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배재학당을 설득하라
“저희가 배재학당에 원하는 것은 우선 당연한 거지만, 야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훈련할 곳이 당분간 없어지기 때문에 배재학당의 넓은 편에 속하는 체육시설과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 야구 훈련 시설이 저희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재학당의 부대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배재학당은 기숙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식당과 몸을 씻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역시 훈련의 과정 중에 선수들의 몸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배재학당 학생들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이는 물론 학생들의 학업과 다른 일정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부탁드리는 것이고 뒤에 말씀드릴 저희가 해드릴 조건과 연관이 되어 있는 일입니다.”
셰필드는 내가 제시한 요구 사항을 전부 듣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음··· 이 정도는 전부 저희가 충분히 들어드릴 만한 무리 없는 요구군요. YMCA 야구단이 해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를 해드리는 것은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대가로 생각하시는 조건을 들어는 볼까요?”
“네, 반대로 저희가 제공할 조건은 우선 저희가 훈련을 할 때 배재학당 학생들도 함께 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잠깐 저희와 동행했던 구현일 선수와 김현장 선수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체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훈련 내내 도움을 줄 수는 없겠지만, 체력 훈련 이후에 한두 시간 정도는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배재학당의 부대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을 내겠습니다. 훈련장은 배재학당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때운다고 쳐도, 부대 시설까지 이용하는 것은 배재학당 측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니 비용을 따로 부담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재학당의 야구장을 손 좀 보려고 합니다. 동대문 야구장이 생각 이상으로 대규모의 공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향후 2년 정도는 이용을 못 할 것이라고 봐야 하니, 그 기간에 다른 경기를 진행할 다른 야구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배재학당의 훈련장을 임시 야구장 정도로 개조해서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때 저희만의 힘으로는 오래 걸릴 것이기 때문에 배재학당 학생들의 힘을 빌려서 함께 야구장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물론 비용은 저희가 대는 것이고요.
이상이 저희가 배재학당에 제공할 조건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셰필드는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오우, 저희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YMCA 야구단이라면 그냥 시설을 이용하겠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환영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면 저희야 수락할 수밖에 없지요.
YMCA 야구단에서 훈련을 도와준다면 이것보다 좋은 게 있을 수가 없죠. 체력 훈련은 굳이 야구를 배우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체력 증진을 위해 다 같이 참여한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포함해서 말이죠, 하하.
부대 시설 이용비 정도는 조금 내주시면 감사하죠. 식당이나 화장실, 목욕 시설 같은 경우는 사람이 늘어나면 비용이 조금 늘어나니 말이죠. 물론 사실 이 역시 안 내셔도 되기는 합니다.
그리고 운동장을 야구장으로 개조라···. 게다가 비용까지 부담해주신다니 너무 좋은 조건이군요. 그런데 간이 야구장이라고는 해도 이 시설의 소유권 등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당연히 선교사님도 참여가 가능하죠. 오히려 여기 있는 한진은 한 사람이라도 더 참여한다면 환영일 것입니다.
그리고 부대 시설 이용비는 반드시 내겠습니다. 대신 추가로 내는 비용만큼 식단에 더 신경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수들이 힘든 훈련을 소화하는 만큼 영양 균형이 잡힌 좋은 식사를 해야 하기도하고, 이 기회에 배재학당 학생들도 더 좋은 식사를 함으로써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기도 하고요.
야구장은 기본적인 소유권은 당연히 배재학당에 있지만, 운영 수익 등에 대해서는 실제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건설이 진행된다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죠.”
이곳은 동대문 야구장처럼 거창한 야구장을 건설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배재학당 측에 많이 양보하려고 한다. 애초에 배재학당 건물인데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좀 그렇지. 게다가 이런 좋은 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만해도 이득이다.
그리고 야구장 건설에 필요한 인력은 이곳 배재학당의 학생들이 주축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상당히 절감될 것이다. 우리는 건축 재료와 건축을 총책임질 업자만 구하면 된다.
“오우 알겠습니다. 야구장은 그때 가서 자세한 얘기를 하기로 하고, 일단 건설을 진행하도록 하죠. 저희는 야구장은 잘 모르니, YMCA 야구단 측에서 사람을 구해주셨으면 합니다.
근데 식당 같은 경우는 어떤 식단을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요. 선수들이 힘을 내려면 육류 식단을 많이 포함해야 할 것 같은데, 저희는 예산이 풍족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반찬은 많이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식비 지원을 해주시더라도 이를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인데, 저번에 영준씨가 손수 만들어준 음식을 학생들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혹시 식단을 짜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 이제 하다하다 식단표까지 짜야 하나? 근데 셰필드의 고민이 이해되는 부분이기는 해서 내가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면 해봐야겠다.
마침 나는 학창 시절은 물론 군대, 회사 구내식당까지 점심시간을 기다리면서 항상 급식표를 외워 왔던 사람이다. 그뿐만 아니라 잠깐이지만 자취를 하면서 식단표를 짜서 그대로 먹어보고자 했던 시도도 했었다.
이 정도면 전문 영양사에게는 못 미치더라도 이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영양 밸런스가 괜찮은 식단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음···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원하신다면 제가 아는 선에서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준씨. 그러고 보니 영준씨는 참 다재다능하시군요. 야구도 잘 알고 계시고, 듣자 하니 야구장 건설 계획도 영준씨가 깊게 관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요리까지 잘하니 말입니다.”
“아유,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냥 잔재주 몇 개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 배재학당의 시설 이용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면 될까요?”
셰필드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스! 저희는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얘기였군요. 오늘은 연습 한번 안 봐주고 가십니까? 곧 학생들이 연습하러 올 시간인데 말입니다.”
“아··· 저희가 오늘은 협상만 하러 온 거라···”
이때 한진이 내 말을 끊고 대답했다.
“저희 제안을 수락해주시기도 했고, 마침 학생들이 연습할 시간이라고 하니 한번 보고 가겠습니다. 마침 저는 이곳의 시설을 둘러보지 못했으니 시설도 둘러볼 겸 학생들 훈련에도 참석하겠습니다.”
한진의 돌발행동이 또··· 하지만 이 정도는 예측범위 안에 있는 부분이다. 한진이 야구를 가르쳐달라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지.
한진의 말대로 이 기회에 호감도를 미리 더 올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고, 애초에 오늘은 야구장으로 쓸만한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려고 마음먹고 나온 날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장소를 물색했으니 나머지 시간은 보너스지.
물론 일찍 끝난 만큼 다른 할 일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지금 한진의 선택 역시 나쁘지 않을 것이다.
“네, 그럼 저도 함께 참석하겠습니다! 야구장은 이쪽으로 가면 되죠?”
“예,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훈련 끝나면 저녁이니 저녁 식사까지 하고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식단도 한번 점검하실 겸해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급식도 미리 점검을 해봐야겠네. 아직 내가 아는 배재학당 자체 식단은 없고 내가 만들었던 음식뿐이니 말이다.
“오, 그것도 괜찮군요. 저번에는 제가 만들었던 닭죽만 먹었으니 말입니다.”
자 그럼 정말 오랜만에 들어가 볼까? 이곳 배재학당에 왔던 것도 어느새 3달 전 일이 되었다. 과연 배재학당 학생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긴 야구장에도 응원하러 왔었는데 기억을 하기는 하겠지?
나는 기대감을 살짝 가지고 배재학당 학생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나와 한진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더니 배재학당 학생들은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차렷 자세를 취하였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 무궁 하도록~
롸롸롸롸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롸롸롸롸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캬! 이게 배재학당이지! 힘차게 울려 퍼지는 배재학당 교가로 학생들은 나와 한진을 맞아주었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정말 오랜만인 것 같군요. 그동안 배재학당 학생 여러분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배재학당 학생들은 나를 향해 일제히 환호성을 보내며 화답해주었다.
-네! 영준 선생님께 배운 것들 잘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경기도 보러 갔었습니다!
-영준 선생님 덕분에 2주에 한 번씩 닭죽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들 나에 대해 기억을 해주고 있으니 뭔가 감동이네. 특히 닭죽이 배재학당의 식단에 정식으로 등록되었다는 얘기가 왠지 뿌듯했다.
“하하, 다들 잘 지냈던 것 같군요. 그건 그렇고, 제 옆에 있는 이분은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한진 선수님이요!
-YMCA 최고 타자시잖아요!
-요즘 한양에서 한진 선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현일이형님과 현장형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음음··· 그렇지 야구의 인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한양 최고의 인기팀 YMCA의 간판선수인 우한진을 모르면 말이 안 되긴 하지!
“하하, 다들 알고 있군요. 오늘 이 한진선수가 여러분의 훈련을 책임지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말대로 한양에서 누구나 아는 한진 선수에게 훈련을 받을 기회! 여러분 너무 좋으시죠?”
내 말이 끝나자 방금의 박수갈채는 어디 가고, 사람 무안해질 정도로 배재학당 일동에게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는 수근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유명한 선수를 봐서 좋기는 한데···.
-YMCA에서 훈련하고 온 형님들 말을 들어보면···.
-한진선수의 훈련이 그렇게 힘들다는데···.
야 이 녀석들아 다 들린다!! 근데 반박하기에는 틀린 말이 없기는 해서 이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네···.
이때 함께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진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배재학당 학생 일동 여러분. 저는 YMCA 야구단 소속의 우한진이라고 합니다. 오늘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여러분의 훈련을 위해 온 것이기는 합니다만. 여러분의 걱정처럼 그런 힘든 훈련이 진행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