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새글

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최근연재일 :
2024.09.18 23:32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1,159
추천수 :
4
글자수 :
166,901

작성
24.04.16 22:19
조회
30
추천
1
글자
10쪽

소년은 물었다

DUMMY

이날 밤, 공작가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레투아르 전역은 승전을 축하하는 분위기에 들떠있었으며 많은 이들이 술과 음식을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니키타는 레투아르 성 꼭대기에 앉아 가만히 레투아르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밝은 빛들이 넘쳐나고 많은 노래가 흥얼거려지며 웃음은 밤의 고요를 깨부수고 있었다.


니키타는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자신의 손에 쥐어진 약을 바라보았다.


먹을 생각은 이미 가지고 있다.


다만 계획을 새로 틀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레투아니르 공작에 마음을 주고 받아 버렸다.


자신만 생존할 생각은 이제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었지만 괜찮은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 있었네."



자신만의 정적을 깨뜨린 목소리는 에리카의 목소리였다.



"뭐 이런데까지 올라와서 궁상떨고 있는거야? 자."



그녀가 건넨 것은 술이었다.



"1년 뒤면 15살이니까 미리 마신다 생각해둬."



그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몸은 14살이지만 정신은 20대면 난 어느 나이에 속하는 것일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던가.


니키타는 술잔을 단번에 비워냈다.


은은한 체리향이 느껴지는 독한 술이었다.


혼탁한 생각을 밀어낼 수 있을 정도로.



"과일나무로 만든 통에 숙성한 술이라더라."



그녀 또한 니키타의 옆에 가만히 앉았다.


너무 가깝지 않게, 그리고 너무 멀지 않게.


그저 옆에 앉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거리가 그들 사이에 있었다.



"넌 너무 혼자 고민하는거 알아?"



"무슨 말이야, 그건."



술을 홀짝이며 그녀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끔 내가 널 여기로 데려온 것이 너에게 불편한 상황을 야기시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녀는 레덴 수도에서 본 국민들을 보며 생각했다.


니키타도 과연 자신을 만났을 때 웃어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하자 밀어둔 고민들이 다시 몰려와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 일은 옳은 것인가.



"적어도 난 살면서 처음으로 친구란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혼자 흥분했던 것일지 몰라. 동갑내기인 사람이랑 이렇게까지 지내본 적이 없었거든."



그래.


그녀는 자신과 다르다.


NPC가 아닌 그녀는 사람이 맞다.


정해진 코딩에 따라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웃고, 슬퍼하고, 화내는 한 명의 소녀 아닌가.


14살의 소녀가 처음 만나는 친구는 그야말로 미지의 존재일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흥미로운 존재일 것이다.


많은 것을 알고 싶지만, 그만큼 불안한 존재.


이런 말을 꺼내도 될까?


이런 행동을 해도 될까?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겠지.



"괜찮아."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곳에서 자신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이제 인정해야 한다.


여기는 게임 속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이다.


자신 또한 14살에 불과함은 물론이며 친구를 사귀어본 적 없는 것이 아닌가.


이전의 법과 도덕은 이곳과 완전히 다르니 이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나는 니키타니까.


이곳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은 반수인 니키타이니까.



"나도 처음 만난 친구니까 괜찮아. 애초에 내가 싫었으면 이미 도망갔겠지."



그래.


정말 싫었다면 그는 도망갔을 것이다.


그저 수많은 핑게를 대가며 합리화할 생각만 가득찼을 뿐, 결국 그는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있었다.


자신이 홀로 지내기 좋아한다는 생각은 거짓일 것이다.


그는 무의식 중에 이를 인정하고 있었다.


허나 이는 무의식을 뿐 그의 의식에선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다만 이제 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그는 깨달았다.



"그럼 괜찮은 거 맞지? 이렇게 같이 다니는 거?"



"괜찮아."



어찌 이를 무시할 수 있을까.


소녀의 미래를 모른 척 하기 어려워한 소년과,


소년의 고난함을 모른 척 하기 어려워한 소녀는,


어느새 비슷한 공통점을 지닌 채 앉아있었다.


이는 외로움이었다.


거짓된 친분을 쌓아온 그녀와,


어떠한 친분도 쌓지 않은 그는,


지금 한 자리에 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진실된 어둠 속에 앉아 거짓된 빛을 바라보며 그들은 하염없이 이야기했다.


그 날의 밤을 빛 속에서 떠드는 이들은 모를 것이다.


평소와 다르게 어둠이 옅은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는 사실을.


오로지 어둠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 본 소녀와 소년 만이 아는 사실이 되었다.



* * *



다음날, 니키타는 잠들기 전 약을 섭취함으로써 마력이 늘어나게 되었다.


마력이 늘어났음을 실감한 것이 평소보다 오래 마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아리아와 주기적으로 티타임을 가지며 마법에 대한 기초 이론을 익히면서 그는 마법 파훼를 쉽게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완전히 스토리에 얽히고 말았네."



그는 씁쓸하게 자신이 일으킨 불꽃을 거둬들이며 중얼거렸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하지만 모른체 하기 어려웠던 문제에 그가 발을 디뎠다.


나아갈 길은 정해져있다.


이 게임 속 스토리만 기준으로 장르를 정하라 한다면 모두가 같은 말을 뱉을 것이다.



"다크판타지나 피폐물이던가."



수많은 악역들과 수많은 이해관계의 충돌은 이 스토리에 절대적인 선역은 없음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어느 귀족은 고아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위한 복지를 펼치지만 자금을 위해 타국의 스파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귀족이 바로 벨 가문으로, 지금은 켈 가문에서 이들의 고아원을 넘겨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레덴 왕국은 본디 평민을 위한 복지 정책을 중심으로 펼치는 국가였지만 이교도에 물든 나머지 이 후 수많은 테러를 일삼는 국가로 변모할 예정이었다.


지금은 사라져 레투아니르 가문의 소유가 되었지만 말이다.


반드시 제거해야 된다, 라는 순수악이 거의 없는 이 세계에서 이제 니키타는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개인, 단체, 국가의 주목을 받게된 인물이 되어버렸고 그 주목은 긍정적인 요소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해내야지."



그래, 결심했으니 해내야지.


그가 나아갈 길은 이제 더 험난해졌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애초에 가야할 길이라 그는 생각했으니 감수해야 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신문, 놓고 가겠습니다."



문 밖에서 집사의 말이 들려왔다.


신문은 공작이 니키타에게 매일 읽으며 국제 정세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문해준 것이었다.


니키타가 신문을 꺼내들자 이제 우려했던 사건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디페리시드의 유망주, 혼수 상태에 빠져...]



세레이오가 쓰러졌다.


이제 곧 게임의 본편이 진행될 것이다.


수많은 단체들과 국가들이 그녀가 깨어나는 순간을 기점으로 활동할 것이다.


하지만 니키타는 무덤덤하게 이를 넘겨보았다.


일어날 일이 지금 일어났을 뿐이다.


지금의 그가 결심한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준비해야 한다, 그 뿐.



"니키타, 일어나 있는가."



중후하고 무거운 목소리, 공작이었다.



"그렇습니다."



그 대답에 공작은 병사 둘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귀수를 혼자 사냥한 그대에게 줄 선물이 있네."



"무엇을...?"



"상자를 열거라."



공작의 한 마디에 병사들은 들고 온 상자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기묘하게 생긴 칼이 안치되어 있었다.


그래, 안치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마치 관과 같은 상자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수의 외피를 활용해 만든 칼이네. 직접 이를 사냥한 자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활용한 것이지."



니키타는 순간 홀린 듯 이를 집어들어 보였다.


귀수의 외파같지 않는 새하얀 백색의 칼은 마치 금속같은 외형을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기존에 자신이 사용하던 칼과 같았지만 자루를 감은 천을 제외한 모든 색이 하얀 빛이었다.



"아리아에게 들었네. 자네가 마법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말을 말이지."



공작은 슬며시 웃어보였다.



"귀수의 외피는 마력을 담기 좋은 그릇이지. 이를 가공하니 빛깔은 그리 되었지만 강도는 웬만한 금속보다 훨씬 단단할 것이네."



그 말대로 니키타가 칼에 자신의 기력을 불어넣어 보자 그 색이 기묘하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마치 짙은 피에 뒤집어 씌워지고 검은 연기가 차오르듯 오묘한 빛으로 젖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도달한 색은 기괴하였는데, 검은 바탕에 불규칙적으로 뻗은 기력은 마치 핏줄과도 같았다.



"허, 기묘하구나. 이런 기력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거늘."



기이하게도 니키타는 자신에게 맞는 칼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혹자가 본다면 마검이라 부를 법한 외형을 띄었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자네의 전투법에 따라 양날로 만들었지만 혹시 몰라 자네의 옷을 만들 때 남은 옷감으로 장갑도 만들어봤네. 이거면 안전하게 칼날을 잡을 수 있을게야."



니키타는 장갑을 착용한 뒤 칼날에 손을 꾹 눌러보았다.


어떤 흠집도 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그래. 학교에서 우수한 모습으로 증명하면 된다. 준비되면 조식 때 내려오거라."



공작은 이에 밖으로 나갔다.


니키타는 새로운 칼을 허리춤에 차보았다.


칼의 길이도 자신의 몸집에 어울렸다.


이제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렇게 받기만 해선 안되니 그들에게 보여줄 차례라 생각하였다.


이 정도로 그들은 자신에게 보여주었으니 자신에 대한 것을 보여주기로 말이다.


그는 망설임을 완전히 떨쳐낸 뒤 조식을 먹을 식당으로 향하였다.


지금까지 그의 발걸음 중 지금이 가장 가벼울 것이다.


적어도 니키타는 그리 느꼈다.


작가의말

오타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국화가 피어날 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지금 필요한 것은 NEW 12시간 전 3 0 11쪽
34 그녀가 기억하는 방법 24.09.14 8 0 12쪽
33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24.09.12 10 0 11쪽
32 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24.09.10 15 0 12쪽
31 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24.09.09 16 0 11쪽
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20 0 11쪽
29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4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3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6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7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5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7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5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5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6 0 9쪽
» 소년은 물었다 24.04.16 31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1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4 0 10쪽
17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6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8 0 7쪽
15 행복해지자 24.04.07 39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39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1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1 0 9쪽
11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2 0 9쪽
10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1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3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3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4 1 10쪽
6 피어날 준비를 마친 이이다 24.03.17 46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