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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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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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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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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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하더니,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온 지 어느덧 3년차다.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취해졌다.

그럼에도 여권발급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외에 나가려면 만 30세 이상이거나 공무·출장·유학 등 목적이 분명해야 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해외로 나간 한국인은 5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국가로는 일본·미국 다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많았다.

3월부터는 조기유학도 공식적으로 가능해질 예정이다.

여권을 발급 받는 것은 여전히 까다로웠지만.

암튼 청소년도 해외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신원조회가 매우 까다로웠고, 결격사유가 발견되면 언제든 여권이 취소되었다.

때문에 류지호는 약간 불안했다.


“신포고 재학 시 폭력사건에 연루되었고,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력이 있잖아요.”

“이미 한국전쟁 참전용사 모임에 협조를 구했어요.”

“회사 매출까지 증명하라고 하던데요?”


기업에서 해외 출장을 갈 경우 회사 매출액까지 따졌다.

게다가 미 이민법 214조에는 ‘미국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일단 불법체류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입국자가 정해진 체류기간내 귀국할 것임을 스스로 입증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류지호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아버지의 직장과 소득활동도 함께 증명했다.

류지호의 사업 활동 증명서류와 신효정의 수완으로 인해 여권심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여권 하나 발급 받기 위해 정말 많은 수고가 들어갔다.

반면에 미국 비자를 발급 받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현지 지인초정입니다.”

- 한국전쟁 참전 퇴역군인회와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작년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에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모두 대한민국을 위해 소중한 피를 흘리신 훌륭한 어르신들입니다. 그분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귀찮음이 역력했던 미국 영사의 표정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 초청자가 캐서린 파커로 되어 있군요. 혹시 동부 그레이엄 가문의 따님 아닙니까?

“미세스 캐서린의 본가가 그레이엄의 성을 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맨해튼 소재 로펌의 공동대표이자 G&P라는 투자회사의 사외이사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사가 몇 번이고 그레이엄이 맞느냐고 반복해서 물었다.

류지호는 캐서린이 출국 전 주었던 명함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명함을 확인한 영사는 놀라 자빠질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통과!”


초청자가 그레이엄가문의 자녀이자, 파커 가문의 며느리 신분의 캐서린이란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영사는 다른 질문은 할 것도 없다는 듯이 패스를 외쳤다.

다른 어떤 보증보다 확실한 보증이었으니까.

이후부터는 친절을 넘어 엄청난 호의를 보이는 영사다.

그를 통해 류지호는 그레이엄 가문의 금장 명함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의 호의를 받고 있는 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류지호는 여권을 발급받고, 미국 비자까지 받았다.

마지막 절차가 또 남았다.

출국 전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은 병역 및 예비군 문제로 병무청에 여행신고절차를 거쳐야 했다.

안보와 보안 교육이라는 4시간짜리 소양교육도 이수해야 했다.


“외국 한 번 나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류지호는 미국 방문에만 매달려 있진 않았다.

신포고 방송부 출신 졸업생 선배들에게 비디오 편집을 가르쳤다.

올해부터 그들과 촬영 및 편집 업무를 상당 부분 나눠야 했다.

최소한 준전문가 수준까지 업무능력을 키워야했다.

따라서 엄하게 교육했다.


“수고들 많으십니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리모델링이 한창인 아네모네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혼 비수기라고 하더라도 류지호는 바쁜 하루를 보내야했다.


✻ ✻ ✻


드디어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이다.

류지호의 가족은 이번 여행에 함께 할 수 없었다.

다만 부모님이 류지호의 미국방문을 배웅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라는요?”

“등교 시켰지.”


큰오빠가 멀리 간다는 걸 알면, 류아라가 울고불고 매달릴 것 같아 일부러 출국날짜를 알려주진 않았다.


“아빠는 더 이상 욕심 안내기로 했다.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누가 뭐라던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류민상은 아들의 이번 뉴욕 방문이 단순한 관광에만 있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 챘다.


“아니, 이 양반이! 영영 안 올 것도 아니고. 괜히 어디 멀리 떠날 사람처럼 말을 해요!”


심영숙이 남편에게 성을 냈다.

혹시나 아들이 미국에 눌러 앉을까 염려했다.


“멀리 떠나긴 하지. 미국이 좀 멀어?”


아내의 마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농을 던지는 류민상이다.

남편의 농담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심영숙이 류지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쓰다듬었다.


“지호야.“

“예.”

“아들.”

“예.”

“엄마라고 불러주면 안되니? 어머니라고 하니까 자꾸 멀게 느껴져. 철이 든 건 좋은데 너무 애늙은이 같아서 엄마는 별로야.”

“그게 뭐가 어렵겠어요, 엄마.”

“진즉 그렇게 좀 불러주지.”


심영숙이 짐짓 쾌활하게 류지호를 안아줬다.

스킨십이 서툰 류민상이다.

어떤 예감을 느낀 것일까.

류지호와 가볍게 포옹했다.


“다녀올게요.”

“국제전화비 비싸다고 아낄 생각 말고, 전화 자주 해.”

“노력해 볼게요.”

“변호사님, 우리 지호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직은 썰렁한 김포공항 출국장이다.

반년만 지나면 많은 국민들이 비자를 받으려고 미국 대사관 앞에 온종일 줄을 설 것이다.

또 김포공항에서 친구들이 신혼부부를 헹가래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게 된다.

입국장에서는 ‘코끼리표 밥솥’을 안고 들어오는 관광객도 자주 목격될 것이다.

류지호는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전까지 김포공항이 북적일 것을 떠올리며 출국 게이트를 통과했다.

부모님은 류지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가지 출국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 ❉ ❉


너무 긴 비행시간이 지루하다 못해 지겨워질 무렵.

드디어 미국 최대의 공항인 JFK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포공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컸다.

광활한 대지에 펼쳐져 있는 활주로.

거의 분당 한 대씩 이착륙 하는 각 나라의 비행기들.

비행기들이 서로 얽힘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뜨고 내렸다.

미래를 살아보지 않았다면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감탄을 연발했을 상황.


‘생각보다 거대하지는 않네. 청사도 소박하고....’


역사가 오래된 공항이어서 인지, 생각보다 건물이며 시설이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런 감상도 잠시.

첫 해외여행이다.

두 번의 삶을 통틀어 처음으로 미국에 왔다.

흥미진진한 뉴욕 생활을 꿈꾸며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신효정이 류지호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미국에 왔으니까 대화도 바뀌어야겠죠?”

“가급적 영어로 대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요.”


류지호와 신효정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공항청사를 나섰다.

공항정사 앞에 캐딜락 브로엄 리무진이 서 있다.

운전기사 제복을 입은 흑인 남자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차문을 열어주자, 백인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차를 빠져나왔다.

막 청사를 빠져나온 류지호가 리무진을 빠져나오는 노인을 발견했다.


“윌리엄 할아버지!”


류지호가 달려가 윌리엄에게 넙죽 인사했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하하하. 잘 지냈느냐?”

“네! 덕분에.”

“뉴욕에 온 것을 환영한다.”

“뵙고 싶었어요.”

“나도 그렇다.”


와락.


윌리엄은 두 팔을 벌리며 다가온 류지호를 어깨를 강하게 껴안았다.

불과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류지호는 훌쩍 자랐다.

그것도 많이.


“허허. 제법 컸는데.”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인천상륙작전 기념식 날이었다.

그 당시에는 어린 티가 남아 있었다.


“오호, 많이 단단해졌어. 전에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안 보는 사이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내다워졌어. 좋아. 이 할아비는 그것이 마음에 들어.“


윌리엄의 목소리는 아쉬우면서도 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전 겨우 키만 조금 자랐을 뿐이에요. 달라지 건 제가 아니라 할아버지 같은데요. 1년 반 만에 뵈었는데 전보다 건강해보이세요.”


윌리엄은 진심으로 류지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류지호는 윌리엄에게 관심을 넘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벌써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된 거냐?”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정도에 불과해요.”

“자, 이리로 와라.”


윌리엄이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으로 류지호를 안내했다.


“.......!”


류지호는 캐딜락 브로엄 리무진을 실제로 처음 봤다.

클래식 자동차들의 향연이다.

공항을 드나드는 차량들이 인터넷으로만 보던 모델들이다.

당연했다.

지금은 1989년이니까.

촌스러움을 느낀 것이 아니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묘한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할까.

인디영화의 아이콘 존 자무슈를 비롯해 소위 뉴욕파 감독들.

칸이 사랑한 천재감독 형제 조엘과 에단.

그리고 헤이우드 앨런, 마르틴 스코체제 등등....

잠시 류지호의 머릿속으로 80년대 뉴욕의 영화들과 감독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윌리엄이 픽 웃었다.


“리무진은 처음이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지 이렇게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너도 언젠가는 마음만 먹으면 탈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류지호가 장난스럽게 응수했다.


“전 다른 차를 탈게요.”

“하나 사주랴?”

“한국에서는 이런 차가 있어도 타고 다니지도 못해요.”


류지호가 리무진의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멋지군요.”


차 시트는 침대처럼 푹신했고, 과장을 좀 보태 4명이 고스톱을 쳐도 될 정도로 넓다.

도저히 자동차 내부라고 생각할 수 없는 실내다.

어느새 샴페인을 땄는지 신효정이 잔을 윌리엄과 류지호에게 차례로 건넸다.

명품 라벨을 단 백만 원을 호가하는 샴페인이 류지호의 잔에 채워졌다.

잔을 들어 보이며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지호, 미국에 온 걸 환영한다.”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건배.”


윌리엄은 한국 발음으로 또박또박 건배를 외쳤다.


“하하. 건배!”


류지호는 기분 좋게 두 사람과 잔을 부딪쳤다.

공항을 벗어난 리무진이 동부에서 억만장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롱아일랜드의 한 지역으로 향했다.


“....음.”

“왜 그러느냐?”

“외진 곳으로 향해서.... 숙소가 휴양지에 있는 리조트인가 봐요.”


하하하.


윌리엄이 대소를 터트렸다.

너무 웃긴 나머지 눈물까지 찔끔했다.

류지호가 신효정을 향해 자신의 말 어디가 웃기는지 눈으로 물었다.

신효정은 그저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일 뿐.


“집 놔두고, 널 리조트에서 지내게 하겠느냐?”

“.....?”

“내가 사는 집으로 가고 있단다. 좀 외진 곳에 있어 미안하구나. 하하.”


껄껄 웃으며, 유독 외진 곳을 강조하는 윌리엄이다.


“뉴욕과 가까운 지역에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신효정이 아는 척을 했다.


“좀 더 안쪽에 살고 있는 부호들은 헬기를 타고 맨해튼으로 출퇴근을 하기도 합니다.”

“파커의 맨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헤카 캐슬이 있지.”

“혹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가 영감을 얻었다는 그 프랑스풍 성이요?”

“그래.”

“나중에 구경해볼 수 있어요?”

“그러려무나.”


류지호는 맨션(mansion)이란 표현 때문에 서울의 평창동 부자 수준의 저택을 상상했다.

천만에 말씀이다.

롱아일랜드 해협과 멀지 않은 산자락에 위치한 웅장한 대저택.

중세 귀족의 대저택을 방불케 했다.


철컹.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마치 공원 같은 정원과 궁궐 같은 대저택이 류지호를 맞이했다.


“......!”


류지호는 눈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대저택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막혔다.

영화에서만 보던 저택이다.

마치 황제들이 여름에 머물던 별장 같았다.

정문에서부터 차를 타고 정원을 가로질러 도착한 대저택은 미국 내 사유저택 중 규모와 호화스러움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한 저택이다.

곳곳에 정원사와 사설경호원까지 보였다.

고풍스러운 현관 앞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류지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류지호가 한국식으로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서와.”

“환영해.”

“큰오빠!”


레오나가 류지호를 향해 팔을 죽 내밀었다.


“아라.”

“아라 언니는 한국에 잘 있어.”


레오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한 번 양 팔을 내밀었다.

그 모양이 꼭 여동생 류아라가 안아달라고 하는 것과 닮았다.

류지호가 자세를 낮추고, 팔을 벌렸다.

레오나가 환하게 웃으며 류지호의 품에 안겼다.


“외간 남자한테 막 안기면 안 된다.”


하하하.


윌리엄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 할아버지가 안아달라고 해도 거부하던 레오나가 지호는 무척 반기는데?”

“싫어!”


류지호가 내려주려 하자 레오나가 격렬하게 거부했다.

다시 한 번 윌리엄이 웃음을 터트렸다.

파커 가족 한명한명과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나눈 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1층 로비는 저택의 사이즈에 걸맞게 화려하고 웅장했다.

벽에 걸린 그림부터 조각상, 장식품, 가구와 바닥에 깔린 카펫 ,샹들리에까지.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소박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화려함의 극치다.

파커 가족은 이런 공간에 익숙한지 조금의 위화감도 찾아볼 수 없다.


‘역시 사는 세계가 달랐어.’


부자들의 삶이란 매일매일 별천지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막상 경험해 보니 그 상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았다.

저택 가사도우미가 웰컴 드링크를 내왔다.

류지호는 1층 응접소파에서 파커가족과 간단한 근황을 나눴다.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영어가 유창하진 않았다.

다만 인사와 간단한 근황을 나눌 정도는 되었다.


“지호는 짐 풀고 잠시 쉬도록 해.”

“저녁 식사 때 보자.”


뉴욕에 막 도착했을 때는 긴장된 마음과 설렘 때문에 느끼지 못했다.

막상 파커의 저택에 도착해 음료를 마시고 보니, 류지호는 피곤이 몰려왔다.

제임스가 한쪽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중년남자를 불렀다.


“브래드.”

“예. 제임스.”

“지호를 쉴 방으로 안내해 주겠어요?”

“알겠습니다.”


브래드란 이름의 집사가 류지호와 신효정에게 다가왔다.


“브래들리 아담입니다. 편하게 브래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지호 류에요. 지호라고 부르세요.”

“저를 따라 오십시오.”


브래드가 앞장서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었다.


“저녁에 뵐게요.”


류지호가 파커 어른들께 인사하고 집사를 따라나섰다.

신효정은 그 자리에 남았다.

레오나가 한시도 류지호에게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류지호는 하는 수 없이 레오나를 안고 2층으로 이어진 나선형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의 제일 마지막 방으로 안내 받았다.


“여깁니다.“


안내받은 방은 류지호의 한국 집 전체 크기에 맞먹었다.

류지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다섯 식구가 사는 집보다 방 하나의 크기가 훨씬 크다니....“

“큰오빠,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내려줘.”


류지호가 레오나를 바닥에 내려줬다.

레오나가 쪼르르 창가로 달려가자, 브래드가 슬그머니 뒤를 따랐다.

레오나가 베란다로 통하는 커다란 유리문의 문고리를 잡자, 브래드가 슬쩍 힘을 실어 그녀가 유리문을 쉽게 열도록 도왔다.

류지호의 시선이 베란다로 향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큰오빠.”


레오나가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류지호에게 손짓했다.

류지호가 베란다로 나오자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멋지네.”


잘 조성된 정원과 저 멀리 보이는 롱아일랜드 해협.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실제 모델인 올드 웨스트베리 가든(Old Westbury Gardens)의 풍경만큼 화려하고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담백하고 잘 가꾸어진 조경은 한 눈에 봐도 정성들여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 취미가 정원 가꾸는 거였어. 저기 있는 게 뭐냐면......”


레오나가 파커 저택의 정원 자랑을 늘어놨다.

십여 년 전 타계한 할머니는 정원 가꾸기를 즐겼다고 했다.

정원 곳곳에 이탈리아, 영국,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각 지역 양식의 분수대와 조경을 조성해 놓았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정원 구경시켜줄게.”


류지호가 다시 방안으로 돌아왔다.

방안을 채우고 있는 집기들도 고급품이지만, 디자인이 심플한 느낌이 드는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취향을 고려해 방을 선정하고 꾸몄습니다. 만족하십니까?”

“아주 마음에 듭니다.“

“혹시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말하십시오. 곧바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도 충분합니다.”


솔직히 너무 과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더 뭘 바라면 안 될 것 같다.


“함께 온 변호사도 같은 층을 쓰게 됩니까?”

“그녀는 지금쯤 헌팅턴의 호텔로 떠났을 겁니다. 호출할까요?”

“이곳에서 묵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파티가 열릴 때를 제외하고, 파커의 저택에는 일가 분들 또는 특별한 손님만 머물 수가 있습니다.”


파커 가족에게 특별하거나 가족 같거나.

류지호의 신분이 그렇다는 의미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편지나 전화로 소통하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류지호는 미국에 잘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호가 쉴 수 있도록 비켜줄까요?”

“네.”


어쩐지 브래드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레오나다.

비록 집사 신분이라지만, 파커 가족에게 브래드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일면이다.

홀로 남겨진 류지호는 좀 더 방안을 구경했다.

그것도 잠시.


하암.


졸음이 몰려왔다.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더블 킹 사이즈 침대에 곱게 개어진 잠옷 한 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샌드위치와 주스가 함께 놓여있었다.


“......!”


중세의 대영주 저택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집사 브래드는 류지호가 잘 쉬고 잘 먹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서비스했다.


하암.


다시 한 번 하품이 나왔다.

류지호는 침대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무사히 파커가의 저택에 도착했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

결정적으로 시차로 인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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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99 요리선생
    작성일
    22.01.27 11:24
    No. 1

    1980년대까지는 전기보온밥솥은 조지루시(象印) 제품이었지요. 주부들이 일본 여행가면 왼손오른손에 하나씩 들고 하나는 발로 굴리며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지금 전기압력밥솥의 왕자 쿠쿠가 중국 관광객이 반드시 사가는 필수품과 같은 모양이었지요. 지금은 조지루시 밥솥은 만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1.27 12:48
    No. 2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공부가
    작성일
    22.01.27 19:10
    No. 3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2.17 01:38
    No. 4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7 용두산대감
    작성일
    24.02.02 22:52
    No. 5

    얘기의 흐름이 내 시대 보다는 좀 늦지만, 배경이 부산이 아닌 인천이지만 지난날을 돌아보게하네.
    작가가 너무 글을 잘 쓰네. 너무 재밌어 자이 안오네.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묵운토뢰
    작성일
    24.04.18 00:43
    No. 6

    옥에티-이때에 뉴욕 직항편이 있다고? 지금도 없는데
    물론 갈아타고 갔겠지만 글에서 과정이 빠지니까 직항편으로 느껴짐 (별거로 다 시비네 ㅎㅎ 쏘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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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영정사진. (6) +6 22.02.25 7,562 196 19쪽
91 영정사진. (5) +8 22.02.24 7,607 171 21쪽
90 영정사진. (4) +7 22.02.23 7,662 199 22쪽
89 영정사진. (3) +11 22.02.22 7,766 196 22쪽
88 영정사진. (2) +7 22.02.21 8,030 184 23쪽
87 영정사진. (1) +4 22.02.19 8,411 177 23쪽
86 기업에게 국경은 없다! +5 22.02.18 8,298 180 26쪽
85 광고는 역시 스타 마케팅! +3 22.02.17 8,390 191 27쪽
84 W.a.W Pictures. (3) +4 22.02.16 8,328 183 23쪽
83 W.a.W Pictures. (2) +2 22.02.15 8,394 167 20쪽
82 W.a.W Pictures. (1) +4 22.02.14 8,584 184 17쪽
81 자네는 주식투자를 뭐라 생각해? +8 22.02.12 8,469 191 17쪽
80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3) +3 22.02.11 8,416 179 19쪽
79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2) +6 22.02.10 8,622 177 23쪽
78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 (1) +7 22.02.09 8,881 167 25쪽
77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 +9 22.02.08 8,769 187 21쪽
76 미래를 사고 싶어요. (2) +5 22.02.07 8,870 188 21쪽
75 미래를 사고 싶어요. (1) +5 22.02.05 9,169 181 26쪽
74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3) +6 22.02.04 9,110 200 29쪽
73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2) +9 22.02.03 9,279 194 27쪽
72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1) +2 22.02.03 9,328 184 22쪽
71 10억 달러만 주세요! +11 22.02.02 9,496 205 25쪽
70 뉴욕 사교계 데뷔? +5 22.02.02 9,320 187 25쪽
69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3) +8 22.01.29 9,440 211 20쪽
68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2) +4 22.01.28 9,314 210 17쪽
» 상류사회의 일상이란. (1) +6 22.01.27 9,814 204 19쪽
66 충성을 다 하겠슴다! (4) +6 22.01.26 9,469 20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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