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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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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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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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DUMMY

바스락거리는 수풀의 싱싱한 생명력, 빛이 간신히 비춰지는 빽빽한 나무까지.


숲이다.


옅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청량하게 하늘거리는 마력의 기운이 니키타를 진정시켜 주었다.


도시라 불릴지라도 이런 마력과 소리, 모든 것이 숲이라 말해주는 이곳이 엘프들의 대도시, 라 파레온이다.


은빛 나이테 무늬에 푸른 빛이 도는 회색 대리석을 소재로 위더우드 특유의 거대한 나무들을 중심으로 공중에 지어진 도시는 독특한 곡선의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북적인다, 밝다 등의 말을 해왔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이곳은 그냥 한 마디면 충분히 표현 가능해 보였다.


아름답다.


그래, 그저 아름다운 도시이다.



"아버지께선 저곳에 계십니다."



니키타를 데려온 사신은 작은 집을 두 손으로 가리키며 그곳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는 존경의 의미.


오랜 시간동안 엘프를 위해 헌신한 이에게 표하는 최고의 예우이다.


니키타는 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집 문에 다가섰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노크도 하기 전 들려온 목소리에 순간 니키타는 흠칫하였다.


아주 약간의 망설임 뒤에 문을 열자 난로 속 땔감을 부지깽이로 뒤적이는 어느 여인이 있었다.


백금발의 긴 머리에 훤칠한 키, 아름다운 용모에 머리에 돋아난 뿔까지.


그저 소박한 모습으로 지금의 행복을 음미하는 이 여성이 바로 '숲의 아버지'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작은 움직임도, 옅게 흘러나오는 표정에도, 내뱉은 말투에서도 형연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왔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니키타는 이에 목례로 화답하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의자를 두었고 니키타에게 앉는 것을 권유하였다.



"후후. 역시 처음 보시겠네요, 제 뿔."



당연히 니키타는 게임에서 또한 보았다.


몇번을 봐도 엘프에 대한 인식은 변함없었는데,


'참 특이한 종족이네.' 정도였다.


숲을 사랑해서, 자연을 동경해서 그들은 짐승이 되고자 하였다.


모든 종족 중 가장 짐승과 거리가 먼 종족이 말이다.


반대로 짐승과 가장 가까운 반수는 짐승을 혐오하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저희에겐 반수분들이 이상적인 존재랍니다. 자연과 한없이 가까우신 분을 직접 이리 대면할 수 있다는 점이 긴장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알고 있습니다."



니키타는 이를 두고 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 하는 것, 그저 그 뿐인 것을 어찌 포장해서 말할 수 있을까.



"일단 저희가 관리했어야 하는 숲을 당신께 떠넘겨버린 점에 대하여 사죄를 드리고자 합니다."



"아, 그 점은..."



"귀수의 인위적 연구는 조약에 따라 저희 측에 전권 조사를 위임받게 되었음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네?"



"책임을 지울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주시길. 어둠숲은 저희 엘프들이 관리하기 상당히 까다롭기에 이리 양해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까다롭다는 말이라 하심, 마력 때문인가요?"



니키타의 한 마디에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관리하는 방식은 바로 마력을 통해 저들의 생태나 환경을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나무에 햇빛이 필요하다는 정보, 잎이 너무 먹혀 살아갈 힘을 잃었다는 정보 등 모든 것을 마력에 의지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둠숲은..."



"공기 중 마력 밀도가 높죠."



숲의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로 인해 저희의 기존 조사법으로 확인이 불가하여 정확한 정보 수집조차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어둠숲에 파견조차 보내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파견이란 표현은 개척 전 정보를 조사하기 위함을 의미할 것이다.


엘프에게 국가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엘프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가장 많은 지원을 하는 곳이 이 라 파레온일 뿐.


그들은 숲을 자신의 고향으로 여기는 이들이기에 다른 종족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 이들이다.



"하지만 어둠숲 내에서 일부 짐승 무리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는 보고를 듣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확인해보니..."



그녀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반수인 니키타님이 계신 겁니다!"



"...네?"



갑작스런 행동에 적응하기도 전에 니키타는 그녀에게 어깨를 붙잡힌 채 흔들려야 했다.



"야생성, 즉 본능이 강한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우선시하여 직접 뛰어다니며 조사하고 사냥하며 그 안에 살아가는 모습은 저희들에게 큰 깨달음을 안겨주었습니다! 저희 조사법이 얼마나 오만한 방법이었는지 반성할 정도였으니까요!"



니키타가 당황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처음보는 사림이 이런 모습을 보이기에 당황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게임 내에서 단 한 번도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흥분할 때 외치는 목소리보다 훨씬 차분한 정도이지만 고양감이 묻어나오는 것은 확실하였다.



"허나 저희는 지금의 방식을 바꿔나갈 수 없습니다. 저희의 삶은 이러한 방법을 근간으로 쌓아올린 탑입니다. 그렇기에 저희에게는 미지와도 같은 어둠숲을 조사할 여력이 없다는 점은 부정하지 못하지요."



스스로가 엘프의 대표라 생각하지 않기에 나올 수 있는 말임을 니키타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니키타님께서 어둠숲에 지내시는데 불편함이 없으시길 바라는 뜻으로 저희가 전폭적으로 지원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전폭적? 진심이십니까?"



그녀는 니키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부지깽이 통 옆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니키타에게 건네줄 뿐이었다.



"저희가 우선적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니키타는 그 말에 망설임없이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기이하게 생긴 무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칼날이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특이한 모습 뿐 아니라, 마치 도끼처럼 손잡이는 성인 남성의 팔뚝만하였다.


아니, 도끼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이건 도끼다.



"이전 전투 속 니키타님의 모습을 살펴본 결과, 한 손으로도 휘두를 수 있되 그 끝의 무게감이 있어야 하는 도끼 형태가 좋을 것이라 판단하여 힘 좀 써봤습니다. 한번 휘둘러 보시지요."



니키타는 이를 집어들었다.


검은 날에는 은빛의 나이테가 마치 별자리와 같이 옅게 물들어 있었으며, 한 손으로 쥐어도 무리가 가지 않는 무게감의 도끼였다.



"또한 그 상자 안에 든 단도는 날이 상하지 않는 칼입니다. 부디 유용하게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도끼 또한 훌륭하지만, 이 단도 또한 훌륭하였다.


도끼와 마찬가지로 검은 날에 은빛의 나이테가 옅게 물들었으며 무게감, 무게 중심 또한 완벽하게 이루어진 칼이었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니키타가 이를 알고 있을리 없었다.


그저 쥐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짐승을 해체할 때 유용할 것이란 생각 뿐이었다.



"그럼 이 나이테와 같은 무늬는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이는 이 숲에서 자라는 위더우드 중 오래되어 은빛으로 물든 고목의 속껍질입니다. 얇지만 강도가 좋아 저희는 무엇을 제작할 때마다 이를 집어 넣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건물에도 이런 무늬가 새겨진 것이구나.


니키타는 괜히 신기해서 자신의 도끼와 단도를 바라보았다.



"아, 늦었지만 선물해주신 파이프 감사드립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녀는 다시 부지깽이를 들어올렸다.


지식을 중시 여기는 엘프이기에 지금의 상황을 귀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니키타는 조금 걱정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녀는 지금 니키타와 말을 주고받을 때마다 자신의 상식이 뒤틀리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수가 자신을 존대하다니.


반수가 감사함을 표현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다니.


자연에 가까운 종족이 어떻게 이성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그녀는 이 순간마저도 자신의 지식욕을 위하여 그와 대화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다만 당장 그를 붙잡아 지식을 얻기 위해 마력을 강제로 흘려넣지 않는 이유는 반수의 선천적 체질인 마력을 담을 그릇이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릇이 없는 이에게 강제로 마력을 흘려넣으면 그릇 외의 신체에 부담을 주어 몸의 기능이 전부 뒤틀려버리게 된다.


원하는 정보는 이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긴 하지만 문제는 어둠숲에 대한 요소가 문제로 작용한다.


대륙의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인 제국과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판단 아래 그녀는 니키타와 적당한 거리에서 지식을 얻고자 한 것이었다.



"앞으로 어둠숲에서 얻게 된 정보들은 저희에게 공유해주시길 바랍니다. 그에 대한 대가로 저희는 필요한 물품들을 최대한 구해드리겠습니다."



정을 느낄 이유는 없다.


이는 그저 순수한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 뿐.


엘프는 오로지 지식을, 니키타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아차. 나이를 먹다보니 이것 또한 드려야 했다는 사실을 깜빡했군요."



'나이'를 먹다보니?


엘프식 농담인가, 생각하던 니키타에게 그녀는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이 책이 가장 필요한 이가 당신으로 생각되어 건네드립니다."



니키타는 이젠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어째서 자신의 눈 앞으로 이리 쉽게 원하던 것이 들어온단 말인가.


책에는 알아보지 못하는 글씨가 적혀있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는 게임 속 이미지와 똑같은, 잊혀진 전사의 비급이었다.



"이미 번역을 마친 책이니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니키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작게 목례로 인사해주었다.


이 후 니키타는 남은 시간 동안 엘프들의 도시를 천천히 구경하고 몇가지 물건들을 골라보았다.


특히, 에리카의 폼멜에 달 수 있을 것 같은 장식 하나를 구매하였다.


이상하게 그녀의 눈치를 봐야할 것 같아 구매했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입학식까지 4달, 그 안에 이 책에 적힌 기술 1개라도 익혀야 한다.


너무나 쉽게 풀려 괜스레 헛웃음이 나오려는 표정을 신경쓰며, 그는 다시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처음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무심한 듯 말이다.


작가의말

오타 지적은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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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그녀가 기억하는 방법 24.09.14 8 0 12쪽
33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24.09.12 9 0 11쪽
32 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24.09.10 15 0 12쪽
» 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24.09.09 16 0 11쪽
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19 0 11쪽
29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3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2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6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7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5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6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4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5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5 0 9쪽
20 소년은 물었다 24.04.16 30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1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4 0 10쪽
17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6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7 0 7쪽
15 행복해지자 24.04.07 39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39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0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1 0 9쪽
11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1 0 9쪽
10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1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2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3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4 1 10쪽
6 피어날 준비를 마친 이이다 24.03.17 4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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