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화. 생일 축하합니다
나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 자의 정체는 김산이었다.
김산은 석화단과의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아프다면서 훈련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석화단 이후에 딱히 경기가 없었으므로 선수 보호 차원에서 기왕 쉬는 거 쭉 쉬라고 따로 터치는 안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간 김산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슬쩍 복귀해서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다니···
“야 임마! 깜짝 놀랐잖아! 너 언제 복귀한 거냐?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아, 형님은 못 보셨겠구나. 저 어제 복귀했죠. 아직 몸이 완전히 나은 거 같지는 않은데 찌뿌둥한 게 좀이 쑤셔서 못 참겠더라고요. 그나저나 형님들이야말로 뭐하십니까?”
몸을 숨기고 있는 우리 옆에서 눈치 없이 당당하게 일어서서 큰소리로 대답하고 있는 김산을 보고 나는 기겁해서 재빨리 김산을 앉혔다.
“쉿! 쉿! 우리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안보이냐? 지금 숨어있지 않느냐. 그럼 너도 눈치껏 몸을 숙이고 소리를 낮춰야 할 것 아니냐!”
“아~ 숨어 계셨습니까? 근데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긴 우리 YMCA 건물인데 숨어 계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음··· 산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니 한번 떠보고 상황을 얘기해볼까?
“너 여기 와서 혜림씨나 다른 단원들에게 따로 뭔가 들은 거 없었냐?”
“따로 들은 거요? 그러고 보니 단원들끼리 뭔가 준비하고 있는 거 같던데, 저도 뭔가 해야 하나 싶어서 물었더니, 저는 그냥 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산책이라도 하는 중이었습니다.”
오호, 산이 녀석은 정말로 아는 게 없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이 녀석을 꼬드겨서 정찰이라도 한번 보내봐야겠네.
“사실 우리도 뭔가 준비하는 눈치길래 말을 건넸는데 우리는 그냥 쉬고 있으라면서 업무에서 배제 시키려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와 한진에게 무슨 통보라도 하려는 것인가 해서 이렇게 염탐 중이다.
안 그래도 좀 전까지 주시하고 있었는데, 덕어학교의 민수나, 손탁호텔의 손탁씨, 기방의 혜월이, 배재학당 학생들 등등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까지 모두 출동하는 등 수상한 기운이 계속 감돌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말 나온 김에 산이 네가 대신 강당에 다녀와 줘라. 아까부터 시도해봤지만, 직접 들어가서 듣는 게 아닌 이상 도저히 소리를 들을 수가 없더라.”
“알겠습니다. 그건 뭐 별거 아니지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호라, 산이 녀석이 이렇게 순순히 말을 잘 들었던가?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얘도 아무것도 안 시켜주니 심심했었나?
현대의 강당과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이지만, YMCA 건물 내에서 제일 큰 방을 강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YMCA가 명색이 기독교 청년회였기 때문에 예배를 이곳에서 하였고, 야구단의 회의도 보통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에 조촐한 회식은 이곳에서 진행하기도 하는 등, YMCA 건물 내에서 만능인 공간이었다.
그만큼 큰 곳이었기 때문에 나와 한진이 밖에서 아무리 용을 써봤자 하나도 들리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김산을 시켜서 염탐을 다녀오게 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그렇게 우리는 10분 정도를 쪼그려 앉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어째 김산이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혹시 김산이 우리 일을 다 불어버린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에 강당 문이 열리고 김산이 나와 한진에게 달려왔다.
“좀 늦었네. 무슨 얘기를 나눴길래 이렇게 늦게 온 거냐?”
“아, 별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안쪽에 사람들이 다 모여있길래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하고 다니느라 좀 늦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무슨 소득이라도 있었느냐?”
“여전히 저에게는 딱히 뭐라고 얘기를 해주지 않아서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를 준비해놓은 분위기기는 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형님들을 혹시 발견한다면 강당으로 오라고 했었네요.
형님들이 휴게실에 있는 줄 알고 찾아갔는데 보이지 않았다고 하면서요.”
흠··· 별 소득이 없구만···. 그렇다면 직접 호랑이 굴로 찾아가는 수밖에···.
“그래, 그러면 바로 들어가면 조금 그러니 5분만 있다가 우연히 만난 척을 하고 함께 들어가자.”
“허허, 참 격식 차리는 거 좋아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5분 동안 가만히 있다가 혹시라도 누가 보고 있을까봐 우연히 만난 척을 하고는 함께 강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와 한진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은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dear 한진, Happy Birthday to You~
??? 갑자기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존경하는 영준의~ 생일 축하합니다~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한진에게는 영어로 나에게는 한글로 한 번씩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 그래.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구나. 7월 8일 이날은 나와 한진의 생일날이었다.
갑작스러운 생일축하에 멍을 때리고 있던 나와 한진에게, 다시 한번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저 뒤에서 혜림이 무언가를 들고서 걸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생일 초가 꽂혀있는 생일 케이크였다. 혜림은 케이크를 들고 와서 나와 한진에게 말했다.
“생일 축하드려요, 영준씨, 한진씨. 자 여기 꽂혀있는 초를 한 번에 불어서 꺼주세요. 그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당연히 미신이지만, 혜림의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와 한진은 눈을 마주치고는 시원하게 바람을 불어서 껐다.
그러자 다시 한번 이곳에 모인 이들이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 영준형님, 한진형님 축하합니다!
- 영준씨, 한진씨 축하해요!
- 다들 축하한다.
- 슬슬 케이크 좀 먹죠?
혹시라도 나와 한진의 신변에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런 나의 걱정이 무색해지게 이런 환대를 받아버리니 잠시나마 이들을 의심했다는 것에 부끄러운 감정도 몰려오고, 동시에 이렇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다 보니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눈물이 찔끔 맺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펑펑 울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도 했을뿐더러, 또 다른 주인공인 한진이는 눈물은커녕 보는 사람이 딱 무안하지 않을 정도의 미소만을 지어줄 정도로 담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꾹 누르고는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곳에 처음 떨어진 1906년 3월 그리고 불과 4개월 정도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연락하는 사람이라고는 어머니뿐이었던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감사했다.
감정을 추스르고는 나는 마저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돌리고는 혜림에게 갔다. 아무래도 묻고 싶은 게 많았으니 말이다.
“저··· 혜림씨 좀 묻고 싶은 게 많은데 말입니다.”
“영준씨 다시 한번 생일 축하드려요! 근데 묻고 싶은 게 있으시다고요?”
“예. 우선 저와 한진이 생일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혜림은 장난꾸러기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후훗, 다 방법이 있죠! 일전에 YMCA 야구단에 들어올 때 절차상 호패로 신상을 등록하신 적이 있으셨는데 그때 알게 되었죠.”
아, 그러고 보니 잠깐 호패를 길례태에게 보여줬던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아직 이곳에 막 도착했던 때라 그런 절차 같은 건 기억할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희에게만 이렇게 과한 생일잔치를 열어주시면 다른 단원들에게 조금 미안한데 말이죠.”
그 말을 듣자 혜림은 웃음을 잠깐 못 참았는지 풉 소리를 내었다.
“풉··· 아 죄송해요. 근데 참, 영준씨는 여전히 걱정이 많으시네요. 원래도 단원들의 생일 날짜에 미역국을 보내주고는 했는데요, 이번에는 그걸 조금 더 확장했다고 보시면 돼요.
왜 그랬냐면, 일단 두 분의 생일이 같으시기도 했고, 단원들이 두 분은 충분히 특별하게 축하받을 만한 분들이라고 인증했어요. 그리고 단원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다른 분들 역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어떻게 축하할지를 고민하셨어요!”
거참 들을수록 다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나와 한진이 이곳에서 한 일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대접이었음에도, 평생을 칭찬과 거리가 멀게 살았던 나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잘 알겠습니다. 근데 왜 저와 한진에게 꽁꽁 숨겨 놓으시다가 이렇게 터트리시는 것인지?”
혜림은 다시 아까와 같은 장난꾸러기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야··· 재밌으니까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