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연재수 :
962 회
조회수 :
4,127,535
추천수 :
127,041
글자수 :
10,687,409

작성
22.02.11 10:00
조회
8,415
추천
179
글자
19쪽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북아현동 웨딩타운.

이대 입구에서 아현동까지 이어지는 도로 양편으로 200개가 넘는 웨딩숍이 밀집해 있다.

80~90년대 국내 웨딩드레스 수요의 50% 이상을 공급한 웨딩드레스의 메카다.

한동안 류지호와 심재우가 이 동네 웨딩숍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웨딩숍의 사장들과 눈도장을 찍고, 안면을 익혀나갔다.

심재우는 인상을 찡그리는 법이 없이 항상 웃음 띤 얼굴로 상냥하게 상대를 대했다.

두서너 개의 웨딩숍에 집중적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또 오셨네요?”


웨딩숍의 여사장은 귀찮아하는 투가 아니다.


“하하. 식사하셨습니까?”

“안 그래도 배가 고프던 차였는데, 같이 드실래요?”

“그러시죠. 점심 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그 후 심재우는 웨딩숍 여사장에게 열정적으로 가온웨딩 스튜디오의 장점을 피력했다.

마치 베테랑 세일즈맨 같았다.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류지호까지 홀리는 느낌이다.

웨딩숍 여사장도 반쯤 홀려서 넘어온 거 같았다.

영업맨 심재우에 대한 재발견이랄까.


“다음에 찾아뵐 때는 계약서 가지고 뵙겠습니다.”

“호호호. 저희는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으니까, 언제든지 오세요.”


심재우가 정중하게 인사하고, 웨딩숍을 나섰다.


“수고하셨어요. 외삼촌.”

“세부사항은 조율해야겠지만, 나쁘지 않지?”

“웨딩드레스는 유행이 지나버리면 애물단지가 되는데, 그걸 도로 가져간다니. 우리로서는 당연히 환영할 일이죠.”


아현동을 벗어난 두 사람은 종로로 이동했다.

서울예식장은 정재계 인사들이 주로 결혼식을 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두 사람은 예약부를 찾아가 열심히 영업을 벌였다.

최근 심재우는 마음이 편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상사도 없고, 말썽을 피우는 현장 근로자도 없다.

사장인 조카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 진행비도 항상 두둑했다.


“맨땅에서 헤딩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네.”

“이미 인천에서 성공적인 두 시즌을 보낸 실적이 있으니까요.”

“느낌 괜찮지?”


류지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웨딩비디오가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원래 부유층에서 웨딩비디오를 찍고 있었지만, 남의 일처럼 여겼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


“특히 강남하고 종로 쪽이 분위기가 좋아.”

“우리 가온이 아니라 비디오를 찍는 것 자체에 대한 것이어서 그렇죠.”

“첫술에 배부르겠냐?”


어찌되었든 웨딩비디오가 가진 잠재력이 큰 것만은 확실했다.

강남으로 이동하는 심재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영업이 생각보다 재밌네.’


뒤늦게 자신의 적성을 찾은 것 같았다.

본래가 생산관리 업무를 보며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과 많이 접촉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영업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앞으로 자신 인생의 더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조카 등골 빼먹는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스튜디오의 개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개업과 동시에 스튜디오 영업을 시작하려면 준비를 착실히 해놓아야 했다.


❉ ❉ ❉


미아리 근처의 사진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규모 사진관이다.

류지호는 박상우의 후배와 명함을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나눴다.

30대 후반의 깡마른 체격, 말총머리의 사내가 사진관의 주인이다.

김종태란 이름의 사진사는 박상우와 강남의 스튜디오에서 상업사진을 작업하던 포토그래퍼였다.

수더분한 박상우와 달리 예민한 인상이다.


“대접할 게 이것 밖에 없어서....”


박상우가 김종태가 내온 믹스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언제까지 증명사진만 찍고 있을래?”

“먹고 살려면 별 수 있어?”

“여기 함께 온 친구가 우리 스튜디오 대빵이야.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함께 왔다.”


류지호가 나섰다.


“제가 가온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김 작가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미리 언질을 준 사실을 알고 있기에 류지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진 쪽 영업이나 기타 운영은 신경 쓰지 마시고, 오로지 촬영만 하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다 정리하고 그냥 밑으로 들어오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김 작가님은 사진작가협회 정식 회원이시고, 화보촬영 경험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대우는 실장급이고, 어시로 추천하고 싶은 분 있으면 데리고 오셔도 됩니다.”


김종태는 잠시 고심하다가 조심스럽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물었다.


“상우형에게 듣기로 스튜디오의 규모가 꽤 크다고 하는데... 자금은 어찌 충당하려고.....”


어린 나이가 김종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모양이다.


“제가 미국 월가 벤처캐피탈에서 투자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천 스튜디오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습니다. 그 부분은 박 작가님이 확인해 줄 수 있습니다.”


박상우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월급쟁이라면 사진관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곤란하십니까?”


류지호는 혹시 선친이 운영했던 곳이라던가, 뭔가 사연이 깃든 사진관인가 해서 물었다.


“아, 아닙니다.”


김종태에게 이 사진관은 문 닫아도 그만 열어도 그만이다.

오히려 월세와 전기세라도 아끼려면 문 닫는 게 이득이다.


“신생 스튜디오긴 하지만, 일거리는 확실히 보장하겠습니다. 일단, 한 달 정도 일하시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언제까지 답을 주면 됩니까?”

“3월 중순까지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중순까지?”

“정확히 중순까지 답을 주셔야 합니다. 3월 말에 스튜디오 개업을 할 예정입니다.”


류지호는 잠시 숨이라도 고르듯 말을 멈추었다.


“만약 저희 스튜디오로 들어오시면 작가님은 비수기에 해외연수를 가셔야 합니다.”

“....해외?”

“미국으로 보내드리고 싶지만, 거기는 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현재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지라. 가까운 대만이나 일본으로 가시게 될 겁니다.”

“허어~”


김종태는 놀란 얼굴로 헛바람을 내뱉었다.


“연수기간 동안은 월급을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연수비용은 회사가 대지만 말입니다.”

“......!”

“그리고 제가 뉴욕에서 사귄 꽤 잘나가는 포토그래퍼 친구가 있습니다. 그를 한국으로 초청해 교류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김종태는 너무 쉽게 답했다.

어려운 문제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에게는 처자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약서 써 줄 수 있습니까?”

“당연합니다.”


구도로 된 약속은 소용없다.

나중에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류지호는 미리 준비해 온 계약서를 김종태에게 내밀었다.


“꼼꼼히 읽어보세요.”


류지호는 계약서를 살펴보는 김종태를 남겨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양쪽 모두 만족할 조건이다.

수정할 것은 없었다.


“신사동 스튜디오가 공사 중이라 인천으로 오셔야 합니다. 여기서 좀 거리가 있지만, 1호선 타고 오시면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나흘 뒤에 오시면 됩니다.”


류지호가 건네준 종이에는 주안의 스튜디오의 약도가 그려져 있다.


“내일부터 하는 게 아니고요?”

“사진관 정리할 시간도 필요할 테고, 저희 스튜디오로 가져가실 것 있으면 리스트 뽑아서 주십시오.”

“네. 대표님.”

“그럼 인천에서 뵙겠습니다.”


류지호와 김종태가 손을 맞잡았다.

이 후로도 박상우와 김종태가 추천하는 포토그래퍼와 어시스트를 몇 명 더 만났다.

서울에서 예약이 없었기 때문에 당장 채용하지는 않았다.

여지만 남겨뒀다.

비디오 부분의 인력도 꾸렸다.

미리 추린 10명의 추천자 중에서 최종적으로 4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인천에서 한 번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외삼촌과 박상우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서 서울 스튜디오를 개업하는데 훨씬 수월했다.


❉ ❉ ❉


서울 스튜디오 개업을 준비하는 동안, 류지호는 광화문 근처에 위치한 프랑스문화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주한프랑스 문화원.

1968년에 건립된 이곳은 정부의 검열을 면한 몇 안 되는 기관이다.

때문에 예술인들, 특히 독립영화인들과 대학생들이 영화감상클럽을 결성해 영화 상영 날마다 모여 무삭제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을 벌였다.

7,80년대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은 독립영화인들과 예술영화를 보길 원하는 대학생들로 문정성시를 이뤘다.


“오늘 상영하는 영화는 뭐지?”

“<미남 세르쥬>.”

“샤브롤?”


류지호는 프랑스문화원에서 고다르, 트뤼포, 샤브롤, 로메르 감독들의 누벨바그 영화를 다시 감상하는 한편 누군가를 수소문했다.


“혹시 최준영이라고 아세요?”

“알지. 걔는 왜?”

“여기 자주 와요?”

“자주 와. 응? 저기 있네?”

“아~”


류지호는 야상 점퍼를 걸친, 낡은 청바지, 더벅머리의 20대 초반의 청년을 발견했다.

IP TV용 19금영화를 찍은 때 함께 작업했던 최준영 기사다.

충무로 변두리에서 류지호가 인연을 맺은 사람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친분을 나눈 선배다.


‘오랜만입니다! 최 기사님!’


류지호는 당장 달려가 아는 체를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아직 그와는 어떠한 친분관계도 없는 상태.

자연스럽게 그와 친해져야 했다.

영화상영이 끝이 나고, 사람들이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류지호는 의도적으로 최준영의 옆자리에 앉아 친분을 쌓아갔다.

독립영화의 대선배들과 곧 충무로로 포지션을 옮기게 될 감독 몇 명이 술자리에서 함께 했지만, 류지호는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두 사람은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비디오 찍을 줄 알아?”

“그냥 구경만 해봤지 찍어보진 못했어.”

“내가 비디오 실컷 찍게 해줄게. 그것도 따박따박 월급 받아가면서.”


류지호는 최준영을 인천으로 불러 웨딩비디오 촬영을 보여줬다.


“그냥 다큐로 찍으면 돼?”

“아리(Arriflex) 16미리 다루는 것도 독학으로 배웠다며? 비디오는 형한테 식은 죽 먹기일 거야. 형이라면 금방 배울 거야.”


류지호는 올해 출시된 소닉 8mm 핸디 캠 CCD-TR55의 사용법을 알려줬다.

87년부터 소형화가 가속화되던 소닉 캠코더의 사이즈가 올해부터 남성의 손바닥 크기로 대폭 줄어들었다.

류지호는 최준영의 손에 8mm 핸디 캠을 쥐어주며 말했다.


“형이 해봐.”

“내가 찍어 봐도 돼?”

“앞으로 형이 할 일이야.”

“좋았어!”


최준영은 신난 표정으로 비디오 촬영에 빠져들었다.

예식장에서 철수한 일행은 주안의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방위 나왔지? 그럼 일하던 중간에 군대 갈 일은 없겠네.”

“어떻게 알았어?”

“형이 말해줬으니까 알지.”

“쪽팔려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술 취해서 내게 다 털어놨어.”


군대 면제 받은 남자는 떳떳하게 자신의 면제 사실을 밝힌다.

반면에 방위소집 해제한 남자는 군대 이야기를 꺼리는 풍조가 있다.

마초 문화가 만연한 영화판도 그랬다.

류지호는 최준영이 현역을 나온 줄 알고 있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방위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걸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흔히 군 면제는 신의 아들, 방위는 장군의 아들, 현역을 어둠의 자식이라 표현했다.

류지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젠장, 나도 신의 아들, 장군의 아들이고 싶다.”

“스튜디오 차릴 정도면 집안에 빽 좀 있을 것 같은데?”

“없어 그런 거. 얄짤없이 현역 가야 돼.”


군대 문제.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별 수 없다.


“60만원 줄게. 그 대신 3년만 나랑 일 하자.”

“3년?”

“평생직장이 될지는 그때 가서 보자고.”

“일 못하면 나 잘라버리게?”

“그때 가서 형이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할 수도 있잖아.”

“월급 많이 주면 난 계속 여기서 일할거야.”

“그건 모르지.”


최준영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충무로에 들어왔었다.

이번에서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당분간 인천에서 하 기사 따라다니면서 배워.”

“하재근 기사?”

“응. 지금 어디서 살아?”

“동대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어.”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기 힘드니까 일단 주안에 여관 잡아줄게. 거기서 출퇴근하면서 웨딩촬영을 익혀.”


원래 좀 여유롭게 트레이닝 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인천의 예약률이 작년 가을 수준으로 잡히면서 상황이 변했다.

이번에 합류하게 된 촬영기사들을 투입시킬 상황에 놓였다.

류지호가 최준영을 주안역 근처의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 어때?”

“상관없어. 잠만 잘 건데 뭐.”

“가까운 곳에 식당도 많고, 스튜디오도 가깝고. 당분간 불편해도 참아줘.”

“고맙다. 취직도 시켜주고. 이렇게 신경써줘서.”


최준영이 이전 삶에서 류지호를 챙겨주었던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비록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나중에 회사가 커지면 숙소는 따로 마련해 줄게.”

“고맙다. 열심히 할게.”


류지호가 직접 최준영을 살뜰하게 챙겨주자 박상우가 물었다.


“그 친구 특별한 사람이야?”

“그냥 이번 한 번만 넘어가주세요. 준영이 형님은...”


‘제가 못나게 굴고 한심했을 때도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친구가 되어줬던 사람 중에 한명이니까요.‘


드디어 서울로 진출했다.

이제는 영화를 하면서 좋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찾아야 할 때다.

류지호가 아끼던 후배 몇은 영화판으로 나오려면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녀석들이 자신의 손이 닿는 범위에 닿을 때까지 류지호는 자신의 길을 가면 된다.


‘형이 먼저 앞 서 나가 있을게. 곧 만나자.’


❉ ❉ ❉


3월 말의 어느 일요일.

신사동 가온웨딩 스튜디오로 화환과 화분들이 줄지어 배달되었다.

스튜디오 3층에 시루떡과 돼지머리가 놓여 진 고사상이 차려졌다.

가온웨딩의 앞날처럼 활짝 웃는 얼굴의 돼지머리.

고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양쪽 귀에는 만 원권 지폐 두 장이 각각 꽂아져 있다.

김준우와 고우찬이 서울 시내 시장이란 시장을 모두 뒤져 인상이 좋은 놈으로 특별히 구해왔다.

고사상과 시루떡은 사인방의 어머니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태 차렸다.


“2층에는 상담실과 웨딩드레스 피팅룸, 메이크업&헤어를 할 수 있는 분장실이 있어요.”


류지호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며 압구정동 스튜디오를 소개했다.

야외웨딩촬영과 더 나아가 스튜디오 연출사진까지 염두 해 두고 과감하게 인테리어 공사에 투자를 했다.


“널찍하구나.”

“동 시간에 여러 팀이 상담을 진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나눠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했어요. 메이크업도 4명이 동시에 메이크업을 받을 수 있고, 웨딩드레스 피팅룸도 두 곳을 준비했어요. 턱시도 피팅룸도 따로 있구요.”

“손님들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네?”

“어차피 시간 단위로 쪼개서 예약을 받을 거라서 특별히 붐빌 것 같진 않아요.”


3층 전체를 촬영 스튜디오로 꾸몄다.

한쪽 면은 자연광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창문을 그대로 두었고, 그 앞에 세트용 가벽(fake wall)을 세워 다양한 창문 연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나머지 공간은 특별한 오브제를 세팅하지 않은 깔끔한 Cyclorama Wall로 인테리어 했다.


"층고가 높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당분간 연출사진보다 야외촬영에 집중할 계획이라 딱히 문제될 것 같지는 않아요.“


사인방 부모님들은 설명을 듣긴 하는데, 사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대견하고 기특하면서, 슬그머니 걱정도 든다는 사실.

암튼 4층은 업무를 볼 수 있는 사무실과 비디오 편집실이 세팅 되어 있다.

2층은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신경 썼다.

3층은 스튜디오 장비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4층 역시 사무용 집기보다 편집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했다.


“얼추 손님들이 왔으면 고사를 지내도록 하자꾸나.”


류민상이 축문을 직접 써왔다.

본인이 직접 낭독해 신명님께 자식의 사업번창을 기원했다.

인천에서 정종택 이사를 위시한 거래처 부장들이 서울까지 찾아와 줬고, 새롭게 신사동 가온의 협력업체가 된 아현동 드레스 숍과 압구정 미용실 원장이 참석했다.

채연지를 모시고 온 장문식의 모습도 보였다.


“저희 스튜디오 가온의 개업식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먼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사업을 크게 번창시켜 어른들께 효도하고, 어려운 이웃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저희의 앞길을 믿고 지켜봐 주십시오.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짝짝짝.


고사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아낌없는 박수로 가온웨딩의 앞날을 축복했다.

류민상이 지방과 함께 축문을 불살랐다.

류지호는 북어를 실타래에 묶어 2층 출입문 위에 매달았다.

손님들이 스튜디오 바닥에 간소하게 차려진 상에 흩어져 술과 머리고기를 즐겼다.


부욱.


류지호가 액자를 덮고 있던 종이를 뜯어냈다.

액자에는 명심보감 성심편의 한 구절이 붓글씨로 써 있다.


- 天不生無祿之人(천불생무록지인) 地不長無名之草(지부장무명지초).

(하늘은 쓸 데 없는 사람을 낳지 않고, 땅엔 이름 없는 풀을 자라게 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스스로가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남을 이르는 말로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의미다.


“사무실에 걸어 놓아라.”

“네 아빠가 한 달 동안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한지만 수 십장 버렸지 뭐니. 그거 한 장 만든다고 돈 엄청 썼단다.”


심영숙이 류지호를 향해 남편 흉을 봤다.


“아버지가 직접 쓰신 거예요?”

“하도 오랜만에 붓글씨를 써봐서 글자가 아름답지는 않다. 그냥 그림을 그린 꼴이 돼 버렸어. 글씨의 품격보다 이 아빠의 바람과 정성만 기억해주면 족해.”


류지호는 이 액자를 선물하기 위해 먹물을 갈고, 붓글씨를 쓰고 또 쓰기를 반복했을 아버지를 떠올렸다.

비록 대가들의 글씨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그 정성만은 감히 비할 수 없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을게요.”

“아서. 그냥 네 방 한쪽에 걸어놔.“

“제 손에 들어왔으니까 제 맘대로 할게요.”


류민상이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심영숙이 잠겨있는 방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비어있는 방은 뭐니?”

“따로 생각한 게 있어서 비워뒀어요.”


이 빈방은 웨딩사업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업무를 볼 공간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방 역시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방문 앞에 어떤 명패가 걸릴 지는 류지호만 알고 있었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거운 불금 맞이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5 사장님이자 감독님이야. +9 22.02.28 7,861 207 19쪽
94 영정사진. (8) +9 22.02.26 7,813 192 21쪽
93 영정사진. (7) +3 22.02.26 7,442 179 18쪽
92 영정사진. (6) +6 22.02.25 7,562 196 19쪽
91 영정사진. (5) +8 22.02.24 7,607 171 21쪽
90 영정사진. (4) +7 22.02.23 7,662 199 22쪽
89 영정사진. (3) +11 22.02.22 7,765 196 22쪽
88 영정사진. (2) +7 22.02.21 8,030 184 23쪽
87 영정사진. (1) +4 22.02.19 8,411 177 23쪽
86 기업에게 국경은 없다! +5 22.02.18 8,297 180 26쪽
85 광고는 역시 스타 마케팅! +3 22.02.17 8,390 191 27쪽
84 W.a.W Pictures. (3) +4 22.02.16 8,328 183 23쪽
83 W.a.W Pictures. (2) +2 22.02.15 8,394 167 20쪽
82 W.a.W Pictures. (1) +4 22.02.14 8,584 184 17쪽
81 자네는 주식투자를 뭐라 생각해? +8 22.02.12 8,469 191 17쪽
»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3) +3 22.02.11 8,416 179 19쪽
79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6 22.02.10 8,622 177 23쪽
78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1) +7 22.02.09 8,881 167 25쪽
77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9 22.02.08 8,769 187 21쪽
76 미래를 사고 싶어요. (2) +5 22.02.07 8,870 188 21쪽
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68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09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79 194 27쪽
72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28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5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0 187 25쪽
69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0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3 210 17쪽
67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3 204 19쪽
66 충성을 다 하겠슴다! (4) +6 22.01.26 9,468 205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