관에 대한 명령 불복종은 모조리 보고서로 올릴걸세. 보병들이 옆 건물에 있으니 자네가 총을 발사하면 모두 이 쪽으로 뛰어올걸세."
"모두 앞에서 파이퍼 자네가 저질렀던 짓을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겠군."
바르크만은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MP40를 어린 아이의 대가리에 겨누고서는 외쳤다.
"펑! 펑 펑!"
오토가 말했다.
"총 내려놓게."
"펑! 펑! 펑!"
"당장 총 내리게!!"
바르크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토가 생각했다.
'그..그 때 일의 증거는 없다...그냥 멋대로 씨부리는거야!! 하지만 조사가 들어가면? 앙뚜완 그 새끼가 분명 말하겠지? 여기서 이 새끼를 죽이면!! 그래! 한 번에 즉사시키는거야!!'
순간, 바르크만은 MP40을 휘둘러 어린 아이의 대가리를 내리쳤다.
퍼억!!
거품을 물고 쓰러진 아이의 대가리에 바르크만은 사정없이 MP40를 내려쳤다.
퍽! 퍼억!! 퍽!!!
아이의 두개골은 생각보다 쉽게 박살났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고 바르크만이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나 파이퍼 중위는 죄없는 민간인의 목숨보다 자신의 안위가 중요하군! 강철 사냥꾼 한스 파이퍼 또한 전차와 어린 아이의 목숨 중에 하나 고르라면 전차를 골랐을걸세! 전차에 환장한 또라이였지!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일세!"
"바르크만...네 놈은 교수대에 오를걸세."
바르크만의 표정에서 웃음이 싹 가셨다.
"지금 명령하는건 나일세. 파이퍼 중위."
다음 날, 오토 파이프의 티거 소대는 바르크만과 형벌 부대원들과 함께 시가지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 예정이었다. 현재 소련군이 점거한 도서관 건물이 골칫거리였다. 티거가 그 건물까지 가서 고폭탄을 쏟아부어야 했다. 티거가 도서관 건물에 고폭탄을 발사하는 동안 보병을 수송한 장갑차가 와서 보병들이 하차한 이후 도서관 건물에 진입해서 전투를 벌일 예정이었다.
형벌 부대 소대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신이시여!! 제발 바르크만 저 새끼가 죽도록 해주십시오!! 아무리 저 녀석이라고 해도 저격수가 깔렸는데 살아남기는 힘들거야!!'
형벌 부대 소대장은 오토 파이퍼와 전차병들을 보며 생각했다.
'서..설마 저 멍청한 전차병 새끼들이 바르크만 저 녀석 총 맞으면 구해주는건 아니겠지?'
마티아스가 외쳤다.
"엔진 스타트!!"
트으응 트드드등
그렇게 티거 전차가 앞으로 출발하였다. 오토는 해치를 반쯤 열어두고 헤드셋을 간간히 귀에서 때면서 소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오토는 측면 해치를 열고는 바르크만에게 명령했다.
"이보게!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서 적 대전차포나 전차가 있는지 정찰하고 오게!"
"야볼!!"
바르크만은 MP40을 들고는 우측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1분 정도 기다리는데, 수류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쿠광!! 콰과광!!!
바르크만은 돌아오지 않았고 오토가 명령했다.
"우측 골목에 적 보병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능하면 교전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목표 구역으로 전진한다!!"
트응 트드드등 트드등
삼십분 뒤, 오토의 티거는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는 도서관 건물에 고폭탄을 쏟아 부었다.
쿠궁!! 쿠과광!! 쿠구궁!!
"연막탄 발사!!"
티거는 도서관 쪽으로 연막탄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때맞춰 온 Sd.Kfz 231 장갑차에서 아군 보병들이 우르르 내려서 도서관 건물로 진입했다.
그렇게 전투는 독일군의 승리로 끝났고, 오토와 전차병들은 전차를 몰고는 다시 후방 쪽에 중대 지휘소로 향했다. 형벌 부대 소대장이 나와서 형벌 부대원들을 보고는 오토에게 물었다.
"바르크만 이등병은 어디있소?"
오토가 말했다.
"정찰을 보냈는데 적 보병한테 사살당한 것 같네."
형벌 부대 소대장이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좋았어!! 와우!!!'
형벌 부대 소대장은 장교 대피소로 간 다음 슈납스를 마셨다.
'십년 묵은 체증이 싹 내리는 기분이군!!'
오토는 묵묵하게 중대 지휘소로 쓰는 낡은 건물에 들어간 다음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손에서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아무리 그 놈이라도 혼자서는 살아남기 힘들거다!! 후방 쪽에는 야전헌병 뿐 아니라 파르티잔도 있다!! 어..어쩌면 아까 전에 소련군한테 뒤졌을 수도 있다! 제발 죽어라..제발...'
오토는 바르크만의 요구대로 일부러 바르크만을 정찰 임무를 보내서 탈영할 기회를 준 것 이었다. 한편, 바르크만은 도시를 빠져나가는데 성공하고 서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바르크만은 지도와 나침반을 보았지만 이런 개활지에서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르크만은 슈납스 병에 있는 술 마지막 방울을 입 안으로 털어넣고는 병을 내동댕이쳤다.
"에라이 시발..."
바르크만은 터벅터벅 계속해서 걸어가다가 군화를 벗고는 발을 주물렀다.
'아무 마을이나 들어가서 털어야겠구만..'
그 때 한 독일군의 군용 트럭이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바르크만은 그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도와줘!! 이쪽이야!! 아군이다!!"
끼이익!!
장교용 군복을 입은 빌리 헤롤트가 근엄하게 트럭에서 내렸다. 바르크만이 경례를 하고 외쳤다.
"오스카 바르크만 이등병! 전투 도중 낙오되었습니다! 대위님 부대로 편입해 주십시오!"
헤롤트는 바르크만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지금 헤롤트 특임대는 하도 후방에서 소란을 일으켜서 파르티잔하고 싸우기 위해서는 병사가 하나라도 더 필요했다. 지금 바르크만은 MP40도 소지하고 있었고 왠지 쓸모가 많아 보였다.
"알았다. 트럭에 탑승하게"
바르크만은 헤롤트 특임대원들과 함께 덜컹거리는 트럭에 탑승했다.
한편 슐레프 중대가 있는 도시에서 소련군의 저항이 워낙 거셌기 때문에 독일군은 계획했던 일정과는 달리 점령이 늦어지고 있었다. 게오르크가 중얼거렸다.
"이런 좆같은 도시 때문에 공격 계획에 차질을 빚다니.."
"그냥 대구경 야포로 다 때려부수면 안되나?"
"이런건 루프트바페 참새 새끼들이 슈투카로 다 터트려버려야 하는데 말이야!!"
"병신 새끼야 슈투카가 우리 대가리에도 폭탄 떨굴거라고는 생각 안 하냐?"
슐레프 중대장이 와서 외쳤다.
"장교 전원 회의실로 집합!!"
군화에 박힌 징이 마루를 울렸다.
"항공 정찰에 따르면 놈들 전차 병력이 이 곳으로 집결하고 있다!"
오토와 동기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로스케들은 아무리 격파해도 끝이 없네!!'
'좆같은 새끼들!!'
슐레프 중대장이 외쳤다.
"하지만 반드시 이 도시를 점령해야 한다!!!"
그 때 오토가 자신의 전술을 건의했다. 슐레프 중대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전술적 판단은 자네나 내가 하는 것이 아닐세!!"
하지만 오토의 생각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결국 슐레프 중대장은 유선으로 오토의 아이디어를 위에 건의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그 날 밤, 소련군은 독일군이 대규모로 부대 이동을 준비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블라슈크 정치 장교 또한 이 소식을 들었다.
'독일군들이 철수를 하는 것 인가? 아니다...진지 교대일 가능성이 높다...'
그 때 하수구에서 빠져나온 정찰병들이 블라슈크에게 보고했다.
"티거, 판터 등 전차와 놈들의 장갑차들이 대규모로 후방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진지 교대일 가능성은 없나?"
'이렇게 티나게 철수한다고?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철수하는 독일군을 최대한 신속히 추격해서 사살하고 포로로 잡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소련군들은 이 명령에 공포에 떨었다.
"부..분명 놈들이 온갖 지뢰를 설치해뒀을거야!!"
블라슈크가 외쳤다.
"공병들이 선두에 가며 가능한 지뢰들을 제거할 것 이다!! 하지만 파시스트 공병들은 지뢰 탐지기에 잘 탐지되지 않는 목함 지뢰나 유리 지뢰를 사용한다! 절대로 파시스트 놈들이 떨구고 간 술병이나 권총 등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런 물건들 옆에 유리 지뢰가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소련군 보병들이 쑥덕거렸다.
"그..그래도 놈들 전차랑 장갑차부터 빠져나갔을테니 우리는 보병 위주로만 상대하면 될거야!!"
"최소한 티거 전차 포신에 수류탄 넣는 임무보단 나아!!"
시가전에서 소련군 보병들은 수류탄을 독일군 전차 포신에 집어 넣어서 격파하라는 명령을 받곤 했다. 물론 이런 전술은 성공 확률이 거의 없고 대다수는 기관총에 맞거나 궤도에 깔려 죽는다.
보병 니키타가 외쳤다.
"지뢰만 안 밟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치 장교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휘리릭!
"돌격!!!"
"우라!!!!"
니키타는 어떻게던 지뢰만은 밟지 않기 위해 발뒤꿈치를 들고 미친듯이 달렸다.
"우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적군을 향해 비명은 질렀지만 니키타는 두려워서 뒤질 지경이었다. 니키타는 다른 보병의 뒤를 20m 정도 간격을 두고 따라가기로 했다.
'저 녀석 뒤를 따라가면 지뢰는 안 밟겠지!!'
니키타는 눈을 굴리며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앞으로 달렸다. 괜히 맨 먼저 달리다가 뒤지고 싶진 않았다.
"돌격하라!!!"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그 때, 어둠 속에서 니키타는 뭔가 번쩍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펑!! 퍼엉!!
쿠과광!!!
'야포인가!!'
니키타는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으아아...으아아아...'
번쩍일 때마다 그 충격과 진동은 땅을 통해 니키타의 불알과 아랫배로도 전달되었다. 그리고, 니키타는 지난 번에 들었던 독일군 전차 특유의 엔진 소리와 궤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등
티거의 기관총이 탄도가 낮게 발사되며 우라 돌격을 하는 소련군한테 무수히 쏟아졌다.
드득 드드득 드드득
블라슈크는 건물 안에 몸을 엄폐하고는 반대편 골목에서 번쩍거리며 천둥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번쩍거리는 티거의 주포를 보며 경악했다.
'당했다!! 놈들은 후퇴한게 아니었다!! 빨리 퇴각 명령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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