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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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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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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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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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에서부터 단단히 작정하고 왔지만, 진짜 사업투자설명회 기회를 잡을지는 몰랐다.

따라서 류지호는 한가하게 뉴욕 관광을 다닐 수가 없었다.

브래드가 준비해 준 방에서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매진했다.


꽝!


누군가 사무공간에 난입했다.

그레이엄가의 망나니 매튜다.


“가자! 미라클 보이!”


매투가 다짜고짜 류지호를 일으켜 세웠다.


“뭡니까! 이거 놔요!”

“잔말 말고 따라와, 어린 친구!”


류지호가 납치당하듯 방에서 끌려나왔다.

그렇게 끌려온 것은 맨해튼의 한 고층아파트 펜트하우스였다.

집 주인이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향인 것 같다.

단순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하하하.

호호호.


스무 명 정도.

다양한 인종과 연령이 어울려 자유분방하게 파티를 즐기고 있다.

매튜가 류지호를 파티참석자 사이를 끌고 다녔다.


“여기 숙녀는 ‘브롱스의 우울’이라는 축축한 책을 냈지만 100부밖에 팔지 못한 샌디. 소심하지만 여자를 밝히는 색골, 해리 맥코트, 해리는 사진을 찍는 놈이지만 주로 맨해튼을 서성거려. 여기 섹시한 여성은 메리 퍼지. 우린 그냥 M이라고 불러. 그리고 저쪽에 앉아있는 한 몸에 두 머리는 고언 형제. 키 큰 남자가 조엘, 작고 모범생 같이 생긴 쪽이 에단. 그리고 저기 진지하게 무게 잡고 앉아있는 사람은 존 자무슈. 영화를 찍는 명상가야.“


류지호는 매튜가 소개하는 사람들과 차례차례 인사를 나눴다.

특히 고언 형제와 존 자무슈와 인사를 나눌 때, 류지호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약간 통통한 여성이 류지호에게 다가와 자신을 소개했다.


“난 앨리스. 친구들은 날 앨이라고 불러. 아 참고로 난 어린 남자는 딱 질색이야. 내게 치근댈 생각은 꿈도 꾸지 마.”


큭.


일행들이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들 외에도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파티를 즐겼다.

류지호가 알고 있었던, 아니 단편적인 정보들로 상상했던 것들이 산산이 깨져나갔다.

뉴욕 인디예술가들의 파티라고 해서 엄청 퇴폐적이고 그로테스크할 줄 알았다.

아니면 한없이 진지하기만 한 예술가들의 모임이거나.

파티 분위기는 밝고 명랑했다.

모두가 유쾌한 사람들이다.


“헤이, 동양에서 온 소년.”

“지호 류입니다. 지호라고 부르세요.”

“맨해튼의 의미를 아나?”

“모릅니다.”

“맨해튼 북부에 살았던 인디언들이 이름을 붙였다고 하지. 그 뜻은 대략 두 가지의 의견으로 나뉜다. 하나는 언덕이 많은 지역 또 다른 하나는 우리 모두 취했던 장소. 난 두 번째 해석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남자는 익살스런 표정으로 술잔을 들어보였다.


피식.


류지호가 웃으며 자신의 술잔을 마주 들어보였다.


“맨해튼은 섬이야. 이 섬에는 약 180만 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고, 150만 명 정도의 유동인구가 매일 이 섬을 드나들어. 그 사람 하나하나가 다 스토리를 가진 이미지야. 맨해튼을 걷다보면 마치 이 도시는 미국을 압축해 놓은 것 같아. 아니지. 세계를 압축해 놓은 거지. 현기증이 날 정도야.“


낮에는 상업사진을 찍고, 휴일에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한 해리 맥코트의 말이다.


“뉴욕의 차이나타운, 리틀 이탈리아, 이스트 빌리지, 웨스트 빌리지, 소호를 벗어나 롱아일랜드 그리고 뉴저지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지. 3년쯤 맛집 투어 끝에 나와 친구들은 이 지역 유명 식당들의 음식 솜씨와 서비스 환경 그리고 와인을 비롯한 주류에 일가견을 갖게 됐어. 10파운드에서 20파운드 가량 체중이 불어나는 부작용을 기꺼이 감수하며 우린 용감하고 도전적으로 뉴욕의 맛집들을 하나하나 정복한 거야. 지호는 몸이 영 부실해 보이는데 우리와 함께 하겠어?”


패션 디자이너인 통통한 앨리스가 말했다.


턱.


살짝 취기가 오른 매튜가 류지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아이비리그로 올 건가?”


가끔 주변 사람들은 류지호를 김석민급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지금 벌여놓은 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한 2년 동안 죽어라 학력고사에 매진하면 가능할지도.

유감스럽게도 류지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편지를 읽었다면서요? 고등학교 안 다녀요.”

“왜?”

“펍에서 여성에게 행패를 부리는 불량배들을 친구와 혼내줬거든요. 그 일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았는데, 보수적인 학교 태도에 질려서 그만 뒀어요.”


류지호는 아네모네 사건을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주었다.


“호오. 역시 물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 잘했어.”

“잘... 한 겁니까?”

“학교 따위 고리타분하고 따분할 뿐이야.”

“히피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왠지 납득이 가네요.”

“하하하. 우린 자유로워야 해. 인간에게 자유는 본능인 거야. 규격을 거부할 권리가 있어.”


메튜의 몸에서 강한 마리화나 냄새가 풍겨왔다.

류지호는 캐서린이 왜 그를 망나니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난 부자가 싫어. 남들보다 쉽게 어떤 걸 이룰 수 있단 말이지. 그럼 계속 배가 고파서 이것저것 먹어치우겠지? 그러면서 더 많은 걸 바라게 돼. 포식의 돼지가 되어가는 거야. 사람은 모든 걸 가지면 도태되기 마련이지. 그러면서도 더 많은 걸 바라게 되고, 하나를 가지면 둘을 바라는 게 사람이잖아? 끊임없이 가지려고 발버둥치지. 돈, 명예, 여자, 보석, 저택 그 외에 무수한 무엇.”


류지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튜가 그저 재벌가문의 반항아, 망나니 인 줄 알았다.

헌데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가 있는 괴짜처럼 보였다.


“넌 어린 녀석이 무척, 엄청, 대단히, 열심히 살고 있더군.”

“그래야죠. 한번 뿐인 인생인데.”

“네 인생의 목표는 뭐야?”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

“넌 살면서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전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아니, 그 목표를 이룬 것만으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나?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 그런데 완벽을 추구하려 하지. 그건 영 잘못된 생각이야.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게 사람이거든.”

“......?”

“예술을 볼까? 예술에 완성이 어디 있어. 예술에 담기는 게 뭐지? 창작자의 가치관이고 철학이고 인생관이고 세계관이지. 그런 것들이 완벽한 건 하나님 밖에 없잖아. 그런데 감히 인간 나부랭이가 완성한다고? 말도 안 돼.”


류지호는 무언가 알듯하면서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완성이란 없어. 인생이라는 놈도 그렇지.”


류지호는 그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삶에 목표를 없애 버렸지.”

“.....에?”

“그러니 너도 즐겨봐. 어차피 짧은 인생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매튜가 류지호에게서 멀어졌다.

그는 미친 듯이 술을 퍼붓고 있는 파티 참석자들 사이에서 똑같이 미친 듯이 술을 마셨다.


“......?”


뭔가 심오한 한 듯 아닌 듯한 말들.

사람이 지껄이는 멍멍이 소리를 신나게 지껄였을 뿐.

결국 헛소리였다.

류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명상을 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와인을 홀짝거리는 존 자무슈에게 다가갔다.


“존.”


미국 서부지역에서 영화를 한다고 하면, 화려한 스타부터 떠올린다.

반면에 뉴욕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어딘가 배도 좀 고프면서 독립영화도 찍고 흥행보다는 작품이지 하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왠지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는 궁색한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뉴욕커는 뉴욕커다.

말만 인디예술가지, 매우 세련된 행색을 하고 있다.


“그레이엄가 망나니의 손님이군.”

“지호라고 편하게 부르세요.”


존 자무슈는 미국 인디영화의 아이콘이나 마찬가지인 인물이다.

그가 단돈 10만 달러로 만든 <천국보다 낯선>은 미 인디영화의 상징 같은 영화다.

사실 할리우드와 뉴욕의 시각차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시상식을 보면 알 수 있다.

할리우드를 대변하는 아카데미, 골든글로브상과 뉴욕의 영화비평가협회에서 주는 상을 비교해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영화를 단순하게 흥행과 비평이라는 두 영역으로 나눴을 때, 할리우드는 흥행을, 뉴욕은 비평을 움켜쥔 셈이다.

류지호는 뉴욕과 할리우드의 영화 인식차이가 큰 것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존 자무시가 시니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할리우드와 뉴욕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하면 좀 고상한 표현이 될 것이고, 서로 질투하는 나머지 까칠하게 대하고 있다는 게 좀 더 솔직한 얘기겠지.”


할리우드와 뉴욕 사이는 서로 견제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적대적인 것은 아니어서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뉴욕에서 싹수를 보인 독립영화 감독이 할리우드 스튜디오로 스카우트 되는 것이 다반사고, 마르틴 스콜체제 같은 뉴욕파 거장이라도 규모가 큰 영화를 찍으려면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협력하는 것은 필수다.


“할리우드에서 자리 잡은 감독이 뉴욕식 독립영화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하죠.”

“난 뉴욕식이란 것도 좀 웃겨.”


에단 고언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프리스턴에서 철학을 전공한 에단은 학구적인 모범생 타입이다.


“인디영화 운동이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 졌을 때,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건 인디펜던트라는 말이 곧 찬사였다는 거야. 인디영화는 좋은 영화고,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는 나쁜 영화로 취급되더라고. 분명한 건 나쁜 인디영화도 있고, 좋은 스튜디오영화도 있다는 거야.”

“나도 동생에 말에 동의해.”


조엘 고언이 동생에 말에 자신의 생각을 보탰다.


“메이저 스튜디오를 통한 자본 집중, 철저한 분업과 효율적인 협업은 할리우드의 성공 비결이지만, 일반적인 레벨의 감독은 편집권 행사가 어려울 정도로 답답한 곳이야. 규모는 작아도 온전한 내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할리우드에서 더 간절해지기 마련이고, 한번쯤은 뉴욕식에 호감을 갖게 되지.”


할리우드 성공신화의 상징인 스타들도 자리가 좀 잡히면 뉴욕으로 향하곤 한다.

베벌리힐스 저택 구입 다음은 뉴욕에 머물 맨해튼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이 코스라는 말이 미국 연예계에서 자주 회자된다.

뉴욕의 고상하고 우아한 전시회나 패션쇼를 드나들며 다른 분야 예술인들과 파티도 하고,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연기파란 소리를 듣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다.

소설가인 샌디가 음울한 음성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같은 명품을 사들여도 할리우드에서 사면 골빈 년들의 낭비처럼 느껴지고, 뉴욕에서 쇼핑하면 뭔가 패션을 이해하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차이가 있지. 뉴욕하면 헤이우드 앨런이나 마르틴 스콜체제같은 감독과 안토니 드니로 주니어 같은 연기파 배우가 떠오르는 마당에 스타라면 그런 이미지를 탐낼 법도 해.”

“그래서 스타들이 돈을 많이 받는 거야. 베벌리힐스와 맨해튼을 바쁘게 오가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겠어.”


치익.

존 자무슈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존, 당신은 왜 극영화를 관조해서 찍는 것처럼 접근합니까?”

“플롯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게 해. 그보다는 과정 안에 뭔가 있다는 것이 나를 더 흥분시켜. 내가 원하는 것은 이야기를 찾기보다 디테일을 첨가하고 모아서 퍼즐이나 그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거야. 이미지들이 모여 기호가 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할까......”


존 자무슈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에 머물렀다.

류지호는 뜬금없이 사색에 빠지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존 자무슈가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품으며 말을 이었다.


“담배는 어쩐지 죽음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뿜었다 사라지는 연기를 보면··· 죽음도 삶의 연장이라는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 같아.”


악동 같은 이미지의 존 자뮤시를 생각했던 류지호다.

세간에서 그의 영화를 평가하는 것처럼 그는 명상의 영화감독인 것 같았다.


“올해는 어떤 영화를 찍을 예정입니까?”

“네오-비트-누아르-코미디... 또는 동화 같은 상상의 이야기라고 말 할 수 있을 거야.”

“난해하군요.”

“뭐 어때, 난 내 영화를 찍을 뿐이야.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종려나무>와 제프리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지”

“난 당신의 <천국보다 낯선>을 무척 좋아했어요.”

“왜 좋아하지? 아니 좋아 했었다고?”

“난 시간을 거슬러 이곳에 왔고, 이번 삶에서 난 유랑자이며,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질적이에요. 그래서 난 이방인이거나 이 세계의 이민자. 그리고 실제 난 한국인이라 외국인이죠.”


류지호는 존 자뮤슈가 영화에서 표현하는 주인공들의 처지에 빗대어 자신을 표현했다.

존 자무슈가 그런 류지호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괴짜군. 아니 그냥 정신 나간 청소년인가.....?”


존 자무슈는 말을 마치고, 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다.

류지호는 샌디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고언 형제로 옮겨갔다.

이 천재적인 형제는 아직 전 세계적인 마니아를 만들어내는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온갖 종류의 창의적 인물들이 별다른 계획 없이 만나 서로에게 팁을 주고 새로 떠오르는 이론이나 예술시장, 현재의 흐름에 관해 토론하곤 했어. 비록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더라도 얼굴을 마주치는 건 이 도시에 활기를 북돋워 줬고, 생각을 나누고 서로 자극을 받았지.”


샌디가 과거를 회상하는 몽롱한 시선으로 말했다.


“그 시절 뉴욕의 시인들은 영화란 게 저급할까봐 겁내서 자신의 예술적인 친구들에게 할리우드 감독을 소개하기를 꺼리던 시대였어.”


조엘이 샌디의 말을 받았다.

말투에서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그건 지금도 유효해. 여전히 몇몇 스스로를 우월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작자들은 예술에 몸 바친 순교자가 되길 바라거나 기꺼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가깝게는 그들이 마르틴을 깎아내리잖아.”


에단이 마르틴 스콜체제를 비난하는 일부 골수 뉴욕파에 일침을 가했다.


“흥. 얼어 죽을 뉴욕파라니.”


샌디가 냉소적으로 말을 뱉었다.

퀴어영화를 하든 인권영화를 하든 이곳에 모인 영화인들은 진정으로 인디영화의 최전선에서 자신들의 예술혼을 마음껏 드러내는 용자들이다.


“예술에 몸담은 싸움꾼들은 이 거대한 도시가 폭풍 전야처럼 언제나 공기가 온갖 위험스런 가능성으로 가득 차있을 때 예술혼이 불타는 법이야. 내 말이 맞지 친구들!”


술에 취한 매튜가 악을 써댔다.

그러자 파티 참석자들이 류지호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이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철학을 영혼에 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예술계의 투사이자 전사다.

류지호는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파티 참석자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충무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신이 하는 작업이 예술이라고 믿는 자들의 행위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법이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중하류 하지만 문화생활은 최상류.”


에단은 대학에서 실존주의 철학에 깊은 학문적 관심을 가졌고, 그 관심은 작품 세계로까지 이어졌다.

류지호와 고언 형제는 제법 죽이 잘 맞았다.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답답했지만, 보디랭귀지와 콩클리쉬를 섞어 대화를 이어가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고언 형제의 괴짜스러움으로 인해 대화하는 재미가 있었다.

매튜에게 억지로 끌려온 파티다.

헌데 좋은 친구들을 사귈 기회를 얻었다.

즐기기 위해 참석했지만, 욕심이 불쑥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류지호는 좀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혹시 지금 준비하는 영화에 투자금은 다 모았어?”


류지호는 정중한 어투를 버리고 친근한 표현으로 바꿨다.


“조엘이 애쓰고 있지.”

“내게도 시나리오를 보내줄 수 있을까?”

“시나리오는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아.”

“알아. 너희들 영화에 투자를 하고 싶어서 그래.”

“투자?”

“너희들의 영화는 무엇이 되었든 기대가 크거든.”

“내 팬이야?”

“너희 형제의 팬이 아니라. 너희들이 만든 영화의 팬이라고할까. <아리조나 유괴사건>은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였어.”

“고맙군.”

“이번에 찍을 영화는 뭐야? 간단한 아이디어는 말해 줄 수 있잖아?”

“바람이 부는 숲 속을 굴러가는 중절모.”


류지호는 단박에 영화를 알 수 있었다.

갱단이 배신자를 처리하는 장소를 뜻한 속어.

<밀러스 크로싱>.

갱스터 느와르 영화인 척 하는 블랙코미디 영화.


“제작비가 어떻게 돼?”


고언 형제가 미심쩍은 얼굴로 류지호를 빤히 쳐다봤다.

형제는 인디영화 쪽에서 주목 받는 영화감독이지만, 지금까지 개인투자를 받아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할리우드는 각본, 감독, 제작, 편집 등 모든 것을 자신들의 손으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들 형제에게 기꺼이 돈을 대기를 꺼려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들의 영화는 돈이 되지 않았다.


“난 사업가야. 한국에서 웨딩비디오 사업을 하고 있어.”

“돈 자랑 하고 싶은 거야?”

“자랑할 돈은 아직 없어. 하지만 난 너희 형제 영화 진짜 좋아해.”

“안 웃겨. 어린 친구.”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여? 난 지금 매우 진지해. 요즘 뉴욕 사교계에 소문난 럭키 보이가 바로 나야.”

“파커의 소녀를 구했다는 아시아의 소년?”

“매튜에게 확인시켜 줘? 그렇게 하면 내가 너희 형제 영화에 돈을 댈 수 있다는 걸 믿겠어?”


반짝반짝 빛나는 류지호의 눈.

그의 눈을 쳐다보는 조엘의 눈이 진중하게 빛났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청년의 눈빛에서 흘러나온 설렘과 흥분은 결코 꾸며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파커가 투자하게끔 주선하겠다는 거야?”

“No! 내가 하는 거야.”

“복권이라도 맞았어?”

“한국에서 사업한다니까.”

“으음. 나와 동생은 유대인의 돈이건 흑인의 돈이건 일본인의 돈이건 상관없어. 영화만 찍을 수 있다면. 아, 마약을 판돈은 사절이야.”

“좋았어!”


고언 형제와 인연을 맺는 건 언제고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다.

류지호는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칸이 사랑하는 천재적인 감독이자 작가.

하지만, 저들의 영화에 투자하면 굶어죽기 딱 좋다.

상관없다.

천재들과 교류하다보면 류지호도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류지호는 매튜가 들고 있는 위스키 병을 빼앗아 들고 외쳤다.


“그러니 이 순간을 위해 축배를 들자! 파티가 끝나면 기다리는 것은 숙취밖에 더 있겠는가!”


벌컥벌컥.

류지호는 위스키의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마셨다.


“지호, 넌 십대잖아. 자제하도록 해.”

“괜찮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류지호는 모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즐겼다.

그레이엄가의 망나니 매튜 못지않았다.

그렇다고 고주망태가 되어 추태를 부리거나 하는 일은 벌이지 않았다.

일행들과 헤어지기 전.

코엔 형제의 사무실 위치와 전화번호를 받아두었다.

포토그래퍼 해리 맥코트의 전화번호까지 받았다.


“조엘, 다음 주에 내가 당신들의 사무실로 찾아가겠어. 계약서 준비해 둬.”


펜트하우스를 나서는 류지호의 입에서 절로 휘파람이 흘러나왔다.

매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파티가 그렇게 재미있었어?”

“.......?”

“네 모습은 정말 즐기지 않으면 나오지 못할 모습이야.”

“맷도 충분히 즐겼어요?”

“당연하지. 난 항상 최선을 다해서 즐긴다고.”


류지호 역시 무척 즐거웠다.

존 자무슈, 고언 형제, 그 밖의 인디영화인들와 대화 하는 내내.

왜 재미가 있었는지, 왜 즐거웠는지.

류지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오고 처음으로 정말 원 없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토론했어.’


어려짐으로 해서 좋은 점은 무언가를 배우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편협하고 보수적인 꼰대 마인드였다면, 도저히 취할 수 없는 태도다.


[영화는 사람들에게 여러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가장 좋은 점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겁니다.]


고언 형제는 할리우드를 풍자하는 자신들의 영화에서 영화를 하는 즐거움과 그 작업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낸다.


‘형제는 그들만의 영화를, 나는 나만의 영화를...!’


류지호는 형제의 천재성을 동경하고 질투심을 느끼는 것에 어떤 부끄러움도 없다.

삼류라고 해서 영화인이란 사실이 없어지거나 부정당하는 일은 없다.

형제나 류지호나 영화를 사랑하는 것도 똑같고, 자신들이 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것도 똑같다.


“내가 자주 가는 스트립 클럽이 있는데 같이 갈래?”

“난 미성년자입니다.”

“왜 갑자기 십대인 척 해?”

“음.... 캐서린에게 혼 날 것 같아서?”

“크크. 그건 나도 무서워.”


저택으로 돌아온 류지호를 신효정이 맞이했다.


“호텔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언제 돌아와 다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할지 알 수 없어서......”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류지호는 복식호흡을 하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서야 술기운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일주일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아요.”

“뉴욕이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봐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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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영정사진. (3) +11 22.02.22 7,766 196 22쪽
88 영정사진. (2) +7 22.02.21 8,030 184 23쪽
87 영정사진. (1) +4 22.02.19 8,411 177 23쪽
86 기업에게 국경은 없다! +5 22.02.18 8,298 180 26쪽
85 광고는 역시 스타 마케팅! +3 22.02.17 8,390 191 27쪽
84 W.a.W Pictures. (3) +4 22.02.16 8,328 183 23쪽
83 W.a.W Pictures. (2) +2 22.02.15 8,394 167 20쪽
82 W.a.W Pictures. (1) +4 22.02.14 8,584 184 17쪽
81 자네는 주식투자를 뭐라 생각해? +8 22.02.12 8,469 191 17쪽
80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3) +3 22.02.11 8,416 179 19쪽
79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6 22.02.10 8,622 177 23쪽
78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1) +7 22.02.09 8,881 167 25쪽
77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9 22.02.08 8,769 187 21쪽
76 미래를 사고 싶어요. (2) +5 22.02.07 8,870 188 21쪽
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69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10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79 194 27쪽
»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29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6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0 187 25쪽
69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0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4 210 17쪽
67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4 204 19쪽
66 충성을 다 하겠슴다! (4) +6 22.01.26 9,469 20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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