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연재수 :
962 회
조회수 :
4,127,766
추천수 :
127,041
글자수 :
10,687,409

작성
22.02.08 10:00
조회
8,769
추천
187
글자
21쪽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파커 가족과 함께하는 뉴욕여정의 마지막 식사 자리.

레오나는 류지호와의 이별이 아쉬워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윌리엄과 제임스도 차분하게 아침을 먹었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 같아 캐서린이 나섰다.


“서울올림픽에서 코리아가 4위를 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지호 너 뿐일 걸? 금메달 수까지 맞췄잖아. 우리 가족은 네가 예지력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들더라.”


류지호는 태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윌리엄이 냅킨으로 입가를 찍고는 입을 열었다.


“올림픽 성적을 맞출 운으로 차라리 슈퍼복권을 사야 했어. 그랬다면 넌 지금 억만장자가 되어 있을 테니까. 사람에게 행운이란 그런 거야.”


류지호가 아부 섞인 대답을 내놓았다.


“파커를 알게 된 게 가장 큰 행운 같아요.”


제임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반대일 걸? 우리가 행운을 움켜잡았지.”

“......?”

“파인소프트가 윈도우 2.0으로 대박을 쳤거든.”

“블랙먼데이 때 주식을 사두었군요?”


파인소프트(PS)는 75년에 창립되었지만, 나스닥에 상장된 것은 86년 3월이다.

블랙먼데이 시기 다른 주식처럼 주가 낙폭이 컸지만, 몇 달 전에 출시한 윈도우 2.0으로 인해 주가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내년이 더 기대 되네요. PS의 윈도우 3.0 그리고 곧 웹 페이지라는 것도 등장할 거라고 하고. 네트워크 서비스 분야도 유심히 지켜보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공상과학소설에서 보던 상상속의 일들이 현실에서 가능해지고 있네요.”


제임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기회에 뉴욕으로 오는 게 어때?”

“저를 높게 사 주시고 또 그리 제안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류지호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알고 있다. 대신 이 제안은 유효기간이 없는 거니까 언제고 네가 뉴욕으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이야기 하도록 해.”

“배려해 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류지호 역시 다르지 않다.

이 대단한 가문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돈이 모자라면 여러 고민 말고, 언제든지 전화를 해. 파커는 그레이엄과 달리 인정이 넉넉하거든.”


윌리엄이 농담을 던졌다.


“윌리엄, 저도 그레이엄 사람이라고요.”


캐서린이 볼멘소리를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티격태격 하든 말든 제임스는 계속 진지했다.


“그 패밀리 오피스 건 말이다.”

“.....?”

“나름 조사해 보니 여태까지 그런 예가 없었더라.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그렇군요. 잘 되었네요.”


하하하.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류지호를 보며 윌리엄이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했다.

류지호는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있다.

100억도 감이 없는데, 조 단위가 어떤 규모인지 알 리가 없다.

사실 패밀리오피스 서비스가 실제 진행되었을 때 G&P에 모이게 될 펀드 규모가 얼마나 클지 섣부르게 예단할 순 없다.

다만 파커의 남자들은 하나는 확신했다.

G&P가 수퍼리치들을 위한 펀드를 조성한다는 소문이 월가에 퍼지는 순간, 엄청난 자금이 모이게 될 것이라는 걸.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과 시류를 읽는 것, 그것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비등한 것이야.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가들이 매일 수십 가지의 신문과 잡지를 읽고,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지.”

“우리는 너의 사업에 있어서 참신한 아이디어보다 도전과 비전을 높이 평가했어. 그러니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큰 걸음을 걷도록 해봐.”


제임스의 말이었다.

윌리엄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레오나를 가리켰다.


“자 보아라. 네가 구한 여자아이가 누구의 손녀인가.”

“......?“

“어디 가서 쫄지 말고, 항상 당당하게 굴어. 언제나 우린 네 편이다.”


세상에 가족 외에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담을 느껴 망가지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류지호는 그런 중압감에 무너질 종잇장 같은 정신력의 십대가 아니다.


“파커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될 게요.”

“그리 될 거라 믿는다.”

“다시 한 번 제가 감당 못할 투자를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류지호가 일어서서 허리를 굽혀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니, 그건 잘 못 된 말이야.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돈은 없어. 다만, 휘둘릴 뿐이지. 벅차더라도 잘 사용해 봐라. 그게 너를 성공케 하는 양분이 되어 줄 거야. 정말 힘들 때, 그리고 유혹에 질 것 같을 때, 그때 이 할아비에게 도움을 청하 거라.”

“네.”

“다들 왜 그래요. 오랫동안 몰 볼 것처럼.”


캐서린이 지나치게 무거운 분위기를 깨트렸다.


“우리 사이에 도움은 무슨.... 안 그래요, 제임스?”

“맞아. 우리 사이에.”


뉴욕에서의 마지막 식사자리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류지호가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오자, 매튜가 실실거리며 맞이했다.


“여어~”

“배웅 온 거에요?”

“아니, 나도 너의 나라로 함께 가려고.”

“왜 요?”

“놀려가는 거지.”

“돈도 없다면서 그렇게 놀고먹어도 돼요?”

“너보다 부자야. 누가 누굴 걱정해.”


류지호는 불안했다.

호랑이 같은 대니얼 회장의 말도 귓등으로 듣는 인간이다.

혹시 한국에서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지.

류지호는 캐서린이 매튜를 말려주기를 기대했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뿐.


“조만간 한국에서 보자.”

“그 날을 학수고대 할게요.”

“큰오빠, 담에 봐.”


JFK 국제공항에서 미국을 떠나기 전 류지호는 파커 가족 한명 한명과 포옹을 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올 때는 둘이었지만, 돌아갈 때는 네 명이 되었다.

투자를 받은 것은 분명 큰 성과다.

류지호는 이번 뉴욕 방문에서 그 보다 더 커다란 성과를 안고 출국하게 되었다.

바로 사람이다.

매튜를 빼고 신효정과 래리 킴은 본인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야망과 실질적인 보스가 누군지는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거물인 대니얼 그레이엄 회장과 친분 관계를 만들어 놓는 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자산이다.

그 외에도 몇몇 좋은 인연들도 맺었고.

류지호는 뉴욕에서 더 큰 세상을 보았다.

더 큰 열정을 품게 되었다.

뉴욕에서의 경험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큰 가치를 지녔다.


고오오오.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육중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창밖으로 저 멀리 맨해튼의 마천루가 류지호의 눈에 들어왔다.

성공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인 무수한 인종들.

그들이 어울리는 치열한 삶의 전쟁터.

수많은 욕망과 아메리칸 드림의 열망이 엉켜있는 정글.

류지호가 다시 뉴욕을 찾게 되는 날은 분명 이번과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는 멀어지는 뉴욕을 바라보며 다짐해 본다.


‘일단 코리안 드림부터!’


다음 날 아침.

고언 형제의 영화에 동양에서 온 열여덟 살 소년이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뉴욕지역 신문에 조그맣게 기사가 나갔다.

자극적인 뉴스거리에 목말라 있는 지역 타블로이드 기자들이 소년을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류지호는 이미 뉴욕을 떠나고 없었다.

뉴욕 사교계에서 데뷔한 파커가의 ‘럭키보이‘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떠났다.


❉ ❉ ❉


“아라 아빠, 저기!”


심영숙이 손가락으로 입국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부모님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류지호에게 심영숙이 안겨왔다.


“얼굴이 반쪽이야. 자리가 바뀌어서 먹지를 못했니? 물갈이는 안 했어? 어디 아픈 곳은 없어?”


심영숙은 아들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몸 이곳저곳을 만지며 부산을 떨었다.

그 조심스런 어머니의 손길이 류지호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잘 다녀왔냐?”

“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일주일이나 더 머물러서 엄마는 네가 한국에 영영 안 돌아오는 줄 알았어.”

“설마요. 한국에 벌여놓은 일도 있는데.... 설도 쇠야 하고요.”

“그래, 고생했어.”


심영숙은 아들에게 찰싹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효정이 류민상 부부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딘지 인사하는 태도가 좀 더 정중해졌다.

부부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랬거니 여길 뿐.

류민상이 아들의 뒤에 멀뚱하게 서있는 매튜와 래리 킴을 가리켰다.


“이 분들은?“

“안녕하세요?”


매튜가 넉살좋게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했다.


“여기 히피 같은 남자는 레오나의 외삼촌이에요. 여기 래리 킴씨는 교포시고요. 저를 도와주실 분이에요.”


류민상 부부와 매튜, 래리 킴이 인사를 나눴다.

김포공항을 나서며 매튜가 작별인사를 했다.


“저대로 보내도 되는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알아서 잘 놀 거예요.”


매튜가 손을 들어 보이고, 래리 킴과 함께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 ❉ ❉


류지호는 미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한보따리 풀어놓았다.


“한번 차보세요.”


류지호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고가의 시계를 아버지의 손목에 채웠다.


“어머니, 이거.”


심영숙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자를 받아 들었다.

상자 안에서 세련된 디자인의 토트백(tote bag)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준비한 건 아니고. 제임스와 캐서린이 가족들 선물을 챙겨줬어요.”


가방은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심영숙은 마음에 쏙 드는 눈치였지만, 은근히 남편을 의식했다.


“아들, 이거 상표가 뭐니?”

“챠넬이요.”

“에그머니나!”


심영숙이 화들짝 놀랐다.

명품중의 명품 챠넬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거 엄청 비쌀 텐데.”

“뭐 그렇죠.....”


심영숙의 선물은 신효정이, 류민상과 류지호의 선물은 매튜와 래리 킴의 가방에 실려 입국장을 통과했다.

관세를 회피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고가의 명품을 류지호가 들고 들어오면 당장에 관계당국의 주목을 끌게 된다.

평범한 가정의 청년이 고가의 물건을 해외에서 반입한다면 쓸데없는 의심을 사게 될 테고, 국세청에서도 추적이 들어올 수 있다.

과민한 것이 아니다.

신효정이 제안한 방법이기도 했고, 괜히 의심을 사서 살 필요는 없었다.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겠구나.”

“그러지 마세요. 캐서린 아줌마가 일부러 캐비어로 만든 백을 골라줬어요.”

“캐비어? 그거 먹는 거 아니야?”

“특수가공 소가죽을 캐비어라고 한데요. 저도 여자 가방을 잘 몰라서.... 너무 광택이 반질반질 나고 스크래치 많이 나는 재질이면 어머니가 안 들고 다니실 거라고 했더니 그걸로 골라주시더라고요.”

“그래도 가격이.....”

“그 가방이 다소 투박한 감이 있지만 스크래치에 강하고 관리도 쉽데요.”

“얼마래?”

“저도 잘 몰라요. 가족 선물을 한꺼번에 계산해서.”


사실 돈지랄의 극치다.

그것이 상류층의 삶이라고 하니 류지호는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류지호가 묵었던 파커 대저택의 옷장에는 한국으로 가져 오지 못한 옷들이 가득했다.


“부담스러워서 어디 가지고 다니겠니?”

“서울 아줌마들은 그거 하나씩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다닌 데요. 부담 갖지 마세요.”

“무척 비싼 메이커라던데....”

“친목계 때 한 번씩 가지고 다니세요.”


심영숙은 걱정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류지호는 백 하나가 4천 달러(약 280만 원)가 넘어간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괜히 알려 봐야 심영숙만 불편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서린도 편하게 썼으면 한다고 말했으니, 가격은 그냥 자신만 알고 있기로 했다.


“그래, 윌리엄 어르신은 건강하시냐?”

“정정하세요.”


이어 동생들에게도 옷과 신발들을 꺼내놓았다.


“큰오빠, 여기 편지가 있는데 뭐라고 쓰여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류지호가 편지를 받아 읽어보니 레오나가 쓴 편지였다.


“나도 레오나한테 편지 쓸래.”


류지호는 여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한동안 영어 편지를 대필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여전히 방은 깨끗하고 정결했다.

소중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작고 소박한 보금자리.

파커의 대저택 화장실보다 초라했다.

하지만 세상 어떤 곳보다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이다.

새가 알을 낳고 깃들이는 곳이란 뜻의 보금자리.

그처럼, 이 소박한 주택은 류지호 남매의 아늑한 둥지다.

류지호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류아라의 재잘거림을 자장가 삼아 이내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 ❉ ❉


류지호는 가족들과 설 명절을 쇠러 강화도 외가에 와 있다.

외가식구에게도 미국에서 사온 선물을 나눠줬다.


“미국 물 먹더니 신수가 아주 훤해졌어.”

“장하네. 우리 집안에서 미국 가본 사람이 다 나오고.“


외가 어른들이 류지호를 보며 한마디씩 부러움과 칭찬의 말을 쏟아냈다.

미국에서 사온 선물의 힘이다.


“류서방은 세상 부러울 게 없겠어. 장남이 저리 영특하니.....”


자식이 칭찬을 받으면 부모를 춤추게 한다.


“지호하고 순호는 이리 와봐라.”


외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류지호의 손에 쥐어줬다.


“저 용돈 많아요.”

“할아비가 기죽지 말고 씩씩하게 살라고 주는 거야. 받아둬.”


외할머니까지 동조하고 나섰다.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 사먹어.”


돈은 오히려 류지호가 외할아버지 내외에게 챙겨줘야 하는 게 맞다.

다 큰 녀석이 용돈을 받게 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지호야 나와 봐. 이야기 좀 하자.”


막내 외삼촌 심재우가 류지호는 마당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외가를 나와 동네 길을 나란히 걸었다.


“매형이 그러는데, 사업 잘 된다며?”

“그럭저럭이요.”


두 사람은 외가 근처 비석거리라고 불리는 동네 언덕에 올라섰다.

둘은 깨지고 넘어진 비석에 턱하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지호야.“

“뜸들이지 말고 편하게 말하세요. 가족끼리 뭘 그래요.”


심재우는 형제들과 나이 터울이 많아 난다.

때문에 어릴 적부터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조카들과 허울 없이 지냈다.

조카들은 그런 심재우에게 농담도 쉽게 건네고, 명절에는 술대작도 자주 했다.

류지호 역시 다른 사촌들처럼 심재우를 편하게 대했다.


“어른이 되서 이런 말하기 좀 그렇다만. 네가 하는 사업에 자리 없겠냐?”

“다니는 회사는 어떻게 하고요?”

“발령 났다.”

“발령?”


류지호는 혹시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심재우는 대유자동차 부평공장에 다니고 있다.

대유그룹은 IMF로 계열사들이 갈가리 찢겨 팔려나가지만, 이때만 해도 재계서열 3위에 이르는 대기업이다.

대유자동차가 한창 잘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구조조정이 있을 이유가 없다.


“잘린 거 아냐. 지방으로 가는 거지.”

“혹시 승진했어요?”

“승진해서 가는 거라면 너한테 자리를 물어 보겠냐?”

“......!”

“그건 아니고 직급은 똑같은데, 업무가 달라졌어.”

“원래 무슨 업무를 봤는데요?”

“생산관리. 창원에 공장을 짓는다고 내려가라고 하더라. 애들 국민학교 문제도 있고, 집사람 직장도 그렇고.... 본사 영전도 아니고, 이러다가 지방 뺑뺑이 돌까봐 좀 그래.”


91년 준공되는 대유자동차 창원공장은 국민차라고 불리던 티코를 생산하게 된다.

숙련된 직원들 일부를 창원으로 보내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나온다고요?”

“부평에 남아보려고 이쪽저쪽 찔러봤는데 별 수가 없더라고.”


류지호는 회사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혹시 내 자리 없냐?”


마침 류지호는 서울에 스튜디오를 개설할 투자금을 받아왔다.

믿을 사람이 필요한 것이 사실.

다만 외삼촌을 안정된 직장을 나오게 해서 고생을 시켜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기억하는 대로 흘러간다면 대유그룹은 IMF라는 국가 환란을 겪으며 해체 된다.

외삼촌이 정리해고를 당하는지 류지호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한창 영화계에 몸담고 외가와 교류를 하지 않던 시기였기에.


“대학 어디 나왔죠?”

“인천대.”

“전공은요?”

“경영.”

“혹시 영업도 해봤어요?”

“영업?”

“사실 미국에서 투자를 받아왔어요.”

“야아~ 생명의 은인이 좋긴 좋구나. 막 퍼주네?”

“제가 정식으로 사업설명회 하고 따온 투자에요.”


류지호는 외삼촌의 놀람에 기분이 팍 상했다.


“농담이야. 이 외삼촌이 능력 있는 조카가 부러워서 그래.”


외삼촌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류지호가 서울에 스튜디오를 개설하는 것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지금 얼마 받아요?”

“상여금까지 이것저것 전부 합치면 월 80이 조금 넘어.”

“툭 까놓고 말할게요. 저도 외삼촌처럼 믿을 만한 사람이 오면 좋아요. 제가 올해 입시도 준비해야 하고, 미국도 자주 오가게 될 거 같고요.”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거지?”

“외삼촌이 사장을 맡아주면 좋은데... 일종의 바지사장이랄까.”

“대놓고 바지사장이라고 말하네?”

“말이 바지사장이지 예식장 영업도 해야 하고, 관계자 접대도 해야 되요. 투자자가 경영자문을 파견했는데, 그 사람하고 원만한 관계도 유지해야 하고요.”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는 거지?“

“인천은 따로 맡아줄 선배가 있어요.”

"나보고 경리 하라는 것은 아닐 테고, 내가 비디오 촬영을 할 일도 없을 거고, 결국 영업하고 인력관리겠네?“

“영주 누나는 인천에 놔두고, 경리는 새로 뽑아야 돼요.”

“돈 관리도 내가 해야겠구나.”

“외삼촌이 경리랑 눈 맞아서 야반도주할 일은 없겠죠, 설마?”

“네 외숙모밖에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괜한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말을 하고 나니 심재우는 뭔가 대화가 이상했다.


“네가 원래 능글맞았었나?“

“제가 좀 일찍 조숙해졌어요. 아재들하고 일하다보니 물이 들었나 봐요.”

"일단 생각 좀 해보자.“

“법인으로 전환할 시간도 필요하니까, 외숙모하고 충분히 상의해 보세요.”

“작년에 얼마나 벌었냐?”

“1억 조금 못 미쳐요.”

“매출이?”

“네.”


허.


고등학생 나이에 장사를 해서 매출 1억을 찍었다는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조카다.

집안에 큰 사람이 될지도 모를 별종이 나타난 것이다.


“심씨 집안에 큰 사업가가 나왔네.”

“전 류씨인데요?”

“알았다 알았어. 자식이.... 돈 좀 번다고 외삼촌을 아주 말로 가지고 노네.”

“일단 설 쇠고, 주안으로 한 번 나오세요. 우리가 일하는 현장도 보고, 업무도 파악해 보세요. 그리고 할 만하다 싶으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 해봐요.”


해가 뉘엿뉘엿 저물자, 두 사람은 비석거리 언덕을 내려와 외가로 돌아갔다.


설날 아침.

온 가족이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었다.

류지호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 먼저 세배를 드리고, 미리 준비한 돈봉투를 드렸다.


“세뱃돈은 어른이 줘야지. 넣어둬.”

“손자가 엄연한 사업가에요. 할머니와 맛있는 거 사드세요.”


대학생인 외사촌 형·누나들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지만, 류지호는 무시했다.

앞으로 심씨 집안에서 설 명절에 새로운 전통이 생기게 생겼다.

사회생활 하는 손자들은 조부께 드릴 봉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어 큰외삼촌 내외를 시작으로 차례로 어른들께도 세배를 드렸다.


“지호야, 우린 봉투 없어?”

“저도 그러고 싶은데 형·누나들이 부담스러울 걸요?”


점심까지 외가에서 해결한 류지호와 가족이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가온웨딩 스튜디오로 심재우가 찾아왔다.

마침 환갑잔치 촬영이 있어 류지호는 심재우에게 촬영 현장을 보여줬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이런 건데, 어떠세요?"


심재우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뜸 근로조건부터 물었다.


"월급은 80?"

"네."

"성과급은?"

"실적 봐가면서요."

"좋다. 남도 아닌 네가 하는 사업이고, 내가 보기에도 망할 것 같지는 않구나.“

“외숙모도 찬성했어요? 저 어른들한테 욕먹기 싫어요.”

“네 외숙모도 지방으로 가는 건 싫은 모양이다. 정 뭐하면 다른 곳에 취직하지 뭐.”

“출근은 언제부터 하실 수 있어요?”

“외삼촌이고 뭐고 없구나.”

“외삼촌이 평생 뼈를 묻을 회사라는 각오로 일 해주세요. 그래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가족 밖에 없잖아요.”

“열심히 하마. 네 회사가 내 회사다.”

“잘 부탁드려요.”

“그럼, 퇴직처리 되면 바로 출근하도록 할게.”


류지호는 사실 외삼촌의 능력을 모른다.

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외부인보다 가족이 났다.

친구들이 웨딩사업을 꾸려갈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는 일을 대신해줘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젠가 심재우도 온전하게 하나의 사업체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류지호가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반드시.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5 사장님이자 감독님이야. +9 22.02.28 7,861 207 19쪽
94 영정사진. (8) +9 22.02.26 7,814 192 21쪽
93 영정사진. (7) +3 22.02.26 7,443 179 18쪽
92 영정사진. (6) +6 22.02.25 7,563 196 19쪽
91 영정사진. (5) +8 22.02.24 7,608 171 21쪽
90 영정사진. (4) +7 22.02.23 7,663 199 22쪽
89 영정사진. (3) +11 22.02.22 7,766 196 22쪽
88 영정사진. (2) +7 22.02.21 8,031 184 23쪽
87 영정사진. (1) +4 22.02.19 8,411 177 23쪽
86 기업에게 국경은 없다! +5 22.02.18 8,298 180 26쪽
85 광고는 역시 스타 마케팅! +3 22.02.17 8,390 191 27쪽
84 W.a.W Pictures. (3) +4 22.02.16 8,328 183 23쪽
83 W.a.W Pictures. (2) +2 22.02.15 8,395 167 20쪽
82 W.a.W Pictures. (1) +4 22.02.14 8,584 184 17쪽
81 자네는 주식투자를 뭐라 생각해? +8 22.02.12 8,469 191 17쪽
80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3) +3 22.02.11 8,416 179 19쪽
79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6 22.02.10 8,623 177 23쪽
78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1) +7 22.02.09 8,882 167 25쪽
»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9 22.02.08 8,770 187 21쪽
76 미래를 사고 싶어요. (2) +5 22.02.07 8,871 188 21쪽
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69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11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80 194 27쪽
72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29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6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0 187 25쪽
69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0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4 210 17쪽
67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4 204 19쪽
66 충성을 다 하겠슴다! (4) +6 22.01.26 9,469 205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