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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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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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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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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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새벽 5시 기상.

2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일상이다.

그런 버릇은 시차도 무시하는 걸까.

뉴욕에서의 두 번째 날에도 류지호는 어김없이 똑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머리가 조금 무겁기는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류지호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어제 산책하면서 봐두었던 북쪽 정원으로 향했다.

넓은 정원을 천천히 달려 인공조림 지역의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달렸다.

작은 숲처럼 조성된 공터로 들어가 태권도로 몸을 풀었다.

아침식사는 단출하게 윌리엄과 먹었다.

대저택이란 것만 빼면 평범한 아침 일상이다.

거기까지다.

곧바로 특별한 날들이 펼쳐졌다.

월스트리트 11번가.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초고층 빌딩 앞에 파커 저택을 출발한 세단이 멈췄다.

193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르데코 양식의 이 빌딩은 동부의 유력가문 그레이엄의 소유다.

G&P 투자은행의 본사이자 캐서린이 공동대표로 있는 로펌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세단에서 내린 윌리엄과 류지호가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고풍스러운 고급스러움.

저택만큼은 아니지만 집무실 역시 고급스러웠다.


“잠시 티타임을 갖자구나.”

“업무를 보셔야 하지 않아요?”

“이곳에서 난 크게 할 일이 없단다.”


두 사람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 티타임을 가졌다.

말만 그랬지 실제로 티타임이 끝나자마자 비서가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윌리엄이 서류를 검토하는 사이 류지호는 한쪽 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통유리로 향했다.

통유리창 너머로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가 펼쳐졌다.


‘89년이라도, 뉴욕은 뉴욕이네.’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 동안 맨해튼을 구경했다.

뉴욕의 마천루를 구경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저 아래로 개미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다들 부지런히도 움직이네.’


자신은 결코 게으르게 살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등 뒤에서 윌리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보고 있어?”

“이것이 매일 할아버지가 보시는 세상이군요?”

“네게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 게 많을 거다.”

“......?”

“지호야.”

“예. 할아버지.”

“어른은 아이에게 서는 법은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걷는 법 달리는 법 날아오는 법은 가르쳐줄 수 없어. 그건 스스로 깨우쳐야 한단다.”

“열심히 할게요.”


류지호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렇게 말했다.


똑똑.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캐서린이 들어왔다.


“지호, 나가자.”


캐서린이 다짜고짜 류지호를 이끌었다.

류지호가 의아한 얼굴로 윌리엄을 돌아봤다.

윌리엄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


“어디로 가는데요?”

“뉴욕을 경험해 봐야지.”


캐서린이 류지호를 G&P 회사 곳곳으로 인도했다.

비서 로라가 있는 듯 없는 듯 수행했다.

G&P 투자은행은 선물거래부터 주식, 채권, 부동산, 캐피탈에 이르기까지 주로 그레이엄과 파커 가문의 자산을 운용하는 비공개 투자회사다.

그렇다고 소규모 헤지펀드나 자산운용사라고 얕보면 큰코다친다.

두 가문에서 맡긴 자금만 무려 79억 달러(89년 환율 5조)에 달했다.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자금까지 하면 어마어마한 자산을 운용 중이다.

인종의 용광로란 표현이 가장 잘 맞는 뉴욕.

G&P도 예외가 아니다.

각 사무실마다 다양한 인종, 학벌, 성별로 이루어진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사업별로 나눠진 층을 옮겨 다닐 때 마다 캐서린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애널리스트는 보통 5만 달러부터 시작해.”


이 당시 환율로 대략 3,500만 원 정도다.

한국의 대기업 부장급 연봉 수준이다.


“작년에 브라이언은 89만 달러를 가져갔어. 선물거래에서 대박을 쳤거든. 팀장은 연봉이 50만 달러야. 보너스 시즌이나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면 연봉의 몇 배를 가져가지.”


평범한 십대였다면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다.

부러워하기도 하고, 선망의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

헌데 류지호는 그런가보다 할 뿐.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월가에서는 항상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자기 몸값을 키워나가는 것이 당연한 문화야. 하지만 저기 보이는 애널리스트들의 절반 정도가 패배자로 전락해 월가를 떠나지.”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놀라운 게 뭔 줄 알아?”

“삶이 망가지겠죠?”

“천만에.”

“.......?”

“월가를 저주하고 떠났던 이들의 절반 정도는 MBA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다는 거야.”

“왜 그런 거죠?”

“황금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은 새장 안에 갇힌 한 마리 새에 불과하거든.”


지독한 독설.

어쩌랴 월가에서는 그것이 사실인 것을.

사실 류지호는 월가에는 관심이 없었다.


“혹시 G&P에서 영화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도 투자하나요?”

“했었지.”


캐서린은 과거형으로 말했다.

현재는 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말썽꾸러기 동생이 있어. 그 녀석이 엉뚱한 일을 많이 벌이면서 몇 번 곤란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어. 막내 때문에 우리는 할리우드에 관심을 끊었지. 대신 빅6 지분을 조금씩 가지고는 있어. 할리우드 빅6의 수익은 안정적이거든.”


빅6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여섯 곳을 뭉뚱그려서 부르는 별칭이다.


“동생이란 분이 영화에 투자를 했던 모양이군요.”

“그걸 투자라고 할 수 있을까? 돈을 뿌렸어.”

“돈을 뿌려요?”

“온갖 잡스런 이들과 어울리면서 흥청망청 돈을 펑펑 써댔지. 차라리 그 돈으로 예술 활동을 지원했으면 좋았을 걸... 지호는 절대 막내와 어울리지 마.”

“남동생 말고 다른 형제도 있어요?”

“3남 1녀. 내가 셋째야. 첫째 제프는 영국에 살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고 있고 둘째 앤서니는 아버지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지. 그리고 막내 맷은... 후우. 망나니야.“


캐서린은 말끝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호는 절대 막내와 어울리지 마. 절대!“


캐서린이 계속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너무 신신당부를 하는 바람에 도리어 호기심이 생길 정도다.

G&P 사무실과 캐서린의 로펌까지 구경을 마치자 비서 로라가 다가왔다.

캐서린에게 뭔가 보고를 하더니 대뜸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일행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때마침 고급 세단 한 대가 코앞에서 멈췄다.

윌리엄과 함께 맨해튼으로 타고 왔던 바로 그 세단이다.

조셉이 차문을 열어주자 레오나가 튀어 나왔다.

먼저 엄마 캐서린부터 안아주고, 이어 류지호도 안아주었다.


“학교는 재미있었니?”

“아니, 재미없어.”

“왜?”

“큰오빠가 없으니까.”


류지호는 말도 참 예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 레오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주말에 놀아 줄게.”

“정말?“

“그래도 되죠?”


캐서린이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류지호가 차문 옆에 서있는 조셉과 눈인사를 나눈 후 차에 탑승했다.

레오나도 얼른 달려가 뒷좌석에 올라타고, 마지막으로 캐서린까지 차에 탔다.

류지호는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댔다.

딱히 행선지가 궁금하진 않았다.

세단이 도착한 곳은 최고의 백화점 체인이라는 메이시스 맨해튼이다.


“쇼핑이라도 하시게요?”

“따라와.”


캐서린은 백화점 정문이 아닌 건물 옆면으로 류지호를 이끌었다.

가드가 서 있는 출입구다.

그들은 캐서린이 나타나자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레오나 역시 이곳이 익숙한 모양이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캐서린을 앞질러 걸었다.

일행이 도착한 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마네킹이다.

각기 다른 원단과 디자인의 남성 수트 상의가 입혀져 있다.

널찍한 공간의 선반에는 넥타이들이 돌돌 말려 진열되어 있었고, 샘플 와이셔츠들이 네모반듯하게 접혀 보기 좋게 놓여있다.


“......!”


류지호는 처음 와보는 고급 테일러 숍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소한 소품들도 하나같이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파커가 남자들 단골 테일러 숍이야. 지호 너도 기억해 둬.”


자신이 왜 기억해야하는지 어리둥절한 류지호다.

캐서린은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큰오빠, 가.”


류지호는 영문을 모른 채 레오나가 이끄는 대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언제 움직였는지 비서 로라가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다.


“오셨습니까? 부인.”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매니저가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에 보는 군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저야 늘 변함없지요. 파커 부인께서는 많이 바쁘셨던 것 같습니다. 요즘 통 뵙기가 어렵네요.”


매니저가 자연스럽게 일행을 소파로 안내했다.

캐서린이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며 입을 열었다.


“업무 때문에 통 여유가 없었어요. 가끔 본가에 가는 거 빼면 꼼짝없이 회사와 집만 오가고 있네요.”

“월가 사람들은 항상 일에 빠져 살죠.”

“월가 사람들은 장이 마감하면 쉬기라도 하지. 변호사는 쉴 수도 없답니다.”


매니저는 캐서린 뒤에 서 있는 류지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같이 오신 분은 파커가 지원하는 이번 년도 장학생입니까?”

“아뇨. 전...”


캐서린이 류지호의 말을 자르며 명쾌하게 대꾸했다.


“가족이에요.”


그녀의 말이 류지호를 크게 당황시켰다.

특별한 손님도 아니고.

가족이라니.


“오늘 이 청년에게 수트를 한 벌 맞춰 줄까 해서 왔어요.”

“캐서린, 전 아직 십대라구요. 수트 입을 일이 없어요.“

“없긴 왜 없어. 사업 한다며?“

“수트를 차려입어야 할 정도 거창하지 않은데...”

“선물이니 그냥 받아 들여.”

“정말 괜찮아요. 한국 가서 따로 맞춰 입을게요.”

“앞으로 이런 경험을 많이 해야 할 거야.”


캐서린의 말투는 단호했다.


“거절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냐. 상류사회의 매너는 지금껏 지호가 살아왔던 삶을 모두 리셋 시켜야 할 정도로 녹록하지 않아.”


류지호의 입이 곧바로 다물렸다.

캐서린이 대화 상대를 매니저로 바꿨다.


“최근 예약상황은 어떤가요? 많이 밀려 있나요?”

“항상 기다리시던 대로 6주면 완성될 것 같습니다. 급하시면 4주 안에 가능하긴 합니다.”


질문한 사람은 캐서린이었지만, 매니저는 류지호를 보며 대답했다

완성될 옷을 입을 사람이 류지호인 만큼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 같았다.

캐서린도 류지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일찍 안 됩니까? 제가 뉴욕에 체류하는 시간이 2주뿐이라서.”

“알겠습니다.”


시원하게 대답한 매니저가 마네킹에 걸려있던 줄자를 자신의 목에 걸었다. 류지호는 몰랐지만, 이곳에서 안 되는 것은 없다.

그만큼 비용이 늘어날 뿐.


“체촌 하겠습니다.”


류지호는 매니저가 가리키는 원형의 단 위에 올라섰다.

매니저는 류지호의 어깨부터 시작해서 신체 각각의 사이즈를 잰 후 공책에 기록했다.

그동안 캐서린은 원단 샘플과 커프스, 단추 샘플을 살펴봤다.


“어떤 걸로 보여 드릴까요? 카노니코, 트라발도 토냐 120수...”

“다 가져오세요. 모두 이탈리아 원단이군요? 로로 피아나도 있어요?

“4벌 정도 제작할 여유분이 있습니다.“


류지호로서는 이태리 원단이 좋은 건 알겠는데, 얼마나 고급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수트의 원단과 디자인을 고민하는 캐서린이 꽤나 즐거워 보인다는 것.

치수를 재던 매니저가 류지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파커 부인께서 직접 여기까지 데려오고, 정말 아끼는 가 봅니다.”

“아.... 네. 뭐.”


류지호는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화제를 돌릴 수밖에.


“파커 가족이 이곳에서 자주 수트를 제작하나 보죠?”

“종종 오십니다. 윌리엄께서도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실 때까진 단골처럼 들러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할 때라....”

“1929년에 개업했으니까 올해로 60주년이 되는 셈이군요.”

“대를 이어 테일러 숍을 운영하는가 보군요?”

“우리 가족의 긍지가 이 숍에 담겼죠.”

“유명한 분들도 많이 오시겠네요.”

“물론입니다.”


매니저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긴 당장 파커 가족만 해도 미국에서 알아주는 부자다.

이곳의 단골이라면 평범할 리가 없다.


“원단부터 결정해 볼까요?”


캐서린은 매니저와 수트 원단에서부터 색상, 단추까지도 꼼꼼히 따졌다.

그 세심함이 꼭 전문 디자이너를 연상시켰다.


“체형이 마른 편이라 딱 맞는 실루엣이 좋겠습니다.”

“십대지만 사업을 시작했어요. 고리타분하게 보이지 않게 스타일링 해 주세요. 지호가 한 번 말해봐.”


류지호는 상대에게 어떤 인상으로 보여야 할까를 고민했다.

일단 어려보이는 외모를 커버할 수 있을 것.

애송이처럼 보이지 않는 이미지 메이킹.

현재 대한민국의 정서와 감각을 고려해 너무 튀지 않는 디자인.

그러면서도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스타일.

유연하게 보이면서도 상대방의 신뢰를 살 수 있는 자연스러움.

류지호는 자신의 생각을 다소 추상적으로 이야기 했다.

메모를 마친 매니저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장인(匠人)은 오랜 세월 노하우를 쌓은 한 분야의 전문가다.

60년 동안 테일러 숍을 운영했다면, 온갖 주문을 다 소화했을 터.

매니저는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류지호는 캐서린을 향해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맡기면 된다는 의미다.


“가봉은 오늘처럼 숍에서.... 아니면 저희가 찾아뵐까요?”

“로라를 통해 일정을 맞춰보도록 하죠.”


가봉과 수정 날짜까지 듣고 나서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니저는 가게 입구까지 일행을 마중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믿어요.”


캐서린이 매니저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테일러 숍 방문은 시작일 뿐.

쇼핑은 5일간 이어졌다.

류지호로서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캐서린은 뉴욕의 명품백화점이란 백화점은 모조리 구경시키겠다는 일념인 것 같았다.

뉴욕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명한 백화점의 명품관들.

첫날 맞춤정장을 의뢰한 메이시스(Macy's)부터 개장한지 65년 된 삭스(Saks), 개장한 지 무려 80년이 넘는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등 기본 60년에서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백화점들을 데리고 다녔다.


“지호, 이쪽으로!”

“이건 너무 비싼 브랜드에요. 전 아직 십대라고요.”

“오호~ 그래도 제법 맵시가 사네, 지호에게 잘 어울려. 이거 사자.”

“......!”

“이 시계는...”

“......”

“구두도 필요하고.”

“......”

“캐주얼 수트도 필요하지?”

“.......”


인천 양키시장에서 파는 모조품이 아니다.

모두 진품이다.

게스(Guess) 청바지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고급 브랜드, 계절별로 수십 벌을 갈아입으면서 캐서린은 류지호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골랐다.


“지호, 이것 좀 먹어봐.”

“대체 이건 어디 음식입니까?”

“나도 몰라. 메뉴 추천 자문서비스를 받았으니까.”


뉴욕에는 최상위 부자들을 위한 오만가지 프라이빗 서비스들이 존재했다.

부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맛은 물론 건강, 다이어트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단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의 식사 습관도 고려해야 한단다.

뉴욕에는 고객이 찾는 식당을 미리 방문해 그들에게 가장 맞는 메뉴를 파악해 추천하는 직업이 따로 있었다.

심지어 레오나의 장난감 추천·구매 대리, 어린이 파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암튼 류지호는 유명 식당에서 비싼 스테이크를 썰고, 시계를 선물 받고, 당장 필요도 없는 정장을 사 입고, 구두와 운동화를 사 신었다.

그리고 고급 요리를 맛보았고,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상쾌한 향이 가득한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뉴욕이다.

최신 유행하는 옷들을 한자리에서 다 입어 볼 수 있었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그럼에도 스포츠카 시승도 했다.

류지호는 수동도 꽤 운전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운전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면허로 시승을 가능하게 한 파커와 그레이엄 가문의 권력이 더 놀라웠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무려 로열석에서 감상하기도 했다.

매춘을 제외한 모든 것.

손가락 까딱하는 것만으로 다 할 수 있는 신분이 파커라는 걸 알게 됐다.

가는 곳마다 류지호는 파커 가족과 같은 대우받았다.

며칠간의 뉴욕 생활은 류지호에게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류지호의 기분을 표현하자면...


[너무 아름다워서 실신할 지경!]


이었다.

헤이우드 알랜의 1979년 작 <Manhattan>의 대사다.


“쇼핑은 그만 해요!”


결국 류지호의 입에서 질린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백화점과 초호화판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라, 저는 뉴욕의 아름다운 모습과 일상을 경험하고 싶다고요!”


5일째 되는 날, 점심식사 자리.

류지호가 호화, 사치의 끝을 보여주는 쇼핑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이런 삶이 뉴욕 상류사회의 일상이야. 궁금하지 않았어?”

“이런 가치도 없는 짓이 무슨 일상이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가치가 왜 없어?”

“부자에게는 시간이 금보다 더 가치가 있잖아요. 낭비에요.”

“부럽지 않아?”

“안 부러워요.”

“에이~ 그럴 리가.”

“차라리 이렇게 돈지랄 할 바에는 노숙자들에게 달러를 뿌리는 게 나아요.”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거야?”

“뭐든지 정도가 있죠. 즐겁지도 않고. 명품을 입고 다닌다고 사람들에게 자랑해 봐야 내게 돌아오는 건 질투와 부러운 시선뿐인데. 그건 졸부들이나 하는 짓이라고요. 이건 쓸데없는 사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지금 네가 말한 것들이 월가에 들어오는 청년들이 꿈꾸는 삶인데도?”


어딘지 장난스러운 분위기.

류지호는 며칠간의 일들이 일종의 시험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들켰나?”


캐서린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자연스럽지가 않잖아요. 캐서린처럼 바쁜 분이 며칠을 쇼핑에만 시간을 쓸 리 없죠. VVIP는 보통 비서를 통해 구입하거나 담당 브랜드 직원이 있을 텐데. 쓸데없이 저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고요.”

“쇼핑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해.”

“명품관 투어와 호화판 일상에서 어떤 격렬한 감정을 갖기를 바라셨나요? 아니면 뉴욕부자들의 사치를 대하는 제 태도를 확인하고 싶으셨어요?”

“마약과 콜걸도 경험시키려고 했는데. 아쉽네.”

“네에엑...!‘


류지호가 깜짝 놀라 괴성을 질렀다.


“호호호, 농담이야. 설마 그런 짓까지 했겠니?“


캐서린이 아닌 대니얼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할 누군가가 시험했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이제 그만 하는 거죠?”

“글쎄...”

“지금까지 제 격렬한 반응을 충분히 즐기셨을 거라 생각해요.”

“아직 테스트가 많이 남았는데....

“탈락시켜주세요!”

“.....”

“앞으로 혼자 다닐 겁니다. 숨 막혀서 안 되겠어요.”


격렬하게 반항을 하고 나서야 겨우 캐서린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혼자는 위험해.”

“조셉과 다닐게요. 할아버지 수행하는 시간 외에 함께 투어를 하겠어요.”


이후로는 윌리엄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 조셉과 단 둘이 다녔다.

그런 후에야 류지호는 마음 편한 뉴욕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컬럼비아 대학과 뉴욕대학 탐방을 했지만,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은 가지 않았다.

미국 장서부문에서 세계 3번째인 뉴욕공공도서관도 구경했다.

류지호는 영화 속에서 봤던 뉴욕 곳곳의 명소들을 실컷 구경했다.


작가의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연휴 마지막날 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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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W.a.W Pictures. (2) +2 22.02.15 8,394 167 20쪽
82 W.a.W Pictures. (1) +4 22.02.14 8,584 184 17쪽
81 자네는 주식투자를 뭐라 생각해? +8 22.02.12 8,469 191 17쪽
80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3) +3 22.02.11 8,415 179 19쪽
79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6 22.02.10 8,622 177 23쪽
78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1) +7 22.02.09 8,881 167 25쪽
77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9 22.02.08 8,769 187 21쪽
76 미래를 사고 싶어요. (2) +5 22.02.07 8,870 188 21쪽
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68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09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79 194 27쪽
72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28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5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0 187 25쪽
»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0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3 210 17쪽
67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3 204 19쪽
66 충성을 다 하겠슴다! (4) +6 22.01.26 9,468 20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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