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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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최근연재일 :
2024.09.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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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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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DUMMY

문이 닫히며 밀려온 어둠의 파랑을 헤치며 그는 나아갔다.


숨을 간신히 들이쉬려는 반수의 입과 코 속으로 파고들어 그의 몸을 휘젓기 시작하였다.


뱉어내려 콜록거려도 이미 끈적하게 달라붙어 격한 이질감을 남겨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니키타는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은 자신이 아는 어떠한 공략법도 포함되지 않는 지금 그저 부딪히는 것 뿐이다.


칼을 사용하게 될 줄 알았던 공략에서 칼 없이 오로지 순수 불쾌감만 안은 채 들어오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문득 내려다 본 자신의 손에 검은 핏줄이 올라와 있었다.


그 액체가 이 어둠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지금 이 의문만큼 의미없는 것이 또 어디있을까.


적어도 저 존재가 자신을 이곳까지 부를 정도라면 무언가 바라는 것이 존재하겠지.


분명 자신을 금방 죽이려는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부디 그러길 바래야 한다.


니키타는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길의 끝에 도달하였다.


이 순간 만큼은 니키타 자신의 몸 속 마력을 담는 그릇의 크기가 작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기 중의 이질적인 마력들이 자신의 몸 속에 흡수되지 못하고 흘러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에리카와 같이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면 기존의 체내 마력이 바깥의 이질적인 마력으로 변질되어 마력 중독을 일으켰을 것이다.


심호흡 한번.


온 몸의 긴장을 잔뜩 준 뒤, 니키타는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왔구나...]



톡, 하고 손 끝이 문에 닿았다.


그저 그 뿐이었는데 지금 니키타는 들판에 서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아니 이해하려 해도 의미없는 현상일 터.



[어서오거라, 나의 정원에.]



니키타의 시선 끝에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조금 전 어물거리던 발음과는 다르게 선명한 발음으로 니키타를 불렀다.



[그래, 먼저 축하한다는 말부터 해주고 싶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을 때마다 자신의 머릿속에 인두로 지지는 고통이 새겨져 왔다.


그의 입 모양과 머릿속에 울리는 말들이 달라 보이는 것은 저들의 언어가 자신이 아는 언어와 다른 언어였다.


지금의 궁금증은 부패가 되어 자신을 전부 삼켜나갈 것이다.


말조차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지금, 그저 가만히 서서 그 존재의 말을 듣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피'를 머금은 이가 피워낸 꽃은 어떤 색일까. 내 직접 이를 지켜볼 생각이라네.]



그 존재가 한 걸음 다가올 때 마다 들판의 식물들이 꽃을 피웠다가 새까맣게 말라죽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느껴지는 마력의 농도가 짙어지며 마력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이라도 몸이 으스러져 가고 있었다.


머리의 모든 구멍에서 뜨뜻미지근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이 피인가 싶어 닦아보니 시커먼 무언가였다.


자신의 몸 속에 주입되어 온 것이 피를 대체하고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이상하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눈 앞의 존재가, 불가항력의 무언가가 앞에 다가오는 지금 자신의 몸의 변화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걸 주도록 하지. 대가는 널 통해 이곳을 둘러보겠다.]



그가 니키타의 왼쪽 가슴에 무언가를 가져다대자,



"커헉..."



몸 속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끓는 건가?


아니, 이건 탈출하려 발버둥치는 것이다.


우득, 까드득.


몸에서 나선 안될 소리가 울리며 고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꽤 올렸다 생각했는데도 이런 고통은 차원이 달랐던 모양이다.



[꽤 잘 참는구나. 이건 선물이다.]



겨우 5초 만에 진정되었지만 요동치는 그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온몸에 벌레들이 퍼덕이는 역겨운 감각이 계속되는 듯 하지만 지금 무너지면 안된다.


그 존재가 니키타 앞에 꺼내서 보여준 것은 어느 책이었다.



"매혹의 책..."



그 고통 속에서도 니키타는 확실하게 보았다.


그 책의 화려한 표지를 잠깐 보았고, 이내 흩어지듯 소각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늘 재밌었기에 주는 선물이다. 가 봐라.]



그 존재의 그 한 마디가 끝나자마자 니키타는 다시 어두운 공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크하...!"



이제야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자 곧장 그는 바닥에 쓰러져 연신 기침을 하였다.


탁한 던전의 공기조차 이리 달콤하다니.


당연히 누려온 것에 대한 행복을 다시 되뇌이며 니키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 자신의 신체에 달라진 점이 있는지 차근차근 살피던 중 자신의 몸에 새긴 각인이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저 평범한 헤나나 문신과 같은 모습이었던 각인이 자신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어 온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과 연결이라도 되어있는 듯, 자신의 심박수에 맞춰 두근거렸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는지 니키타는 이를 가볍게 넘긴 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마치 그의 고통을 보상하려는 듯,


벽에 걸린 횃대를 집어 불을 붙이자 그의 앞에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들이 펼쳐져 있었다.



* * *



"제발...움직여..."



두 팔로 다리를 집어 들어올렸지만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미 시간은 꽤 지난 상황, 지금이라도 그를 도우러 가야한다.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죽게 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나아간 그 아이와 다르게 그녀는 자리에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일어나란 말이야, 제발!"



소리질러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자신의 허망한 외침만이 울려 마치 비꼬는 듯 그녀의 귀에 다시 속삭여주었다.


분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에리카는 절대로 약한 것이 아니었다.


15살의 나이에 무지의 파랑을 겁없이 손댈 자들이 존재할까.


그녀는 그런 파랑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는 아이였다.


그 계기와는 관계없이 본디부터 강직했고 그만큼 많은 이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지금 낮은 파랑이 아닌 파도를 맞이했을 뿐이다.


처음 겪는 파도에 자신이 휘말림으로 의한 실패감은 그녀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걸어준 이가 자신 대신에 파도에 집어삼켜지는 모습을 봐버린 절망감이 더 거대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못한 채, 파도에 삼켜지는 것을 똑똑히 바라본 무력함은 그녀를 지금 좌절로 몰아가고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아직 옛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그 어둠 속에서 좌절을 느끼던 그녀 앞에 그 아이가 돌아왔다.



"너...괜찮은거야? 정말..."



"네. 이제 돌아가죠."



무덤덤하게 그는 말했다.


슬며시 웃으며 소년은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내민 손을 잡는 것.


그저 그 뿐이었다.


소리지르며 안아주는 것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것도 아닌 그저 그 손을 잡고 일어나는 것.


그 앞에서 울기 싫었다.


그 앞에서 안심하기 싫었다.


지금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기에.


하지만,



"다행이다..."



절로 나오는 이 말들은 무엇인가.


허나 막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그녀의 한 마디일 뿐.


지금의 소년이라면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그녀는 중얼거린 뒤, 소년을 따라 던전 밖으로 나갔다.



"아, 저희 이따가 챙겨가야할 것들이 많은데..."



"뭐? 그게 뭔데?"



"그게 사실 성 안에..."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바깥으로 걷는 길은 이상하게 무섭다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는 사랑이란 거창한 단어라 단번에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다.


그저 안심감.


누군가와 같이 걸을 수 있다는 안도감일 뿐.


분명한 것은, 소녀는 자신보다 작고 여린 소년에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다시 한 번 소년과의 대화 속에서 웃음을 만개하였다.



* * *



손에 쥔 모래는 하염없이 흩어진다.


하물며 어둠을 쥐려하면 얼마나 쥐여지겠나.


허상을 쥐는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기에 많은 이들이 가벼이 여기지 못하는 법이며,


더욱이 이를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다.



"실험개체 HP-21, 호흡 안정 및 야성 안정 상태입니다."



"좋네. 시약 투입은?"



"시약 크타이트 준비 완료입니다."



"시작하지."



푸른빛의 액체가 거대한 시험관 내부에 퍼져나가며 서서히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상태 보고!"



"전체적인 데이터 안정적입니다. 의식 또한 반응 없습니다."



"좋네, 이대로 유지하게나."



그 여성은 너무나 황홀하였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만큼 황홀한 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될 지경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의 비호 아래에...!"



나지막하게 읇조린 그 한 마디에 모든 이들은 시험관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신을 추앙하는 그 모습은 시험관의 빛에 성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 기도는 하염없이 이어졌다.


하염없이, 그리고 끝도 없이 말이다.


작가의말

오타 지적은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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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피어날 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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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지금 필요한 것은 NEW 12시간 전 3 0 11쪽
34 그녀가 기억하는 방법 24.09.14 8 0 12쪽
33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24.09.12 9 0 11쪽
32 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24.09.10 15 0 12쪽
31 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24.09.09 16 0 11쪽
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19 0 11쪽
29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4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2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6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7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5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6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4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5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5 0 9쪽
20 소년은 물었다 24.04.16 30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1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4 0 10쪽
17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6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7 0 7쪽
15 행복해지자 24.04.07 39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39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0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1 0 9쪽
»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2 0 9쪽
10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1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3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3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4 1 10쪽
6 피어날 준비를 마친 이이다 24.03.17 4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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