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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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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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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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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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올리다(6)

DUMMY

밤에 수도원에서 움직이는 건 모두가 같은 방에서 자니 만큼 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도 볼일을 보러 밖으로 나가는 이가 꽤 있어 나갔다가 지하로 사라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필사실로 직접 이어지는 지하통로는 없지만, 필사실과 가까운 동쪽 성물 보관소에는 이어진 계단이 있었다. 숨겨진 비밀장소에서 책을 품에 넣은 후, 등불을 켜고 다니기에는 들킬까 두려워 등불을 천을 올려 밝기를 조절했다, 잘못했다나는 돌로 된 장식에 무릎을 부딛혀 크게 다칠수도 있으니 바닥만 밝히는 정도로 사용했다.


이미 필사실에 누가 있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면서 문을 열었지만 그들이 이전에 사용하던 작업물만이 달빛을 받아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로마서의 이해>

<지리학>

<프로스로기온>


옛 이교도의 서적과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신학서적이 혼재되어있다. 이곳에서는 행정 업무를 하지 않나? 행정 업무를 위한 도장이나 눈금자와 같은 도구들이 분명 들어왔을텐데, 그런 도구가 이 곳에도 없다. 설마 주교께서 행정 업무를 도맡아 하시나? 그렇다면 자료는 왜 수도원에 숨겼을까?


그런 의문은 접어두고, 최대한 잉크가 많이 남은 자리에서 숨겨온 자료의 필사를 시작한다.


누군가 자신의 잉크가 사라졌다는 식의 불만을 표하기는 했지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3일만에 필사를 끝냈다.


알가와 밤에 장서관 앞에서 만난 적이 있기는 했으나 녀석은 웃으면서 인사하는 것 외에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밤에 잠을 잔다는 규율은 꽤나 쉽게도 어겨지는 듯했다. 이를 지키게 하기 위해 침대 밑에 요강을 두게하는 등의 노력은 일절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렇게 그 녀석-주교님의 아들로 추정되는-까지도 밤에 몰래 나가서 맘대로 본인이 하고 싶은 불경한 일을 한 것 아닌가?


이를 본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고 해야할지, 방종한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감찰 보고서에 들어가야함은 분명하다. 더 이상 수도원에서 우물거리는 데에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같이 와서 조사를 부탁했던 수도사들의 의견을 취합했다.


“딱히 수상한 건 없습니다. 다만 성물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가 몇게 있는가하면, 성물이 너무 많은 방이 있습니다.”


“필사실에 많은 펜들이 있습니다. 분명 소모되는 분량이 있을 텐데, 런던에서 배급한 펜의 비율이 이상하리만치 높습니다. 그렇다고 이 근처에서 생산되는 펜이 없냐고 물어봤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내가 알아낸 것에서 뭔가 더 유의미한 추리를 하기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이기에, 수도원장을 찾았다.


“베드로 수사. 저희 수도원의 이곳 저곳을 살펴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새로이 알아낸 정보는 있으십니까?”


“걱정마십시오. 곧 알게 될테니.”


내가 미소지으면서 말했지만, 수도원장은 표정관리를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몰랐는지 마주 미소지으면서 끄덕였다. 실제로 이 정도로는 수도원장쯤 되는 이가 처벌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거기에 성전도 껴있으니 아마도 성전에 합류하라는 권고 정도를 듣겠지.


이 감찰의 목적은 폐하께서 편지에 쓰인 대로 새로 얻은 직할령의 안정화 같은 1차원적인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또 징집에 가까운 목표를 부여해주신 것 같다.


“만약 걱정되신다면 항상 기억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교황께서는 성전에 참여하는 모두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속세의 군주도 넘을 수 없는 권위이지요.”


그 말에 수도원장이 크게 당황한다.


“왜, 왜 그런말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저희 형제들 중에 불경한 일을 한 자가 있습니까?”


“글쎄요. 이곳에서 볼 것은 전부 본 것 같습니다. 다음 달까지 관련자가 전부 성전에 합류한다면 못본 것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보급은 어떻게 할 것이고, 인간만 잔뜩 모아서 뭘하겠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런건 왕의 작업 아닌겠는가?


“알겠습니다. 우리 수도원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성전에 포함시킬 것을 이자리에서 맹세합니다.”


잠깐만 이 정도라고? 도대체 내가 못찾은 추악한 죄가 있는 건가? 이제 와서 당신은 지금 당장 처벌 받는 게 옳다고 말을 바꿀수도 없으니 이 나도 모를 죄는 벌써 미궁으로 빠져버렸다. 그래도 누군가를 죽이거나 했을 정도의 죄는 아니기를 바라면서 성호를 긋는다.


물론 양민을 착취하는 죄도 결국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미는 같은 죄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자도 성전에서 그 죄를 씻고자 하지 않겠나.


그리고 주교의 아들로 추정되는-아덜레드라는 이름이었다고 한다-수도사도 당연히 성전에 임할 것을 알지만, 내가 직접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녀석을 데리고 주교께 가니, 한숨을 크게 푹 내쉰다.


“이 녀석을 찾았는가?”


“예. 누구의 아들인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주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니 주교가 눈을 피하다가 결국 못 이기겠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 말한다.


“보다시피, 나의 아이네. 자네가 데리고 다니는 아이처럼 내가 보살펴주지는 못했지.”


올리버를 보면서 주교가 다 안다는 듯이 말해서 반박한다.


“이 아이는 사생아가 아닙니다.”


“나도 내 아이의 어미가 죽었다거나 했다면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가르쳤을 걸세.”


다 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주교가 말한다. 도대체 이 따위로 눈치 없는 자가 어떻게 주교가 된 건지 이해가 안된다.


“정말로 양딸입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주교님께서도 윌리엄 폐하의 성전에 기부금을 바치지 않으면 이에 대해 정식으로 교황청에 보고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잠시간 생각하던 주교가 한숨을 내뱉고 대답한다.


“알겠네.”


이 ‘알겠네’는 사생아를 숨기는 정도의 가격으로 윌리엄 폐하께 보낼테니 성의를 받으라는 말인가. 주의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위선자인가.


“정확히 어느 정도를 기부하실 예정인지 말씀해주십쇼.”


“아니, 모양빠지게 그렇게까지 해야하오?”


“모양은 주의 율법을 어겼을 때 이미 빠질만큼 빠지지 않았소?”


“...내가 가진 모든 은화를 내놓겠소. 총 197파운드요”


좁은 마을에서 많이도 해먹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더 그의 신경을 더 건드리다간 곧바로 반란을 한다면서 나를 죽일 수도 있으니 조금은 맞춰줘야한다.


“숭고한 선택에 감사합니다. 당신의 희생이 더 많은 목숨을 살리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소. 이 자식은 직접 데려가 줄 수 있겠소?”


아덜레드를 가리키며 성전까지 가서 내가 직접 아기 돌보기를 해줄 수 있는지 묻는다.


“성전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격렬한 전쟁이 될것입니다. 병사를 붙여주신다면야 살려서 돌아가도록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규모의 전쟁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생존율이 올라가지는 않을테니 공수표를 남발하기도 힘들다. 주 앞에서 거짓증거할 수는 없으니.


“그 말만으로도 고맙네. 내가 100명의 성전 서약자를 함께 보내주도록하지.”


짐덩어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쓰레기 덕분에 일이 빠르게 끝날듯하다. 이제 남은 건 린디스판 수도원 뿐이다.


빠른 북진을 해야할 차례다.


띄엄띄엄이나마 이어져 있던 역참을 따라서 린디스판 수도원 근처에, 약탈당했다고 하던 해드스톤 마을에 다다랐다.


중간 역할을 해줘야할 역참이 부숴져 있는 흔적을 발견했고, 해드스톤의 집 역시 많은 수가 연기를 내며 불타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인가?


그런데 단상 위에 서서 연설하고 있는 수도사가 보인다.


“악마들이 이 마을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유황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이곳에서 타오르는 집들의 주인들이 전부 간음하던 자, 혹은 창녀와 정을 통한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정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치정극에 더 가까운 일이 일어난 것 같다. 거기에 저 수도사도 분노에 차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수도사까지 연루된 치정극일 것 같고, 고개를 돌리는 이도 많은 것을 보아하니 죽은 이들이 모두 평판이 나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원래 들었던 것처럼 약탈을 당한 것은 아니고 치정극일 확률이 높아보인다.


“처음보는 수도사들이십니다?”


멀찍이서 그 소란을 지켜보던 우리에게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남자 한명이 다가온다. 촌장으로 보인다.


“폐하의 명을 받고 온 감찰관이오. 이 곳에 무슨 일이 있었소?”


감찰관이라는 말에 흠칫한 촌장이 곧장 저자세로 말한다.


“옛날에 용이 왔었던 지역이다 보니, 이따금 이런 갑작스런 화재가 납니다.”


용이 있다는 말은 아닐테고, 아마도 낙뢰를 말하는게 아닐까 싶다.


“번개가 많이 치나보오?”


“그렇습니다. 비도 자주 오다보니 번개도 많이 치고, 불이 붙은 이후에 꺼질만큼 비가 오지는 않습니다. 불나기에 너무 좋지요. 그렇다고 나왔다간 직접 토···.아니, 주의 낙뢰에 맞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불을 끄러 가기도 어렵습니다.”


내 앞에서 이교도 신을 말할 뻔한 촌장은 땀까지 흘려가면서 겨우 말을 이었다. 잘 넘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북구 신의 이름을 말하려한 건 이미 알고 있다.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병사나 기사를 몰고 온 것도 아니고, 나와 수도사들이 가진 무기로 마을 사람들을 학살할 것도 아니지 않던가.


검으로 두셋정도 썰면 놀라서 잠시 도망다닐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가겠는가?


“그렇습니까.”


방법이 있을까? 보통 번개는 높은 곳에 내리 꽂힌다. 잘 타지 않는 경계탑이라도 마을 중앙에 세워두면 어떨까 싶었지만 그걸 누가 만들어 줄 것인가.


“화재 현장을 직접 봐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이제 불씨도 다 잡혔습니다. 여기가 불이 처음 난 곳입니다.”


타버린 부분을 보자니 타기 시작한 곳은 내부에서 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는 번개에 맞아서 탄 것처럼은 안 보입니다만, 어떤 일이 있었나요?”


“아···그건,”


한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설명은 짧게 말해, 자신의 남편이 마을의 창녀랑 뒹군다는 사실을 알고, 그 창녀를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한다고 한 뒤 불을 질러서 죽여버렸다. 본인도 함께. 그런데 아들은 살리고 싶었는지 자신의 친정에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아들을 죽이기 위해 창녀의 가족이 몰려가서 불을 질렀다고 한다. 그렇게 끝나는 가 싶었는데, 그 집은 또 번개에 맞아서 불에 탔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 번진 불을 잡는데에 실패해서 몇곳이 더 불탔다고 한다. 그런데 또 아들은 살았다고 한다!


그 창녀와 단골로 구르던 수도사가 와서 그 아들을 죽여야할 이유에 대해서 말하던 와중에 내가 왔다고 한다.


죽여도 상관 없지 않은가?


“그거야 마을 사람들이 맘대로 할 일이죠.”


“스승님, 본인이 저지르지 않은 죄에도 죗값을 치뤄야하나요?”


올리버는 천년 뒤의 너무도 말랑한 도덕을 따르는가 싶다.


“성경을 보면, 출애굽기에서, 가나안 땅이 별로라고 말하던 어른들만 있었을 것 같나?-물론 성경에는 그런 듯이 적혀있지만- 속으로 가나안 땅이 좋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겠지. 그런데 스무살 이상의 모든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지 않았나. 자신이 속한 곳의 죄는 직접 반대하고 나서지 않았다면 결국 자신도 죄가 있는 것이지.”


“수도사도 창녀를 안고 용서받는데 입 다물고 있다고 죽는 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요?”


확실히 굳이 여기서 죽지 않고 성전에 나서서 죽는게 좀 더 가치있는 일일지도 모르지.


“큼, 나 여기 있단다.”


아덜레드가 헛기침을 하면서 올리버에게 눈치를 주기에 팼다.


“진정 미친거냐. 뭘 잘했다고 눈치를 줘?”


평생 맞은 적도 얼마 없는지 흐느끼면서 바닥에 엎드려 있기에 머리를 진흙탕에 처박아줬다. 저기 연설하는 수도사도 똑같은 놈 아닌가. 저 놈에게도 같은 처방을 해줘야겠다 싶어 다가가려니, 올리버가 막는다.


“저런 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뉘우칠 시간도 없이 가족의 죄로 죽으려하는 아이를 구하셔야죠!”


아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하는 작은 의문이 생겼지만 녀석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봤다.


“근데, 어디 있죠···?”


“그럼 그렇지. 이놈아.”


생각 없이 따라간 내 잘못이다. 직접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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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니카이아 공성전(2) 24.01.01 21 3 12쪽
41 니카이아 공성전(1) 23.12.31 24 3 13쪽
40 정복 황제 윌리엄의 독백 23.12.30 37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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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행군(1) +1 23.12.28 25 3 12쪽
35 전투 후 처리 23.12.27 28 3 12쪽
34 바트크로이츠나흐 전투 +3 23.12.26 37 3 12쪽
33 성전으로(4) +1 23.12.25 27 3 13쪽
32 성전으로(3) 23.12.24 31 3 11쪽
31 성전으로(2) 23.12.23 30 3 12쪽
30 성전으로(1) 23.12.23 36 3 13쪽
29 식을 올리다(9) 23.12.22 41 3 13쪽
28 식을 올리다(8) +1 23.12.22 38 3 12쪽
27 식을 올리다(7) +2 23.12.22 35 3 12쪽
» 식을 올리다(6) 23.12.21 36 3 13쪽
25 식을 올리다(5) 23.12.20 43 3 12쪽
24 식을 올리다(4) 23.12.19 4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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