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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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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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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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영정사진. (6)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오전 촬영을 마치고, 스태프들이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류지호와 하재근이 촬영을 불허한 주택으로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고 정중하게 대화를 청했다.

문전박대.


“미안하다. 지호야...”

“형이 왜 미안해. 영화 찍다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야.”


류지호는 촬영장으로 돌아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 촬영을 해야만 했다.

김인륜 배우는 드라마에 합류해야 했고, 촬영팀과 조명팀은 상업영화에 합류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 밖에 장비문제까지.

오늘 촬영을 못하면 곤란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배우 스케줄과 스태프 스케줄을 맞추려면 일주일 후가 될지 한 달 후가 될지 알 수 없다.

정확한 상황판단과 빠른 결정이 필요한 때다.


“형, 일단 보조출연자들 오전 일한 것만 일당으로 계산해서 주고 돌려보네.”

“촬영 접을 거야?”

“아니. 어떻게든 찍어야지. 주인공들 집 찍은 곳에 부탁드려 봐줘.”


류지호가 하재근에게 부탁했다.

류지호의 뜨거운 눈길을 받은 하재근이 긴 한숨을 뱉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집 안으로 안 들어가고, 대문 앞에서만 찍겠다고 하면 허락해줄지도 모르겠다. 너도 알다시피, 그 이상은 무리야.”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시나리오와 콘티를 펼쳤다.

볼펜을 꺼내 빈 종이에 뭔가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탁.


류지호의 눈앞에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놓여졌다.

그가 고개를 들어보자, 김영복이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 그냥 밀어붙이시려고요?”

“시나리오와 콘티를 바꿀 생각이에요.”

“갑자기? 그게 되요?”


류지호가 김영복이 가져다 놓은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대답했다.


“대사나 야마는 그대로 두고, 장소와 분위기만 바꾸려고요.”


본래 시나리오에는 상갓집에서 문상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시나리오를 바꿔 문상하는 장면을 빼야 할 것 같다.

급한 대로 대문 밖에서 시나리오에 담긴 내용을 찍기로 했다.

장소가 바뀌게 되면 전에 찍었던 주인공 집 대문 밖 장면들은 쓸 수 없게 돼 버린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걸 버리더라도 중요한 씬을 건지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수호형, 소품으로 준비한 조등 있지? 그것 좀 대문 옆에 걸어줘.”


조등(弔燈)은 상갓집을 표시하기 위하여 거는 등(燈)이다.

한수호가 주택 앞에 노란빛의 조등을 걸었다.


“이걸로 되겠어?”


조등 하나만으로 상갓집 분위기를 온전히 낼 순 없다.


“포스트프로덕션에서 대문 너머로 곡소리와 웅성대는 소리를 넣으면 어찌어찌 될 거야.”


본래 낮 신이었던 걸 밤으로 바꾸었다.

또한 한 씬의 내용을 분리해 두 씬으로 나눴다.


“나중에 믹싱에서 왈라(군중들의 떠드는 소리)도 넣고, 효과음과 음악도 넣으면 굳이 상갓집 스케치가 없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할아버지와 손자의 감정과 드라마지 상갓집 풍경이 아니잖아요.”


감독이 괜찮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스태프는 없다.


“자 오늘 빼고 한 회차만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봅시다.”


스태프들이 바뀐 장소로 이동해 준비를 마쳤다.

자리가 잡히고, 현장 분위기를 살피던 류지호가 입을 뗐다.


“슛 갈까요?!”

“준비 됐습니다.”

“레디... 카메라... 사운드...”


류지호는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공연히 섭외가 틀어져 급조한 장면이라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상업영화도 감독이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없다.

단편영화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남이 차려준 밥상에서 밥 만 떠먹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최악이든 최선의 상황이든,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

그것 역시 영화감독의 능력이다.


“액션!”


경재가 조등 아래서 훌쩍거린다.

상갓집 안에서 간간이 웃음소리가 대문 밖으로 흘러나온다.

호상이다.


덜컹.


할아버지가 상갓집 대문을 열고 나와 울고 있는 손자를 발견한다.


[우리 똥강아지 왜 울어?]


손자가 울며 할아버지에게 안겨 온다.

이내 울기 시작한다.

엉엉 운다.

할아버지의 다리에 매달려 서럽게 운다.

손자의 울음소리와 상갓집 안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가 뒤섞인다.


[사람들은 딸기코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간 걸 축하해주는 거야. 슬픈 일도 아니고 무서운 일도 아닌 거야.]

[딸기코 할아버지가 사는 집은 여긴데?]

[여기는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야. 진짜 집은 따로 있어.]

[거기가 어딘데?]


할아버지가 하늘을 가리킨다.


으아앙.


손자는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린다.


[할아버지 집은 우리 집이야. 하늘나라 아니야!]


손자가 울면서 달려간다.


어허허헐.


할아버지가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손자가 달려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컷!”


류지호는 주인공을 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신파의 가장 편하고 안일한 방법이 주인공을 울리는 것이기에.

그래서 버전을 달리해서 찍어둘 필요가 있다.


“지금 건 킵. 경재가 울지 않는 거로 한 번 더 갈게요.”


류지호는 이경재에게 울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가 얻고 싶은 장면은 억지로 울음을 참아내는 모습이다.

성인 연기자도 쉽지 않다.


“경재야, 눈물이 나면 그냥 흘려도 돼. 대신 엉엉 울지만 말아줘.”

“네에~”

“엔드 슬레이트 넣을게요.”


충무로 용어인 엔드 슬레이트는 촬영시작 전에 슬레이트를 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컷을 외친 후에 슬레이트를 치는 걸 말한다.

중요한 감정 씬을 찍을 때 의도적으로 엔드 슬레이트를 넣는다.

감독도 액션 사인을 나지막하게 말해 배우의 집중을 깨트리지 않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10살 어린이가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그걸 표현하는 건 어렵다.

류지호는 이경재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경재야, 언제든지 준비되면 말해.”

“전 준비됐어요.”

“스피드. 롤...”

“액션...”


몇 번 촬영을 해봤다.

류지호의 성에 차지 않았다.

무려 일곱 번의 NG 끝에 류지호는 타협했다.


‘더 이상 테이크를 가봐야 경재에게 더 나올 것 같지 않아.’


이 이상 연기를 시키는 것은 이경재를 학대하는 꼴이다.


“컷!”


불쑥.


카메라 앞으로 뒤집어진 슬레이트가 들어왔다.


“씬 10, 컷3-1, 테이크 7”


딱.


연출부가 엔드 슬레이트를 치고 빠졌다.


“마지막 테이크, 오케이로 할게요.”


아무래도 편집실에서 이번 커트의 모든 테이크를 꼼꼼히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때로는 현장에서 NG였던 테이크가 오케이 대신 영화 본편에 들어갈 수도 있다.

영화를 찍어나감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영화 내내 너무 손자가 철없이 행동하는 거 아냐?”

“심통 부리는 모습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어.”


연출부들이 우려했다.

류지호는 계속해서 손자의 그런 모습을 밀어붙였다

결국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손자의 진심이 전해진다.

결코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심통을 부린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딸기코 할아버지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버릴까 봐 무서웠던 거다.

그걸 받아드릴 수 없는 손자는 은연중에 그런 스트레스를 드러내게 되고, 심통을 부리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조금만 힘냅시다!”


자정을 넘긴 시간.

동네 사진관 앞길로 이동해 조손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을 찍었다.

동네 길에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이 제법 운치가 있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손자를 달랠 수 있었다.

밤 장면으로 바꾼 것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아름다운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훨씬 정감 있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멋들어진 영상이 전부는 아니야.’


영화는 하나하나의 영상도 좋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연결되어 보이는 완성도가 좋아야 한다.

때로는 하나하나의 쇼트가 불완전 하더라도 그 쇼트들의 연결성이 좋은 경우가 완성도 측면에서 나을 수도 있다.

시나리오와 콘티를 바꾼 것 때문에 편집에서 몇 개 씬의 위치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류지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덕분에 훨씬 더 좋은 장면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바뀐 장면 뒤에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은 이불을 덮고 잠자는 장면으로 넘길 예정이다.

손자는 자신이 잠자는 동안 할아버지가 진짜 집인 하늘나라로 돌아갈까 걱정돼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잠이 든다.

옷자락을 움켜쥔 고사리 손 한 커트를 인서트로 찍어놓았다.


“이제 한 회차 남았네....”


큰 예산을 움직이는 상업영화는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매일매일 비용과 문제가 발생한다.

류지호가 오늘 겪은 작은 곤란함은 정말 사소한 것이다.

류지호가 한껏 기지개를 켰다.


으드득.


단편영화 촬영으로 영화현장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현장을 뛰는 거라 힘들긴 했다.


“좀 피곤하네.”


류지호가 그런 피로를 즐기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 ❉ ❉


김영복의 마음 같아서는 몇 회 더 찍고 싶었다.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

충무로 영화 평균제작비가 2억 5천에서 3억 원 사이다.

류지호의 단편영화의 예산은 대략 7백에서 8백만 원 사이라고 들었다.

포스트프로덕션 비용이 빠진 예산이다.

조금 고생스럽게 작업하면 독립장편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예산이다.

넉넉한 예산은 만족할 만한 시도와 테스트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감독이 특별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환영하는 기색이었다.

김영복은 충무로 퍼스트로 복귀해야 하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게다가 류지호와 조금 더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류지호는 전도유망한 감독지망생이다.

충무로 감독들은 독선적이어서 ‘이렇게 찍어 달라’ ‘그건 아니다’ 하는 식으로 촬영기사를 오퍼레이터 취급한다.

촬영기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영감을 주는 감독은 흔하지 않다.

류지호는 소통하고 대화하는 자세와 태도를 보였다.

매번 스태프들에게 자신이 찍고 싶은 걸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가져오고, 잡지를 오려오고, 소설이며 신문기사 스크랩을 참고자료로 제시했다.

그런데 한 번도 그것과 똑같이 해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걸 재해석 해보자고 하고, 그걸 뛰어넘어 보자고 제안했다.


“왜 자신 없어요? 안 돼요? 불가능해요?”


그런 말들을 스태프에게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

도리어 그런 태도에 김영복은 은근히 압박감을 느꼈다.

자존심이 상했다.

도발하는 어린 감독에게 프로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이 원하는 달리(Dolly)의 속도를 찾기 위해 수도 없이 조수들을 몰아세웠다.

감독이 원하는 색감과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조명기사를 꽤나 심하게 쪼아댔다.

그렇게 오케이 사인을 내고 감독이 한 말이 걸작이었다.


“이게 기본 아닐까요? 영화촬영은 빛의 예술인데 TV 드라마 때깔이 나오면 영화하는 사람으로 쪽팔리잖아요.”


맞는 말이긴 했다.

그래서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여건이 안 되니 문제다.

예산에 쫒기고 시간에 쫓기는데 촬영기사와 조명기사가 뭘 더 잘해낼 수 있을까.

충무로 스태프들의 순발력과 열악한 상황에서 최대치를 뽑아내는 건 모르긴 몰라도 세계 최고가 아닐까 김영복은 생각했다.

자신의 오야지(스승)는 충무로 3대 촬영기사에 꼽히는 양반이다.

그런 양반도 매번 촬영을 나갈 때마다 부실한 콘티와 예산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내며 촬영한다.

촬영기사뿐만 아니라 퍼스트급들도 수많은 감독들을 경험한다.

김영복이 작업했던 영화감독 중 잘된 케이스가 많았는데, 촬영을 하다보면 그 감독이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예측이 가능했다.

그 예측은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김영복은 확신했다.

눈앞에서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이 예비영화감독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감독이 될 것이라고.


히죽.


흙속에 묻혀있던 진주를 자신이 찾아낸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촬영 쫑하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류지호의 음성이 김영복의 상념을 깨웠다.


“그럴 리가... 맘 같아서는 그냥 장편으로 쭈욱 달리고 싶어요.”

“하하하.”

“장편 시나리오 나오면 딴 데 주지 말고 나부터 줘 봐요.”

“입봉부터 하세요.”


그때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님!”


칸에 출장을 갔던 오동석이 촬영현장에 나타났다.

류지호가 웃는 얼굴로 오동석을 타박했다.


“한 이틀 집에서 푹 쉬라니까 왜 왔어요?”

“좀이 쑤셔서 쉬지도 못해요.”

“동석씨 오랜 만입니다.”

“김 기사님 고생이 많으시네요.”


두 사람은 이미 안면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류지호가 둘에게 촬영 중임을 상기시켰다.


“자, 회포는 촬영 끝나고 풀어요.”

“넵.”


촬영준비를 마친 스태프들이 감독을 쳐다봤다.

단 한 씬 만을 남겨둔 상황.

아직 촬영이 끝난 것도 아닌데, 류지호는 벌써부터 현장이 그리울 것만 같았다.


“슛 가볼까요?”

“언제든지요.”

“준비됐어요.”

“가시죠. 감독님.”


석양이 지는 동네 언덕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햇빛이 내려쬐는 한낮의 똑같은 길에서 화면 쪽으로 걸어오는 손자의 모습을.

동일한 카메라 포지션, 동일한 앵글, 동일한 화면 사이즈로 촬영해 연결할 예정이다.

편집 순서는 할아버지 장면이 앞에 놓이고, 손자 장면이 뒤에 놓이게 된다.

해는 순식간에 저물기 때문에 그 짧은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 촬영해야 했다.

따라서 낮 장면인 손자의 커트를 먼저 촬영하기로 했다.


“슛!”

“레디... 카메라... 사운드...”

“씬 17B, 컷2, 테이크 1”


딱!


“액션!”


류지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가족이 매일 지나가는 언덕길이다.

언덕길 너머에서 작은 점 하나가 점점 형체를 갖춘다.

책가방을 멘 손자가 신발주머니를 빙글빙글 돌리며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따릉.


김재욱이 자전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가


[어이쿠!]


꽈당!


손자 앞에서 자빠진다.

넘어진 자전거를 호들갑스럽게 살피고, 정강이를 비비며 난리를 피우는 김재욱이다.


킥킥.


손자가 김재욱의 유난 떠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

영화에서 자전거는 모두 세 번 등장한다.

영화 전반부에 슈퍼 앞에 세워져 있는 것 하나.

빠른 속도로 할아버지를 지나쳐 갈 때 한 번.

마지막 씬, 손자를 지나쳐 가다가 자빠지는 것 셋.

자전거는 운전자가 두발로 페달을 밟아야만 움직이는 이동수단이다.

빨리 달릴 수도 있고, 천천히 달릴 수도 있다.

자전거의 속도는 온전히 페달을 밟는 운전자에 달렸다.

언덕길을 오를 때는 온 힘을 짜내야 하고, 내려갈 때 페달을 밟으면 더 빨리 내려간다.

우리네 삶도 그러한가.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다만 그 삶을 채우는 방식은 모두 본인에게 달려 있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김재욱과 손자가 나란히 걸어간다.

카메라는 달리(Dolly)로 이들을 계속 따라간다.

사진관 앞에서 둘은 헤어지고.

손자는 사진관 밖에 걸려있는 다양한 사진 앞에 잠시 서있다.


[......]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들 가운데 할아버지의 사진이 걸려있다.

잠시 할아버지의 사진을 지켜보던 손자가 사진관으로 들어간다.


딸랑!


[학교 다녀왔습니다!]


사진관 안에서 손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진관 밖에 걸려있는 사진 안에서 할아버지가 활짝 웃는 것만 같다.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더라도 손자는 매일 사진관 앞에 걸려있는 사진을 볼 것이다.

매일 사진으로 할아버지를 만나 추억하고 잊지 않을 것이다.


“컷!”


동선이 꽤 긴 달리(Dolly) 쇼트였다.

한 번에 완벽한 장면을 얻을 리가 없다.

무려 9번의 테이크 끝에 만족할 만한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


"서두릅시다!“


해가 지기 전까지 할아버지의 장면을 반복해서 리허설을 진행했다.

손자가 걸어왔던 언덕길을 정확하게 반대로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찍어야 했다.


“해 넘어가요!”


스태프들이 분주해지고, 류지호와 김영복의 마음이 급해졌다.

석양 촬영은 고난이도를 자랑한다.

두 번은 없다.

한 번에 끝내버려야 한다.


“M.O.S(mute of sound)! 슬레이트는 나중에 들어와, 새끼야!”


김영복 기사가 예민해져 있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 멀리 언덕 너머로 서서히 석양이 물들고 있다.

류지호가 앞뒤 가리지 않고 사인부터 냈다.


“레디! 액션!”


할아버지가 사진관을 빠져나온다.

손자가 걸어왔던 길을 정확하게 되짚어 걸어간다.

할아버지가 잡힌 화면은 손자의 것보다 훨씬 여백이 많다.

손자가 카메라 앞으로 걸어왔다면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등지고 걷는다.

할아버지의 걸음은 느리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 속도감을 맞추기 위해 달리(Dolly)를 미는 세컨 어시스턴트만 죽을 맛이다.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김영복이 계속해서 수신호를 보내온다.

세컨 어시스턴트의 등으로 땀 한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꿀꺽.


지켜보는 류지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애가 탔다.

NG가 나지 않길 기대하는 수밖에...

노을이 내려앉은 언덕길을 할아버지가 터덜터덜 걸어가며 멀어진다.

어느새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언덕 너머로 사라진다.


“......?!”


감독이 컷 사인을 안 주고 있다.

류지호는 좀 더 여운을 즐기고 싶었지만.

김영복이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가락으로 연신 하늘을 가리켰다.

시간 없다.


“컷!”

“오케이!”


김영복이 자신이 감독이라도 되는 양 외치고, 재빨리 달리(Dolly)에서 카메라를 내려 품에 안았다.

이내 언덕길로 달렸다.


“감독님, 빨리! 한 컷 후딱 따놓읍시다!”

“아, 네!”


류지호가가 김영복과 나란히 달렸다.


“바스트하고 얼굴 하나 딸 거야.”


마음이 급해 김영복의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왔다.

류지호가 김인륜 배우에게 달려가 재촉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서두른다면 몇 커트 따놓을 수 있다.


“레디... 액션!”


마음이 급하다보니 류지호의 목소리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급하게 한 커트를 건졌다.

아니다.

속단할 수 없었다.

나중에 현상된 필름을 확인해 봐야 알 수 있다.

조명 김 기사가 급하게 조명 하나를 가져와 김인륜 배우를 비췄다.


“타이트 한 거 하나 따 놓을게요!”


레디며 액션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김영복이 류지호를 재껴두고, 다급하게 할아버지의 클로우즈 업을 찍었다.

마침내 해가 완전히 저물고 급격히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바짝 긴장감이 감돌았던 현장 분위기가 느슨해졌다.


짝짝짝.


류지호가 박수를 치며 스태프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아싸! 촬영 쫑!”


비록 석양 커트를 찍기 위해 쫒기 듯 마지막 촬영을 했지만, 전반적으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본래 더 빠르게 촬영을 끝마칠 수도 있었다.

김영복이 욕심을 부려 보충 커트를 몇 개 더 찍었다.


작가의말

한 주 잘 마무리하시고 행복한 불금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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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사장님이자 감독님이야. +9 22.02.28 7,861 20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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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영정사진. (5) +8 22.02.24 7,608 17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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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6 22.02.10 8,622 177 23쪽
78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1) +7 22.02.09 8,881 167 25쪽
77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9 22.02.08 8,769 187 21쪽
76 미래를 사고 싶어요. (2) +5 22.02.07 8,870 188 21쪽
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69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10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79 194 27쪽
72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29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6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0 187 25쪽
69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0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4 210 17쪽
67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4 204 19쪽
66 충성을 다 하겠슴다! (4) +6 22.01.26 9,469 20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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