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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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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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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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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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을 다 하겠슴다!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일사천리.


채연지는 아네모네 개조작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무서운 추진력이다.


“인사하세요. 이 가게 사장님이세요.”

“목수 일만 20년째 하면서 하자 때문에 욕 들어먹은 적 없습니다.”


류지호가 고성재를 채연지 사장에게 인사 시켰다.

그 동안 외국의 잡지를 이 잡듯이 뒤졌다.

여성부터 인테리어 잡지까지 수십 권을 찾아본 끝에 마음에 드는 실내 분위기를 선택했다.

출입구가 있는 벽면을 터 통유리로 레스토랑 느낌이 나는 약간은 모던한 느낌의 인테리어.

낮에는 카페 같은 느낌이 나고, 밤이 되면 레스토랑 느낌의 술집.

주방도 홀에서 볼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바꾸고, 카운터 역시 입구로 옮기기로 했다.

통유리로 벽을 두르면 실내가 넓어 보이는 효과도 있고, 손님들에게 시원한 시야를 선사해줄 수 있다.


“주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카페라고 생각해보세요. 조명도 낮게 배치해서 호텔바 느낌이 나게 하고요.“


류지호가 고성재에게 실내 인테리어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예산이 얼마나 소요될지 견적 좀 내주세요. 자재가 우리나라에 있는 지도 알아봐 주시고요. 만약 이렇게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면 아저씨가 이 걸 맡게 주선해 드릴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돈이 엄청 깨질 텐데....”

“흉내만 내는 거예요. 굳이 무리해서 고급 자재를 쓸 필요는 없어요. 연하대에서 반응이 좋으면 차츰 가게를 늘려갈 걸 계획도 있어요. 그렇죠 사장님?”

“맞아요. 이런 가게가 최소 세 개에요.”


채연지가 류지호의 말을 확인해 줬다.


“좋다. 내가 한 번 알아보마.”


결국 고성재가 인테리어를 책임지기로 했다.

덤으로 고우찬과 김재욱까지 일거리를 얻었다.

웨딩비디오 비수기 동안 고우찬과 김재욱이 공사에서 잡일을 거들기로 했다.


“무슨 노가다야. 태권도에 전념할래.”

“그럴래? 그렇다면 검정고시 공부 시간도 좀 더 늘려보자.”

“아냐. 아빠를 도와야지. 자식 된 도리로다가.”


신효정도 합류했다.

그녀는 채연지측 변호사와 함께 프랜차이즈와 관련한 법률적 검토를 하기로 했다.

프랜차이즈까지 확대될 일은 아니다.

헌데 신효정이 나서면서 다소 사안이 커지게 됐다.

여러 사람들이 관여하는 일이라 교통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결론적으로 류지호가 나설 일이 없었다.

채연지가 능숙하게 정리했다.

오랜 시간 술장사를 해서일까.

확실히 채연지는 수완이 있었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채 사장님이라면 잘 해나갈 것 같네.’


❉ ❉ ❉


류지호와 친구들은 평양옥에서 가진 부모님들 망년회에 참석했다.

단순히 저녁식사를 얻어먹는 자리가 아니었다.

류지호는 식사를 마친 부모님들께 지난 두 시즌의 가온웨딩 결산내역을 돌렸다.

김철민은 익숙한 양식으로 정리된 회계 서류를 훑으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허어.”


황봉호 역시 마찬가지.


“이놈들 이거 참.....!”


깔끔했다.

그럼에도 중요한 내용은 다 들어가 있다.

류민상과 고성재의 눈에는 큼지막하게 써진 매출과 순이익만이 들어올 뿐.

웨딩비디오만 거의 백 개를 팔았다.

그 외에 돌잔치나 환갑잔치 촬영에서 20회 가량을 소화했다.

봄 시즌에 천만 원이 조금 넘는 매출을 올렸다.

가을 시즌에는 그 세배의 매출을 올렸다.

김철민이 인쇄된 서류에서 눈을 떼 아이들을 쳐다봤다.


“이거 누가 정리한 거냐?”


김준우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재정이가 했어.”

“재정이는 부기를 따로 배웠냐?”

“아니요. 그냥 상업시간에 졸지 않고 배운 걸 장부에 적은 것 뿐이고, 주로 경리를 보기로 한 지호 사촌누나가 정리했어요.”


황재정이 그 답지 않게 겸양을 떨었다.

다시 한 번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한 김철민이 침음을 삼켰다.


“허.... 우리 회사 경리보다 깔끔하게 정리했구나. 고생했다 재정아.”

“지호 사촌 누나가 한 거라니까요.”


황재정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들이 칭찬 받는 걸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황봉호 부부다.

사업을 하는 김철민을 제외하고 이 모임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이가 황봉호다.

그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벌면 얼마나 벌겠나 했다.

헌데 황봉호의 연봉보다 아이들이 많이 벌었다.

물론 이곳에 모인 부모들이 지인들을 소개시키고 여러모로 소문도 내고 도움을 주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결과는 고등학생 네 녀석이 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게 과연 녀석들의 수완으로 나올 수 있는 매출인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눈앞에 떡하니 결과물이 존재하니 따질 수도 없고.

결국 황봉호 역시 아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랍구나. 잘했다.“

“아직은 좀 소소해.”


황봉호는 뻔뻔한 얼굴로 대답하는 아들을 바라봤다.

아들은 사업이란 걸 하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덕분에 2학기의 중간고사는 전교 9등, 마지막 기말고사는 3등을 기록했다.

신포고 선생들이 황재정의 성적 상승이 자신의 덕분이라며 생색을 냈다.

서울대학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약속은 지킨 아들에게 무슨 명분으로 학업에 전념하라고 말해야 할지.

류민상 역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하구나. 아빠가 우리 아들을 과소평가 했던 모양이다.”

“부자지간에 미안한 게 어디 있어요.”


부모님들은 연신 침음성만 연발했다.


“허참.”

“이거야 원.....”


이제 보니 자신들은 아이들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사업이 잘 안되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다.

그래야 공부에 매진할 테고,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약속을 훌륭히 지킨 아이들을 보며 마냥 기뻐할 수만 없었다.

이젠 사업을 반대할 마지막 명분까지 사라졌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철민이 침묵을 깨고 나섰다.


“내년 계획은 있어?”

“올해까지 VCR이 250만대가 팔렸다고 해요. 대여점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비디오를 빌려보는 인구도 늘어나고 있어요. 내년부터 혼수품에 VCR이 추가되는 속도가 가속화 될 거래요. 저희와 협력관계에 있는 예식장들은 인천에서 제일 잘 나가는 곳들이고요. 내년에는 매출이 더욱 늘어날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응당 기뻐하고 격려해야 하는 부모님들이다.

그런데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류지호는 부모님들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딘지 씁쓸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류지호가 고우찬에게 눈짓을 보냈다.

고우찬이 상위에 서류와 영수증을 몇 장 꺼내놓았다.

황재정이 대표로 부모님들께 설명했다.


“관광버스 계약서예요. 온양온천 호텔도 지호가 예약해 놨고요. 모두 구정 설을 쇠시니까 이번 기회에 온천여행 다녀오시라고 저희가 준비했어요.”


류지호가 황재정의 말을 받았다.


“보약을 지어주자는 의견부터 금반지를 사드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행을 보내드리기로 했어요. 제주도는 내년에 보내드릴 수 있도록 해볼게요. 해외여행도요. 이번에는 가까운 온양온천에서 2박 3일 푹 쉬다 오세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고요.”

“자식들 효도 받으셔야죠.”


고우찬과 김준우도 말을 보탰다.

부모님들은 계약서와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때 류지호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년에 재정이하고 준우는 학력고사 준비할 거예요. 사진관에 얼씬도 못하게 할게요. 그리고 우찬이도 검정고시 꼭 패스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거고요.”


황재정과 김준우, 둘의 어머니들이 반색했다.


“내년 시즌은 사람을 좀 쓸 생각이에요.”


류지호가 단언하고 나서야 어머니들의 근심 어렸던 표정이 비로소 밝아졌다.

그제야 대견함이 담긴 시선으로 자식들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적당히 놀다 들어와.”

“위험한데는 가지 말고.”

“너무 늦게 들어오면 문 안 열어줄 거야.”


사인방이 어른들께 인사하고 먼저 망년회에서 빠졌다.

따로 가온웨딩 창업자들만의 망년회 자리를 가졌다.


“뭐로 먹을래?”

“삽겹살로 하자!”


고우찬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역시나.

류지호도 고깃집에 앉으니 절로 생삼겹살이 당겼다.

석쇠 위에서 삼겹살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그 위로 고우찬의 젓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황재정이 뜬금없이 사과했다.


“내가 잘못했다.”

“갑자기? 이 분위기에서?”

“네 말을 안 믿었던 것. 진짜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

“내가 너한테 쓸데없는 말한 적 있냐?”

“아마... 없을 걸? 명언 가져다 붙이는 게 재수 없긴 하지만 틀린 말은 없었지 아마?”

“우리 믿고 살자.”

“넵! 앞으로 충성을 다 하겠슴다.”

“충성까지는 필요 없고.”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판국이잖아.”

“그럼 절해. 엉아가 세뱃돈 줄게.”


하하하.


사인방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재밌기에 밖에서까지 들리게 웃어?”


박상우가 뒤늦게 합류했다.


“어서 오세요.”


자리를 잡은 박상우가 인사를 받는 대신 대뜸 물었다.


“어른들께 내복은 사 드렸냐?”

“당연하죠.”

“우찬이 넌?”

“난 아빠랑 술 한 잔 했어요. 옛날에 신문 돌리고 받은 첫 월급으로 내복 사줬거든요.”


박상우가 소주를 주문한 후, 사인방에게 일일이 따라주었다.


“자, 잔들 들어봐. 건배 하자.”

“올 한 해 수고하셨어요.”


가온웨딩의 핵심 멤버들이 힘차게 소주잔을 부딪쳤다.


“이번에는 민아한테도 선물했다는 거 아니냐. 화장품이 정말 끝내준다니까. 민아 얼굴색이 확 달라진 것 같아.”

“이래서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니까.”

“으하하하. 니들도 봤어야 돼. 화장품 선물을 받고 민아 눈 돌아가는 거.”

“그나저나 소연이가 지호 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던데.”

“내가 소연이 선생이야. 인마! 사제지간에 연애 끼워 넣지 마.”

“지랄하고 앉아있다.”

“그럼 내가 앉아있지 서 있냐?”


큭큭큭.


여학생과 인연이 없던 황재정이다.

이젠 다르다.

신포고 전교 3등을 찍으면서 여학교 문예부 사이에서 단연 화제다.

김준우야 원래 한 여자에게 금방 실증이 나버리는 터라 새로운 여자 친구를 물색 중에 있었고.

한참 이성에 관심이 많을 나이라서 그런지 여자들이 주요 화제였다.

반면에 류지호와 박상우의 대화 내용은 내년 봄 시즌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영세하지만 곧 인천을 넘어서 한국을 호령하게 될 겁니다.”

“그래그래. 무척 기대가 된다.”

“그러면 우리가 줄을 잘 선 셈이냐?“


황재정이 틱틱거렸다.


“하여간 이 자식은 혓바닥에 꿀을 발랐나....”

“미래의 훌륭한 CEO를 모시게 되어서 내가 영광이지. 우리 함께 잘해보자. 친구야~”

“나 비싼 몸이다. 나중에 서로 데려가려고 싸움 날지도 몰라. 알아서 모셔.”


신이 났는지 고우찬의 목소리가 들떠 있다.


“김칫국 마시지 말고. 우리는 일당백이 되어야 해. 다들 정신 바짝 차려.”


류지호가 은근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우찬이는 검정고시부터 패스하고.”

“좋은 분위기에 초치지 마! 이대로 쭈욱 가자!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위하여!

우정을 위하여!

가온 만세!

크하하하!


꼴값을 떠는 친구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류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류지호가 매일매일 꿈꾸는 미래.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을 수도, 그저 허무맹랑한 꿈일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쩌면 잡히지 않는 꿈과 이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무기력하고 게으른 사람에게도 꿈과 이상은 있다.

도전을 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지.

과거의 류지호가 딱 그 짝이었다.

이번 삶은 어떠할까.

사인방은 아직 애송이들에 불과했다.

오년 후 십년 후도 과연 그러할까.


“나랑 한 잔 더 하자.”


술자리를 파하고 헤어지려는데, 박상우가 류지호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근처 생맥주집에 자리를 잡았다.

500cc 두 잔과 간단한 안주를 시키고, 잠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류지호는 박상우가 왜 분위기를 잡는지 궁금했지만, 먼저 물어보진 않았다.


“일단 마시고...”

“올 한 해 고생하셨어요.”


박상우가 입가에 묻은 맥주 찌꺼기를 손바닥으로 슥 훔치고 입을 열었다.


“술을 왜 술이라고 하는 줄 아냐?”

“글쎄요. 그냥 순우리말인가.....?”

“술을 마시면 술술 속에 얘기를 털어놓는다고 해서 술이라더라.”


류지호가 ‘하하‘ 가볍게 웃었다.


“지호야....”

“예. 형님.”

“나 판 사진관 문 닫을란다.”

“판 사진관을 그만하신다고요?

“그래.”

“왜요. 내년 봄 시즌 예약이 상당한 걸로 알고 있는데.”


박성우가 대답 대신 꿀꺽꿀꺽 생맥주를 마셨다.


“혹시 작품 활동에 전념하시려고요?”

“그것도 그렇고...”


박상우가 뜸을 들였다.

류지호는 가만히 그가 이유를 설명하기를 기다렸다.


“내가 너희들 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


류지호는 영문을 몰라 박상우를 빤히 쳐다봤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예술가로서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이어진 박상우의 말은 그런 류지호의 생각에 뒤통수를 쳤다.


“판 사진관 네가 인수해라. 그리고 나를 직원으로 채용해.”

“예?”


류지호는 깜짝 놀라 안주를 집던 자세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나를 그냥 사진만 찍게 해주라.”

“좀... 당황스럽네요.”

“너는 비디오로 만족하지 않을 거잖아. 그렇지?”

“그렇기는 하지만...”


박상우가 아무런 사전 언질 없이 훅하고 치고 나오니, 류지호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생각한 건 꽤 됐어. 결정을 내린 건 정 이사를 만나고 나서지만.”

“신신의 그 정 이사님이요?”

“작가들 모임에서 네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네가 가온을 책임지고 있지 않으면 신신으로 스카우트하고 싶다더라.”


‘괜히 정 이사에게 예식장 사업에 대해 떠들었나?’


류지호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 이사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 동안 신신예식장으로 촬영을 나가면 그의 방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곤 했다.

앞으로 십년 안에 동인천 상권이 사그라지고, 신신예식장도 위기에 처한다는 사실을 슬쩍 흘렸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요?”

“그냥, 사진이 안 늘어.”

“혹시 슬럼프가 왔어요?”

“슬럼프?”

“크리에이티브 블록이요.”

“그게 뭔데?”

“예술가들이나 창작자들이 맞이하는 넘을 수 없는 창작의 벽. 한계에 다다랐다는 느낌이요. 계속해서 창작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창작의 벽 앞에서 방황하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늘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구도 하지 못하는 기발한 생각, 독특한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할 때가 오기도 한다네요. 아이디어나 심상들이 서로 겉돌아 삐걱대는 느낌이라나....”

“창작의 벽이라....”

“그것이 아니라면 매너리즘에 빠졌을 수도 있고요. 창작자들은 때때로 여유가 필요하고, 머릿속도 차분하고 조용해야 하는데 과도하게 작업을 많이 할 때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그러더라고요. 형님은 대형 스튜디오에서부터 이번 가을 시즌까지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았잖아요. 그 사이 어디쯤부터 창작의 벽 앞에서 방황했던 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류지호가 알 리가 없다.

창작의 벽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까.

흔히 충무로에서 발로 쓰는 시나리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취재도 열심히 하고, 인터뷰도 많이 해서 생생한 실제 세계를 담아낸 시나리오를 의미한다.

류지호는 시나리오를 발로 썼다.

취재와 열정으로 땀내 나는 시나리오를 썼다는 뜻이 아니다.

진짜 발로 쓴 것처럼 엉성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창작의 고통을 느낄 것도 벽에 막힐 일도 없었다.

다만 조감독을 시절 그런 헤드스태프들을 몇 명 보긴 했다.

어떤 영화음악 감독은 자주 창작의 벽에 부딪히며 괴로워했다.

그런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언제 슬럼프를 겪어나 싶게 훌륭한 음악을 뽑아냈다.

다작을 하면서 자기복제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가 슬럼프로 반복되자, 그런 이들은 자신만의 슬럼프 극복 방법을 찾아내는 것 같았다.


“내년 봄시즌 마치고 해외에 한 번 나가보면 어떠세요?”


류지호가 조심스럽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해외?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내가 한가하게 여행 다닐 처지가 아냐.”


박상우가 겪고 있는 것이 슬럼프라면 난제다.

류지호가 조언할 수 있는 영역의 밖이다.

되도 않는 말을 주절거릴 수는 있다.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오지 않을 터.

이런 건 말로서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결국은 당사자가 경험하고 체득해야 한다.

류지호는 뭔가를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여행 겸 연수죠.”

“연수?”

“계속 웨딩사진 찍으실 거죠?”

“먹고 살려면 그래야지. 나한테 맞는 사진이기도 하고.”

“그럼 대만이나 일본의 스튜디오들 한 번 돌아보는 걸 어떨까요? 미국이나 독일은 멀기도 하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고, 대만이면 적당하겠네요.”

“대만이라....”

“지금 스튜디오 포토그래퍼들이 대만의 야외촬영사진을 많이들 배우잖아요.”

“그렇긴 하지. 우리랑 정서도 비슷하고, 우리보다 야외웨딩사진이 많이 앞서있긴 해. 우리는 단순한 기념사진 수준이지만 거기는 일찍부터 미국의 웨딩연출 사진을 들여왔으니까.”

“한 달만 거기 스튜디오를 경험하면서 그들의 작업을 구경하는 거죠.”

“자극을 받고 오란 말이야?”

“모르죠, 저도. 거기서 무엇을 얻을지는 형님에게 달려있는 게 아닐까요?”


박상우가 생각에 잠겼다.

류지호는 그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생맥주를 마셨다.

살짝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낸 박상우가 생맥주잔을 들어올렸다.


“그건 그거고. 어떻게 할래?”

“가온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형님이 원래 벌던 만큼의 연봉은 보장 못해요.”

“알아. 내년에 재계약 하려면 보증금도 필요하고, 사람도 더 뽑아야겠지.”

“근데, 왜 가온이에요?”

“일찍 발을 담가야 뭐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겠냐?”

“다들 절 너무 높게 보네요. 높이 띄워줄수록 떨어지면 많이 아픈데....”

“자식이 엄살은... 술이나 마셔.”


챙.


두 사람의 잔이 경쾌하게 부딪쳤다.

밤이 늦도록 두 사람은 웨딩촬영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박상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마음의 짐을 약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온에 웨딩사진 작가라......’


박상우가 합류하면 본격적으로 패키지 상품을 팔수가 있게 된다.

당연히 매출도 늘어날 것이다.

단지 돈을 버는 문제만이 아니다.

이전 삶에서 없었던 인연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질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 밤.

곧 시작될 새해가 기대가 되는 밤이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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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69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10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79 194 27쪽
72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28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6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0 187 25쪽
69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0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4 210 17쪽
67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3 204 19쪽
» 충성을 다 하겠슴다! (4) +6 22.01.26 9,469 20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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