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날
불현듯 오토의 머리 속에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티거에는 엄청나게 많은 고폭탄이 적재되어 있었고, 전차들은 서로 밀접한 곳에서 정차해 있었다. 만약 전차 부대 중에 하나만 폭탄을 맞는다고 쳐도 이 전차들은 다 같이 해치가 활짝 열리고 샛노란 불꽃을 뿜어내며 불타오를 것 이었다.
오토가 외쳤다.
"탈출해!! 모두 탈출해!! 전차에서 최대한 떨어져!!"
오토는 헤드셋을 머리에서 벗어던지고 엿같이 무거운 레버를 돌려서 해치를 열었다.
끼이익!!
점점 항공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위이잉 위이이잉
오토와 전차병들은 모두 헐레벌떡 전차 밖으로 탈출해서는 튀었다. 어떤 녀석은 해치로 급하게 나오다가 바닥에 미끄러졌다.
"으악!!"
형벌 부대 소대장 할더가 혼자 권총을 들고는 외쳤다.
"다들 소총 들고 하늘을 겨눈다!!"
형벌 부대원들은 모두 할더를 내버려두고 최대한 전차 부대와 보급 차량으로부터 멀리 튀었다.
"지랄하네!!"
결국 할더도 권총을 들고는 전차 부대로부터 도망갔다.
"으아아악!!!"
전차 밖에서 걷고 있던 장전수, 포수 녀석들은 일찌감치 전차로부터 멀리 도망간 상황이었다. 탄약을 수송하던 녀석들도 탄약을 내팽개치고 저멀리 튄 상태였다. 수레를 운반하던 말들은 공포감에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히이이힝!! 끼이이힝!!!"
위이잉 위이이이잉
오토는 최대한 멀리 튄 다음 양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얼굴을 풀숲에 완전히 파묻었다.
'으아아악!!!'
제아무리 부대가 관목림으로 숨었지만 소련군 조종사들은 궤도 자국을 보고 이 관목림으로 엄폐했단 것을 알아챌 것 이었다. 그리고 적 비행기 편대의 폭탄 투하구가 열렸다. 폭탄이 관목림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쿠구궁!! 콰과광!!
다행히 폭탄은 오토와 부대가 있는 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으로 투하되었다. 폭탄들은 꽤 멀리서 폭발했지만 그 충격파는 여기까지 전달되었다. 엄청난 높이의 거대한 침엽수들이 쩌억하고 넘어졌고, 수 많은 나뭇가지 파편들이 이 쪽으로 튀었다. 혹시나 나무 파편이 이쪽까지 날아올까봐 오토는 얼굴을 바닥에 쳐박은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
쿠구궁! 쿠과광!!
오랜 기간 그 자리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던 침엽수들이 뿌리째 뽑혀나가고 기둥쪽이 박살나고 나뭇가지들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꽂히고 날라갔다. 엄청난 천둥 소리와 진동은 고막을 진동시키는걸 넘어서 온 몸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잠시 뒤, 청력이 돌아왔다.
'끄..끝난건가?'
오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행히 폭탄 투하 지점은 오토가 있는 곳으로부터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엎드리고 있던 병사들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항공기 프로펠러 소리는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꼬리 날개에 커다란 별이 그려진 소련군의 항공기들은 폭탄 투하로 만족하지 않고 이 주변을 빙빙 돌면서 확인 사살을 하려는 것 이었다!
"으아아아악!!"
모든 독일 병사들은 땅에 고개를 쳐박았다. 그리고 소련군의 항공기들은 소형폭탄들을 관목림 이곳저곳에 투하했다. 그 소형폭탄에는 [히틀러에게 직통 배달] [소비에트여 영원하라] 라고 페인트로 적혀 있었다.
쿠궁!!
쿠과광!!
콰과광!!
폭탄이 폭발할 때마다 나뭇가지, 나뭇잎, 흙이 높이 솟구쳤다. 아까 전보다는 폭탄 투하 지점이 전차 부대가 있는 곳과 가까웠다.
쿠과광!! 쿠궁!!
병사들의 식량과 통조림을 운반하던 차량이 소형 폭탄을 맞고는 폭발했다. 사방으로 찌그러진 깡통들이 낮은 탄도를 그리며 포탄처럼 날아갔다.
쉬잇! 쉿!
쿠구궁!! 쿠광!! 콰광!!
식량 운반 차량에서 시커먼 연기가 높이 뭉개뭉개 뿜어져나오더니 순간 샛노란 불꽃이 엄청난 높이로 솟아올랐다. 불길은 다시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식량 운반 차량은 불타오르며 병사들의 식량을 바짝 태워버렸다.
한 병사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와중에 고개를 들어서 침엽수로 빽빽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항공기가 지나가는 것이 침엽수 사이로 보였다.
위이이이잉
잠시 뒤, 오토는 고개를 들었다. 등 위에는 흙먼지와 나뭇잎, 나뭇가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어떤 침엽수는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짜부라진 고기 통조림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블라덱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악!! 으아아악!!!"
블라덱이 엎드린 채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엄마!!!"
알고보니 엉덩이 쪽에 작은 나뭇가지 파편이 박힌 상태였다. 블라덱 울부짖었다.
"으아악!!! 이젠 못 걸을거야!! 하반신이 마비될거야!!"
위생병이 블라덱의 엉덩이에 박힌 나무 파편을 빼줬음에도 불구하고 블라덱은 계속 울부짖었다.
"파상풍에 걸릴거야!! 아아악!!"
스테판에 블라덱에게 외쳤다.
"괜찮아!! 조만간 궁둥이(전투 지휘소, 치료소, 정비소가 모여 있는 곳을 일컫는 속어)에 가서 자네 궁둥이를 치료할걸세!!"
이 농담은 블라덱에게 그닥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닥쳐 시발!! 아아악!!"
형벌 부대원들과 그 외 병사들은 허겁지겁 여기저기 놔뒹구는 찌그러진 통조림을 챙겼다. 할더는 잽싸게 자신의 소대원들을 점검했다.
'한 놈이라도 탈영하면 큰일이다!!'
만약 헌병 부대 소대원들 중에 탈영병이 있다면 이는 할더의 인사고과에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형벌 부대원들은 통조림을 긴빠이치기는 했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탈영하지 않았다. 할더가 뿌듯해했다.
'이럴 수가! 아무도 탈영하지 않았어! 나의 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했군!'
형벌 부대원들이 속으로 생각했다.
'후방에 파르티잔 천지인데 부대와 같이 움직이는게 차라리 안전하지..'
'이런 개활지에선 식량 얻을 마을까지 가는 것도 문제다!!'
'탈영했다간 물도 못 먹을거다!!'
오토는 자신의 소대 전차들을 하나씩 점검했다. 모든 전차 장갑 위에 두껍게 흙이 쌓여있었고 여기저기 나뭇잎들이 떨어져있었지만 멀쩡했다. 말들은 아직도 미쳐날뛰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부상자들이 울부짓고 있었다. 슐레프 중대장은 이 숲을 빠져나가 롤반으로 진격하기로 결정했다.
"빨리 기동 준비해!! 놈들이 아군의 위치를 알고 있다!!!"
오토와 소대원들 또한 관목림 속에서 전차를 기동했다. 그 때, 보병이 불발탄을 발견하고는 외쳤다.
"조심해!! 불발탄이야!!"
겉면에 페인트로 [파시스트에게] 라고 적혀 있는 불발탄을 보고 보병들은 질겁을 하고 피했다.
"으익!!"
오토의 소대 전차들 또한 그 불발탄을 피해서, 나무와 덤불을 우지끈 밟으며 앞으로 이동하였다.
그렇게 대충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부대는 다시 관목림 밖으로 탈출했다. 오토는 해치를 열고 상체를 내민 상태로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며 혹시나 항공기가 오지는 않는지 쌍안경으로 관찰하였다.
'서..설마 또 오지는 않겠지?'
슐레프 중대장의 목소리가 헤드폰에서 들렸다.
"놈들은 우리 위치를 알고 있다! 조만간 놈들의 기갑 부대가 공격해 올 가능성이 높다!! 측면 유의한다!!"
오토 또한 쌍안경으로 사방을 살폈다. 어디서 적군의 항공기 뿐 아니라 기갑 부대가 나타나서 측면을 공격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전차 부대는 이동 대형으로 전진하고 있었고 적 전차들이 측면에서 나타나면 즉각 공격 대형으로 대형을 바꾸어야 했다. 그 때 서쪽 하늘에서 작은 점들이 나타났다.
"아군 항공기야!!"
"매서슈미트다!!"
"이제 오냐 망할 놈들아!"
"망할 참새(루프트바페를 비하하는 속어) 새끼들!!"
전차 해치 위로 상체를 내밀고 있는 전차장들과 보병들은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매서슈미트는 약올리듯이 전차 부대의 행렬을 앞질러 날아갔다.
한편, 궁둥이를 깐 채로 보병 수송 차량으로 이송되고 있는 블라덱은 차량이 흔들릴 때마다 계속 아파하며 울부짖었다.
"아악!! 으아악!! 천천히 가!!"
계속해서 전진하다가 정비 시간이 되었다. 모든 차량의 이동이 정지했고 전차병들은 각자 차량을 점검했다.
오토 또한 자신의 소대 전차들을 점검했다.
"문제없나?"
"아직까지는 문제없습니다!!"
"조만간 정비소에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오토는 간당간당한 궤도들을 살펴보았다. 아까 전에 소련군 항공기들을 피해 급하게 방향 틀고 관목림으로 들어가느라 기동을 무리하게 했던 것 이다.
"가급적 급선회하지말고 주의해서 조종한다!"
그 때, 슈트리히가 이 쪽으로 저공비행하며 날아오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뭔 소식이라도 얻었나?"
모두 고개를 들고 슈트리히를 바라보는데 뭔가가 툭 떨어졌다. 정보 상자였다. 슐레프 중대장은 신경질적으로 이 정보 상자를 열어보았다.
"12키로미터 전방 23구역에 막강한 적의 기갑 부대가 있다."
이는 즉각적으로 통신 차량을 통해 지휘소에 보고되었고, 롤반을 따라가던 슐레프 중대는 비상 사태가 걸렸다.
"젠장! 빨리 전진해!!"
전차 조종수들과 운전병들은 모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량을 조종했다. 좁은 롤반에서 전차와 차량들이 미어터져서 전진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심하게도 게오르크 소대의 4호 전차 하나가 롤반에서 미끄러져버렸다.
"망할!!"
롤반 옆은 진창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티거에 케이블을 달아서 견인해줘야 한다. 그 미끄러진 4호 전차의 조종수는 지가 잘못한걸 아는지 사색이 된 상태였다. 케이블은 팽팽하게 연결되었고, 4호 전차는 진창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고, 이제 1km 쯤 앞에 롤반 두 개가 교차하는 사거리가 보였다. 그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북쪽으로 꺾을 예정이었다.
오토는 쌍안경으로 계속해서 주변을 정찰했다.
'이런 사거리는 교통 요지라 놈들이 주로 대전차포를 측면에 엄폐해둔다!!'
오토바이 정찰병들이 돌아와서 사거리 쪽에 엄폐된 적 병력은 없다고 보고했고, 전차 부대는 안심하고 앞으로 전진했다. 그런데 엄청나게 묵직한 금속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잇!
보병들은 모두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쿠과광!! 콰광!!!
이 중포탄은 사거리에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고 커다란 포탄 구덩이를 만들었다. 슐레프 중대장이 명령했다.
"계속 전진해!!"
현재 스테판의 2소대가 선두에 서 있었고 빠른 속도로 롤반에서 좌측으로 꺾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2소대가 모두 이동했고, 그 뒤를 따르던 오토의 1소대는 잠시 차례를 기다렸다.
'부..분명 또 쏠텐데?'
오토는 아직 전진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 때, 다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잇!!
쿠궁!! 쿠구궁!!
만약 오토의 소대가 더 일찍 전진하거나 스테판의 소대가 늦게 전진했다면 전차들은 모조리 깡통처럼 짜부라졌을 것이 분명했다! 소련군 포병대는 정확히 롤반의 사거리를 겨냥해서 포탄을 날리고 있었던 것 이다. 분명 솜씨 좋은 관측 장교가 미리 이 곳의 좌표를 정확히 관측해둔 것이 분명했다. 오토가 외쳤다.
"전진!! 빨리 전진해!!"
이 사거리를 빨리 지나가야 했다. 당연히 우회하고 싶었지만 롤반 옆은 진창이라 한 번 빠지면 탈출이 불가능하다. 조종수 마티아스는 팬티에 똥오줌을 지린 상태로 최고 속도로 전차를 기동했다.
'으아아아악!!!'
오토가 티거 위에 상체를 내민 채로 헤드셋으로 외쳤다.
"침착하게 해!! 급하게 선회하다가 기동불가되면 다 뒤진다!!"
오토의 티거, 그 다음 판터, 다음 4호 전차까지 모조리 사거리를 통과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뷜리겐 전차장의 4호 전차가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오토는 티거 위로 상체를 내민 상태로 마지막 뷜리겐의 4호 전차가 제대로 따라오는지 바라보았다. 4호 전차는 선회하다가 갑자기 멈췄다.
'왜 멈춰?'
헤드셋으로 뷜리겐 전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궤도에 뭐가 걸린 것 같습니다!!"
이제 좀 있으면 소련군의 중포탄이 사거리에 떨어질터였다. 뷜리겐의 4호 전차가 사거리를 가로막고 있다가 포탄에 기동불가가 되면 후속 부대 차량들도 모조리 이 사거리를 지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 때, 뷜리겐 전차장과 조종수가 미친듯이 전차에서 탈출해서 달려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저거!!!'
뷜리겐과 조종수는 같이 똥줄빠지게 달아난 다음에 멀리 떨어진 포탄 구덩이에 몸을 날렸다.
퍼억!!
그리고 중포탄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쉬이잇!!
이 중포탄은 사거리에서 300m 쯤 떨어진 곳에 착탄했다.
쿠과광!! 콰광!!
뷜리겐과 조종수는 포탄 구덩이에서 고개를 들고 멀뚱멀뚱하고 있었다. 오토는 티거에서 뛰쳐나와서 사거리를 막고 있는 4호 전차로 달려갔고 그제서야 뷜리겐과 조종수 또한 4호 전차로 달려갔다. 오토가 4호 전차 궤도에 끼인 나뭇가지를 끄집어내고, 뷜리겐과 조종수는 똥줄 빠지게 4호 전차를 기동했다. 그렇게 뷜리겐의 4호 전차까지 사거리를 지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부대가 겨우 겨우 이동에 성공했다. 그 때, 아군 항공기가 다시 정보 상자를 떨구고 갔다. 슐레프 중대장은 서둘러 이 정보 상자를 열어 보았다.
"7km 전방에 막강한 적의 기갑 부대가 이동하고 있다."
슐레프 중대장이 외쳤다.
"전투 대형으로!!!"
소련군 전차들은 엄청난 먼지를 뿜어내며 기동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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