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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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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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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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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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기업에게 국경은 없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사인방의 근심거리 하나가 해결됐다.

바로 고우찬이 검정고시를 패스한 것이다.

고우찬의 검정고시 합격을 위해 사인방이 힘을 합쳐서 일궈낸 성과다.


“드디어 해방이다. 이제 난 자유야!”


합격통지서를 받은 고우찬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찰거머리 류지호, 악마 같은 황재정, 잔소리꾼 김준우. 니들과는 이제 바이바이.”


그 꼴을 두고 볼 황재정이 아니다.


“아직 안 끝났어. 학력고사 준비해야지.”

“하여간.......”


김준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대학 들어가려면 학력고사를 봐야 할 거 아냐.”

“실기로 대학 갈 수 있다며?”

“누가 그래. 실기만 보는 대학이 어디 있냐?”


고우찬이 류지호를 째려보며 짜증을 부렸다.


“실기로 붙는 대학 있다며?”

“학력고사 안 봐야 된다고는 안 그랬어.”

“아오. 이 구라쟁이, 사기꾼 같은 놈!”

“전기대학은 좀 힘들지 몰라도 후기대학은 한번 노려보자. 정 안되면 전문대도 염두에 두고. 학력고사는 체력장 합해서 200점, 전문대는 150점만 받도록 해보자.”


황재정이 고우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용기를 북돋았다.


“많은 거 안 바래. 반타작만 해. 거기에 금메달 하나 따두고.”

“그게 격려냐? 약 올리는 거지?”

“공부가 어렵냐? 공부가 제일 쉬워.“

“어랍쇼? 재정이 이 놈 말한 거 봐. 지가 공부 좀 한다고 공부가 제일 쉽데.”


김준우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제일 쉬운 거야. 어른들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 지호 뺑이 치는 거 보면 모르겠냐? 남의 돈 먹는 게 쉽겠냐 아니면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오로지 공부만 하는 게 쉽겠냐?“


친구들의 시선이 류지호에게 향했다.

류지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

황재정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용감한 놈이 미인을 얻는 시대가 아니야. 별 볼일 없는 놈이 미인에게 수작부리면 치한으로 쇠고랑 찬다. 태어나길 잘난 놈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후천적인 노력으로 잘난 놈이 되려고 발버둥이라도 쳐봐야지. 너도 민아랑 계속 만나려면 노력을 해야 돼. 개털에게 인생을 맡길 여자는 없어.“

“내가 민아 먹여 살리지 못할 것 같아?”


여자 친구를 언급하자 급격하게 진지해지는 고우찬이다.


“이주희 남편 봤지? 프리스턴 나왔어. 그리고 뉴욕에서 자동차 딜러로 제법 잘 나간대. 너도 민아를 놓치지 않으려면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거야.”


김준우가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들었다.


“솔직히 민아가 이주희와 비교될 정도는 아니지 않냐?”

“우리 민아가 어때서? 넌 여자 친구도 없잖아.”


고우찬이 김준우에게 화살을 돌리며 발끈했다.


“안 사귀는 거지 누구처럼 못 사귀는 거 아니거든.”


김준우의 말 화살이 류지호에게 꽂혔다.

친구들의 시선이 모여들자 류지호는 점잖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다연이가 나 따라다닌 거 너희들 잊어먹었냐?”

“아참, 이 놈 소연이이랑 야리꾸리 하지?”

“쥐뿔도 없는 놈이 엄청 튕겨.”

“바람둥이 자식.”


류지호는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친구들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당할 수 없는 일.


“연애 한 번 못 해본 재정이도 있어 이것들아.”


황재정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재정이 너도 서울대 나오고, 외국대학에서 박사 받고 가온의 최고경영자 되면 이주희가 문제겠어? 전윤희, 최수희, 이미현도 꼬실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왕조현도. 그건 불가능할라나 말이 안 통하지?”


김준우가 위로인지 화를 돋우는 것인지 모를 말을 했다.


“힘내라, 공부랑 연애하는 나의 친구 재정아.”


고우찬은 약을 올렸다.


“엉아만 믿어. 나중에 영화감독 돼서 여배우 소개시켜 줄게. 그때까지만 솔로로 어떻게든 버텨봐.”


류지호가 악의 없는 농담으로 쐐기를 박았다.


“이것들이! 여자에 환장을 했나?! 꺼져 새끼들아. 수준 안 맞아서 못 놀겠네.”


류지호는 토라진 황재정을 보며 생각했다.

제수씨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될지.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류지호와 친구들은 때가 되면 인연을 만나 망설이지 않고 사랑을 시작할 테고.

열렬히 사랑을 할 것이고.

영혼을 바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할 것이다.

성공한 인생을 살 것이다.

이 대목에서 류지호는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애들아, 너희들이 결혼하면 웨딩비디오는 내가 찍겠지? 그럼 내 결혼식은 누가 찍어 주냐?”

“그냥 네가 알아서 찍어!”


황재정이 신경질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 ❉ ❉


오동석이 칸 필름 마켓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로 출국하는 날이다.

류지호는 오동석을 배웅하기 위해 김포공항 와 있다.

5월이 결혼의 피크 타임이라 가온웨딩을 비울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지호~”


매튜가 여행용 가방을 끌고 김포공항에 나타났다.

행색을 보니 한국을 떠날 모양이다.


“드디어 뉴욕으로 돌아가요?”

“아니. 나도 프랑스 가.”

“거긴 왜요?”

“세상 곳곳에 나의 애인이 있지.”

“......?”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스텔라가 파리에 살고 있지. 운명의 장난으로 우린 친구로 남기로 했지만 여전히 난 그녀가 그리워.”

“차인 건 아니고요?”

“신의 심술이야. 더 이상 추궁하지 마.”


류지호는 매튜가 자유롭게 사는 건지 그냥 막 사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다만 그가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랄 뿐.

여권과 항공권을 확인한 오동석이 미안함을 담아 입을 열었다.


“대표님도 함께 가시면 좋은데 말이죠.”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겁니다.”


영화를 사러가는 게 아니다.

자신이 찍은 영화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당당하게 레드카펫을 밟고 싶은 것이 류지호의 솔직한 심정이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아요. 편하게 돌아보고 와요.”

“좋은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성과는 신경 쓰지 마시고, 각국의 업계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주력해주세요.”

“맡겨 주십시오.”


오동석이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처럼 출국장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지호, 나도 잘 갔다 올게.”


그 뒤를 매튜가 껄렁하게 뒤 따랐다.

매튜가 빨리 방황을 멈추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가기를.

그 곳이 어디인지 류지호는 알지 못했지만.


“래리, 혹시 내가 매튜의 사연을 알면 안 됩니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래리는 시침 뚝 떼고 모른 척 했다.


“진짜 몰라요?”


래리는 침묵을 지켰다.


“알려주면 안 되는 거라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할 때까지 추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류지호에게 결국 래리가 항복했다.

래리는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이 어린 사업가를 어떻게 하면 매사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했다.


“알고 있지만 말해주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의 프라이버시입니다.”

“제가 직접 맷에게 물으면 말해줄까요?”

“글쎄요. 그건 매튜에게 직접 확인하십시오. 쓸데없이 헛힘 쓰지 말고 해야 할 일에 전념할 것을 조언합니다. 류 대표.”


매튜가 프랑스로 떠난 며칠 후.

한미통상실무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경제관료와 경제인들이 내한했다.

경제인들 사이에는 대니얼 회장과 제임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제야 매튜가 왜 한국을 떠났는지 류지호는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온다고 하니까 도망갔구나.’


아버지를 피해다는 것이 진정 자유롭게 사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류지호는 매튜와 만나게 되면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질풍노도의 십대 반항아냐고.


“큰오빠아~”


레오나가 달려와 류지호의 품에 안겼다.

경제사절단에 포함 된 아빠를 따라서 한국에 온 레오나다.


“내가 한국에서 일을 하는 동안 레오나를 부탁해.”

“물론이에요. 레오나는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면 될 거 같아요. 마침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지내는 데도 불편함이 없을 거고요.”

“레오나, 지호하고 어른들 말 잘 들어야 한다.”

“응. 아빠는 가서 일해.”

“뽀뽀 안 해주는 거야?”


레오나는 제임스의 말을 무시했다.


“큰오빠, 우리 놀러가.”


레오나가 류지호의 손을 잡아끌며 졸랐다.

제임스는 딸의 무신경함에 금세 시무룩해졌다.

딸에게 외면당한 제임스는 기운이 빠진 채 비즈니스 세계로 향했다.

이번 한미통상실무회담은 꽤 많은 것이 논의될 예정이다.

미국 측 경제관료들이 한국 정부를 압박을 가하고 한편에서는 미국 기업인들이 대규모 투자 의사를 보임으로써 채찍과 당근책을 펼치려는 의도로 읽혔다.

미국 경제관료들과 함께 입국한 제임스는 빠듯한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재계 10위 권 대기업 회장들과 회동을 하고, 한국의 석학들이 주최하는 경제세미나에 참석해 시장 개방에 대해 역설하기로 되어 있다.

참고로 이번 제3차 한미통상실무회담에서 외국인 투자제한 철폐 및 서비스시장 개방에 합의하게 된다.


부우웅-


신효정이 미리 준비해 둔 승용차를 타고 인천의 연수동으로 향했다.

택지개발지구의 입주가 한창인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이 당시 인천에서 보기 드문 14층 고층아파트 단지다.

레오나가 거실로 들어오자, 류아라가 비명을 질렀다.


“꺄악! 레오나!”

“아라!”


두 소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방방 뛰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애들아, 아파트에서 그렇게 뛰면 안 돼.”


심영숙이 좋은 말로 타일렀지만, 소용없었다.

류아라는 엄마 말을 무시했고, 레오나는 한국말을 몰랐다.


“애들아.”


류지호의 부름에 한참을 방방 뛰며 난리를 치던 두 소녀가 진정되었다.


“아라는 레오나에게 함께 지낼 방을 구경시켜줘.”

“알겠어. 레오나 가자.”


류아라가 레오나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큰오빠, 레오나랑 말이 안 통해!”

“어머니, 저는 이만 가서 일 할게요.”


류지호는 두 여동생이 떼를 쓸까 싶어 재빨리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이후로 레오나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심영숙은 딸 이상으로 세심하게 보살폈다.


❉ ❉ ❉


가온웨딩 전 직원이 건물 앞에 나와 도열해 있다.

예약상담실 여직원과 양주연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다.

래리가 연신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모두가 긴장한 기색이다.

유일하게 류지호만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놓고 서있다.


끼이익.


벤츠 승용차 3대가 나란히 달려와 가온 스튜디오 빌딩 앞에 멈췄다.

중간에 위치한 벤츠 승용차 조수석을 빠져나온 건장한 흑인 남자가 재빨리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곧이어 대니얼 회장이 차를 빠져나왔다.

뒤에 따라온 차량에서는 제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온웨딩 직원들이 두 사람에게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환영합니다!“


양주연과 여직원이 대니얼 회장과 제임스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심재우가 강력하게 주장해 마련한 환영행사다.

류지호는 과하다고 만류했다.

끝내 심재우와 몇몇 직원들의 주장을 꺾지 못했다.


- 환영해줘서 고마워요.


제임스가 가온웨딩 직원들에게 똑같이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흥.


대니얼 회장이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흘리며 류지호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짓거리냐?”

“환영행사죠.”

“넌 못마땅한 표정인데?”


류지호가 얼른 표정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계속 웃고 있었어요. 환영해요. 대니얼 할아버지.”

“래리.”


래리가 직원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지호가 쓸데없는 짓을 하려할 때 말렸어야지.“

“직원들의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짓거리와 뭐가 달라.”


류지호는 기분이 팍 상했다.

자연히 음성이 딱딱해 질 수 밖에 없다.


“할아버지, 우리 민족은 예부터 멀리서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대문 밖까지 나와 마중하고 정성을 다해 대접합니다. 그것이 풍습입니다. 노예라니요. 그 말 취소해 주세요.”


대니얼이 직원들의 환영인사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발끈한 것이다.

류지호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대니얼이 지그시 류지호를 쳐다봤다.

류지호도 지지 않겠다는 듯 물러서지 않았다.


“......!”


두 사람의 신경전에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대니얼이 물러설까.

류지호는 그가 체면 때문에라도 취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피식.


대니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부하가 모욕을 당하면 대장이 나서야지. 노예라는 말은 취소하겠다. 그리고 사과하지. 손님을 환대해줘서 고맙다고 직원들에게 통역해.”


손님이라는 표현에 묘하게 뼈가 있다.

래리가 직원들에게 다가갔다.


“회장님이 여러분들의 열렬한 환영에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어 류지호가 직원들을 해산시켰다.


“모두 자리로 돌아가 업무 보세요. 환영식은 끝났습니다.”


직원들이 삼삼오오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무례했다면 사과드려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분명 실언을 하셨어요.”

"사과했다. 더 이상 거론하지 마라.“


대니얼이 가만히 서서 스튜디오 빌딩을 살펴봤다.


“4층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양해해주세요.”

“나 아직 무릎하고 허리 멀쩡해. 골골대는 윌리엄과 같은 취급하지 마.”

“미처 윌리엄 할아버지 생각을 못했네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할까요?”

“인석이 사람을 차별해?”

“할아버지는 너끈히 계단을 오르실 수 있잖아요. 윌리엄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하니까 배려하는 게 당연하죠.”

“쯧. 입만 살아서는......”

“영어가 늘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어요.”

“칭찬 해주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건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은 마치 조손같이 정겨웠다.

수행원들이 제임스를 향해 영문을 묻는 눈빛을 보내왔다.

대니얼 그레이엄은 저런 모습을 보여줄 사람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본 것들을 주위에 옮기지 마세요. 매우 사적인 상황입니다.”


수행원들이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해보였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대니얼 회장의 기분이 좋다는 것은 수행하는 자신들 입장에서 나쁠 것이 없다.

그래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언제든지 ‘자넨 집으로 돌아가게‘ 한마디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제법이야.”


스튜디오를 구경한 대니얼 회장이 만족감을 드러냈다.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직접 확인한 스튜디오 시설이 꽤 그럴싸했다.


“운이 좋았어요.”

“내가 뭐라고 했지? 사업은 운에 기대서 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겠어요.”

“겸손 떠는 거냐?”

“사실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할아버지도 보고 받아서 아시잖아요.”

“그렇더라도 솔직하게 모든 걸 꺼내놓지 마라. 진정성은 비즈니스에서 웃기는 개소리야. 포커 게임을 떠올려 봐. 상대가 볼 수 있는 네 장의 카드는 훌륭한 미끼이고, 함정이 될 수 있다. 원하는 히든카드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맥없이 판을 끝내버리지 말거라. 속임수를 쓰든 허세를 부리든 카드를 덮기 전까지 상대를 흔들어.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이용해. 솔직하고 겸손하게 굴면 언제든지 맹수들에게 잡아먹히거나 어수룩한 것으로 보여 이리저리 이용만 당해.“

“명심할게요.”


류지호는 대니얼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마지막 말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신문광고에 돈을 쏟아 부어. 입소문이나 시장의 평판에 기대지 말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고민 중이에요.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으로 어떤 방식이 좋은지요.”

“네가 만능이냐? 마케터를 영입해.”


류지호가 검지로 뺨을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네.”


몰라서 영입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래리가 나름 유능한 마케터를 수소문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에 드는 인재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다.

그들이 대기업을 포기하고 가온으로 이직할 리가 없다.


“4층에 사무실이 있어요.”

“가자.”


편집실과 류지호의 집무실 사이.

W.a.W Pictures의 명패를 확인한 대니얼 회장이 빈정거렸다.


“TGE처럼 되고 싶은 거냐?”


대디얼은 영화 사업까지 확장하려는 류지호를 TGE에 빗대 꼬집었다.

톰슨 제너럴 일렉트릭(TGE)은 문어발 확장으로 유명한 미국의 공룡기업이다.

1981년 CEO가 된 잭 웰치의 공격적 경여으로 인해 TGE는 미국의 경기호황을 타고 제조업을 넘어 금융, 헬스케어, 미디어 등 무려 1천여 개의 기업을 인수합병하게 된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놈이 이것저것 건드려서 좋을 거 없다. 하나에 집중해.”

“프레젠테이션 할 때 제 포부를 말씀드렸잖아요. 세계적인 영상콘텐츠 기업을 일구겠다고요. 웨딩비디오는 작은 주춧돌일 뿐이에요.”

“영화 시장이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작은 나라에서?”

“스테픈 잡스는 차고에서 창업했잖아요. 그에 비하면 전 전파사에서 창업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할리우드 밑이나 닦아주다가 말텐데?”

“이왕 하는 거 소닉 정도까지는 가려고요. 소닉도 곧 콜롬비아스 집어 삼키잖아요. 저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죠.”


크하하하하.


대니얼 회장이 대소를 터트렸다.

너무 우스워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네 놈을 감히 소닉과 비교해?”

“중소기업이 대기업 잡아먹지 말라는 법 있나요? 전 열여덟 살이에요. 아직 제 시대는 오지 않았어요.”

“너의 시대.... 이 할아버지가 기대하마.”

“그래서 말인데요. 래리를 가온웨딩의 사외이사가 아니라 총괄이사로 앉히고 싶어요.”


류지호가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했다.


“래리를 달라는 거냐?“

“그는 물건이 아닙니다만?”

“대학은 가야겠고, 공부할 시간은 없고. 어중이떠중이보다 검증된 유능한 놈을 대신 앉혀 놓고 제 개인적인 일을 보겠다? 사업이 취미생활이냐?”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건 아니에요.”

“자신도 없으면서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려고 했어?”


류지호는 할 말이 없었다.

대니얼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자상하게 말했다.

그런데 내용까지 자상한 건 아니다.


“네가 착각하는 게 있다.”

“......?”

“래리 킴은 기업의 미래를 고려해 운영하지 않아. 단기간에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려 비싼 값에 팔아먹는 걸 주로 해.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야.”


류지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네가 이 스튜디오에 애정이 없다면 나는 기꺼이 허락하마. 래리 뿐만 아니라 내 회사의 뛰어난 녀석들을 붙여주지. 그들이 너를 보좌하면 3년, 그 안에 이 보잘 것 없는 사업체를 수십 배의 가치를 지닌 스튜디오로 만들어 줄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리고 널 설득할 거야. 팔아버리자고.”


류지호는 가만히 대니얼의 말을 곱씹었다.

이것도 일종에 시험인가.

가온웨딩에 투자를 한 목적을 은근히 내비친 것일 지도 몰랐다.


‘다 떠나서 3년 후에 외삼촌이나 친구들이 준비가 될지도 의문이네.’


대니얼은 생각에 잠긴 류지호를 느긋하게 지켜봤다.

그의 눈까지 느긋하진 않았다.

마치 류지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음.”


가온웨딩은 류지호가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인천에서 친구들과 나름 고생도 하면서 추억도 많았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업이 뻗어나가던 가온웨딩은 그와 친구들의 고향집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걸 크게 키워서 팔아먹는단다.


“없던 걸로 할게요.”

“그럴 줄 알았다. 무른 놈.”

“나중에 팔아먹더라도 제 힘으로 키워서 팔게요.”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나와 내기 하겠냐?”


약을 올리는 건지 도발 하는 건지.

류지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애써 삐져나오는 반항심을 억누르며 좋은 말로 마무리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할게요. 지켜봐 주세요.”

“래리는 네가 알아서 해봐. 난 신경 안 쓰니까.”


류지호의 인상이 슬쩍 일그러졌다.


‘괴팍한 노인네.... 심술 맞은 영감탱이....’


류지호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덜컹.


제임스와 래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일행은 한미통상실무회담에 대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곧 외국인이 한국 금융시장에 들어올 수 있겠네요?”

“때가 되었을 뿐이다.”


대니얼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한국도 금융시장을 개방해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해. 기업에게 국경은 없어.”


류지호는 미국에서 온 손님들을 강남의 유명 갈빗집으로 데려가 식사를 대접했다.


“기업에게 국경은 없다....”


묘하게 설레는 말이면서 불길한 느낌을 받게 하는 말이었다.

다음날로 대니얼 회장 일행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 ❉ ❉


류지호가 중간고사를 무사히 마친 친구들을 주안 스튜디오로 소집했다.

친구들에게 시험 잘 치렀냐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잘 봤건 못 봤건 고3 수험생이 그런 질문을 받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기에.


툭.


사인방의 눈앞에 서류로 보이는 종이 몇 장이 놓여졌다.

종이를 집어 살펴보는 친구들에게 류지호가 입을 뗐다.


“그것부터 작성해.”


고우찬이 서류를 팔랑팔랑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게 뭔데?”

“주식양도양수 계약서. 비상장회사라도 주식양도 계약서를 써야 한대.”

“어느 나라말이냐?”

“이번에 너희들 지분율 올리려고.”


서류를 읽어보던 황재정이 고개를 들어 류지호에게 물었다.


“얼마나?”

“3프로 더 올리려고.”

“그럼 8프로?”

“응.”

“이렇게 나누면 너는 몇 프론데?”

“51프로.”

“사장이라고 절반 먹냐?”

“사장하고 싶어?”

“사장은 무슨.......”


황재정이 슬그머니 말끝을 흐렸다.


“51프로가 다 내 것이 아니야. 조금씩 너희들 것도 올려줄 거고, 때가 되면 가온웨딩에 기여한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나눠줄 거야.”

“나중에 합류하면 우리 직책은 뭐야?”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아! 부사장 할래?”

“어린놈이 부사장 하면 회사가 허접하다는 거 티내는 것밖에 더 돼?”

“그 어린놈이 대표 달고 있는 지금은 왜 잘 나가냐?”

“잘나기는... 겨우 적자 면하는 주제에.”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

“왜 또 진지 빨고 지랄이야?”


짜증을 부리는 황재정을 제지하고 김준우가 나섰다.


“갑자기 지분율 올려주려는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류지호는 대니얼 회장과의 대화를 사인방에게 말해줬다.


“짜증나네. 있는 놈이 더 하다고. 우리 사업에 숟가락 얹었으면 나눠주는 음식이나 고맙게 받아먹을 것이지. 밥상을 빼앗으려고 해? 날강도가 따로 없잖아.”


황재정이 툴툴거렸다.

숟가락을 얹은 것이 아니라 정당한 투자를 해준 것이다.

류지호는 굳이 정정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가온웨딩을 빼앗기거나 팔일 없으니까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 없어. 괴팍한 노인네가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해.”

“진짜 스튜디오 키워서 나중에 팔아먹을 거야?”


김준우가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고우찬이 서류를 가방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네. 지금 당장은 어떻게 답이 안 나와.”


사인방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에는 아직은 일렀다.


❉ ❉ ❉


류지호가 벌인 사업이 나름 순풍에 돛달 듯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동안, 채연지의 소주방은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개업하고 처음 한 달은 개업발인지 손님으로 문정성시를 이뤘다.

개업발이 다했는지 얼마 후부터는 매상이 시원치 않았다.

아직 개업 초반이고, 시험기간이 끼어있어 속단하기 이르지만,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프랜차이즈는 물 건너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류지호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한 달 간의 아네모네 장부를 복사해와 분석에 들어갔다.

인천에서 일을 볼 때면 아네모네 소주방을 방문해 문제점 파악에 골몰했다.

하는 수 없이 래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시설도 좋아지고 주류와 안주도 품질이 좋아졌는데 고객이 늘지 않아요.”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래리는 가차 없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이전 가격으로 돌아가던지 가격을 더 올려 고급화로 가던지.”

“가격은 올릴 수 없어요. 대학생들이 돈을 쓰면 얼마나 쓰겠어요?”


사실 소주방의 매출은 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에 비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애매한 상황.


“사업계획서를 검토해 주세요.”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그랬다.

래리가 가온웨딩과 상관없는 사업에 도움을 줄 이유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류지호는 채연지와 머리를 맞대며 방안을 마련했다.

먼저 근사한 인테리어를 십분 활용해 낮에는 커피와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점심메뉴를 판매하기로 했다.

그리고 낮 시간 동안 고등학교 방송부들이 찍은 뮤비나 영상물을 상영했다.

비디오를 찍는 방송부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아네모네가 방송제에 소정의 지원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자신들의 소중한 작업물을 상영해준다는데 마다할 방송부는 없었다.

또한 가게 앞에 미국의 레스토랑처럼 그날의 특선 안주를 게시했고, 메뉴에서 빼버렸던 찌개류도 다시 포함시켰다.

강의가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한산한 연하대 먹자골목이다.

방송부가 찍은 영상을 상영하기 시작하자, 그걸 보기 위해 고등학생들이 하나둘 아네모네를 찾기 시작했다.

당장 눈에 보일 정도의 매출 상승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아네모네가 입소문을 타고 인천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거운 불금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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