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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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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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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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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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DUMMY

썩어 문드러진 태양의 피딱지 위에 새로운 피를 뒤덮는다.


그 위에는 혈화가 흐드러지고 환희의 외침과 통곡의 비명이 한데 섞여 장송곡으로 변모한다.


지금 이 순간, 대의는 흩어져 오로지 광기만이 춤을 추니 비극적인 극과도 같았다.


익숙하다.


들이마시는 숨에 오로지 역한 비린내 뿐이었으며 바닥은 흥건한 피로 인해 바닥이 조금 진흙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팔랑크스는 이미 뚫린 지 오래였다.



"아, 집중 좀 하라고!"



마법사의 불평에도 지그문트는 니키타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힘이 부족했다.


속도도 느리고.


체력 또한 별거 없었다.


무엇 하나 뛰어나지 않은 니키타였지만 그의 동작은 이상하리만치 깔끔했다.


간결하지만 확실한 마무리.


마치 다가오는 적들을 조련하듯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큰 동작 없이 제압하고 있었다.



"본능에서 나오는 기술, 이런 건가?"



재밌어하는 지그문트와 달리 니키타는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였다.


각인의 힘을 온몸에 흘려보내 근육을 보조하며 움직이는 중이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르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총 또한 몰래 사용하는 중이었다.


왼손에 숨겨둔 데린져도 있었지만 탄 또한 60발만 챙겨온 탓에 신중히 사용해야 했다.


가장 먼저 다가온 저 자의 목을 먼저 배어낸다.


배어냄과 동시에 수직으로 들어오는 칼을 오른쪽으로 피한 뒤 보호구가 없는 겨드랑이를 찔러야 한다.


관절을 완전히 관통할 필요 없이 뼈에 닿을 정도로 찔러 넣으면 순간 팔 힘이 풀릴 것이다.


그러면 목에 칼을 찔러 넣어 끝낸다.


그저 이를 반복할 뿐인 싸움.


누군가 지루할 수 있다 말하겠지만 지금 이러한 동작 하나하나가 목숨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5번째에 제대로 피하지 못해 왼쪽 어깨 살이 도려내어 졌으며 25번째에 발을 제때 빼지 못하여 허벅지 살을 베였다.


손으로 칼등을 잡아 공격을 흘리는 데에도 손에 너무 큰 무리가 오고 있었다.


그렇게 칼을 휘둘렀지만 그의 손은 굳은살이 전혀 없는 매끈한 손이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제 아무리 휘둘러도 굳은살이 박히기는 커녕 손에 쓸린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것을 보아 멋대로 회복이 되는 모양이었다.


짙어진 이명에 지워진 소리 때문인지 의식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그래, 심해에 가라앉았다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 그가 바란다면 후방으로 물러나 쉴 수 있었다.


어느 누가 여린 몸으로 장정 30명 이상을 베어냈는데 불평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모습에 다른 병사들에게, 길드원들에게 자극이 되어 사기를 올려주는 효과를 주었다.


현재까지 공격 병력의 사상자는 80명을 넘어선 모습과 반대로 북문 수비 병력의 피해는 겨우 부상 1명.


이는 물량에 압도되던 전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허나 그런 니키타조차 지금은 한계에 도달하였다.


그는 알 수 있었다.



"너무 무리하면 그다지 좋을 것이 없지."



"제리, 카세의 위치는?"



"병력의 최후미, 그곳에서 참모로 보이는 이들과 말다툼 중."



그 말대로 그녀는 현재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녀가 이리 무모하게 병력을 전부 이끌고 나온 데에도 이유가 있었는데, 이는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좁은 골목에선 병력 차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셨나 봅니다, 존."



"이 또한 생각해두었습니다. 다만 이곳에 배정된 이들은 꽤 정예화된 이들조차 고전할 상황이 생길 것이라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계산에 상당한 오류가 있던 모양이군요?"



그는 그 즉시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르켰다.


검붉은 피와 빛을 잃은 갑주가 난무하는 전장 속 유일하게 빛을 머금은 아이를.



"확실합니까? 저 연약한 것이?"



그는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카세는 그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다.


실제로 게임 속 카세가 성녀로 군림했을 당시, 그녀의 곁엔 언제나 존이 책사로써 곁에 존재해주었다.


카세가 판단이 뛰어난 인물이긴 해도 혼자 판단하는 것에 큰 부담이 존재했기에 이를 도와줄 이는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뢰하는 그의 입에서 믿지 못할 발언이 나오기까지 말이다.



"어이가 없군. 겨우 저런 반수 따위 하나 때문에?"



군 참모 역할을 해온 존과는 다르게 카세는 오로지 이론에 치중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존은 실전을 경험함으로 인해 덜 치중되어 있지만 카세는 협회에서 인증된 이론만을 익혀온 이.


즉, 오로지 마법 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전술만 이해하고 있었다.



"방패병, 전열을 가다듬고 팔랑크스로! 마법병은..."



결국 아주 미묘한 요소로 어긋난 전투의 결과는,



"신멸포를 준비하라."



어긋난 판단을 이르게 만든다.



"그게 무슨...!"



존이 무언가를 외치기도 전에 이미 병사들은 그녀의 말을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야 존은 자신이 멍청하게 고장난 기차에 올라탔음을,


그가 바라보고 믿어온 찬란한 태양이 그제야 어설프게 도금된 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그문트! 갑자기 마법 대형을 펼쳤는데?"



"하! 이제 막 나가겠다, 이건가?"



팔랑크스로 전열을 방어하여 마법을 준비하는 것은 효과적인 수단은 맞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상대 전력에 마법사가 없다는 점과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을 때 효과적인 방법이다.


카세가 고려하지 않은 점은 지그문트의 길드 내에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곳 모두가 예측하지 못한 점은 바로,



"잡았다."



니키타가 노련한 사냥꾼이란 사실이다.


그 충격은 순간 카세를 넘어뜨리게 만들었으며 대형의 병사들 시선과 집중력을 순간 분산시키기 충분하였다.



"지금! 쏴!"



지그문트의 외침과 함께 니키타에게 말을 걸었던 마법사가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팡이 끝에서 나온 가는 빛은 순간 거대한 섬광을 내뿜으며 저들의 대형을 완전히 뒤흔들게 만들었다.



"좋아, 가자."



그리고 방심한 이들을 향해 푸른 짐승이 거대한 송곳니를 들고 달려들었다.



"아악! 다리, 다리가...!"



"어서 도망가셔야 합니다! 이미 다른 방향은 패전 중이라 합니다!"



니키타는 고의로 카세의 다리를 노렸다.


사냥감은 도망칠 때 무의식 중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챙기려 든다.


과연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는 위치가 어디일까?


니키타는 그런 의문을 가진 채 카세의 뒤를 따라 그녀가 향할 곳은 대충 예상이 되었다.


게임 속 카세의 개인 의뢰를 통해 일정 수치 이상의 호감도까지 올렸을 때 나오는 이벤트 씬.


그 보상은 행방이 묘연하니 넘기겠다만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그럼 이제 동맹이 활약해 줄 차례가 온거네."



* * *



"곧 도착입니다, 카세님."



존은 후회 중이었다.


이리도 자신에게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단 말인가.


아니, 그럴리 없다.


그녀가 뛰어난 성녀로 거듭날 수 있는 존재임은 틀림없다.


오히려 문제는 천한 엘프 따위가 외부 세력을 끌어들인 것.


성국의 문제는 성국 내에서 해결해야 하거늘, 천한 것이라 부정한 방법도 서슴없이 사용한다는 것인가.



"으윽...지하실인가?"



눈 앞에 익숙한 복도가 눈에 들어오자, 카세는 그제야 자신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그렇군. 전 신중하지 못했군요."



"괜찮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여러 계획을 추가로 세워두었으니 다리가 나으면 검토하시죠."



"화살도 아닌데...어째서 다리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법이지요."



종류는 다양하다.


엘프를 납치한 뒤 흑마법사를 동원, 이를 통해 그녀를 이단으로 몰아 죽이는 것도 방법이다.


그 뿐이랴, 성물을 가짜로 바꿔치기 하여 반응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엘프와의 외교 문제를 들먹여 저 자를 국외로 추방하는 등 방법은 다양하다.


반드시 짓밟아주리라.


성국의 품에 다시 위대했던 과거의 영광을 안겨줄 성전을 이리 망친 이들을 전부 죽여버리리라.


내 명예를 걸고 반드시 처참하게 죽여주리라.


존이 이를 갈며 방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늦었구나."



등골이 서늘해졌다.


온 몸의 피가 머리부터 차갑게 식어 내려가는 듯 하였다.


전투의 단편적인 변수가 아닌 정확하게 먹잇감을 노리고 온 사냥꾼이었던가.



"부탁하신 일에 관한 결과를 알려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눈을 깜빡한 사이 나타난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여우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엘프...!"



분명하다.


라 파레온 내에서 길러진 잠입부대, 블랙우드.


저들이 이곳에 있다는 뜻은 엘프왕이 직접 명령했으리라.



"감히 엘프 따위가 이곳에 발을 들이다니! 신께서...!"



그 이상 존은 소리지를 수 없었다.


이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오로지 액체가 울컥이는 소리 뿐.



"음...보물의 위치도 물어볼 겸 천천히 죽일 생각이었는데."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길. 위치를 찾았다는 보고 또한 올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상관없지. 네가 말한대로 준비해 둬."



그러자 그들은 곧장 존의 시체를 해체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말한 방법은 그냥 실종처리로 만드는 것.


저들이 엘프를 차별 및 학대해왔다는 점을 들어 성국과 국교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써 만들자는 의견이었다.


성국과 엘프국이 국교를 맺는다면 이단은 물론이며 이단 중에서 특히 그들을 섬기는 이들 또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신, 즉 오래된 신을 섬기는 이들을.



"너...어째서 우릴...!"



카세의 목소리였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니키타는 싱긋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저 우린 사람들을 납치해 죽이고 실험한 '마녀'를 토벌하는 것. 그 뿐이니까."



"뭐...?"



나보고 마녀라니, 라는 말은 날카로운 비명이 되어 터져나왔다.



"어둠숲에 있는 짐승, 사람들이 본 적 없는 놈 하나 끌고와서 저거 근처에 놔 둬. 팔다리 먹여두는 건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최대한 사람같은 존재로 끌고 오겠습니다."



게임 속 흑막 중 하나이자 세레이오의 후원자 중 하나였던 전 성녀 카세.


신의 이름 아래 가장 높은 존재였던 위대한 성국의 지도자였던 카세.


이제 그녀는 추락하여 허무하게 역사의 강물 아래로 가라 앉았다.



"여기입니다."



안내를 받은 장소에 도착하자 마주한 것은 금은보화가 넘쳐 흐르는 방이 아니었다.


말라 붙어버린 피딱지가 온 벽과 천장까지 붙고 백골이 넘쳐 굴러다니는, 흡사 고문실과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그 한 켠에 놓인 상자 안에 여러 보석들이 들어있긴 했지만 블랙우드 단원들에게 이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기, 필요해 보이는 물품 위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니키타가 그들의 말에 따라 탁자 위에 놓인 물건들을 보자 곧장 깨달았다.


카세, 왜 그 이름을 기억해야 했는지.



"이것들이 여기서 이걸 실험했었구나?"



생각지 못한 보상에 니키타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감조차 잡히지 않아 거의 손 놓고 있던, 카세 호감도 보상.


변절된 신성문신의 서와 정신조작 스킬책이었다.


작가의말

취업 준비로 늦게 올립니다...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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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피어날 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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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지금 필요한 것은 NEW 12시간 전 3 0 11쪽
34 그녀가 기억하는 방법 24.09.14 8 0 12쪽
33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24.09.12 9 0 11쪽
32 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24.09.10 15 0 12쪽
31 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24.09.09 16 0 11쪽
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19 0 11쪽
»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4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2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6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7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5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6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4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5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5 0 9쪽
20 소년은 물었다 24.04.16 30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1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4 0 10쪽
17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6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7 0 7쪽
15 행복해지자 24.04.07 39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39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0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1 0 9쪽
11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1 0 9쪽
10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1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2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3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4 1 10쪽
6 피어날 준비를 마친 이이다 24.03.17 4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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