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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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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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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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신소연이 홀로 청춘로맨스 영화를 찍고 있을 때, 류지호는 외삼촌 심재우와 마주했다.

가만히 보니 머리는 단정했지만 양복저고리는 후줄근했다.


"앞으로 영업과 접대를 많이 하게 될 양반이 옷차림이 그게 뭐예요?"

“결혼식 갈 때 빼고 양복 입을 일이 있어야지.”

"돈이 없는 것은 아니고요?"

"내가 원체 소탈해. 너도 애 둘 키워봐. 외모 꾸미는데 돈 쓰게 되나.“


자신이 말해놓고도 민망한지 심재우가 슬쩍 눈길을 피했다.


“안 되겠어요. 아직 조금 시간 있으니까.... 가요!”


류지호가 외삼촌과 황재정을 이끌고 주안역 지하상가로 향했다.

곧바로 신사복 빌트모아 매장으로 들어갔다.

빌트모아는 작년에 런칭 한 브랜드다.

내년에 런칭 하는 타운젠트와 함께 대표적인 중저가 남성 정장 브랜드가 된다.

참고로 기성복 브랜드에는 갤럭시, 로가디스, 마에스트로, 캠브리지멤버스, 맨스타 등이 성업 중이다.

류지호는 외삼촌에게 10만 원 대 기성복 한 벌을 사서 입혔다.


“너희들은 졸업선물로 신포동 양복점에서 한 벌씩 근사한 놈으로 맞춰 줄게.”

“너는?”

“난 몇 년 입을 양복이 이미 있어.”


양복점을 나선 일행이 전철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들어설 스튜디오 건물을 결정하기 위해 류지호가 직접 나섰다.

압구정에 도착한 일행은 부동산 사장의 안내로 인근 건물들을 돌아봤다.

압구정은 젊음의 거리로 생동감이 넘친다.

청담동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줄 수 있다.

두 곳 모두 도산공원과 인접해 있고 거리풍경이 좋아 야외웨딩촬영에도 용의했다.


“류 대표 어때? 마음에 드는 곳은 있어?”

“외삼촌, 그냥 실장이라 부르세요. 어린 사람이 대표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고요.”

“알았다. 류 실장. 마지막에 본 건물은 어때?”

"압구정 8층 건물 말하시는 거죠? 세 개 층이 비어있던 빌딩."


고급 이미지의 청담동.

로데오 거리로 90년대를 풍미하게 될 압구정.

웨딩앨범에 들어갈 야외촬영 사진을 고려하면 압구정이 조금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류지호의 기억에 의하면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90년대 외제차를 타고 길거리에서 여자를 헌팅하는 소위 ‘야타족’과 근사한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를 건네며 이성에게 말을 걸었다고 해서 ‘오렌지족‘이라고 불린 신세대 날라리 문화가 파생된 곳이다.

예비부부의 야외웨딩촬영도 많이 진행되던 곳이다.


"너무 크지 않아요? 당장은 2개 층만 얻어도 무난할 것 같은데...."

“두 개 층만 쓴다고 해도 월세가 만만치 않을 거야.”


황재정과 심재우가 우려를 드러냈다.


“할 수 없어요. 이쪽 동네는 웬만큼 있어 보이지 않으면 고객들이 눈도 깜짝 안 해요. 그래도 제가 생각한 것 보다는 싸네요. 전 임대료가 평당 100은 할 줄 알았는데.”

“조금 싼 데로 가는 게 어때?”


류지호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을 모르는 두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우려였다.


“얼른 대박 터트려서 우리도 빌딩 하나 올리자구."

"우리 조카, 보기보다 배짱이 두둑하네."

"사업은 아무나 하나요. 배짱이 두둑해야죠."

"그건 그래."


그런데 건물 임대 건은 매튜와 래리의 반대에 부딪쳤다.

임대가 아니라 차라리 빌딩을 구입하라는 것이다.


“G&P에서 투자받은 돈을 모두 쏟아 부어도 모자라요.”

“은행은 뒀다 뭐합니까?”


래리에 이어 매튜가 입을 열었다.


“지호, 탱크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소충부대로 전투를 벌이려고 하지?”


맞는 말이다.

류지호는 한방 맞은 표정을 지었다.


“신중한 것도 좋고,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는 건 좋아. 하지만! 일을 저지르려면 확실히 해. 네가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나아갈 때 오토바이 탄 놈이 순식간에 추월한다고.”


본래의 역사에서 90년대 초반에 웨딩비디오 수요가 폭발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온웨딩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시장을 확장시키고, 선도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VCR보급률이나 결혼할 커플의 소득수준에 따라 매출이 적을 수도 있다.

자본으로 무장한 스튜디오가 언제 나타날지 예상하기 쉽지 않고.

그러나 변변한 경쟁업체도 없는 현재 상황에서 소극적이었던 것도 사실.

선도자는 때로 그 행보가 과감해야 한다.

류지호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당장 급매물로 나온 건물부터 알아봅시다.”

“지호야!”

“성급해!”


심재우와 친구들이 동시에 류지호를 만류했다.


“괜찮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고 해도 인천에서 작년 정도만 일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어.”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생각이야.”

“내 몸뚱이를 갈아서라도 반드시 성공시켜 보일게.”


이미 결심을 굳힌 류지호를 막을 수 없었다.

자신감이 아니다.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류지호의 의지 표현이다.

신중함은 때론 용기를 잡아먹는다.

G&P에서 투자를 받아 실탄도 넉넉한 상황.

사업은 남의 돈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

부채도 자산이라는 제임스의 말.

류지호는 망설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재정아?”

“네. 이사님.”

“지호가 저렇게 대책 없는 녀석이었냐?”

“지호가 이상한 데서 고집이 세요. 각오하셔야 할 거에요.”

“우리 회장만 무대뽀인 줄 알았더니 지호도 만만치 않네.”


조카의 추진력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대유그룹의 회장을 떠올리는 심재우다.

황재정이 옅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그래도 매번 결과를 떡하니 보여주니까요.”

“은근히 피곤한 스타일이네.”


류지호의 사업에 합류한 것이 잘한 일인지 잠시 후회가 드는 심재우다.

신중하되 판단이 서면 망설이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와서 바뀐 류지호의 자세다.

신효정의 법률사무실까지 가세했다.

신구국민학교 근처에 위치한 지하1층 지상 4층의 빌딩을 11억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에 계약했다.

압구정역에서도 가깝고, 20년 후 뜨게 될 가로수길과도 가까웠다.


“외관도 깨끗하고 입지가 양호하지만, 딱 하나 주차공간이 아쉽네.”

“대형빌딩 빼고 주차장을 제대로 갖춘 건물 찾기 쉽지 않아요.”


신효정의 말대로다.


“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전국의 땅값이며 집값이 폭등한 걸 고려하면 비교적 싼 가격에 매물이 나온 겁니다.”

“운 좋게 급매물을 건질 수 있었네요.”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매물도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당 금액이 1천만 원에 근접해 일행들을 경악시켰다.

곧바로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는 고성재에게 맡겼다.

아네모네 인테리어 공사를 통해 실력과 공사비에서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만 믿어. 손님이 한 번 찾아오면 도장 꾹 찍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 줄게.”

“1층하고 2층에 영업방해 되지 않게 신경 좀 써주시고요.”

“걱정마라.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게.”


1층에는 커피숍이 2층에는 생맥주집이 영업 중이다.

이전 건물주와 맺은 계약에서 변동이 없음을 확실히 해서 업주들을 안심시켰다.

법인 소유의 건물이다.

그럼에도 류지호의 기분은 남달랐다.


‘어찌 보면 첫 성과라고도 할 수 있겠네. 비록 절반은 은행 거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충동적인 면이 없진 않았다.

류지호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미 저지른 일을 두고 고민할 시간 따위 없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넘쳤다.

지금은 행동할 때다.

이미 저지른 일을 돌아보며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 ❉ ❉


서울 스튜디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일 때 류지호와 박상우는 장비와 관련 업체를 열심히 들락거렸다.


“장비 계약과 필름현상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라이트와 호리존은 이미 주문했고, 컬러 현상기 들여올 때까지 외주 맡기기로 했어.”

“CYC wall은 한 면을 다 커버하는 거죠?”

“......?”

“일본애들이 호리존이라고 하는 건 족보가 없는 말이에요. 영어권에서는 Cyclorama Wall이라고 불러요. 줄여서 씨와이씨나 싸이크라고 하죠.”

“그런 거냐?”

“차라리 호라이즌(Horizon)이고 하던가....”

“인물 백그라운드만 덮고, 차차 삼면에 다 호리.. CYC를 칠 생각이야.”

“애들이 레자가족 업체와 액자 업체 리서치하고 있다면서요?”

“응.”

“공부하기도 바쁜데 자식들이....”

“네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겠단다.”


사람들은 기특하다고 여기겠지만, 류지호는 아니다.

그 시간에 입시준비를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한편 류지호가 서울 스튜디오 설립을 위해 바쁜 가운데, 매튜는 뜬금없는 행보를 보였다.

강남의 봉은사로 매일 같이 출근도장을 찍었던 것.

이태원에서 흥청망청 파티를 벌여야 할 그가 이상 행동을 보이자 류지호가 물었다.


“혹시 삭발하고 스님이 되려는 건 아니겠죠?”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져.”

“......”

“내가 지금까지 배워 온 사상에는 영혼이 없었어. 나에게 중요한 건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유의지 그리고 구원이야.”


히피들은 석가모니를 존경했다.

또한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 그런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 고행의 길을 걸은 성 프란시스를 높이 평가했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가치체계를 거부한 몽상가들.

류지호가 매튜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왈가왈부할 순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일.

단전호흡을 통한 명상이라도 가르쳐볼 생각을 했다.

류지호는 매튜를 데리고 인천으로 향했다.

곧바로 용연태권도장으로 매튜를 이끌었다.


“오오. 이곳이 지호가 태권도를 배운 곳인가?”

“관장님, 여기 미국인 청년 좀 구원해주세요.”

“Hi."


매튜가 홍 관장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했다.

히피를 연상시키는 치렁치렁 늘어뜨린 긴 머리, 알록달록한 의상.

홍 관장은 매튜를 무시하고 류지호를 향해 물었다.


“이 요상한 물건은 뭐냐?”

“여기 이 사람한테 명상하는 법 좀 가르쳐 주세요. 단.전.호.흡 말이죠.”

“지호, 뭐라고 한 거야?”


홍관장이 어눌한 영어로 매튜에게 말했다.


“넌 입 다물고 있어봐.”

“오오, 태권마스터 영어를 할 줄 아네?”


매튜가 놀람을 표하며 합장을 해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홍 관장이 계속해서 류지호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 놈 굴려달라는 이야기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게... 부탁드릴게요.”

“왜? 이놈도 너처럼 정신 못 차리고 방황 하고 있어?”

“중이 될 것 같아서요. 이 사람은 속세가 어울리거든요.”


류지호는 매튜를 용연태권도에 남겨두고 홀로 빠져나왔다.

홍 관장과 류지호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던 매튜는 아무런 불만도 내비치지 않고 용연태권도장에 남았다.

류지호는 한동안 매튜를 잊고 스튜디오 준비에 열중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류지호는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녔다.

심재우와 함께 비디오촬영 학원에서 원생들과 면접을 진행하고, 비디오영상작가협회의 회장을 만나 소속 회원 가운데 비디오촬영 기사를 추천 받기도 했다.


“추천 받은 예비촬영기사가 몇 명이라고요?”

“스무 명이 조금 넘어.”

“최종적으로 몇 명을 뽑을 계획인데요?”

“10명을 추린 후 심층면접을 볼 예정이야.”

“이 사업의 성패는 비디오의 일정한 품질 유지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업계 표준이 정해지기 전까지 그때그때마다 웨딩비디오의 퀼리티가 널뛰기 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책임감 없이 대충 기본 소스만 찍어온다면 높은 품질의 비디오를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촬영기사들의 책임감과 성실성이 우선이다.


“항상 두 배수를 준비하고, 성에 차지 않는 촬영기사는 과감하게 쳐내는 게 좋습니다.”


가온이 법인으로 전환되며 사외이사의 직함을 받은 래리가 직언했다.

인천 스튜디오에 가온웨딩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차라라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쓰는 게 비용절감이 될 텐데.”


심재우의 말에 류지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일당제 기사를 쓰면 인건비 상당을 절약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인력관리와 품질관리가 어려워져요. 가온의 촬영기사는 홈비디오를 찍는 아마추어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요. 웨딩비디오에 있어서는 프로가 되어야 하죠.”


래리가 그 말을 받았다.


"잘한 결정입니다. 가온은 선도자입니다. 무한한 도전정신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장래 희망이 있습니다. 인건비를 아끼겠다고 후발업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포기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지금껏 류 대표가 품질의 전반적인 것을 책임진 것으로 압니다. 앞으로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촬영기사들이 모두 고른 실력을 가져야 합니다.“


래리는 계속해서 류지호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당장은 분명 인건비 부담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기반이 튼튼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수한 장비도 스튜디오의 시설도 아닙니다. 실력을 갖춘 인력입니다.”


래리의 말에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김 이사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우리 촬영기사들은 결혼식만 찍지 않아요. 돌잔치, 환갑잔치 심지어 공공기관 기념식 촬영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올해부터 웨딩앨범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예정이죠. 그렇다는 이야기는 웨딩비디오에 포토앨범 촬영과정을 다큐로 담을 수 있다는 의미에요. 가온 웨딩비디오에 컨텐츠가 한 가지 더 추가된다는 거예요.”


김준우가 기대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포토앨범 시작하게?”

“응. 연예인과 상류층을 주고객으로 하는 몇 군데 스튜디오에서는 연출사진을 시작했더라. 사진사협회에서도 시장 확대를 위해 웨딩앨범에 대해 조금씩 말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고.”


가만히 대화를 지켜보던 황재정이 입을 열었다.


“인천은 이제 웨딩비디오 찍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

“야, 불길한 말 하지 마. 아직 우리가 인천을 다 먹은 것도 아닌데.”

“우리가 조폭이냐 인천을 먹긴 뭘 먹어.”


황재정이 고우찬에게 핀잔을 주고는 일행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인천에서 사업을 시작한지가 일 년이야. 4군데 예식장하고 제휴를 체결했고, 촬영과 각 상품 별로 어느 정도 체계도 잡혔어. 만약 여기서 현재에 안주한다면 기존의 사진관에서 금세 우리를 따라하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인천에서의 지위를 빼앗기게 되는 것도 영 불가능한 것이 아니야.”

“그럼 지금부터라도 더욱 제휴 예식장을 늘려야겠네?”


고우찬이 걱정 섞인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김준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우리가 버겁지 않을까?”


류지호가 그 말을 받았다.


“준우 말이 맞아. 우리가 커버할 수 있는 예식의 숫자는 한정적이야. 우리가 하던 대로 광역별 거점 예식장과 독점적으로 일감을 따서 가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야. 여전히 수요는 한정적이지. 그리고 웨딩비디오만 앞서 나갈 수 없어. 예식장 서비스, 웨딩앨범, 피로연의 고급화, 축가, 웨딩드레스 디자인, 신부화장 등 결혼문화가 함께 나아가야 해.”


황재정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 동안 우리는 영업력을 발휘하지 못했어. 멈춰 서면 우리는 얕보이게 될 거야.”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맞는 말이야. 그래서 계속 동향 파악을 하고 있어. 서울은 웨딩비디오 업체가 꿈틀대고 있어. 그런데 인천은 서울과 붙어있고 우리가 촬영을 다니는데도 경쟁업체 등장이라는 특별한 움직임을 없어 보여. 아마 다음 가을 시즌까지는 우리가 하는 걸 관망만 할 거야.”

“그럼 올해는 안정적이라는 거야?”

“인천만 그래. 서울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입장이야. 당연히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우린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인천에 자리를 잡았어.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년간의 실적이 있어. 충분히 서울에서도 안착할 수 있어. 그리고 스튜디오 공사가 끝나 입주하면 곧바로 광고를 시작할거야.”

“광고?”

“웨딩 잡지하고 가장 잘 팔리는 여성지 몇 군데 생각하고 있어.”


매튜와 래리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회의를 지켜보고 있었고, 오리지널 멤버들은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황재정이 물었다.


“그런 건 다 언제 생각해 둔거야?”

“무엇으로 미국에서 투자를 받아왔겠냐? 항상 후발주자는 선발주자가 하는 걸 따라하게 되어있어. 그럼 우린 항상 한 발 앞서가야 해. 먼저 봄시즌엔 웨딩앨범, 가을시즌에는 야외촬영. 그리고 남들이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 우린 스냅샷, 그 다음에는 스튜디오 연출사진, 그리고 파파라치 컷. 그 모든 것이 자리를 잡는다면 사진과 비디오를 넘어서 웨딩드레스, 메이크업까지 원스톱 서비스. 그 이후에는 신혼여행까지 연계한 웨딩컨설팅, 또 다음에는 결혼 전반을 관리하는 플래닝. 남들처럼 해서는 남들 같은 수준밖에 안 돼.”


회의에 참여한 대부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류지호의 말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았다.

심재우가 사인방을 돌아봤다.

황재정이 심드렁하게 입을 뗐다.


“그러려니 하세요. 딱 보니까. 저 놈 지금 신 내렸어요.”


친구들은 류지호가 촬영을 할 때나 뭔가에 몰두할 때 신 내렸냐고 놀리곤 했었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말하는 류지호의 모습이 그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예식장은 안 해?”

“글쎄... 그건 좀 귀찮은데.”

“제일 돈이 되는 걸 안 한다고?”

“하고 싶으면 해. 안 말려.”

“내가 할게!”


고우찬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넌 경영에 경 자도 모르잖아! 넌 경비나 해.”


황재정이 고우찬이 들고 있던 팔을 밑으로 잡아끌며 말했다.

투덕거리는 두 친구를 잠시 웃으며 지켜보던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거라고는 달랑 불알 두 쪽 뿐이지만...”


고우찬이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준우는 불 알 두 쪽에 부모님이 물려 줄 재산도 있걸랑.“

“너희들 두고 봐. 내가 아주 유명한 포토그래퍼가 돼서 고객이 제 발로 찾아오도록 만들 테니까.”


김준우가 친구들을 향해 야무진 포부를 드러냈다.

진지하게 진행되던 회의가 옆길로 샜다.

심재우가 사인방과 함께 일하려면 적응해야 하는 분위기다.

류지호가 그런 심재우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옆으로 다가왔다.


“외삼촌, 우리 가온에서는 딱딱한 회의는 없을 거예요. 누구든 자유롭게 발언하고, 신랄하게 반대의견을 개진하도록 할 생각이에요. 매출, 이익, 비용 같은 숫자는 임원들이 아는 것으로 충분해요. 직원은 자기개발을 추구하고 그걸 통해 가온 발전에 기여하면 되는 거예요. 이익 실현은 우리 임원들의 몫이라고 봐요.”


심재우는 10년 간 직장생활을 했다.

이익실현이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는 임원을 본 적이 없다.

잘되면 자기 탓, 못 되면 부하직원 탓인 것이 직장이란 곳이다.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외삼촌은 아직 직장 꼰대 마인드에 물들지 않았을 테니까요.”


적당한 시점에서 전문경영인에게 가온을 넘기고 빠질 생각이다.

그 전에 가온의 직장문화를 유연하게 만들어 놓고 싶었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기업문화.

당장 실리콘밸리의 IT기업이나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정착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런 토대는 마련하고 싶다.

가온이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려면 류지호의 단편적인 미래 지식에 의존해서는 곤란했다.

계속해서 창의적인 발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소속원들이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잡상인 내쫒는 경비 말고 폼 나는 거 없어?”

“왜 없어. 보안업무를 보면 되지.”

“그건 뭐하는 건데?‘

“회사 전체를 보호하는 거야. 사람, 기업비밀, 천재지변, 분규, 정보관리 등등 회사에 관련된 모든 걸.”

“나 그거 할래. 그거 시켜줘.”


웃고 떠들며 투덕거리는 사인방의 모습을 지켜보는 매튜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저 어린 친구들의 우정이 부러웠다.

매튜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래리를 돌아봤다.


“.....래리.”

“예. 매튜.”

“래리에게도 저런 친구들이 있습니까?”

“휴스턴에 오랜 친구 녀석이 있습니다.”

“보기 좋지요?”

“비즈니스에 우정이 들어갈 틈은 없습니다.”


이익 극대화가 최우선 덕목인 비즈니스에서 우정과 신뢰를 운운하는 건 스스로 애송이라는 걸 자임하는 꼴이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일 뿐.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오히려 다툼이 일어나면 우정과 신뢰를 떠벌였던 자가 더 극악하게 돌변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짐을 래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긴 그러니까 대니얼이 당신들을 회사에 두겠지.”


매튜가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래리는 못들은 척 시선을 사인방에게 둘 뿐이었다.


“자, 회식이다!”

“소고기!”


친구들이 류지호에게 강력하게 소고기를 요구했다.


“이것들이 입만 고급스러워져서... 시끄러워 치킨에 생맥주야!”

“닭은 너나 뜯어. 우린 소고기 구워 먹을게.”


매튜가 언제 얼굴을 굳혔나 싶게 활짝 핀 표정으로 류지호에게 달려갔다.


“지호, 회식이라고!”

“매일 관장님하고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마신다면서요?”

“소주! 괜찮은 스카치야. 매우 흥미로워.”

“관장님이 알려주는 숨쉬기는 할 만해요?”

“소주와 숨쉬기는 아주 잘 어울려. 고마워 지호. 내게 아주 좋은 숙취해소법을 알려줬어.”


류지호는 천연덕스럽게 떠드는 매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전호흡이 이방인에게 숙취해소법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류지호는 나중에 혼관장에게 반드시 일러바치리라 결심했다.


피식.


래리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비웃음이 아니다.

매튜에 고정된 그의 눈동자에는 기분 좋은 감정이 묻어나왔다.

그는 매튜를 한국으로 보낸 대니얼 회장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매튜가 다시 한 번 야망에 불타길 바라는 마음.

류지호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극을 받길 바란 것이다.


‘회장님, 미안하지만 당신 의도대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매튜의 사정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래리 킴이다.

그가 보기에 매튜는 변할 수가 없다.

아니,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내가 졌다. 이 돼지들아~ 소고기 쏜다, 쏴!”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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