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YMCA 자체 청백전 (5)
저번 회를 무실점으로 넘겼지만, 우리 팀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번 회는 9번 타자로 시작하지만, 그 타자가 바로 일종의 외국인 선수와 같은 느낌의 제이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이손으로 시작해서 1회에 뜨거웠던 영복이와 만복이까지 대기하고 있다.
길례태가 신체적으로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스탯이었다면, 제이손은 이제 기량이 최고점에 달해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름: 제이손>
소속: 황성 YMCA 야구단, 나이: 28세
키 : 179cm, 몸무게: 81kg 우투좌타
[타자]
정확도: 75 (76), 힘: 79 (79), 선구안: 78 (80), 주루: 74 (75)
수비: 78 (79), 번트: 50 (50), 정신력: 80 (81)
1루적성: 80 (80), 3루적성: 78 (79)
포구: 82 (83), 송구: 77 (78), 어깨: 76 (77), 반응속도: 79 (80)
[코치] 타자: 76 (80), 수비: 74 (78)
길례태에 비해 젊다는 게 느껴지면서도 여기저기서 확실히 정교함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게 보였다. 한가지 흠을 더 잡아 보자면 1루수와 3루수 등 내야 코너밖에 담당할 수 없다는 점 정도? 그래서 그런지 코치로서의 재능도 수비 쪽은 떨어지는 것 같다
어쨌든 이 야생마 느낌의 제이손을 어떻게 해야 할까···? 타석에 들어선 제이손은 방망이를 휘둘러 보는데 확실히 저쪽 팀에서 그 정도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타자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일의 얼굴이 다시 굳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던질 건 던져야지···.
제이손에게 던진 현일의 1구는 제이손의 머리 쪽으로 날아갔고, 다행히도 제이손은 재빠르게 공을 피했다.
근데 그 뒤에 제이손은 갑자기 현일을 향해 다가갔다. 물론 잘못하면 제이손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다만. 고의도 아니고 이벤트 경기인데 이러는 건 당황스러운데?
평소에 한국말은 조금 서툴지만, 붙임성 있고 친절한 외국 청년인 줄 알았던 제이손이었는데, 그가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을 벌여 심판도 포수도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현일은 다가오는 제이손에게 벌을 달게 받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손이 한 행동은 구타 같은 게 아니라 현일에게 가서 등을 툭툭 두들기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는 씨익 웃으며 다시 타석으로 돌아갔다.
휴~ 그럼 그렇지. 제이손은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현일의 기운을 복 돋아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계속 머리로 공이 날아오면 곤란하기 때문도 이유였던 것 같다.
관중들도 처음에 제이손이 마운드로 향할 때는 이거 큰일 아닌가 싶어서 술렁이고 있었는데, 제이손이 취한 행동을 보고 제이손을 칭찬하며 현일도 기운을 내라는 듯이 힘찬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현일도 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이번에는 씩씩하게 원래 실력대로 공을 던졌다.
딱!
그렇다고 만화처럼 파워업한 것은 아니라 제이손의 방망이에 시원하게 얻어맞았다. 공은 펜스를 때렸고, 제이손은 빠른 주력으로 2루까지 달려가고 3루도 한 번 노리려는 듯했는데, 2루에 있던 길례태가 뭔가 눈치를 줬는지 2루에서 멈췄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기 때문에 너무 전력을 다하지는 말자는 뭐 그런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어서 1회에 사실상 둘이서 점수를 만들어냈던 영복이와 만복이의 타석이 돌아왔다. 하지만 현일이 조금 전까지의 현일이 아니었다. 한 타순을 돌아보기도 했고, 방금 얻어맞긴 했지만, 제이손의 스윙을 보고 나니 영복이건 만복이건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일 뿐이라 시원하게 삼진을 먹여줬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풀카운트 접전 끝에 영복이는 공을 때려 내기는 했으나 진루타에 그쳤고, 만복이도 우측 뜬공을 만든 것에 그쳤다.
물론 우익수인 내가 어깨가 강한 편이 아니다 보니, 공은 잡았지만 3루에 있는 제이손을 잡을 정도의 레이저 송구는 불가능했으므로 그대로 1점으로 이어지기는 했다. 그래도 다음 타자인 남상혁을 땅볼로 잡고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잘했어! 잘했어! 저 타순을 이렇게 막다니 싸게 막은 게 맞지! 빈말이 아니라 진짜 잘했다. 다음에도 딱 이만큼만 하자.”
들어오면서 민수는 현일의 기를 살려주었다. 사실 있는 그대로의 얘기기도 했다. 1회에 얻어맞은 둘을 범타로 처리했고, 저쪽 팀에서 사실상 유일한 규격 외인 제이손에게 얻어맞은 건 상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말을 해주냐 안 해주느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현일의 반응부터가 입꼬리를 실룩이면서 생기가 돌고 있으니 말이다. 민수의 넉살에서 나온 사소한 배려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팀케미가 좋지 않은 팀들을 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당연한 것을 한 거 아니냐는 듯이 아무 언급도 없이 조용히 넘어가고는 한다. 치고 박고 싸우는 것만이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실금 하나가 벌어져 큰 균열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저런 민수의 넉살을 보고 있으니, 영수가 다 좋은데 저런 부분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게 아쉬워졌다. 영수가 나름대로 리더십 자체는 있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솔선수범하여 앞장서기도 하고, 묵묵히 할 일들을 잘 처리하고는 한다.
하지만 성격 자체가 살갑게 구는 것은 못하다 보니 가끔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우리 팀의 유일한 투수가 오히려 그런 영수를 틱틱대면서도 은근히 잘 챙겨주는 김훈이라는 점이다.
석전판에서 10년 넘게 구르면서 말만 뻔지르르한 사람들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김훈은 살갑지는 않아도 진실 되고 묵직한 면이 있는 영수를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좋은 케미를 쌓아가고 있는 배터리를 다시 상대할 시간이 되었다.
3회 말 우리의 공격은 우리 팀의 선발 투수인 구현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말은 즉, 우리는 사실상 1아웃 상태로 시작한다는 말이다. 현일이 투수로는 그래도 잠재력이 있는 선수지만, 타자로는 평범 이하인 지명타자 제도가 있었다면 당연히 빠질 정도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김훈의 저 공에 현일은 방망이를 스치지도 못했다. 그래도 현일의 눈은 기가 죽어 보이지는 않았다. 김훈의 피칭을 어떻게 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물론 진지한 자세는 진지한 자세고 아웃은 아웃이다. 예상대로 1아웃으로 시작된 우리의 다음 타자는 바로 길례태였다!
타석에 선 길례태는 능력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야구를 오래 보다 보면 아무리 야알못이더라도 왠지 이 선수는 여기서 하나 칠 것 같다는 감이 느껴지고는 하는데, 지금의 길례태가 그랬다.
김훈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살짝 긴장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당연하게도 김훈과 길례태가 맞붙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투수 훈련을 할 때 김훈에게 전담으로 붙는 게 길례태였기에 자연스럽게 둘은 얘기를 자주 나누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김훈은 길례태의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있었다. 물론 상대하기 까다로운 사람으로 말이다.
사실 김훈이 상대해본 선수들 중 대단한 상대는 많이 있었다. 성남구락부 선수들도 있고, 당장 저번 경기에 도핑을 풀로 한 석화단도 상대했었다. 그리고 같은 팀임에도 한진과도 붙었던 적도 있다.
그런 선수들을 상대할 때도 타석에 섰을 때 이 타자는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는데, 길례태는 다른 의미로 위험 레이더가 곤두선 것이다. 신체적으로는 전성기를 넘겼지만, 그만큼 원숙함이 쌓일 대로 쌓여있었다.
타석에 선 길례태는 어떤 공이라도 던져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까딱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훈 역시 위기의 순간에서도 어떻게든 공을 던졌던 야구 구력은 짧아도 실전 경력은 상당한 선수였기에 길례태를 향해 힘차게 공을 던졌다.
-볼!
길례태의 선구안은 능력치만큼이나 대단했다. 김훈이 석전판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구위도 구위지만 뛰어난 제구력이 그를 먹여 살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런 김훈이 볼을 꽂아 넣은 곳은 스트라이크와 볼에 기가 막히게 걸치는 구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례태는 그런 애매한 공을 골라낸 것이니 새삼 길례태의 대단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김훈은 이어서 볼 하나를 더 던져 봤지만, 길례태는 공을 다시 한번 골라냈다. 결국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딱!
길례태는 가볍게 공을 맞혔지만 타이밍이 살짝 빨랐는지 파울이 되었다. 이제 1스트라이크 2볼. 스트라이크 하나를 얻었지만, 여전히 타자에게 유리한 카운트다. 김훈의 선택은 길례태의 몸쪽 아래에 딱 붙는 공.
딱!
하지만 이 역시 길례태에게는 먹히지 않는 공이었나 보다. 청팀은 강타자들을 상대로는 외야 수비 위치를 깊게 조정하고 있었는데, 길례태가 때려낸 공은 오히려 2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짧은 타구였는데, 우익수 박근삼의 위치가 너무 뒤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길례태의 평범한 주력으로도 2루에 안착하였다.
길례태의 노련한 타석을 감상한 우리 팀 선수들은 모두 박수를 보냈다. 그 한진조차 좀처럼 치지 않는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 팀의 다음 타자는 아직은 멀티 내야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것 외에는 큰 장점이 없는 이윤상이었다.
김훈은 그냥 얻어맞을 것을 얻어맞았을 뿐이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차분하게 이윤상을 상대하였다. 윤상이 1번 타자를 맡긴 했지만, 잘 치는 타자라기보다는 타순의 짜임새를 위해 배치한 면이 컸다.
그렇다 보니 청팀의 영복이와 같은 성가심이 있는 타자가 아니라 조금 더 끈질긴 하위타선 타자를 상대하는 느낌이랄까?
부웅~
- 헛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으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6구까지 버텼으니 선방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다음으로 나온 2번 타자는 우리의 주전 포수인 민수였다. 비록 2아웃 상황이었지만, 주자로 길례태가 2루에 나가있고 다음 타자가 이전 타석에 홈런을 기록했던 한진이었기 때문에 민수는 최대한 출루를 해줘야 하는 중요한 상황이었다.
이전 타석에서는 다소 허무하게 아웃을 먹고 들어갔지만, 이번 회의 민수는 달랐다. 공격적인 민수의 성향에 걸맞지 않게 공을 최대한 보면서 참더니 기어코 볼넷을 만들어냈다.
길례태와 민수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2사 1, 2루의 득점권 기회. 그리고 타석에는 우리팀 최고의 타자 우한진. 청팀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하지만 이때 청팀의 선택은?
-볼넷!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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