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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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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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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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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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DUMMY

무릇 병장기를 다루기 위해선 이를 자신의 또 다른 신체로 여겨야 한다.


생각과 일치하는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더 나아가 생각보다 먼저 나아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너 자신과 병장기를 믿고 나아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니까..."



구름 하나 없는 쾌청한 날.


내년에 더욱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세상에 새하얀 이불을 덮기 시작한 지금,



"그게 뭔 개소리냐고!"



니키타는 푸쉬업을 하는 중이었다.


사실 이 책을 받았을 때 니키타는 그 노가다를 다시 해야 하는구나, 생각하였다.


무려 3달 간 하루 6시간 씩 쉼없이 기초 운동을 해야한다는 것은 운동을 처음 하는 이들에게 최악의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책 내에 이에 대비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펼친 장면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기력을 통한 근육 회복법.


즉, 책은 니키타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까라면, 까라고.



"으아아! 누가 쓴 책이냐고 이거!"



통증은 없지만 통증이 없이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너무 어색해서 불쾌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해야한다는 마음과 걍 다 때려치고 숲으로 도망칠까, 라는 마음이 치열하게 접점을 벌이고 있을 때,



"벌써 지친거냐?"



지그문트는 편안하게 앉아 키득거리고 있었다.



"도와줄 거...아니면...좀 가시죠...!"



"그걸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지켜보는 것 뿐인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지그문트가 미친듯이 얄밉지만 방법은 없었다.


그자가 딱밤을 한 대 때리면 이마에 깊은 싱크홀 하나 생겨 그대로 죽어버릴 정도로 무력의 차이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이 악물고 훈련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굳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그문트의 물음에 니키타는 즉답했다.



"당연히...살고자 하기 때문이죠!"



지그문트는 그런 대답이 쉽게 나오는 니키타가 볼수록 신기하였다.


야생성이 짙은 반수는 무리가 아닌 곳의 규율보다 자신의 본능을 중시 여기기에 성국에서의 싸움이 끝나면 냅다 도망칠 것이라 생각했다.


니키타를 제대로 마주할 때가 바로 이 때였기에 듣는 것만으로는 신뢰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지금 니키타의 모습은 살기 위해 고통을 마주하는 모습 아닌가.


어지간한 성인들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반수인 그가 보이다니.


본능에 충실한 반수가 얼마나 큰 위협을 마주하게 되었길래 이성을 바로잡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니 말이다.



"벌써 그렇게 꾸준히 운동한 지 3달이 되어가는데, 괜찮은거냐?"



"그나마 다행히 기력의 운용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허 그걸 3달 만에 깨우치다니...아니, 그렇기에 고통이 큰 것인가?"



"확실히 이런 방법을 통해 몸을 혹사하며 훈련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말대로 현재 기력을 수련하는 이들은 기초체력을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꾸준히, 그리고 병장기를 휘두르며 자신의 손발이 될 때까지 수련을 해야 기력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이 모든 전사 수련의 기본이자 상식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몸을 혹사해가며 수련하는 방법은 지그문트는 물론 니키타에게조차 생소한 방식이었다만 그 결과나 너무나 명확하여 대놓고 불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기력도 마력과 마찬가지로 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



"속성...말입니까?"



"그럼. 그렇기에 전사들은 상대의 기력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올지 짐작하는 법이지."



처음 접하는 이야기지만 게임 내에서 기력에 관한 정보를 접할 기회는 없었기에 니키타는 이를 중요하게 들었다.



"그럼 내가 혹시 네 기력의 색을 보고 싶은데, 가능한가?"



"네, 그럼..."



니키타는 자신의 오른팔에 기력을 천천히 두르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팔에 기력이 드러나는 모습에 지그문트는 수련법이 효과 하나는 확실하네,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가 살면서, 아니 어느 문헌에도 보인 적 없는 기력색이 니키타의 오른팔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마치 루비와 같이, 빨려들 것 같은 검은 빛을 머금은 붉은 빛이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기력은 마력의 속성 색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빛은 제외하고 녹색은 속도를, 푸른빛은 흐름을, 금빛은 묵직함을, 붉은빛은 강함을 품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무기 끝에 마법과 비슷한 속성이 띄게 되는 법이다.


그것이 모든 기력을 운용하는 기사의 상식이다.


그리고 지금 그 상식이 완전히 뒤틀린 채 눈 앞에 다가왔다.



"...이건 모르겠군. 처음 보는 색상이야."



"처음 본다구요?"



"그래.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색이다. 감조차 잡히지 않는군."



이런게 기력이었다니, 니키타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이 색을, 그리고 막 꺼진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듯한 연기와 같은 형태를 알고 있었다.


게임에선 적대몹 전용 버프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마비, 중독, 흡혈, 실명 등 다양한 상태이상이 모든 공격에 적용되는 특수 네임드 개체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니키타의 오른손에 피어오른 이 연기는 흡혈을 상징하는 루비빛 버프의 상징이었다.



* * *



"기력을 성장시킨 결과가 이건데, 그럼 이걸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인가?"



이것이 기력이라니, 그럼 고위개체 중에서 마법을 사용한 이들은 어떤 개념인거지?


그렇다면 마력 또한 위와 비슷한 형태가 존재하는 건가?


아니면 마력과 동시에 기력을 사용하는건가, 아니 그게 가능한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속 니키타는 자신의 기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잊혀진 종족의 비급에 적힌 말에 따르면 지금 니키타의 수준은,



"스콰이어인가."



지금 니키타의 기력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억지로 단시간에 만든 몸은 보디빌더와 같은 근육이 아니라 이상하게 마른 근육의 형태로 자리했지만 덕분에 기력이 늘어나지 않았나.


가장 유력한 원인은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과 겹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당장 해결할 방법은 없으니 별 수 없었다.


신체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라 생각되니 넘어갈 생각이었다.


지금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력의 운용이기 때문이다.


니키타는 자신의 도끼를 들어올려 보았다.


한 번 휘둘러보니 라 파레온에서 휘두르던 느낌과 완전히 달라졌다.



"...더 편해졌어."



몸의 근육이 분명하게 달라졌다.


겨우 3개월 동안 온몸을 혹사시킨 결과는 비약적인 신체 능력 향상인 듯 보였다.


다음은 이제 무엇이 적혀있나, 싶어 책을 넘겨보자 아주 간결한 무늬와 함께 한 줄의 문장이 적혀있었다.



"기력을 두른 채 이 모양대로 휘둘러라..."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니키타는 결국 도끼를 휘두르기만 하게 될 예정임이 확정되었다.


아, 여유롭게 파이프 물면서 졸던 때가 행복이었구나, 생각하던 중이었다.



"와...진짜 그 방법이 효과가 있구나?"



에리카였다.



"뭐야, 오늘 자 훈련은 끝난거야?"



"아니, 오후에 해야지. 갑자기 어머니가 부르셔서 지금 나왔거든. 참고로 너도 부르셔서 데리러 온거야."



"나도?"



"곧 입학이니 그런거 같더라."



의문은 많지만 어쩔 방도가 없지 않은가.


니키타는 에리카를 따라 알현실에 들어갔다.


알현실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모습은 바로 가주석에 앉은 아리아의 모습이었다.


니키타는 잠시 잊고 있었다.


제국은 여성이 사회적 지위가 더 높다는 사실을 말이다.



"에리카 레투아니르와 니키타 라 레투아니르, 가주님의 부름에 응하였습니다."



니키타와 에리카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전에 마법을 가르쳐준 이가 맞나, 싶을 만큼 간결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문득 니키타는 알현실에 사람이 이상하리 만치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서 온 이들인가 의문을 품게 될 정도로, 어림잡아 60명은 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에리카, 최근 마력량이 늘어 마법과 검술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당연하지만, 니키타는 이런 자리를 이성적으로 어찌 말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말들 뿐이었기에 예의를 차리는 법은 모른다.



"니키타."



"네."



이상하게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니키타는 고개를 돌어보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이성이 호기심을 강하게 억눌렀다.


그런 니키타의 필사적인 마음과는 반대로 오히려 아리아는 흐뭇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알현실에 모인 이들은 레투아니르 공작가의 최우방 귀족들, 즉 제국의 군권을 지닌 이들이다.


그들을 납득시킬 겸 니키타의 차별이 이뤄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 부른 자리다만 니키타는 아리아의 생각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언급해주고픈 일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가 기력을 깨우친 이라는 사실도, 엘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사실도, 성국과 자유무역을 독점적으로 맺을 수 있게 도와준 사실도.


하고픈 말은 많지만 그녀는 그저 조용히 한 마디 해주었다.



"너무나 잘해주었다. 네 덕분이다."



"감사합니다."



뭔 의미의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오로지 인간의 연극을 처음 바라본 흰 여우 하나 뿐이었다.


레투아니르 공작은 지금, 니키타의 뒤에 자신이 있음을 알림과 동시에 그의 공적을 '직접'치하했다는 사실을 각인시킨 것이다.


지금 이 시간부로 니키타는 레투아니르 공작가의 양자이자 공작의 신임을 얻은 인물로 급부상한다는 소리이다.



"성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였지만 좋은 결과와 높은 성취를 이룬만큼 이를 묻지 않겠다."



"감사드립니다."



"에리카. 이 검을 너에게 주마. 남은 한 달간 익숙해질 수 있도록."



에리카는 두 손으로 검을 받아서야 이것이 어떤 검인지 알 수 있었다.


빙결에 특화될 수 있도록 북쪽 지역에서 상당히 드물게 발견되는 백빙석을 냉기로 재련하여 만든 희귀품임을.


심지어 손잡이의 길이, 핸드가드와 칼날의 길이까지 에리카에 맞춰 만들어진 무기였다.



"앞으로도 정진하길 바란다."



그녀는 괜스레 울컥이는 바람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였다.



"니키타, 그대에게 내 이것을 주겠다."



에리카가 니키타에게 건넨 물건은 망토였다.


자신이 사용하던 발록 가죽의 망토보다 내구도는 약하지만 품질이 뛰어난 망토임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사냥을 좋아하는 너라면 좋아할 것 같아 준비해두었다."



내구성을 중시한 망토가 아니다.


자신의 꼬리까지 덮을 수 있는 망토지만 빳빳하고 매끈한 재질은 물을 막는 용도일 것이며 광택이 없는 이유는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따 연회 때 만나도록 하자꾸나."



연회?


그제야 니키타는 의문을 품었지만 아리아는 둘에게 연회 전까지 쉬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돌려보낼 뿐이었다.



"아, 내가 말을 안해줬었나...?"



그리고 다 끝나서야 오늘 일에 대하여 까먹고 말하지 못한 에리카의 입을 통해서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말

오타 지적은 환영입니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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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피어날 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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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지금 필요한 것은 NEW 12시간 전 3 0 11쪽
34 그녀가 기억하는 방법 24.09.14 8 0 12쪽
33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24.09.12 10 0 11쪽
» 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24.09.10 16 0 12쪽
31 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24.09.09 16 0 11쪽
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20 0 11쪽
29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4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3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6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7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5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7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5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6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6 0 9쪽
20 소년은 물었다 24.04.16 31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1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4 0 10쪽
17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7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8 0 7쪽
15 행복해지자 24.04.07 40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39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1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2 0 9쪽
11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2 0 9쪽
10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2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3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3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5 1 10쪽
6 피어날 준비를 마친 이이다 24.03.17 4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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