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어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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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리온
작품등록일 :
2024.03.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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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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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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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DUMMY

"미안...미리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괜찮다니까. 이미 다 끝난 상황에서 뭘."



연회가 시작되었음에도 에리카는 니키타에게 괜히 미안해하고 있었다.



"너는 그래도 고의가 아니었지, 지그문트 형은 고의로 말 안한거잖아."



연회는 상당히 시끌벅적한 모습이었다.


니키타의 눈에는 어느 부유한 종갓집의 서양식 추석 풍경과 같은 모습처럼 보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취업, 결혼 등의 잔소리, 형제들 간의 신경전하는 모습들 전부 그리 보일 뿐이었다.



"...여기서 파이프 펴도 되려나."



"예절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니 괜찮아. 남자가 파이프 피는 모습 자체가 조금 생소할 뿐이니까."



그 말은 새삼 이 세계가 여성의 지위가 높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세계에서 담배의 대부분 목적은 자신의 마력을 갈무리하는 보조 수단 중 하나라고 한다.


니키타가 구매해온 것은 향초, 즉 제국법에선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 물품이라고 한다.


그러면 상관없겠거니, 생각하고 니키타는 자신의 파이프를 꺼내들었다.



"불 필요한가?"



니키타가 입에 파이프를 물자마자 파이프 안의 연초에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저 불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연초의 온도만 높여 열을 발생시키는 힘을존재는 이 세계에 몇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 뿐이다.



"레니르 언니, 돌아왔구나."



레투아니르 장녀이자 현 공작위 후계자로 지목된 레니르 레투아니르.


당시 인게임 기준, 레투아니르 공작이 몰락했을 때 그녀는 위장 후 철저하게 가문의 부흥을 위하여 움직였을 정도로 레투아니르 가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였다.


물론 스토리 후반부, 카세에게 들켜 그 자리에서 효수형에 처해지게 되는 운명이었다만 지금 그녀는 이 자리에 당당히 서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 '집'을 지켜주어 고맙다."



그녀는 호쾌하게 웃으며 니키타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다시 지인으로 보이는 이들과 술을 마시러 자리를 옮겼다.


반수는 차별받는 종족이지만, 신기하게도 이 가문에 있는다면 그 말은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져 온다.


니키타는 파이프를 문 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 밖에 없단다.'


이젠 제목마저 잊어버린 어느 책에 나온 문장이 떠올랐다.


게임에 대한 정보는 숲으로 도망쳤을 때 적어두었기에 기억에 없는 게임 요소에 관해서 복기할 수 있었지만 이외의 요소들은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살던 도시의 풍경도, 좋아하던 음식의 맛도, 가족의 얼굴도.


마음 한 켠에 공허함이 계속 허전했지만 지금 이에 사로잡혀선 안된다는 '다짐'도 존재하였다.


니키타가 스스로 생각하는 다짐이라는 것이 '다짐'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그의 목적은 생존 하나 뿐이기에 크게 이를 신경쓰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리카가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있을 때 니키타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테라스로 나갈 때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꼬리를 몸 안쪽으로 움직여 문에 끼는 것을 방지하였다.


당연히, 원래.


자신의 머릿속에 흐릿해지는 기억의 주인이 자신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기억에 불과한 지 깨닫기도 전에 전날 밤의 꿈처럼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원래 일어나는 일이라 무의식적으로 치부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내뱉은 연기는 바람에 휩쓸려 사라진다.


이처럼 당연한 일이지만, 어째서 나는 이를 아쉬워하는 것일까.


니키타는 파이프를 입에 문 채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는 질문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라고.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그가 연기를 내뱉는 소리 뿐 그 외에는 테라스 문 너머 연회장의 따스한 목소리 뿐이었다.



"밤 공기가 차구나."



"...아리아님."



아리아는 테라스 문을 닫고는 천천히 니키타의 옆으로 다가왔다.



"니키타, 제국이 세워진 지 오래되진 않았다만 제국의 뿌리가 되는 지역이 어딘지 아니?"



알현실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다른, 공작의 목소리가 아닌 평범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본디 신을 섬겨온 신도들이었단다. 이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지만 적어도 그분의 상징이라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단다."



"신을...?"



게임에 묘사된 적 있는 이야기던가?


아니다.


심지어 컨셉북에서조차 묘사된 적 없는 역사이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방황을 하며 신을 찾기 위하여 여정을 이어나갔다 하더구나.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모여 이곳에 제국을 설립하셨다는 이야기가 건국 신화가 존재한단다. 그렇기에 반데이르 제국의 국장에도 그분들의 깨달음이 담겨있다고 하더구나."



"그게 무슨...?"



아리아는 싱긋 웃어보였다.



"국화란다. 세상 어느 곳에나 피어있는 흔한 꽃이지."



국화라.


잊고싶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 속 존재하는 명칭이었다.


'그대의 공연이 끝나는 그 날, 이에 어울리는 색의 국화를 건네주리.'


'피를 머금은 이가 피워낼 꽃은 어떤 색일까.'


처음 마주한 그 존재가 입에 담은 꽃의 의미가 국화일 가능성이 높다.


꿈인지 모를 장소에서 마주한 존재가 입에 담은 국화는 분명히 기억난다.


그것이 무엇이길래 왜 이리 집착하는 것일까.


프롤로그 단계에서 주인공이 보유할 스킬들 중 2개나 파괴하며 실마리가 보이나 싶었지만 아리아의 말에 니키타는 깨달았다.


그저 신기루였다는 것을.



"니키타, 그분들이 국화를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어느 누구도 모른단다. 서로 각자 다른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기록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단다."



"...여정을 말씀하시고 싶으신 거군요."



"그래. 그분들의 여정은 멀고도 험난했단다. 누군가는 도둑이었고, 누군가는 살인자였으며, 누군가는 이교도였던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여정에서 나온다 생각한단다. 바로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을 말이지."



아리아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국화는 상징이 아닐까 생각한단다. 정말 국화만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면 제국의 모든 국민들은 벌써 인간을 초월해서 신의 인도를 받을 터인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야 그럴 것이다.


니키타 또한 게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국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 없음을 또렷하게 기억했기 때문이다.


잠깐, 어째서 그 부분은 명확하게 기억하는 거지?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끌고오기를 반복한다.



"네가 반수라는 이유로 인해 학교에 가게된다면 상당히 괴로울 거란다. 그렇기에 이번 연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고, 많은 이들이 너를 얕잡아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란다.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하겠지만 너의 노력을 보자면 충분히 인정받을 것이라 보여 안심이 된다."



그녀는 니키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아니 레투아니르 공작가의 모든 이들이 니키타를 가족처럼 대해 주었다.


처음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만 생각해오던 야수는 어느새 가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감사하고 미안하며, 대견하고 안타깝다.


그의 진심과는 다르게 니키타의 행동은 이들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그 결과는 오늘이 되어 다가왔다.



"숲으로 돌아가 지내게 되어도 이곳으로 가끔은 돌아와주길 바랄 정도로 네게 이곳은 편안한 곳이었다, 라는 기억으로 남게 해주고 싶구나. 네게 있어서 또 다른 집으로써, 우리가 네게 있어서 하나의 가족으로써 남아주길 말이다."



그녀는 니키타에게 귀걸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내가 달아주고 싶은데, 괜찮겠니?"



니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찔리는 통증은 없었지만 무언가 뚫리는 느낌에 니키타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짐승귀를 접었다.


그리고 귀 끝에 달린 물방울 모양의 붉은 보석을 볼 수 있었다.



"너가 그 귀를 숨기지 말라는 의미로 달아주었단다."



니키타는 지금 그녀의 행동에 큰 감동을 받진 못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인간보다 오히려 같은 반수에게 고문을 당한 입장이기에 싫어해야 한다면 반수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니키타는 어찌 본다면 이곳의 정서에 아직 녹아들지 못한 이방인이기에 반수가 얼마나 차별받아왔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막 눈을 떴을 때 들린 말로는 레투아니르 공작가에서 직접 반수를 위한 일자리를 보장해주기 까지 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차별에 대하여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호의 아닌가.


어쩌면 여기서 받게 될 몇 안되는 호의이다.


아리아의 호의에 니키타는 그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 표현이 아리아에게 표현할 수 있는 거짓없는 인사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 * *



"아마 지금 출발하면 우리 탑승 시간까지 2시간 남으니까 미리 가서 밥부터 먹고 있자."



"짐은 미리 보낸거야?"



"당연하지! 무겁게 들고 다니는 것보다 미리 보내두는게 편하니까. 대신 마차로 이동할 때 3일 정도 걸리니 필요한 물품은 챙겨둬야지."



"맞네, 학교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사용인을 동행할 수 없다고 했었지?"



평소와 같은 하늘, 평소와 같은 사람들.


이 날은 여느 때처럼 일어나 훈련장으로 가지 않았다.



"니키타, 무기는 챙겼느냐."



"아, 네. 덕분에 쉽게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르시아는 니키타의 독특한 도끼를 위해 허리춤에 쉽게 메고 다닐 수 있도록 벨트를 주문해 주었다.


거기에 니키타의 가방 또한 받아 달아주기도 하고, 물약을 달 수 있는 끈까지 직접 그가 디자인해주었다.



"네 결심을 이룰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 가서도 마법 연습 열심히 하렴.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티가 금방 나니 꾸준히 해야 한단다."



혼자 지냈다면 이런 격려의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이런 말끔한 교복을 입고, 정식으로 입학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주인공이 가진 전용 스킬도 2개나 제거할 수 있었다.


푹신한 침대에 눕고 복작이는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에리카를 구해준 다음부터 였다.



"가자, 니키타! 지금 출발 안하면 우리 마공함 못 타!"



에리카의 재촉을 듣자 이상하게 니키타는 마음에 조금, 아주 미약하지만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그리 말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해야 할 일은 아직 넘친다.


먼 미래의 일을 제외해도 술식을 몸에 새길 방법도 찾아야 하며, 자립하기 위해 건축이나 약학, 마공학도 익혀야 한다.


이상하게도 오늘, 이 순간 니키타는 단 한 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소소하지만, 금방 지나갈 일이지만, 금새 잊어버릴 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는 행복을 느꼈다.


작가의말

오타 지적은 환영입니다! / 프롤로그가 끝이네요! 부족한 실력에 처음 써보는 소설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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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피어날 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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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내 마음을 아는 것 뿐 NEW 2시간 전 2 0 11쪽
35 지금 필요한 것은 24.09.18 6 0 11쪽
34 그녀가 기억하는 방법 24.09.14 10 0 12쪽
»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24.09.12 13 0 11쪽
32 비로소 여우는 인정을 받고 24.09.10 18 0 12쪽
31 여우는 자신의 송곳니를 찾게 된다. 24.09.09 18 0 11쪽
30 여우는 그제야 작은 숨을 토해낸다 24.09.06 21 0 11쪽
29 선택받은 땅을 향하여 24.09.02 25 0 12쪽
28 우린 나아가리라 24.08.05 24 0 12쪽
27 석탄을 전부 넣어라 24.07.24 27 0 13쪽
26 출항을 알리노라 24.05.24 28 0 12쪽
25 결국 승선하고 만다 24.05.12 27 0 10쪽
24 그렇게 떠밀려진 그는 24.05.05 28 0 12쪽
23 선택지는 없다고 24.05.04 27 0 9쪽
22 모두가 말한다 24.04.27 27 0 10쪽
21 승선을 해야 하냐고 24.04.17 27 0 9쪽
20 소년은 물었다 24.04.16 32 1 10쪽
19 작은 선물을 안겨준다 24.04.15 32 0 11쪽
18 그를 감싸준 이는 24.04.13 36 0 10쪽
17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고 24.04.11 38 0 10쪽
16 외전. 어둠은 쫒아오고 24.04.09 39 0 7쪽
15 행복해지자 24.04.07 41 0 7쪽
14 어둠 속을 빠져나가 24.04.06 40 0 8쪽
13 가슴까지 차기 전에 24.04.05 42 0 11쪽
12 발목이 잠기고 24.03.24 43 0 9쪽
11 허나 이는 가르침이라 24.03.22 43 0 9쪽
10 마주한 것은 공포요 24.03.21 43 0 12쪽
9 용기내어 다가가니 24.03.20 44 0 9쪽
8 많은 준비를 마치고 24.03.19 45 0 9쪽
7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24.03.18 4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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