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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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4.07.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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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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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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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DUMMY

나는 꿈을 꿨다.

간만에 꾸는, 생생한 꿈이었다.

꿈에서 나는 격동의 시대에 번민하는 귀족 남성이었다.

허무주의에 빠져 술만 마시며 허송세월하는 나를 가문 모두가 등한시했다.

이국에서온, 하녀 빼고. 그 하녀는 계속 쫓아다니며 나를 귀찮게 굴었다. 그 하녀를 피해 도망다니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자기 반역죄라면서, 군이 쳐들어왔다.

잡혀가는 가족들을 막기 위해 뛰쳐나가는 나를, 하녀가 붙잡았다. 하녀는 살기 위해서는 도망쳐야 한다고 나를 붙잡고 소리쳤다. 나는 그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항변했고, 하녀는 있다고 했다.

살아만 있다면, 살아서 자신을 오롯이 지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며.

하녀는 내 품에서 울었다.

나는 그런 하녀를 떨쳐내지 못하고, 숨어서 다짐했다.

내 가족을 잡아간 나라에,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지막으로 내 가족을 습격한 군 장교의 얼굴을 내 기억에 새겼다.

그건,


그 망할 플레이어의 얼굴이었다.


***


또 개꿈이네.

나는 인상을 쓰며, 덮고 있던 담요를 치우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새 잠든 모양이었다. 사무실은 여전히 언제나처럼 지독하게 밝았다.

안대없이는 절대 잠들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일어나 상황을 확인했다.

아직 이른 새벽시간. 사무실은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었다. 어제 회식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 빼고.

고개를 돌리자 위스키병을 든채, 탁자에 고개를 처박고 칠칠맞은 웃음을 보이며 잠든 파견이 보였다.

······저쪽은 어제 얼마나 퍼마신 거야?

때마침 찾아온 두통에 어제 일을 회상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씻으려고 화장실로 향하는 중에,


누군가 흐느끼는 섬뜩한 소리를 들었다.


······뭐지?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나 말고 깨어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마 환청인가? 가위 눌린건가?

확인을 위해 귀를 세게 꼬집었지만 통증이 그대로 느껴지는 걸로 봐서 환청도, 가위도 아니었다.

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뒤에 조심스럽게 화장실로 접근했다.

절대 무서워서 그런게 아니다.

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으로서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다만 다른 수상한 존재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만전을 기하는 것 뿐이다.

‘그래, 그러시겠지.’ 하는 사장의 빈정거리는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듯 했지만, 머리를 저어 떨쳐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화장실에 도착해 안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릴수 있었다.


그건, 설유진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장난 것처럼 멍하니 앉아 눈물을 흘려대는 모습의.


나는 달려들어 설유진의 어깨를 잡았다.

“무, 무슨 일 있어요? 괜찮아요?”

내 말에도, 설유진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힉 힉 대며 눈물만 흘려댈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바로 내가 처음 그녀를 구출했을 때, 날 보고 놀랐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조심스럽게 설유진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괜찮다고. 내가 여기있다고 되풀이하며 말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설유진이 경련하는 것처럼 몸을 떨며 말했다.

“그, 그, 빠, 빨간, 빨간 약을······.”

나는 설유진이 말한게, 플레이어가 쓰는 포션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비상용으로 품에 가지고 있던 포션을 가져와 뚜껑을 열고 설유진에게 천천히 먹여주었다.

설유진이 꼴깍 거리며 천천히 물약을 마신 뒤 얼마나 지났을까, 떨리던 몸이 잦아들고 호흡이 안정되었다.

잠시 뒤, 설유진이 말했다.

“고마워. 이제 괜찮아.”

나는 말없이 더 힘을 주어 설유진을 안았다. 설유진이 내 품에서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괜찮다니까······.”

“뭐 마조라 괜찮다고요?”

내 말에 설유진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오늘 새벽에 정리 다 하고 나서 화장실 갈때부터.”

“그게 몇시간 전인데요?”

“몰라, 기억 안나. 것보다 좀 놔줄래?”

나는 설유진을 품에서 떼어 놓았다 하지만, 양 어깨를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나는 설유진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얼마나, 어떻게 힘들어요?”

“괜찮다고 했잖아.”

“괜찮다는 말 하지마!”

내가 소리치자, 설유진은 깜짝 놀랐다. 나는 설유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사실 대로 말해. 뭐가 문제야?”

내 시선을 피하던 설유진은, 잠시 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때 그 사건이 좀 트라우마가 심하게 남은 것 같아. 나도 좀 버티다 힘들어서 방어기제로 다른 인격을 만들어서 견뎠거든.”

설유진은 나를 보고 쓰게 웃었다.

“그렇게 버티고 있었는데, 그때 네가 나타난거야. 그 때 나는 내 주인격으로 돌아왔지. 그렇게 끝난줄 알았는데, 그 사건이 이드, 무의식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트라우마가 된거 같아. 그래서 그때와 같은 화장실이라는 장소가 내 보조인격과 주인격이 교체되는 트리거로서 작동된게 아닐까 싶어.”

나는 설유진을 노려보면서, 그녀의 말에 대해 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뭔 소린지 모르겠어.”


***


“요컨대, 우리 설유진 씨는 혼자서 화장실을 못갑니다. 이상입니다.”

내 정리에 회의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알바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무서운 걸 보면 못가는데······.”

설유진은 손을 번쩍 들고는 외쳤다.

"그렇게 요약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아?!”

나는 그 질문을 무시했다.

사정을 전부 들은 파견은 검지로 탁자를 두드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일종이라고 보면 될까?”

“아마 제 다른 보조인격이 겪고 있는게 그런 거라고 보시면 될거 같은데요.”

설유진의 말에, 파견은 인상을 찌푸린 후 말했다.

“보조인격이니 뭐니 하는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종류라면 해결이 쉽지 않을거야. 그 발작의 원인이 화장실이면, 대처 방법은 뭔데?”

파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확한 건 잘 모릅니다.”

“오늘 새벽에는 어떻게 해결했어?”

“그건······.”


“안아줬습니다.”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회의실에 여기저기 들려왔다. 그리고 곧 탁, 하고 설유진이 이마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물약을 달라고 하길래 그 물약을 썼습니다.”

“포, 포션 말이죠?”

전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가 말했다.

“그럼 남은게 몇 개지?”

“총 8병에서 1병은 시설 영감님이 조사를 위해 가져갔고, 남은 7병 중 3병을 저와 파견, 경비가 가지고 있다가 제가 하나를 썼으니, 6병입니다.”

“죄송합니다.”

설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모두는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사과가 성의없어서가 아니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사장이 말했다.

“그럼 그 발작이 일어날때마다 그 포션이 필요한 거야?”

“다른 대체제를 쓸수도 있을거 같은데, 내가 아는 PTSD를 심하게 겪은 사람이 있는데, 약물 치료를 하긴 했었거든.”

“그거 엄청 독한거 아닌가요?”

비서의 말에 파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럼 아무래도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겠지.”

“그럼 안돼.”

사장은 딱 잘라 파견의 의견을 잘랐다. 그러자 설유진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제가 쓴거니까 어떻게든 구해오겠습니다.”

“어떻게?”

파견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설유진에게 물었다. 그러자 설유진이 말했다.

“아마 근처에서 샀을 거에요. 전에 나를 고문하려고 가져온 술을 편의점에서 사온적이 있었는데, 그 봉투에 같이 들어있던 걸 봤어요.”

그 말에 나와 파견, 경비는 서로 눈빛을 마주쳤다.

우리는 어제 플레이어가 무인 편의점에서 포션을 들고 나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인근 편의점을 조사할 필요가 있겠군. 아무튼 여러모로 그 물약이 필요해졌으니까.”

경비의 말에, 파견은 경비를 돌아보며 포션을 마셨는지 물었고, 경비는 고개를 저었다.

“이정도는 금방 나아. 이 물약의 효과가 정말 그정도라면 비상 시를 위해 아껴두는게 맞지.”

“그럼 아무튼 거기 가봐야겠군.”

“제가 가보겠습니다.”

설유진이 말했고, 나와 사장, 파견이 반대했다. 내가 말했다.

“너무 위험해요. 그 근방에 아직 플레이어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다.”

“네가 가서 뭘 할수 있는데? 만약 갔다가 잡히면, 널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우리의 노력은 뭐가 돼? 내가 한 말 잊었어?”

파견의 말에, 설유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장이 덧붙였다.

“너도 잘 알지 않아? 네 의견은, 그저 네 죄책감을 덜기 위한 아주 비합리적인 발언이라는 거.”

“······알아.”

설유진의 대답에, 사장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탁자에 두 다리를 올렸다.

“그럼 얌전히 오늘 해장을 위한 아침이나 만들어와. 잘하는 걸 해야지.”

“그럼 제가 갈까요?”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왜 내가 가야하는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 지금 별로 술에 취하지 않았다.

둘째, 경찰 신분증을 활용해서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형사처럼 활동할수 있다.

셋째, 파견과 경비, 나, 이렇게 셋중에 플레이어가 눈치채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 이유에서, 파견이 손을 들어 반론을 제기했다.

“그 경찰로 변장해서 설 씨를 구출했을때, 플레이어가 봤다고 하지 않았어?”

“못봤을 겁니다. 그때 저는 차안이고, 순식간에 지나갔을뿐더러 선팅도 짙게 되어있었으니까요.”

짝, 하고 사장이 박수를 쳤다. 사장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말했다.

“좋아. 그럼 지금 바로 이사는 준비해서 그 편의점인가 뭔가 가봐. 거기서 그 물약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바로 빠져나오도록. 플레이어를 발견해도 그냥 나와. 어차피 날은 오늘만 있는게 아니니까. 알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고 남은 사람들은 이왕 이렇게 모인 거 어제 일에 대한 대책 회의나 하자고. 블루문 조직이 어떻게 나올지 말이야.”

회의 소리를 뒤로 하고, 변장을 위해 알바를 따라가는 내 손목을 누군가 붙잡았다. 설유진이었다. 내가 삿대질하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하지마요.”

“그냥, 조심하라고.”

안 그래도 그럴거라고 대답해준 뒤에, 나는 알바의 뒤를 따랐다.


***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진짜 이 세상, 아니 게임 속의 경찰들은 일을 제대로 안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람이 없는 거리라지만 그 교차로 거리에는 어제 사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끊어져 나동그라진 신호등, 그리고 사방에 부서져있는 차와 거리의 상점 유리창들. 그리고 도로의 핏자국까지.

하긴 생각해보니 일 제대로 했으면 총소리가 나자마자 몰려들어왔겠지. 그럼 오히려 잘 된일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부서진 유리파편을 건너뛰며 거리를 지나쳐 목적지인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도 마찬가지였다. 문이나 밖의 유리는 그날 전투로 인해 박살 나고 금이 가 있었으며 밖에는 유리파편이 가득했다.

이거 안에도 개판인거 아니야?

나는 걱정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부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프랜차이즈라 그런지 몰라도 대처가 빠르군.

나는 신기해하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내부에 비치된 물건은 내가 아는 편의점과 똑같았다.


한 곳만 빼고.


나는 입구쪽에 비치된 음료 냉장고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내가 처음보는, 희한한 색상의 음료가 가득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물건의 이름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힐링포션, 마나포션, 재생포션. 가속 포션,

뭐야 이건?

나는 혹시 몰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붉은 병은 없었다. 나는 힐링포션이라고 쓰여진 칸이 텅비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도 다른 거라도 챙겨갈까 싶어서 냉장고를 열어 꺼내려고하는 순간,


“······아. 진짜 걸리적 거리게 하네. NPC새끼들.”


플레이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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