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터 연대장
한스의 전차부대는 마크 V, LK II, 르노 FT-17, 휘핏, 슈네데르 CA, 생샤몽, 롤스로이스 장갑차, 그로스캄프바겐, A7V 등등 온갖 종류의 전차와 장갑차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정비병들은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궤도와 그 외 부품의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기동 불가 되는 전차가 생기기 시작하면 부대 전력의 절반가량이 날라갈 수 있었다.
“영국 놈들은 마크 V 전차만으로 대대를 만들었다던데!”
“그 새끼들 마크 I이랑 마크 II는 개조해서 운반용이나 통신선 가설용으로 쓰고 있대!”
“우리는 언제까지 노획한걸로 싸워아 햐냐!”
한스는 전차대대 지휘소에서 바그너, 바이스, 슈바르츠 등과 함께 앞으로 공세에 대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의 전차부대가 이 근방으로 오고 있다는 항공 정찰이 있었네. 이 숲은 나무가 울창해서 전차가 지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공격해오는 쪽에서는 세 경로 중에 한 경로를 지나갈 수 밖에 없네. 포병대와 협력해서 대전차포를 여기 위치시키고, 놈들이 먼저 공격해오면 중전차 중대로 포위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네.”
“프랑스 전차부대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예상됩니까?”
“생샤몽과 슈네데르 CA로 1개 대대급이 이 쪽으로 오고 있네. 그리고 놈들의 폭격기가 아군 전차 부대가 있는 곳을 향해 폭격을 할 수도 있으니, 가짜 전차 부대를 만들고, 놈들이 폭격하고 지나가면 일부러 불을 내면서 폭격에 성공했다고 확신을 줘야 하네.”
“그..그렇게까지!!”
“놈들의 항공전력이 우리보다 우위일세. 전차 부대 폭격에 실패하면 놈들은 다시 폭격을 시도할 걸세.”
그 때 플로리안이 대대 지휘소에 들어왔다.
“공병 대대 쪽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한스는 공병 대대장 베커 중령을 찾아갔다. 베커 중령은 한스보다 제법 나이가 많아 보였고, 한스는 쫄리기 시작했다.
‘쫄지 말자..쫄지 말자..’
베커 중령이 말했다.
“프랑스군 전차 대대가 막기 위해 이쪽 길에 대전차지뢰를 설치할 예정이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그렇지만 대전차지뢰는 포격하면 다 파괴될텐데..’
그 때 한스의 머리 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콘크리트로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베커 중령이 황당하다는 듯이 한스를 쳐다 보았다.
“그렇게 장애물을 만들면 놈들이 항공 정찰을 통해서 미리 다른 쪽으로 우회해서 진입할걸세!”
“콘크리트를 굳혀서 이 쪽 길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설치하면 적 전차 대대의 이동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놈들은 우리 쪽 포병대 대전차포의 사거리에 있는 이 경로를 통해서 진입해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쪽은 나무가 울창해서 포병대들이 대전차포를 엄폐하기 쉽습니다!”
베커 중령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한스의 말에 동의했다.
“알겠네! 그러면 대전차지뢰 대신 콘크리트 장애물을 설치하겠네.”
그 때, 플로리안이 달려와서 외쳤다.
“연대 지휘소에서 부르십니다!!”
‘무..무슨 일이지?’
리히터 연대장이 한스를 부르고는 한 마디 했다.
“자네 복장 상태가 그게 뭔가?”
“죄..죄송합니다!”
최전선에서는 다른 장교들도 복장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았기에 한스는 이런 것으로 지적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일반적으로 장교들은 병, 부사관들과 구분을 두기 위해서 일부러 단추 몇 개 정도는 풀고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젠장!! 내가 뭘 잘못했다고!’
리히터 연대장이 말했다.
“자네 전차 부대 중에 한 중대는 이 근방의 방어 임무를 맡게!”
리히터 연대장이 가리킨 곳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졌고, 급경사가 있는 쪽이라 적 전차 부대가 절대로 올 수 없는 곳 이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쪽은 전차 부대가 안 가도 될텐데..그..그래도 연대장인데 뭔가 생각이 있어서 이런 말을 한 건가?’
리히터 연대장은 자신이 직접 그린 전술지도를 꺼내서 한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전차 2중대는 이 쪽으로 가게!”
‘이..이게 전술 지도?’
그 전술 지도는 대충 전차 부대의 진격 방향만 화살표로 그려져 있었다.
‘이..이런 새끼가 연대장이라고?’
한스는 등골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한스는 결국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연대장님! 이 구역으로는 프랑스군의 전차 대대가 올 수 없기 때문에 굳이 전차 대대의 중전차 전력으로 방어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악!”
리히터 연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애송이 새끼가 감히..’
“그게 무슨 말인가?”
“이 곳으로 통하는 길은 급경사에 숲도 울창하기 때문에, 기동성이 떨어지는 프랑스의 생샤몽, 슈네데르 CA는 절대 이 쪽으로 올 수 없습니다악!”
한스는 긴장해서 계속 삑사리가 났다. 리히터 연대장은 감히 의의 제기를 하는 한스가 고까웠지만 이번 전투는 매우 중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한스의 의견을 수용했다.
‘건방진 놈..공세 끝나고 두고 보자..’
한스는 식은 땀을 흘리며 연대 지휘소 밖으로 나왔다.
‘이런 연대장 믿다간 전멸하겠다!!’
결국 한스는 포병 대대를 찾아가서 프랑스 전차 대대를 방어할 방법에 대해 직접 논의하기 시작했다.
“슈네데르 CA 전차는 포의 화력은 강력하지만 포가 살짝 우측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또한 연료 탱크가 취약하기 때문에 포탄 파편만 맞아도 쉽게 폭발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한스는 보고서도 쓰고 포병 대대장, 공병 대대장과 전술을 논의하느라 기진맥진했다.
“밥 먹으러 가야지..”
한스는 리히터 연대장과 다른 장교들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양념까지 잘된 맛 좋은 스테이크가 나왔지만 리히터 연대장 때문에 한스는 체할 것 같았다.
‘젠장..그냥 대대원들이랑 먹는게 편하겠다..’
하지만 장교는 장교끼리 식사를 하는 것이 국룰이었고, 대대원들 사이에 껴서 밥을 먹으면 자신이 대대원들 먹을 것을 뺏어 먹는 꼴이 되기 때문에 한스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중대장 시절이 좋았는데!’
리히터 연대장이 말했다.
“이번 방어 작전을 통해서 놈들의 전차 부대를 궤멸시키고, 야간에 바로 우리 쪽 전차 대대를 앞세워서 놈들의 진지를 공격할 걸세.”
리히터 연대장의 말에 한스는 목에 음식이 걸리고 말았다.
“푸읍..켁..켁..”
리히터 연대장은 한스를 신경쓰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각 전차 부대는 소규모로 분산하여 진격하고 보병의 보조를 맡을 걸세!”
“켁..켁..”
다른 보병 대대장들 그 누구도 리히터 연대장의 말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넵! 알겠습니다!”
한스보다 나이가 많은 다른 보병 대대장들 모두 리히터 연대장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기에 의의를 제기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켁..켁..그..”
하지만 한스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야간에 전차부대를 분산시키면 아군 오인 사격의 우려가 있습니다.”
리히터 연대장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뭐라고?”
“그..그리고 이 곳은 지형이 험난하기 때문에 야간에 운용하다가는 방향을 잘못 잡고 기동불가 되는 일이..”
“자네 전차 부대가 야간에 작전을 수행할만한 실력이 없다 그 소리군.”
‘!!’
한스는 열 받았지만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전차 측면, 정면에는 조종사가 관찰하기 힘든 사각지대가 있고, 야간에는 방향 식별이 더 어렵기 때문에 호위하는 보병들이 전차 궤도에 깔리는 등 병력 손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스의 말에 다른 보병 대대장들도 생각을 바꿨다.
‘그러면 야간 작전은 위험할 것 같은데..’
리히터 연대장이 말했다.
”흠 그런가?“
한스와 다른 보병 대대장들은 잔뜩 긴장했고 리히터 연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럼 다른 전술을 써야겠군.“
‘휴우..다행이다..’
리히터 연대장이 한스의 훈장을 보면서 말했다.
”요즘엔 훈장을 참 쉽게 주는군.“
한스는 얼굴이 시뻘게지는 것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히터 연대장이 물었다.
“이보게 파이퍼. 자네는 전차 부대가 추후에 어떤 식으로 편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리히터 연대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애송이는 나중에 지가 연대장은 될거라고 생각하겠지?’
한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저는 기갑 사단을 편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단? 기갑 사단?”
“네! 공병과 포병들도 함께..”
“우하하!!우하하하!!!”
리히터 연대장은 꺽꺽거리며 폭소를 터트렸다. 다른 보병 대대장들도 리히터 연대장이 웃자 같이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 우하하!!”
리히터 연대장이 꺽꺽거리다가 위스키를 마시고는 말했다.
“아주 웃기는 친구로군!!”
브레데마이어 보병 대대장이 리히터의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이 친구 군사학 책 한 번 안 읽어본 것 같습니다!”
식사 이후 한스는 밖으로 나와서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라고!!’
그 때 누군가 외쳤다.
”프랑스 폭격기다!!“
한스는 허겁지겁 장교 대피호로 들어갔다.
‘젠장!! 역시 폭격기가!!!’
브레게 Bre.14 A.2가 뉴포르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이 명품 폭격기는, 전방에 기관총 1정, 후방 조종석에는 루이스 기관총 2정으로 무장하고, 40kg의 폭탄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파이퍼 전차 대대..반드시 불태워주겠다!!’
브레게 Bre.14 A.2의 조종수 뤼도빅은 이를 갈며 목을 빼고 지상을 살폈다. 그 때 뤼도빅은 작은 성냥갑처럼 보이는 무언가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저것이 전차 부대?’
뤼도빅은 그 쪽을 향해 폭탄을 모조리 투하했다. 뒤에 날개가 달린 폭탄들은 뱅글뱅글 돌면서 지상으로 낙하했다.
쿠광!!콰광!!쿠과광!!
그 때, 지상으로부터 대공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상공에서 검은 포연이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지만 하나도 맞지 않았다. 후방 기총 사수가 뤼도빅에게 외쳤다.
“빨리 돌아갑시다!!!”
“기다려!! 확인하고!!”
‘놈들이 폭격기를 기만하기 위해 가짜 전차 부대를 만들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폭격하러 와야 한다!’
펑! 펑!
후방 기총 사수는 주변에서 계속 대공포가 터지자 똥오줌을 지렸다.
“우와왁!!”
뤼도빅은 목을 길게 내빼고 지상을 확인하였다. 지상에서는 크게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뤼도빅이 씨익 웃으며 외쳤다.
“궁둥이가 바싹 타들어가겠군!”
펑! 펑!
후방 기총 사수가 외쳤다.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프랑스 폭격기는 폭탄을 모두 투하하고 돌아갔고, 프랑스 포병대는 독일군 쪽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쿠광!!쿠구궁!!
콰광!!쿠궁!!
공병들이 수근거렸다.
“대전차지뢰 설치했다간 다 아작이 났겠군!!”
“콘크리트 장애물 설치해둔건 어떻대?”
“몰라! 니가 가서 확인해보던가!!”
천지를 요동치는 것과 같은 포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쿠광!!쿠구궁!!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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