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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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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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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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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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W.a.W Pictures.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인천과 서울 스튜디오 두 곳을 오가며 업무를 보기 때문이다.

류지호, 심재우, 래리가 회의를 진행했다.

테이블 위에는 가온 스튜디오의 광고가 실린 잡지 몇 권이 펼쳐져 있다.


“레이디 경향이 없네요?”


류지호의 물음에 심재우가 대답했다.


“월간 위주로 광고를 실으라고 해서. 주간지는 뺐다. 3대 여성잡지와 우먼센스에만 냈어.”

“웨딩전문지가 폐간된 것이 아쉽네요.”


86년에 출간된 웨딩 잡지 하나가 판매부진으로 폐간했다.

참고로 93년에 가서야 마이웨딩이 발행된다.

래리가 잡지광고를 들춰보다가 입을 열었다.


“신문광고는 안합니까?”

“고급 이미지를 선점하려고요. 스튜디오 시설이나 홍보사진을 컬러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신문의 흑백이미지보다 사람들에게 훨씬 선명하게 각인 될 거라고 봐요.”

“경쟁업체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보할 생각입니까?”

“일단은 브랜드 이미지화가 우선일 것 같아요.”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고객들의 뇌리에 가장 먼저 각인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웨딩비디오는 매번 새로운 고객이 생겨난다.

한번 찍은 커플이 다시 찍을 일이 없으니까.

재혼을 하더라도 처음에 한 사람하고 결혼식을 하는 일은... 없다.


“잡지 한 곳과 인터뷰를 하면 좋은데.... 심 이사님, 광고를 주는 조건으로 딜이 안 되는가 보죠?”

“단발 광고는 힘들어.”

“일단 6개월 광고 주고, 그 후에 기사 내는 걸 이야기 해보죠.”

“그렇게 알아볼 게.”

“래리, 헤드헌팅은 어때요?”

“광고 편집실 하나와 논의 중입니다.”

“편집실 인수하기에는 여유 자금이 없을 텐데요? 운영비도 빠듯하잖아요.”

“편집기사만 데려올 겁니다.”

“거기 편집기사 빼오면 망하는 거 아닙니까?”

“남의 사정까지 배려할 정도로 여유롭습니까?”

“당연히 아니죠. 저도 빨리 편집기사가 왔으면 좋겠어요. 작년 가을에 혼자 편집을 도맡아 한 걸 생각하면....”


류지호가 과장되게 치를 떨었다.


“하루 빨리 스튜디오가 자리가 잡혔으면 합니다. 천리포수목원 가서 유유자적 사색을 즐기고 싶네요.”

“무책임합니다. 기업은 저절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최고경영자는 항상 긴장과 이완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경영자문이 아니라 경영선생 같아요, 래리는.”


류지호가 투덜거렸다.


‘그냥 래리에게 가온을 맡겨버릴까보다.’


회의실을 나와 자신의 책상에 앉은 류지호에게 양주연이 다가왔다.


“대표님, 손님 오셨어요.”

“손님 누구요?”

“강현도라는 분이에요. 2층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고마워요.”


류지호가 2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홍보용 웨딩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는 TV 앞에서 강현도가 말뚝처럼 서서 지켜보고 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구경해요?”

“아, 류대표....”


류지호와 강현도가 나란히 서서 홍보용 웨딩비디오를 지켜봤다.


“저거 보니까 나도 결혼 하고 싶어지네.”

“결혼하면 웨딩비디오는 우리한테 맡기세요.”

“부자 되면 한번 생각해 볼게.”


혼례비용 문제로 웨딩비디오를 찍고 싶어도 못 찍는 커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조용한 곳으로 갑시다.”


류지호는 강현도를 4층 편집실로 안내했다.


“문제가 좀 많은 사람이더라. 회사 돈에 손을 댄 모양이야.”

“오동석씨가 공금횡령이라도 했단 말이에요?”

“영화사에서 그 사람 경찰에 고소했어.”

“오동석씨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좀 더 조사해 보세요. 분명 오햅니다.”

“난 건달이야. 그런 건 경찰이 조사해야지. 업무가 달라 업무가.”

“오동석씨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영화사에서 나왔습니까?”

“조사받으러 경찰 출두한 거 까지 확인했어.”

“젠장!”


류지호가 자신의 자리로 달려가 양복저고리를 챙겨 입었다.


“양주연씨, 나 지금 외출합니다. 급한 일 있으면 삐삐... 아닙니다.”

“네. 일보세요.”


류지호가 급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을지로에 위치한 서울중부경찰서.


휴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오동석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밤샘 조사를 받은 모양인지 초췌한 행색이다.


휘청.


오동석이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밤새 형사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기운이 없어보였다.


“제기랄!”


오동석은 자신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택시비 백 원 단위까지 따지고 드는 회장 때문에 출장 시에도 주로 버스를 이용했다.

작년에는 영화 두 편을 수입해 와 극장에 쏠쏠한 이익까지 안겨줬다.

그런 자신에게 공금횡령이란 누명을 씌우다니.

배신감에 미칠 지경이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오는 오동석을 지켜보는 류지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필 과거로 돌아와 처음 본 모습이 저런 모습이라니.

류지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를 내는 것은 쉽다.

그보다 자초지종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먼저다.


“안녕하세요. 오동석씨.”


류지호가 애써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잘 빗어 넘긴 머리, 비싸 보이는 슈트와 반들반들한 구두.

약간 어려보이는 얼굴이지만 건강한 혈색까지.

오동석에게 재벌 3세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행색이다.


“누구?”

“오랜만입니다.”

“절 아세요?”


류지호가 얼굴의 미소를 띤 채 손을 내밀었다.

오동석이 얼떨결에 류지호와 악수를 나눴다.


“바쁘지 않으면 가까운 커피숍에서 저와 이야기 좀 나누시겠습니까?”

“저와 무슨 이야기를......?”

“일단 경찰서는 나가죠.”


류지호와 오동석이 을지로 대로변에 위치한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스카우트 제안은 감사한데요. 제가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어서....“

“고소 당하셨다고요?”

“후우.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동석이 속이 타는지 물컵의 물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전 압니다. 오동석씨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걸요. 뭔가 오해가 있을 겁니다.”

“그 물 안마시면 제가 마셔도 되겠습니까?‘


오동석이 류지호 앞에 놓여있는 물컵을 가리키며 물었다.

류지호가 물컵을 오동석에게 밀어주고,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시원한 물 두 잔 주세요. 얼음물 있으면 그걸로 주시고요.”


종업원이 물러가자, 류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있는 영화사에서 나온다고 해도, 다른 영화사로 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 지 아시잖아요?”

“독립할겁니다.”


류지호의 물까지 마셔버린 오동석이 야무지게 대답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현재의 처지에서는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공금횡령의 낙인이 찍힌 자와 일 할 사람은 없으니까.


“지금 오동석씨 얼굴에 뭐라 써있는 줄 압니까?‘


오동석이 깜짝 놀라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 아주 힘들어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동석은 차마 대꾸할 수 없었다.

최준영과 마찬가지로 오동석은 류지호와 인연이 깊었던 인물이다.

거기에 능력까지 갖춘 사람.

그랬기에 그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되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오동석씨가 무고하다는 걸 밝혀드리겠습니다.”


오동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류지호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함께 일하는 문제는 당장 닥친 것부터 해결하고 이야기 합시다.”


❉ ❉ ❉


류지호는 오동석을 데리고 신효정의 법률사무실로 향했다.


“공금횡령은 오해나 실수 등으로 입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일하게 대처하면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효정이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오동석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항변했다.


“저는 정말 회사 돈 십 원도 손대지 않았다고요!”

“그럼 영수증은 뭡니까?”

“내가 쓴 게 아닙니다!”

“술을 좋아한다면서요? 매일 저녁에 술을 마신다고 진술 했습니다만.”

“충무로에서 영화인들 한두 명하고 소주 마시는 거지. 6백만 원어치 술을 마신 적이 없어요. 제 주제에 회식비를 낼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술 마신 건 영수증 처리도 안 합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류지호가 나섰다.


“그건 제가 보증해요. 오동석씨는 남의 돈을 쌈짓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 대표님....”


오동석이 감동한 얼굴로 류지호를 돌아봤다.

그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외면하고, 류지호는 신효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리해보죠. 오동석씨가 횡령했다는 금액이 6백만 원이고, 그에 대한 영수증은 모두 간이영수증이고, 주로 충무로 식당과 술집 영수증 그리고 글씨가 동일인의 것으로 보이는데 오동석씨의 필체는 아니다. 맞죠?”


오동석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해 줬다.

신효정이 단호한 표정의 류지호를 힐긋 쳐다보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박사무장님, 혹시 중부경찰서에 아는 형사 있습니까?”

“중부서요? 형사계장하고 안면이 있습니다.”

“유림영화사 횡령사건 어디까지 조사가 진행 중인지 한 번 알아보세요.”

“진행사항만 알아오면 되겠습니까?”

“고소장 내용도 알아보시고, 오동석씨를 용의자로 지목한 이유도 알아보세요.”

“사건 수임하신 겁니까?”

“고려중입니다.”


오동석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신효정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오동석에게 류지호가 단단히 당부했다.


“이분을 믿고, 영화사로 돌아가세요. 절대 기죽지 말고요.”


멀어지는 오동석을 지켜보는 류지호의 곁으로 신효정이 나란히 섰다.


“저 사람, 류대표에게 중요한 사람입니까?”

“인재입니다.”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군요.”

“함께 갈 사람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

류지호의 그런 태도가 신효정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류지호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오동석씨 건도 잘 부탁할게요.”

“법적인 건 제게 맡기세요.”


신효정의 믿음직한 대답에 류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 ❉ ❉


강남의 목화예식장.

가온 스튜디오에 속해있는 모든 포토그래퍼와 촬영기사들이 예식홀에 모여 있다.

사인방이 한쪽에 모여 쑥덕공론을 벌였다.


“우리 중에 스파이 짓 할 놈은 지호밖에 없는데?”

“본드, 제임스 본드.”

“뭐래 이 븅신이.....”

“007 이름이잖아.”

“자꾸 농담 따먹기 할래?”

“까칠한 놈.”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협박을 할까? 아는 거 다 불어. 이렇게.”

“재정이나 지호 말발로 혼을 쑥 빼놓을 순 없어?”

“그 여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잖아.”

“미남계를 쓰면 어때?”


순간.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사인방의 시선이 김준우에게 모였다.


“나, 나보고 뭘 어쩌라고?”


황재정이 김준우의 양 볼을 집게손가락으로 꼬집으며 말했다.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착하게 생겼어.”

“지호도 무난한 인상이거든.”

“저 놈은 가끔 아저씨처럼 말해서 여자들이 별로 안 좋아해.”


고우찬의 말에 류지호가 짐짓 성질을 부렸다.


“나도 여자들한테 인기 많아 이것들아.”

“생구라 치지 말고, 넌 가서 촬영기사 형들하고 놀아.”


류지호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목화예식장의 예식홀 하나를 빌렸다.

촬영기사들 간 교류와 촬영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다른 속셈도 있었다.

유림영화사의 경리직원 성혜자로부터 정보 캐기.

그녀의 남자친구는 정기영이란 이름의 무명의 배우다.

오리엔테이션 촬영을 위해 신랑·신부 역할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류지호는 의도적으로 정기영을 캐스팅 하면서 여자 친구 성혜자와 함께 출연해 달라고 부탁했다.

출연료에 웃돈을 얹어주는 것으로 간신히 두 사람을 불러 올 수 있었다.


“힘드시죠?”


황재정이 음료수를 성혜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찰칵.


김준우가 카메라를 들이대, 셔터를 눌러대며 설레발 쳤다.


“배우 해보세요.”

“아이, 제 주제에 무슨 배우요.....”


성혜자가 얼굴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제가 보기에 혜자 누나는 매력이 있어요. 사진발도 잘 받고요.”


사인방이 성혜자 주변을 맴돌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간간이 황재정이 영화사 사정에 대해 물었다.

영화사 기밀을 묻는 것도 아니고, 성혜자가 하는 일과 직원들에 대한 신변잡기였기에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황재정은 성급하게 오동석과 공금횡령을 언급하지 않았다.

사인방이 성혜자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어설픈 수작을 펼칠 때.

류지호는 촬영기사들과 끊임없이 토론을 하며 오리엔테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예비부부와 두 집안의 가풍을 미리 알아두어야 해요. 웨딩비디오에 멋 부리는 걸 싫어하는 고객도 있고, MTV 뮤직비디오처럼 화려한 걸 좋아하는 고객도 있어요.”

“대표님, 우릴 영화촬영기사로 만들고 싶은 겁니까?”

“까짓 거 매주 영화 한편씩 찍어보죠 뭐.”

“하하하. 월급 많이 주셔야 할 텐데요.”

“스튜디오가 돈을 많이 벌면 월급이야 당연히 올려드리죠. 그건 실적이 나온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오늘 당장 회식부터 챙겨드릴게요.”


와아아.

촬영기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스튜디오에 장비 반납하고, 전주집으로 모이세요. 삼겹살과 소주로 목에 떼 좀 벗겨봅시다.”


류지호가 기사들과 촬영 장비를 정리하는데 예식부장이 다가왔다.


“다 끝난 겁니까?”

“예. 이제 철수하려고요.”

“사무실 가서 커피 한 잔 하죠.”


두 사람은 예식부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하하하.


대화에 간간이 농담을 섞자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사장님하고도 얘기해 봐야겠지만 저는 가온이 마음에 듭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예약실에 문의해 오는 고객 반응도 좋고, 기사들 성격도 좋아 보이고.”

“저희 가온 소속 촬영기사들이 예식장에서 물의 일으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소문 들어보니까 가온이 일 잘하기로 유명하긴 하더군요.”

“그럼 부장님, 어떻게 제휴는......”


류지호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어 조심스럽게 협력업체 제휴를 꺼냈다.

심재우가 열심히 제휴를 따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대형 예식장들은 은근히 뜸을 들이면서 애를 태웠다.


“아무리 급해도 당장 결정할 수는 없죠. 내부 회의도 거쳐야 하고. 사장님 상무님 오케이도 받아야 되고.”

“아, 네. 그렇겠죠.”

“오래는 안 걸리지 싶네요. 강남은 입소문 터지면 고객들 문의 전화가 빗발쳐서 우리도 여유 없어요. 가온 때문에 우리 예식장 이미지까지 좋아질 테니 무난하게 오더가 내려올 것 같기는 하네요.”


류지호는 부장의 반응을 보고, 약을 처야 할 타이밍이라 판단했다.

즉 실무책임자들에게 접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요식행위더라도 성의 표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식사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상무님은 바쁘실까요?”

“오늘 말입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잖아요.”

“상무님 스케줄 한 번 확인해 보죠.”


부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며 류지호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그렇게 저녁 약속이 잡혔다.

류지호가 목화예식장을 빠져나와 곧장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외삼촌, 스케줄 싹 비워두세요.”

-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강남 쪽으로 넘어올 수 있어요?”

- 급한 일이야?

“예식장 관계자하고 접대자리가 있을 것 같아요.”

- 그게 뭐?”

“아무래도 3차에서 어른들이 노는 곳에 가야하지 않겠어요?”

- ......!


류지호는 자신도 어른들만의 유흥에 끼어 놀고 싶었다.

누구보다 격렬하게 놀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아시게 되면 당장에 불호령이 떨어질 터.

술 마시는 것도 못마땅한데, 접대 여성을 옆에 앉혀놓고 술을 마신다?

어머니가 절대 용납할 리가 없다.


❉ ❉ ❉


예식장 관계자와 만나기로 한 고급 횟집.

류지호가 카운터로 걸어갔다.


“사장님, 잠시 전화 한 통 쓸 수 있을까요?”


횟집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류지호가 수화기를 들어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강현도씨 부탁드립니다. 가온웨딩 류지호라고 전해주세요.... 여보세요? 저에요. 저희 스튜디오 심재우 이사님 아시죠? 심 이사님이 급하게 접대를 해야 하는데, 혹시 강남에 잘 아는 룸방 없어요? 룸방을 룸방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요. 급하니까 쓸데없는 소리랑 말고, 있어요 없어요? 장 부장님하고 직통으로 이야기 할까요? 그럼 장 부장님한테 현도씨 엄청 깨질 텐데....”


류지호가 전화기 옆에 종이를 끌어와 강현도가 불러주는 걸 메모했다.


“고마워요. 나중에 제가 한턱 크게 낼게요.”


수화기 너머에서 강현도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류지호가 알 바 아니다.

그는 사장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좋은 분위기에서 예식장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었다.

심재우가 적절히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외삼촌, 잠시 저 좀 봐요.”


류지호가 심재우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3차는 여기로 가세요. 거기 마담이나 실장한테 석바위에서 가게 하던 채연지씨 소개로 왔다고 하면 잘 해줄 거래요.”

“접대는 나한테 맡기고 좋은 소식이나 기다리고 있어.”


심재우가 류지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돌아섰다.

류지호와 목화예식장 상무가 횟집 앞에서 심재우 일행과 헤어졌다.


“상무님은 댁이 어디세요?”

“나는 기사가 차를 가지러 갔어. 류 대표 먼저 들어가.”

“예.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류지호는 상무와 악수를 나누고 택시를 잡아탔다.


“무슨 회를 몇 시간씩 먹어?”


김준우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사인방은 가온빌딩의 지하 호프집에서 류지호를 기다리는 중이다.

직원 회식이 끝이 나고, 따로 사인방끼리 자리를 마련했다.

황재정이 식어서 뻣뻣해진 치킨을 포크로 푹푹 찌르며 입을 뗐다.


“이 시간까지 회만 먹겠어? 진즉 2차 갔겠지.”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 궁금해 미치겠네.”

“길어지는 게 희소식이 아닐까. 얘기가 잘 안 됐으면 금방 끝났을 거 아냐.”


사인방은 초조하게 시계만 쳐다봤다.


딸랑!


호프집 문이 열리고 류지호가 들어왔다.


“여기, 여기!”


구석진 곳에서 김준우가 열렬하게 손을 흔들어댔다.

류지호가 친구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는데, 사장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회식은 우리 가게에서 하지. 딴 데로 갔다면서?”

“섭섭하실까봐 2차는 여기로 왔잖아요.”


류지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인방의 테이블로 와서 자리에 앉은 류지호가 식어버린 치킨을 한 쪽으로 밀어버리고, 메뉴판을 펼쳤다.


“먹고 싶은 거 다 시키지. 기다리느라 지루했을 텐데.”


김준우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류지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저녁 식사자리는 분위기가 좋았어.”


고우찬이 반색했다.


“오오, 이야기가 잘 되었구나.”


황재정이 틱틱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설마 룸싸롱 가서 신나게 놀고, 생 까는 건 아니겠지?”

“사장님, 주문이요!”


류지호는 양념치킨과 500cc 호프 네 잔을 주문했다.


챙!


사인방이 힘차게 호프잔을 부딪쳤다.


크으.


시원한 생맥주를 목 뒤로 넘기니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류지호가 순식간에 한잔을 비우고는 다시 주인을 불러 생맥주를 추가했다.


“목화가 서울에서 제일 잘나가는 예식장 맞지?”

“이 기세로 가면 우리 금방 떼부자 되겠다.”


벌써부터 김칫국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친구들에게 황재정이 일침을 가했다.


“친구들아. 오버하지 말자. 우리 겨우 적자 면하고 있어.”

“보이스 비 앰비셔스 몰라?”

“우리 소년 아니거든.”


탁.


류지호가 호프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성혜자에게 알아낸 거 풀어놔 봐.”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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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광고는 역시 스타 마케팅! +3 22.02.17 8,390 191 27쪽
84 W.a.W Pictures. (3) +4 22.02.16 8,328 183 23쪽
» W.a.W Pictures. (2) +2 22.02.15 8,395 167 20쪽
82 W.a.W Pictures. (1) +4 22.02.14 8,584 184 17쪽
81 자네는 주식투자를 뭐라 생각해? +8 22.02.12 8,469 191 17쪽
80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3) +3 22.02.11 8,416 179 19쪽
79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6 22.02.10 8,622 177 23쪽
78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1) +7 22.02.09 8,882 167 25쪽
77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9 22.02.08 8,769 187 21쪽
76 미래를 사고 싶어요. (2) +5 22.02.07 8,870 188 21쪽
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69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10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79 194 27쪽
72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29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6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0 187 25쪽
69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0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4 210 17쪽
67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4 204 19쪽
66 충성을 다 하겠슴다! (4) +6 22.01.26 9,469 20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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