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병
오스카 바르크만이 얼마 전까지 배속되어 있었던 형벌 부대는 슐레프 중대와 같이 롤반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할더라는 이름의 형벌 부대 소대장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바르크만...이 놈의 전공을 내 것으로 보고하면 철십자 훈장은 따 놓은 당상이다!!'
형벌 부대 소대장 할더는 1급 철십자 훈장을 받고 싶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르크만의 전공을 자신의 것으로 보고하고 두 명의 장교들의 증언이 필요했다. 롤반을 달리는 병력 수송 장갑차 Sd.Kfz에서 보고서를 쓰던 할더는 앞서가는 슐레프 중대의 전차들을 발견했다.
'전차 부대 녀석들의 증언만 확보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 때, 형벌 부대원들이 Sf.Kfz에서 낄낄거렸다.
"오토 파이퍼 그 녀석이랑 전차 부대 소대장들이 파르티잔 계집으로 지들끼리 재미봤다니까!"
"증거는 있냐?"
"없어! 근데 그 파르티잔 계집이 잡혀 있던 마구간에서 전차 부대 소대장들이 우르르 나오고 그 파르티잔 계집은 위생병한테 치료받았다더군!"
"그건 짐작일 뿐이잖아!"
"그 녀석들도 사내 새끼들인데 뭔 일 있었는지는 뻔한거 아니냐!!"
"대단한 놈들일세!"
할더 소대장이 외쳤다.
"전차 부대는 우리 소대와 보전 협동 전술로 상호간 지원해야 하네! 굳이 헛소문 퍼트려서 보전 협동 전술에 피해 끼치지 말게나!"
그 말에 형벌 부대원들은 실실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야볼!"
잠시 뒤, 슐레프 전차 중대와 보병, 할더 소대 등은 근처에 폐허가 된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역시 이번에도 보급은 제때 되지 않았다. 오토는 장교 대피소로 마련된 작은 마구간에서 빵 주머니 속에 긴빠이쳐둔 슈트렌 빵(포도가 여기저기 박혀 있는 버터 빵)과 큼지막한 소시지를 꺼내 먹었다.
'역시 챙겨두길 잘했다!'
그 때, 할더 소대장이 와서 오토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파이퍼 중위."
"무슨 일인가?"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오토는 얼마 전에 자신이 바르크만의 협박에 의해 탈영을 도와준 것이 기억났고 손에서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연한척 할더를 따라갔다. 할더는 작은 오두막 안에 들어가서 오토의 군복에 있는 훈장들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기사 철십자장이라! 대단하군! 파이퍼 중위!"
"우..운이 좋았네."
"자네는 조만간 곡엽 기사 철십자장도 받겠지?"
"이..일단 살아돌아가는게 중요하지!! 하하하!!"
"오스카 바르크만 그 녀석 말일세!"
오토는 등 뒤에 소련군의 KV 중전차가 있는 것 마냥 긴장되기 시작했다. 할더가 말을 이었다.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쓰레기가 죽은 것은 정말 잘 된 일일세."
"그..그렇지!!"
'이 새끼 어디까지 아는 거야!!'
"이보게 파이퍼. 형벌 부대를 관리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세. 나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음에도 철십자 훈장조차 받지 못했네."
오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최대한 자신이 긴장했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무표정한 얼굴로 할더를 바라보았다.
'워..원하는게 뭐지?'
"파이퍼, 내가 훈장을 받는다면 내 약혼자가 나를 자랑스러워할걸세. 그러니 조금 도와주지 않겠나?"
할더의 말에 오토는 안심했다.
'훈장 받으려고 소대원 공을 빼돌리다니 참 구린 녀석이군!! 허위 증언했다간 나도 처벌인데 그런 일에 휘말릴 줄 아냐!!'
"증언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장교 두 명의 증언이 필요하지 않나? 내 증언만으로는 힘들걸세. 다른 녀석들한테 부탁해보는 것은 어떤가?"
할더는 예상했다는 듯이 씨익 웃고는 말했다.
"이보게 오토. 전차 부대도 요새 이상한 소문에 시달리고 있지 않나?"
'!!!!'
오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은 미친듯이 요동쳤고 손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다음 날, 슐레프 중대가 머무르는 마을에 한 대의 트럭이 오고 있었다. 보병들이 이 광경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검은 돼지 새끼들이 왔군..."
거들먹거리는 야전 헌병들이 트럭에서 내렸다. 보병, 전차병, 공병 모두 좆같은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다.
'야전 헌병이 최전방에는 무슨 일로 온거지?'
슐레프 중대장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이들에게 걸어갔다.
"무슨 일 입니까?"
야전 헌병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최전방에서 잘 싸우는 놈들이라 할지라도 야전 헌병의 손바닥 아래지!!'
"최근에 이 부대에서 중대한 군규 위반이 발생했다는 정보에 의해 수사를 진행 중 이다!!"
야전 헌병은 자신이 무슨 총리라도 되는 양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부대원들을 쭉 둘러보았다.
"포로 수용소에서 신체 검사 결과, 이 부대에서 포로로 잡은 여성 파르티잔의 음부가 파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오토와 동기들은 손에서 식은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빠..빨리 티거 타고 튀자!!'
'좆됐어!!'
헌병의 말이 이어졌다.
"그 파르티잔은 현재 실어증에 걸려서 재판 과정이 중지되었다!! 이렇게 독일 제국군의 명예를 떨어트리는 비인륜적인 행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주도 면밀하게 조사가 진행될 것 이다!"
형벌 부대 소대장 할더가 손을 들었다.
"그 사건 관련해서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할더가 헌병한테 가서 무언가를 보고하는 동안 전차병들이 쑥덕거렸다. 포수 에밀이 말했다.
"포로를 강간하다니! 진짜 파렴치한 일일세!"
마티아스가 외쳤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해!"
"진짜 끔찍하군!! 강간범들은 사형시켜야하네!"
오토는 자신의 전차병들이 나불대는 와중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할더를 쳐다보았다. 블라덱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권총에 있는 홀스터를 만지작거렸다.
'으아아...으아아아..'
블라덱이 식은 땀을 흘리며 눈을 굴리는건 누가 봐도 수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오토는 블라덱을 보며 긴장했다.
'저..저 멍청이가 사고치는건 아니겠지?'
할더의 보고가 끝나고 헌병은 무언가를 수첩에 적으며 중얼거렸다.
"역시...이런건 파르티잔 놈들이나 할 짓이지..수사종결!!"
헌병들은 트럭을 타고는 다시 돌아갔다. 어리숙한 신병이 상관에게 물었다.
"이..이대로 수사 종결입니까?"
'고작 장교 한 명 증언 밖에 안 들었는데?'
상관이 슈납스를 마시며 외쳤다.
"여긴 최전방일세! 언제 포탄 날아올지 모르는데 이딴 시덥잖은 사건에 시간 끌 수 없네!"
"위안소나 가서 즐기자고!!"
신병이 물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됩니까?"
"파르티잔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니 무죄 판결을 받고, 포로 수용소가 아닌 수녀원 같은 곳으로 보내지겠지!"
헌병들은 지휘소, 보급소, 제빵 중대 등이 자리잡고 있는 궁둥이로 돌아가서 빵이랑 고기 스프나 배불리 먹고 위안소를 갈 생각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내 자그마한 방에는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데, 그 꽃은 에리카라고 하네! 새벽에도 여명에도 날 바라보는 것은 에리카라네!"
한편, 헌병들이 이렇게 수사도 제대로 안하고 떠나자 전차병들이 수근거렸다.
"제대로 조사하는거 아니었어?"
"뭐가 어떻게 된거야?"
할더 소대장의 보고에 따라 피크는 파르티잔이 아니었고, 마을에서 독일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파르티잔들에게 잡혀서 성폭행을 당하다가 탈출한 것으로 처리가 되었던 것 이다. 그리고 오토와 블라덱은 할더 소대장이 시가전 도중에 소련군 장교를 사살하는 공을 세운 것에 대한 증명서를 작성하고 이를 내주었다.
할더 소대장은 조만간 철십자 훈장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싱글벙글했다.
'좋았어!!'
할더는 철십자 훈장을 받고 휴가를 떠나서 가족의 환영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날 밤, 오토와 동기들은 폐가에 모여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토는 부들부들 떨면서 애써 긴장을 가라앉혔다.
'그..그래!! 이렇게만 하면 끝난거야!!'
헬무트가 말했다.
"아..아까 헌병이 그 여자 실어증 걸렸다고 했지? 그러면 앞으로 증언은 못하겠네?"
볼프강이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내가 법을 좀 아는데, 한 번 이렇게 수사 종결되면 다시 수사할 일은 없을걸세."
장교의 증언은 상당한 효력이 있었기에, 할더 소대장의 증언은 그 자체로 증거로 인정될 터였다. 뿐만 아니라 헌병에서 공식적으로 수사를 종결한 사건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 제기가 될 수도 없을 터였다.
헬무트가 말했다.
"앙뚜완 그 새끼가 나불대면 어떻게 하지?"
모두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헬무트는 커다란 주먹을 꽉 쥐었고, 블라덱은 이를 갈았다.
스테판이 중얼거렸다.
"그 새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야 하네. 이대로 휴전 협정 체결되어서 전쟁이 끝나도 말일세. 어디서 주둥이 나불거릴지 모르네."
어쩌면 전쟁이 끝나면 다들 새로운 직업을 찾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블라덱이 생각했다.
'나..난 전쟁 끝나면 공장 물려받아야 하는데...'
"누..누가 죽일건데?"
"그건 그 때 생각하고..."
오토가 말했다.
"그 녀석은 절대 말 안할걸세. 한스 파이퍼 시발놈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 새끼 이름에 누가 될 행동은 하지 않을거야."
"앙뚜완 그 새끼가 자네 아버지를 위해서 밀고하지 않을거라고?"
한스 파이퍼가 앙뚜완이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수녀원에 돈을 기부했기 때문에 앙뚜완은 한스를 깊이 존경하고 있었던 것 이다.
"다..다행이다..."
"우린 매일 매일 전투하면서 죽을 고비 넘기는데 고작 이딴거 때문에 신경써야 하다니!!"
"됐어!! 잊고 마시자!!"
오토는 폐가에서 자신의 잡낭을 베고 드러누웠다. 억지로 눈을 붙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은 오지 않았고 심장은 무섭도록 쿵쿵거렸다.
쿵 쿵 쿵 쿵
다음 날, 부대는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오토는 기분이 엿 같아서 평소와는 달리 주위를 잘 살펴보지 않고 멍한 상태였다. 오토 소대의 슈뢰어 전차장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뭔 일이라도 있나?'
슈뢰어 전차장은 계속해서 하늘을 살폈다. 이 곳에는 적 정찰기가 자주 출몰한다는 정보가 있었고, 오토와 각 전차장들은 전차 상부 장갑 위에 기관총을 거치해둔 상태였다.
그 때, 옆에서 롤반을 따라 걷고 있던 보병 녀석들이 어딘가를 가르키며 외쳤다.
"항공기다!!!"
"대공 경계!! 대공 경계!!!"
각 전차의 전차장들은 잽싸게 기관총을 사격할 준비를 했다. 오토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지난번처럼 아군 정찰기라면 좋을터였다. 하지만 고고도에서 비행하고 있는 그것은 아군 항공기가 아니었다.
"놈들 정찰기다!!"
"대공 사격!!!"
오토는 소련군 정찰기를 향해 사격을 실시했다.
드득 드드득 드득
어떤 보병들 또한 하늘을 향해 소총을 발사했다.
탕! 타앙!
하지만 소련군의 정찰기는 유유히 정보를 갖고 적진으로 돌아갔다.
"젠장!! 놓쳤다!!"
"놈들이 우리 위치를 알아냈다!!"
"우측 관목림으로 신속히 이동한다!!"
그렇게 전차 부대와 보병들은 신속히 근처에 있는 관목림 쪽으로 이동했다. 보급 부대는 물품을 운반하는 말을 때리며 재촉했다.
"서둘러!! 이랴!!!"
전차 부대와 보병들은 겨우겨우 빽빽한 침엽수들이 가득한 남쪽 관목림으로 엄폐했다. 오토의 헤드폰으로도 명령이 떨어졌다.
"대형 유지하고 계속 남쪽으로 이동한다!!"
그 때 오토는 보병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린 것을 목격했다.
'뭐야!!!'
오토는 헤드셋을 머리에서 벗었다. 항공기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소련군의 항공기 편대가 이 쪽으로 오고 있었던 것 이다.
"우아아악!!!"
모든 보병들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고, 오토는 재빨리 티거 안으로 들어가고 해치를 닫았다.
"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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