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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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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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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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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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DUMMY

"...이상 레투아르 인근 연구소에 대한 사건 보고를 마칩니다."



가운데에 앉은 여성은 팔을 주먹에 괸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허리에 찬 칼은 새하얀 상아에 금으로 장식된, 예장용 검과도 같이 생겼다.


금빛 견장과 붉은 장식이 달린 새하얀 제복과 함께 갈색의 첼시 부츠는 그녀의 지위에 비해 소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리까지 흘러내린 아름다운 금발과 보석을 박아 넣은 듯한 맑은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그녀의 외모는 모든 이들이 미인으로 칭송할 수준이었다.



"후원국의 존재는 파악되었나."



"확인되었습니다. '친절히' 대접하여 얻은 정보로 켈라데온 왕국과 레덴 왕국임이 확인되었으며 시설에서 발견한 문서들에는 성국의 인장이 찍힌 공문 또한 다수 확보되었습니다."



"증언 대조는?"



"전원 일치하며, 거짓이 아님 또한 확인되었습니다."



"좋군. 잘 '타일러서' 다른 정보가 있나 확인해주게."



"명, 받들겠습니다."



"켈 공작, 기술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소?"



여성의 말에 안경을 낀 중년이 앞으로 한 발짝 걸어 나왔다.



"현재 20% 점검하였습니다. 귀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기에 조금 더뎌진 점,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네. 급하게 파악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파악하는 편이 좋을 듯 보이는군."



"말씀, 새겨 듣겠습니다."



"이 후의 조사에 짐 또한 참여할 터이니 알아두게나."



"영광으로 여기며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이름은 헬레나 폰 크레세데르.


역사상 유례없는 막강한 마법사이자,


제국의 근대화를 꿈꾸며 마법공학을 발전시킨 혁명가이자,


영원히 저물지 않는 태양이자,


반데이르 제국의 여제이다.



"레투아니르 공, 이번 보고를 마치면 즉시 전쟁을 준비하게. 이제 명분이 생겼네."



"제국에 칼을 들이민 죄를 확실히 묻겠습니다."



"좋네. 그대의 승전 소식을 기다리지."



이제 제국은 두 국가를 무력으로 완전히 제압할 생각이었다.


완벽한 명분이니 성국 사이의 두 국가를 힘으로 완전히 제압한 뒤 괴뢰국을 세울 예정이었다.


엘리오르 신성국은 순수 종교를 기반으로 세워진 독특한 국가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교황이며 모든 국민은 국교인 하르프교의 신자이다.


제국과의 관계는 좋은 편은 아닌데, 이는 성국에서 제국민을 처형한 사건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무역은 이뤄지고 있지만 대륙 내 냉전이 지속되는 실정이다.


다만 현재 성국에도, 제국에도 붙지 않은 제 3국의 존재가 있지만 대부분은 성국과 제국의 국경에 맞대고 있는 이들 뿐이었다.


그렇게 믿어왔지만 지금 제국과 성국 국경 사이에 존재했던 두 국가가 성국의 세력임이 밝혀졌음이 지금 밝혀진 것이다.



"이번 일로 국제 흐름이 상당히 요동칠 것으로 보이네만, 그대들은 어떠한가?"



"그 흐름이라 해봤자 성국과 그들 세력의 반발이 거세지는 수준에 그칠 것입니다."



"어찌 그리 바라보는 것이지, 라스토브 공작?"



그 말에 말끔한 남성이 한 발짝 걸어 나왔다.


검의 레투아니르, 마법의 켈, 깃펜의 라스토브까지.


제국의 세 기둥이 전부 나서게 된 것이다.



"성국에서 이를 반발할 경우 이번 사건이 자신과 관련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입니다. 기존 제 3국에 관한 문제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어기는 행위인 셈이지요."



"성국이 이를 신경 쓰지 못할 것이다, 이 뜻인가?"



"그렇습니다. 이는 제 3국들 또한 성국에 반발할 가능성이 높기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그들 또한 제 3국을 최대한 끌어들여야 하는 입장이니."



회복 마법은 찾기 어려운 마법임이 맞다.


그렇기에 회복 마법의 대체제로 많은 이들은 사제를 선택한다.


회복 마법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을지라도 재생 능력을 위해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한다.


용병 가격은 성국에서 책정하며, 이는 성국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정도였다.



"그 정도면 충분히 저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들의 주요 수입원을 스스로 걷어찰 일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좋네. 이 이상의 수고를 부탁하고 싶군."



"명, 받들겠습니다."



여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성국과 동맹국들 간의 관계는 압도적으로 끈끈한데, 이는 종교 때문이었다.


하르프교의 이름으로, 정의의 신 세레스의 비호 아래 뭉친 이들은 서로 분열이 일어나기 쉬운 존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 사건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다면 아주 작은 금은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


태양신 세레스의 이명은 정의의 검.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타인에게 최대한 선의를 배풀고 이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이는 하르프교 경전 첫 장에 명시된 교리이다.


그러나 성국이 보인 행위는 완전히 교리를 어긋난 행동이기에 확실한 정보를 던져주면 알아서 금이 갈 테니 좋은 무기가 손에 들어온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아, 레투아니르 공작. 그 귀수를 사냥한 이가 반수라는 말이 돌더군."



"그렇습니다. 최근 공작가에 들인 니키타라는 아이입니다."



레투아니르 공작은 사실 이번 사실은 숨길 생각이었다.


반수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이들이 노릴 가능성 높은 존재라 평가하는 그로써 다른 공작가와 충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이후 에리카의 수행원 역할로 학교에 입학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 이상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제국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반수'라...흥미롭군."



여제는 이를 잠시 고민하더니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는 듯 슬며시 웃어 보였다.



"니키타라는 이름의 반수에게 '특별 시민권'을 부여하겠네. 또한 사냥한 귀수 사체에 대한 권리 또한 전부 그에게 넘겨주도록 하지."



그 말에 레투아니르 공작은 물론이며 방 안의 모든 이들이 당황하였다.


특별 시민권, 이를 반수에게 쥐여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제국민으로써 권리는 당연하며 세금 면제, 작은 토지 구매 가능, 상업 허가 등 많은 혜택을 가진 특별 시민권이 반수에게 쥐여 지다니.


여제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이를 안겨준 것인가.


라스토브 공작은 조금만 더 생각하니 금방 답을 찾아낼 수 있었기에 그저 여제의 발언에 찬성의 의사로 가슴에 주먹을 올려보였다.


이에 다른 공작들을 중심으로 모든 귀족들이 찬성의 의사를 보였다.



"고맙군, 짐의 고집에 어울려 주어서. 레투아니르 공작, 그에게 이미 성을 부여했나?"



"그렇습니다. 니키타 라 레투아니르란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좋네. '라', 좋은 중명(中名)이로군."



여제가 좋다, 라 말한 이유.


'라'라는 이름은 후원자임을 구분 짓기 위해 붙이는 명칭이기에 그렇다.



"이것으로 보고를 마치도록 하지. 고생했네."



"제국에 무한한 충성을!"



보고가 끝난 뒤 귀족들이 방 밖으로 나갈 때였다.


문득 여제를 본 레투아니르 공작 눈에는,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슬쩍 올라간 입꼬리가 눈에 밟혔다.



* * *



나는 어디에 있는가.


눈을 뜨고 있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자신이 서있는지 누워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두 마리의 까마귀가 크게 울며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런 자신의 오른손에는 새하얀 국화가 쥐어져 있었다.


니키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음에도 그는 무덤덤하게 그 국화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군. 죽음의 시인가."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것은 현재에 안주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미지의 바다를 응시하기 위한 준비였다.


눈을 감고 가만히 죽음의 시를 읊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주위가 차가워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입 안이 짭짤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숨을 쉬지 못해 헐떡이는 폐가 느껴졌다.


미지의 바다에 들어온 자신이 무기력하게 가라앉고 있음을 그는 깨달았다.


현실을 직시하기 싫었던 자신의 고집과 상황을 서둘러 타파하려는 자신의 성급함의 결과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죽음의 시를 읊었다.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돌아온 뒤 눈을 떴을 땐 화려한 장식의 천장이 가장 먼저 보였다.



"...아, 나 살았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내뱉은 그의 말이었다.


뜯겨나간 왼팔도 씹어 먹힌 오른쪽 다리도 어느새 자라나 있었다.



"역시 너무 성급했구나."



이제 철저하게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중간하게 완성된 기력과 애매한 장탄 만으로 귀수를 상대한 자신이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셈이다.


하지만 당장 몰려온 감정은 후회도, 기쁨도 아니었다.


그것은 설움이었다.


순간 코 끝이 시큰거리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왜..."



크게 울 수 없다.


아무도 없는 지금, 그 누구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어린 여우는 서럽게 흐느꼈다.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사랑을 받고 싶다.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에 가고 싶다.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싶다.


그저 평범함을 바랄 뿐이었는데.


그저...



"나도 행복해지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넓은 병실 안, 어린 여우는 밤새 흐느껴 울었다.


저 어딘가 존재할 지 모를 신이 들어주길 바라는 막연한 소망을 가진 채.


그리고 이런 삶을 살게 만든 이를 저주하며.


보석과 황금으로 다채로운 이 방 안, 이 날 만큼은 그저 은은한 달빛과 여우의 눈물에 색채가 잿빛으로 바래졌다.


작가의말

오타 지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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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21 0 11쪽
29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5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4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7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8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7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8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7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7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7 0 9쪽
20 소년은 물었다 24.04.16 32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2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6 0 10쪽
»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9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9 0 7쪽
15 행복해지자 24.04.07 41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41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3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3 0 9쪽
11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3 0 9쪽
10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3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5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5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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