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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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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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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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 것은 공포요

DUMMY

연금약은 다행히 실패없이 전부 완성하였다.


물약은 속도 상승, 인식 분산, 사고 가속으로 각각 10개씩.


부적은 행운의 목걸이 1개와 통찰의 부적 1개.


마지막으로 밤눈 안약과 고주파 귀마개까지 완성시켰다.



"흡혈귀 가루로 안약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흡혈귀 가루는 그들의 눈에 남은 발광 입자입니다. 여기에 흡수율을 높여 눈에 넣을 안약을 만든다면 적은 양의 빛으로도 밝게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도와줍니다."



연금으로 제작한 물건들은 각각 나눠 분배한 뒤 니키타와 에리카는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였다.


에리카가 들어온 이상 총을 사용할 수 없으니 던전 내 보스만 사냥해도 던전 내 모든 마물들이 사라지는 시스템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공략 전에 이걸 착용해주세요."



"귀마개? 반드시 껴야 하는거야?"



특히 가장 조심해야 할 요소가 죽음사제로, 저들이 부르는, 들어선 안되는 노래는 어느 신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세계에 던전과 같은 암덩어리를 심어놓는 재앙이자 마력의 고대 신, <이름을 불러선 안되는 신>에게 바치는 노래다.


그 노래는 평범한 사람의 귀로 듣는다면 정신이 견디지 못하기에 반드시 이를 막기 위한 아이템이 필수이다.



"이 귀마개를 낀다면 적어도 치명적인 소리는 듣진 못할 겁니다."



"응, 알겠어. 그렇다면 또 해야할 것은 또 있을까?"



"한 가지, 이 도시에 살아있는 사람은 저희 뿐이라는 점만 반드시 명심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연한 말이다.


에리카는 어째서 이를 명심하라는 뜻인가 묻고자 했지만 그의 표정을 보아 이를 계속해서 되뇌이기 시작하였다.



"전투는 최소한으로, 수색은 최대한으로 도시를 하나하나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칼은 계속 들고다니며 긴장을 늦추진 않을겁니다."



"알겠어. 전투는 최소한으로, 그리고 상세한 브리핑은 네 판단에 맡길께."



니키타는 이에 고개를 끄덕인 뒤 니키타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은 세 가지 물약을 단숨에 들이키고 도시 내부로 들어갔다.



* * *



도시는 기괴하였다.


중력을 버틸 수 있도록 지어지는 일반적인 건축물들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기묘한 곡선형의 건축물들이 보였다.


아니, 어쩌면 기존 건축물이 무언가에 의해 뒤틀렸다는 평가가 더욱 확실해 보였다.


무너지고 솟아오른 길 위를 걸으며 에리카는 그제야 니키타의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이 도시는 무너졌는데,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이들의 모습이 기이하게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보였다.


길거리 음식을 구매해서 먹는 활기찬 아이들의, 장보고 돌아가는 화목한 가족들의 모습이.


가게 안에서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며 떠드는 용병들의 힘찬 함성 소리가...



"에리카님."



니키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제야 그녀는 저들의 모습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환하게 웃은 그들의 모습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미소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찢어낸 듯한 미소인지 눈과 입에선 시커먼 액체가 끈적하게 흐르고 있었으며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기이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자라나 있었다.


창백한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그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튀어나와 꾸물거리는 것이 어찌나 혐오스러운지.


에리카는 간신히 비명을 내지르지 않고 침을 삼켰다.



"괜찮습니다. 우선 저 앞의 가게에 들어갈테니 제가 무엇을 해도 가만히 있어주십시요."



니키타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가게는 작은 악세서리 가게였다.


띠링, 하고 작은 종이 울리며 본 가게 내부는 별반 다를 바 없는 가게와 같았다.


다만 진열장에 놓인 악세서리와 가게 주인이 이곳이 던전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불경한 악세서리들에 심지어 악세서리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물품조차 존재했다.


가게 주인의 얼굴은 마치 토우와 같이 눈과 입이 시커먼 원형으로 뚫린 존재가 반겨주었다.



"무 엇을찾 으시나 요?"



그 말에 니키타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본 뒤 말했다.



"팔크란의 반지를 바랍니다. 지불은 지금 하겠습니다."



"두개구 매확인 했습니 다."



니키타가 자신의 왼손을 점주에게 내밀자 갑자기 그 머리에 뚫린 입구멍에 니키타의 손을 집어넣었다.


끈적이는 무언가가 니키타의 핏줄을 따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고통 내성 덕분에 그리 큰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피를 빨린 다음 정체모를 무언가가 몸 속에 채워지는 이 더러운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불완 료했습 니다."



니키타는 점주가 건넨 반지 두 개를 집어 가게 밖으로 태연하게 걸어 나갔다.


그리고 곧장 뒷골목으로 향하여 주변에 다른 존재들이 있는지 살펴본 뒤 니키타는 그제야 잠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 반지를 껴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보다 너 괜찮은거지...? 방금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단 말이야!"



에리카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마물의 잔인함은 들어봤을 테지만 이런 개념의 던전은 들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니.



"당장은 괜찮습니다. 저 액체도 순수한 마력 덩어리나 다름없으니 희석될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그래도...그래도 그런 검은 마력은 처음 봤다고!"



에리카가 이렇게까지 소리지르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을 뿐, 니키타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커먼 것이 핏줄을 따라 흘러 얼굴에 도달한 모습은 참혹해보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과 피부를 가진 이 반수의 몸이 갈라지듯 틈이 벌어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눈마저 새카만 액체에 잠긴 듯 공막이 새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지금 모습을 본다면 어느 누가 살아있다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해야만 합니다. 지금 이 던전은 범람 직전 아닙니까."



이 말에 에리카 또한 니키타를 말리지 못하였다.


그저 울망이는 눈동자로 이 애처로운 모습의 연약한 반수를 내려다 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니키타는 물건을 구매하고 지불하기를 반복하였다.


지불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며 연속으로 지불하지만 않는다면 생명에 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에리카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 니키타조차 이 시커먼 것의 정체는 알지 못했기에 이는 스스로를 예의주시하게 만들었다.


공략에 필요한 물품들도 구매하지만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들, 예를 들어 팔크란의 반지나 키라늄 침과 드리카스의 침술학 책과 같은 물품들이다.


침과 반지는 각각 신체의 한계 돌파를 위한 역할이랑 자신의 총들과 돈을 보관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이외에는 마력 용량을 두배로 늘려주되 오감을 억제하는 회색 피, 모든 감각을 영구적으로 극대화하는 팔크란의 알약까지.


다양한 아이템들을 구매하며 니키타는 일부 아이템들 중 에리카에게 필요한 물품인 팔크란의 알약과 회색 피를 먹여 그녀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서서히 도시의 중심으로 다가가며 걷는 도중 니키타는 저 멀리 유유히 일렁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바람이 없음에도 깃발처럼 무언가가 펄럭이는 모습을 본 순간 니키타는 그 즉시 에리카의 팔을 끌어 인근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죽음 사제다.


당장 저들과 전투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전투를 위한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워 무려 7시간 동안 도시를 돌아다니며 기믹을 수행해야만 했다.


지금은 피해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부디 이곳을 보지 않길 기도하며 니키타는 에리카의 입을 꾹 막은 채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제발.


가까운 거리로 지나치기만 해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온전하게 이 귀마개가 막지 못했기에 지나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제발.


서서히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그리고 펄럭이는 소리가 갑자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니키타는 에리카의 입을 막은 손을 내리고 참아온 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저들의 활동 범위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저들이 이 거리를 돌아다닐 시간이 아니었다.


저들이 이 거리에 존재할 때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할 때 말고 없었음을 기억했지만 이상하게 가게들이 한창 열려있음에도 저들은 이곳에 왔다.


어째서?


자신의 공략에는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에리카 또한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준 덕분에 위기 상황이 이어지진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니, 니키...타?"



잠시 껴안고 있던 에리카의 몸이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창백하게 식어버린 그녀는 간신히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끝에는 어느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마물도 사람도 아니었다.


존재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저 멀리서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니키타는 곧장 그녀의 눈을 가리며 자신 또한 눈을 질끈 감았다.


보아선 안된다.


그 존재를 눈에 담으려는 오만한 행동은 불허되었다.


말해선 안된다.


그 존재에게 말을 거는 무례한 행동은 불허되었다.


그것은 원초적인 마력이요.


그리고 원초적인 공포요.


공포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며 겨울의 차가움과 다른 공포로 식은 서늘함이 점점 진해져왔다.



[...내 정원...에 들어...온 방랑자인...가.]



존재의 발언은 귀가 아닌 머릿속에 울려왔다.


뇌가 진동하는 불쾌감에 속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허가...하지...혼자...들...어오...거라.]



이내 온 몸의 서늘함이 가라앉고 돋아난 소름이 진정되어서야 니키타는 눈을 슬며시 뜰 수 있었다.


조금 전의 밝은 분위기였던 이 도시는 어느새 검은 어둠에 가라앉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게 무슨...."



에리카 또한 충격으로 인해 이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 거대한 도시를 담은 던전의 원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음은 알고 있었다지만 던전의 구성을 단번에 변화시킬 힘이라니.


그러한 존재는 신이란 이름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문이 열리는 것을 보자 니키타는 심호흡을 하였다.


가야한다.


미천한 존재가 어찌 저들의 말을 거역할 수 있냐는 말이다.



"가지마..."



에리카는 간신히 니키타의 소매를 붙들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귀족과 황족의 권위가 무슨 소용이랴.


신은 절대적이거늘.


에리카는 그럼에도 니키타에게 가지 말라고 말했다.


이는 용기다.


만용이란 표현일 수 있지만 적어도 에리카는 지금, 니키타가 그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인물이란 뜻과도 다름없었다.


하지만 가야한다.


둘이 온전한 목숨을 가지고 던전 밖으로 나가기 위한다면 나아가야 했다.


일렁이는 어둠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에리카의 손을 조심히 잡아 내려놓은 뒤 그는 웃었다.


에리카는 처음 보이는 그 웃음을 이곳에서 보고싶지 않았다.


너는 또 위험 속으로 몸을 던지는구나.


어떻게 너는 지금 그리 웃을 수 있는 것이니.


무너진 에리카를 뒤로한 작은 반수는 문을 향해 걸었다.


원초적인 공포의 품 속으로, 그는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작가의말

오타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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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그녀가 기억하는 방법 24.09.14 8 0 12쪽
33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24.09.12 10 0 11쪽
32 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24.09.10 15 0 12쪽
31 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24.09.09 16 0 11쪽
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20 0 11쪽
29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4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3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6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7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5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7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5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5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6 0 9쪽
20 소년은 물었다 24.04.16 31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1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4 0 10쪽
17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7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8 0 7쪽
15 행복해지자 24.04.07 40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39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1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1 0 9쪽
11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2 0 9쪽
»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2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3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3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5 1 10쪽
6 피어날 준비를 마친 이이다 24.03.17 4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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