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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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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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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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자

DUMMY

처음 이 세상이 게임 속 세상이란 사실을 인지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하나였다.


절망.


언제 으스러지고 찢어지고 갈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이니까.


어린 여우 한마리에게 세상은 이론 그 이상으로 험난하다 그 이상이라 소리쳤다.


정신이 멀쩡하면 무엇하랴.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무엇하랴.


가진 지식은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마저 아니기에 함부로 맹신하면 위험했다.


이 여우는 사방에서 노려보는 포식자들도, 절벽을 촘촘히 메꾼 철조망도 맞이한 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온전하게 성한 몸으로 절벽을 오를 수 있을 리 없다.


귀가 찢기거나, 꼬리가 뜯기거나, 다리가 뜯어먹히거나, 눈이 파헤쳐질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죽지 않기 위해.



"사람형 귀수라는건 처음 들어봤다고, 나도!"



답답함에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리치는 것 뿐이었다.


사람의 형태를 띈 귀수는 자신의 이점을 너무나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아무리 몸 속에 탄환을 박아 넣었어도 어려도 귀수였는지 움직임이 전혀 둔해졌다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쾌하고 압도적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덕분에 긴장의 끈을 온 힘을 다해 쥐어야만 했다.



"고.....기...배고....파...."



"하다하다 사람말도 하네, 짐승이!"



니키타는 자신의 칼을 꾹 쥔 채 기력을 흘러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를 단련하기 시작했다.


마력 또한 식을 통해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듯 기력 또한 그리 만들 생각이었다.


아니, 그리 해야만 했다.


하루종일 피하기만 하는 것은 자신이 죽을 묫자리를 찾아 뛰어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저항해야 한다.


니키타는 기력을 현실에 영향끼치도록 만드는 법을 알지 못했기에 뭐라도 시도할 생각이었다.


칼을 손에 쥔 채 귀수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틈이 보일 때마다 칼을 휘둘러 보았지만 당연히 튕겨나갈 뿐이었다.


틈을 만들어야 한다.



"크...으으!"



귀수의 모든 감각을 차단시킨 뒤 빠르게 몰아쳐야...



"윽!"



순간 급작스런 흉통이 느껴졌지만 멈춰선 안된다.


지금 멈추면 자신의 심장도 멈출 것이다.


칼을 든 채 그는 달렸다.


노려야 할 곳은 어디인가.


당연히 공격이 통하는 곳으로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 넣어야 한다.


다행히 칼날은 눈에 푹 들어갔다.



"으으...으...!"



하지만 다행히 유효타를 성공시켰다는 기쁨이 일어나기도 전에 그는 날았다.


빈 말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비튼 귀수로 인해 그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너...먹는...살려...다..."



귀수가 하는 말을 이해할 상황이 되지 못했다.


나무에 몸이 부딪힌 충격은 두번이나 느껴져왔고 온 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으로 의식을 잃을 뻔 했기 때문이었다.


어둠숲의 나무는 웬만한 금속으로 베어내기도 어렵다한다.



"...맞냐...."



왼팔에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걸로 봐서 뜯겼을 것이다.


고개는 돌아가지 않았고, 코와 입에서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움직이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간신히 움직이는 건 칼을 쥔 오른손 뿐.


귀수는 그런 니키타를 가만히 주시할 뿐이었다.



"그러게 도망쳤어야지."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니 이렇게 된거지."



"네가 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냐?"



수많은 의문은 더욱 선명해져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귀수는 천천히 니키타의 냄새를 맡아본 뒤,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배고파."



그리고 그는 니키타의 발을 물어 뜯었다.


그 작은 입으로 니키타의 살점에 뼈까지 하나하나 씹어먹기 시작했다.


우드득, 우드득하며 뜯어 먹히는 기분은 썩 유쾌한 경험일리 없다.


이대로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남아있는 자신의 오른팔에 쥐어진 칼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귀수의 눈에 찔러 넣었다.



"죽어라....제발...!"



힘이 없어서 그런가, 칼은 이 이상 깊게 파고들지 못했다.


제발.


더 파고 들어가라.


니키타는 칼을 내리쳤다.


손의 형태가 뭉개지고, 색도 붉고 푸른 색으로 물들어 가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귀수는 오로지 먹을 생각에만 사로잡힌 채 니키타의 발을 넘어 다르까지 씹어 먹고 있었다.


이제 제발 죽어라.



"그만 죽으라고!"



니키타는 그렇게 칼을 내리치던 중, 무언가 붉은 빛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와 함께 그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놀랍구나."



들판 위에 어느 여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녀가 서있는 곳은 웅장한 신전도, 무한한 우주도 아닌 그저 들판이었다.



"그러한 존재가 이런 결과를 불러 일으키다니."



발음은 어딘가 어색함이 묻어나온다.


얼굴은 무언가에 의해 지워진 듯한 모습이다.


그 존재는 가만히 응시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구원도 멸망도 아니다."



아니 여자인가, 남자인가?


성별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는 존재임이 분명한가.



"오로지 그대가 공연할 무대의 피날레를 보고 싶을 뿐."



언제부턴가 그 존재는 서서히 형태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팔, 다리, 머리라 생각되었던 모든 부위가 서서히 뭉쳐져 무언가로 변해간다.


봐선 안된다.


머릿속의 경종은 분명하게 자신에게 울리는 종이다.



"내 그대의 공연이 끝나는 그 날, 이에 어울리는 색의 국화를 건네주리."



들판의 모든 것들이 시커멓게 비틀어 죽고 하늘에선 붉은 비가 흘러내릴 때, 그 존재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봐선 안된다.


닿아선 안된다.


불쾌하게 끈적이는 소리가 귓가를 괴롭힐 때 이제 사람의 목소리일 지 모를 소리가 귀에 퍼졌다.



"기대하고 있네."



그 말과 함께 니키타는 갑작스레 들판에 삼켜졌다.



* * *



아프다.


그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첫 생각은 그 뿐이었다.


눈꺼풀 너머로 들어오는 빛에 간신히 눈을 떠보았다.



"...빛...?"



달싹이는 입술로 니키타가 처음 내뱉은 단어였다.


얼마나 기절해 있던 것일까.


자신의 발 밑엔 칼에 관통되어 싸늘하게 죽어있는 귀수가 보였다.


왼팔도, 오른 다리도 사라졌다.


온 몸의 뼈도 부숴지고, 금이 가 움직일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간신히 피거품과 함께 숨을 토해내는 것 뿐이었다.



"...이제...괜찮...길..."



그는 최선을 다했다.


이것으로 레투아니르 공작가가 몰락한 원인은 전부 사라졌다.


제국의 균형은 더욱 단단하고 견고해질 것이다.


다만 앞으로 이런 문제는 혼자 나서면 안되었다.


도움을 청하자.


레투아니르 공작가에게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정보를 주면 해결하겠지.


제국을 그토록 사랑하는 노인네가 해주지 않을리가.


그리고 이런 개같은 상황에 혼자 달려들 생각은 하지 말자고.


난 주인공도, 히어로도 아니니까.


난 일개 사람일 뿐이니까.


이제 조용하게 살아가자.


평범하게,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지내지 못할 지라도 조용히 지내자.


이제 행복해지자.


이제...


작가의말

오타 지적! 언제나 환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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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지금 필요한 것은 NEW 12시간 전 3 0 11쪽
34 그녀가 기억하는 방법 24.09.14 8 0 12쪽
33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24.09.12 10 0 11쪽
32 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24.09.10 15 0 12쪽
31 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24.09.09 16 0 11쪽
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20 0 11쪽
29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4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3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6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7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5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7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5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5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6 0 9쪽
20 소년은 물었다 24.04.16 31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1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4 0 10쪽
17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7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8 0 7쪽
» 행복해지자 24.04.07 40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39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1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1 0 9쪽
11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2 0 9쪽
10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1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3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3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5 1 10쪽
6 피어날 준비를 마친 이이다 24.03.17 4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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