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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動心)
작품등록일 :
2024.07.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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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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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밥 그릇.

DUMMY

20세기 테크의 여름은 길고, 고됐다.

1년 동안 하는 일이 100이라면, 그 중 70을 여름에 몰아서 한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V 블록 170번 또 퍼졌답니다!"

"제길, 그거 어제 출장 나갔던 장비잖아! 누가 조치 한 거야?"

뜨거운 날씨 때문에 장비가 퍼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 과장이 x축 파워 모듈만 갈고 왔다는데, 아무래도 헛다리 짚은 거 같습니다."

"제길... 이래서 코쟁이들 장비는 못 쓰겠다니까. 야, 짐 챙겨."


여름에 고장이 집중 되는 건 모든 장비가 똑같았지만, 유독 독일제 장비가 심했다.


유럽의 평균 온도인 상온 20도 기준으로 장비를 셋팅해 놨는데, 여름 철 미래 차 공장 내부의 온도는 40도에 육박하는 것이다.


고작 20도 차이 때문에 뭐가 달라지겠냐 싶겠지만, 모든 금속은 온도에 따라 늘어난다.


흔히 아는 열 변형은 초고온에서만 일어 나는 게 아니라는 뜻.


심지어 모터, 유압 같은 액츄에이터는 그 여파가 더 크다. 그렇게 무심코 넘어가는 10분의 1 mm 수준의 작은 차이가 모이고 모여 품질 이상을 만들어 내고 고장을 야기하는 것이다.


"하.. 오늘도 정시 퇴근은 글렀네."


시퀀스 팀장 공태인은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1차 조치에서 해결하지 못했다는 건, 쉬운 고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나 이번 고장인 [X 축 모터 과부하.] 같은 경우에는 그 원인만 수십 가지.

속된 말로 뺑이를 칠 각이었다.


"지연이가 또 뭐라 하겠네."


업무용 데스크 위 가족사진 액자를 바라보는 공태인의 어깨가 무거웠다.


불혹의 나이에 결혼해서 늘그막에 겨우 얻은 아들.

어떻게든 많은 시간을 보내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띠리리링-!

그때.

막 공구를 챙기고 있던 공태인의 전화기가 울렸다.

"20세기 공태인입니다."

"팀장 님. 저 이도현 과장입니다."

"이 과장?"

순간 공태인의 두 눈에 의아한 기색이 어렸다.

평소에는 전화 할 일이 없는 도현에게 전화가 걸려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V 블록 170번 조치 하려고 준비 중이시죠?"

"네 맞습니다."

"제가 지금 다른 업무 때문에 V 엔진에 와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 했는데, X축 챔버 커버 쪽에 칩이 많이 껴 있더라고요. 그거 청소를 좀 했습니다."

"..... 그래요?"

공태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난데 없이 전화를 걸어온 이유가 궁금 했는데, 생각보다 영양가 있는 전화였다.


"혹시 내가 바빠서 그런데, 부하 치는 어떤가요?"


X축에 칩이 끼어 있다면 [하드웨어 과부하] 알람이 뜨는 게 이해가 갔다.


'잘만 하면 연장 근무 안 해도 되겠는데?'


공태인은 오늘 저녁에는 가족들과 단란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안 그래도 부하 치를 체크 해봤는데... 무부하 2.6%, 이송 부하 47%로 순간 부하가 살짝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칩이 쌓인 상태로 무리하게 돌리다 보니, 커플링에 부하가 먹은 것 같습니다."


순간 태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47%.

당장 장비를 돌리기엔 문제가 없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기도 애매한 수치였던 것이다.


'하.... 결국 커플링을 갈아야 하나.'


가족과의 저녁 식사가 점점 멀어져 갔는데.

도현이 전혀 뜻밖의 말을 뱉었다.

"그, 예전에 공 팀장 님이 가르쳐 주신 거 있지 않습니까?"

"응?"

"MD 32200번에 포지션 개인 값이라고.."

"아! 개인 값!"


도현의 한 마디에 공태인은 무심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GAIN(보정) 값.

축의 정밀도를 낮추는 대신 부하를 줄여주는 MD(머신 데이터)를 떠올린 것이다.


"X축 GAIN(보정 값)을 5에서 4로 낮췄더니 부하가 안정권에 들어 왔습니다. 무부하 0.3%, 이송 부하 23%입니다."

"개인 값 낮춘다고 하니까, 원청에서 별 말 안 하던가요?"

"170번 장비는 디버깅(브러쉬) 장비라서 상관 없다고 합니다. X축 정도에 크게 영향을 안 받는 놈이라서.. "

"그, 그래요?"

"네. 오늘은 퇴근 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퇴근.

그 한 단어에 태인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지기 시작 했다.

'이번 주도 꼼짝 없이 풀 연장을 할 줄 알았는데..'

피 같은 저녁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은 외식이나 할까?'

집 안에서 그만 기다리고 있을 처자식을 떠올리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는데.

'..... 음?'

공태인은 불현듯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이도현 과장이 이렇게 일을 잘 했나?'

프로그래밍 담당인 도현이, 시퀀스 고장을 완벽하게 대처해 낸 것이다.



고장을 한 건 해결 할 때마다, 숙련도가 가파르게 올랐다.

[시퀀스(LV.2)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엔지니어의 눈(LV.2)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품질 확인(LV.2)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프로그래밍 보다는 시퀀스와 품질 관리 스킬의 숙련도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모든 스킬 레벨을 골고루 올려야 해.'

모든 스킬의 레벨이 2가 되자, [엔지니어의 주사위]라는 스킬을 얻었다. 3 레벨에도 새로운 스킬을 얻을 확률이 높았다.

'어떤 스킬을 줄까.'

도현은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다.

엔지니어의 주사위만 해도 엄청난데, 그만한 스킬을 또 얻는다면?

또 한 번 인생이 크게 바뀔 터였다.

'일단 프로그래밍은 나중에.'

레벨이 4나 되는 프로그래밍보다는, 시퀀스와 품질 확인 기술에 집중하는 게 가성비가 좋아 보였다.

게임처럼, 레벨이 올라갈수록 숙련도가 천천히 증가 하기도 했고.


[시퀀스(LV.2)의 숙련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품질 확인(LV.2)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엔지니어의 눈(LV.2)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V블록 170번.

X축 하드웨어 고장을 해결하자 세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다.

'레벨이 낮아서 그런지...'

숙련도가 빠르게 올랐다. 확 체감이 될 정도로.

게다가 확실히 앉아서 반복 작업을 하는 것보다는 장비 고장을 고치는 쪽이 숙련도를 더 많이 줬다. 도현 본인도 이쪽이 더 재미가 있었고.

문제는, 프로그래밍 부서의 고장이 씨가 말랐다는 점이었는데.


일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춘식이 물었다.


"도현아. 너 혹시 집안 어르신 중에 무속 관련된 일 하시는 분이 계셔?"

"아니요. 갑자기 그건 왜.."

"난 니가 접신이라도 한 줄 알았지. 전생에 일 못하고 죽은 게 한이 된 귀신한테."

".....네?"

"남들 하기 싫어하는 노가다를 자처하는 것 까지는 이해할게. 취향이란 게 있는 거잖아? 근데.. 왜 자꾸 히죽히죽 웃는 거냐? 진짜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건 시스템 창을 얻고 난 뒤 얻은, 일종의 병이었다. 심심할 때마다 들려오는 [숙련도가 증가 했습니다] 알림에 웃음을 짓게 된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던 전과는 다르게, 차근차근 실력이 향상 된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그...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런데."

"무슨.."

"상담 한 번 받아 봐. 요즘에 정신과 다니는 거, 절대 흠 아니야."

"....."

시스템 창을 얻으면 김 차장 님도 저랑 똑같은 반응일걸요-

도현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친하고, 또 신뢰하는 춘식이었지만 시스템 창의 존재에 대해 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흠... 진짜 문제긴 하네.'

고개를 돌린 도현의 시야에 [고장 게시판]이 들어 왔다.

각 부서 별로 조치 해야 할 고장을 적어 놓는 칠판.

[시퀀스]

1. T엔진 블록 170번 M/G 교체.

.

.

7. Y엔진 크랑크 110번 안전 릴레이#3 접점 不.


[CNC]

1. Z엔진 크랑크 3번 PIN 다이얼 이상.

.

.

3. Z엔진 블록 호닝 홀 스핀들 피드 과다.


고장이 꽉꽉 차 있는 다른 부서와는 다르게.


[프로그래밍.]

없음.


프로그래밍 부서는 고장이 텅텅 비어 있었다.

도현이 요 몇일 사이에 모두 해치웠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다른 부서 고장까지 해결하고 싶었지만 그건 안 될 일이었다.

그건 소위 말하는 '밥그릇'을 건드리는 행위였기 때문.

'숙련도를 많이 올려주는 거 없나..'


없진 않았다.

NC, PLC 프로그램을 분석 하면 [프로그래밍]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간다.

시퀀스도 마찬가지.

남아 도는 전선을 가져와서 [Y-델타 기동 회로.] [재생 회로.] 같은 회로를 꾸며도 숙련도가 올라 가기는 한다.

하지만.

'경험치가 너무 작아.'

문제는 시간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 시간에 사이클 타임 개선 회로를 짜면 숙련도도 얻고, 돈도 버는데 굳이?

비유 하자면 금광산에서 금을 캘 수 있음에도 굳이 구리 광산에 들어가는 셈이었다.

쩝-

도현은 뭔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어디 괜찮은 일거리 없나?'

숙련도를 많이 주는, 기왕이면 돈도 벌 수 있는 그런 일거리가 간절했다.


@


"시퀀스 쪽과 CNC 쪽 인원이 턱 없이 부족합니다."


윤창호.

이제는 CNC 차장이 아닌, 보전 부장이 된 그가 말했다.


"인원 수와, 가진 능력에 비해 업무량이 너무 많아요."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차장 때와는 다르게, 부장은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대표적으로 인원 문제.


그가 보기에 20세기 테크는 언제 퍼져도 이상하지 않은 고물 자동차 같았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잖아? 매년 그렇게 해 왔는데 새삼스럽게.."

김원식이 치실 질을 하며 시큰둥하게 대답 했다.

되려 뭐가 문제냐고 묻는 듯한 태도에 윤창호는 입을 다물었다.

'이게 우리 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이구나.'

나름 엘리트로서 대기업, 중견 기업만 다녔었기에 중소기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놀랬다. 7080 스타일의 '안되면 되게 한다.' 마인드를 새 천년 이후에도 견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작년에는 김 차장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때.

사장 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들어 왔다.

전현우 기술 이사였다.

"그때는 김 차장 한 명이었지만, 지금은 세 명이잖아? 전 이사, 윤 부장. 그리고... 이도현 과장까지."

김원식의 말에 전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설계 전문가고, 윤 부장은 CNC 전문가입니다. 게다가 이 과장은 애초에 전력으로 치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김원식이 머쓱한 듯 헛기침을 했다.

"..... 흠흠."

"그리고 예전부터 은근히 김 차장하고 비교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하시던데.. 정말 섭섭합니다. 형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전반적인 능력만 비교하면 김 차장이란 사람이 뛰어날 지 모르겠지만, 각 분야에서 만큼은 저희가 레벨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거금을 들여서 스카웃 해온 거 아닙니까?"

전현우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논리정연하면서도 담백했다. 동시에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기에 김원식은 결국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미안해."

"......"

"윤 부장. 그래서 몇 명이나 더 필요해?"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구나-

윤 부장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전 이사의 대처 방법을 보니 김원식 사장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대충 감이 잡혔다.

"CNC 쪽은 2명이면 될 거 같습니다. 지방대 기계공학과 대졸 출신 몇 명만 뽑아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키워 내겠습니다."

"2명... 오케이. 대신 4년제 대졸은 힘들 수도 있어. 인사 쪽에 말은 해놓을 게."

윤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4년제 대졸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기준 점 자체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크게 불러본 것일 뿐.

"시퀀스 쪽이 조금 문제입니다. 그나마 쓸만한 게 공태인 차장 하난데, 나머지는 다 부사수 레벨이라... 사수 급 인원 한 두 명 정도는 보충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윤 차장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번에 입찰 받으신 [릴레이 보드] 건도 포기하시는 게 나을 것 같고요."

그 말에 김원식이 이마를 짚었다.

"하... 사람이 그 정도로 부족하단 말이야?"

"네. 시퀀스 쪽은 당장 고장 수리 쳐내기에도 바쁜 상황입니다."

"어떻게 안 되겠어? 릴레이 보드 건은 좀 큰데..."

김원식은 그 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었다.

'릴레이 보드는 진짜 꿀통인데..'

그냥 꿀통이 아니었다.

한 번만 길을 뚫어 놓으면, 최소 3년은 꾸준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캐쉬카우였다.

김원식의 간절한 말투에, 전현우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최근에 공태인 팀장한테 들은 건데... 이 대리가 시퀀스 쪽에 일가견이 있다더군요."

"이 대리가?"

"네. 알게 모르게 한 달 동안 해결해 준 고장이 5개가 넘는답니다."

"....."

김원식의 눈빛에 이채가 어렸다.

"프로그래밍 부서 쪽이 요즘 한가한가? 다른 부서는 사람이 없어서 난린데.."

"아닙니다. 오히려 고장 건수로만 보면 프로그래밍 부서가 제일 많습니다."

"그 말은..."

"괴물인 거죠. 이도현 과장이."

괴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현우 입에서 저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끄덕-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윤 부장을 보니, 그제서야 도현의 실력이 확 와닿는 느낌이었다.

"부탁이나 한 번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공태인 과장 말로는 못해도 사수 급은 된답니다. 시퀀스 쪽도."

부탁.

그 단어가 상당히 거슬렸지만,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상황이었다.

"이 과장, 지금 회사에 있나?"




"... 한 달 정도만 시퀀스 팀에 지원을 좀 해줘야겠는데."

"..... 지원이라면."

"업무 시간 도중에 한 두 시간 정도만 해주면 돼. 인센티브는 빵빵하게 넣어 주겠네."


김원식의 제안을 모두 들은 도현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이게 웬 떡이야..'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숙련도도 많이 주고, 돈도 벌 수 있는 일거리가.

그것도 제일 간절했던 [시퀀스]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줄 수 있는 일거리였다.

'나머지 세 개는 싸이클 타임 개선으로도 충분히 올릴 수 있으니까.'

오로지 [시퀀스] 스킬 하나 만큼은 순수 노가다를 필요로 했다. 아니면 고장을 고쳐야 했는데, 밥그릇 문제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이 과장 힘들면 안 해도 됩니다. 말 그대로 이건 '부탁'이니까요."

그때. 전현우가 덧붙였다.

누가 봐도 도현을 배려하는 듯한 태도였는데.


무조건 제가 하고 싶습니다. 아니 제발 시켜주세요. 돈도 조금만 주셔도 됩니다.

도현은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 도현 씨는 자신의 가치를 너무 모르고 있는 거 같습니다.

- 저였다면 김원식 사장이 200을 불렀을 때, 미래 차에서 제시 받은 금액이 얼마인지부터 물어 봤을 것 같습니다.


윤 차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굳이 손해를 볼 필요는 없잖아.'

윤 차장의 말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도현은 바뀌기로 마음 먹었다. 예전이었으면 쳐다도 보지 못했을 사장 앞이었지만, 일부러 허리를 꼿꼿히 폈다.


"..... 일단 회로를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서두르지 않았다.

김원식의 표정과, 전현우의 태도를 통해 아쉬운 건 그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 자, 여기 있네."

살짝 당황한 표정의 김원식을 뒤로 하고.

윤창호가 릴레이 보드의 회로도를 가져 왔다.

"솔레노이드 밸브 보호용 릴레이 보드야. 총 릴레이 개수는 19개고."

윤창호가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릴레이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액츄에이터 보호, 접점 증설.

이 경우에는 전자에 목적을 둔 회로였다. 도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엔지니어의 눈을 사용 했다.


[릴리에 보드.]

[하드웨어 레벨 : 2]

[소트프웨어 레벨 : 0]

[19개의 릴레이를 사용한 보드. 110V용 출력 보호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현재 성능 : 82%]

[성능 개선 사항 : 3]

[에러 : 0]


윤창호의 말대로였다.

110V용 릴레이 19개를 사용하는 릴레이 보드.

다만 특이사항이라면.

[성능 개선 사항 : 3]

성능 개선 사항이 세 개나 있다는 점이었다.

'CP를 3개나 쓸 필요가 없네.'

'전선 길이가 쓸데 없이 길어.'

'릴레이 사양도 너무 과해.'

중대 개선 사항은 없었지만, 유의미한 성능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특히 단가 쪽에서 큰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 같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얼마인 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흠흠... 인센티브 말하는 건가? 그거라면 섭섭치 않게 챙겨줄 테니.."

"아니요. 릴레이 보드 하나당 납품 단가 말입니다."

순간 김원식의 두 눈에 불똥이 튀었다.

".... 그걸 자네가 왜 궁금해 하는 거지?"

뛰어 나다고는 하지만 일개 직원에 불과한 도현의 태도가 건방지다고 느낀 것이다.

"옴론 릴레이 19개 38만원. 1.5 스퀘어 구리 전선 30m 3만원, 릴레이 보드 8만원.."

그때.

릴레이 보드에 시선을 고정한 도현이 난데 없이 손가락을 튕기기 시작 했다.

마치 무언가를 계산이라도 하듯이.

"대략 제조 원가는 60-70 사이겠네요. 납품 단가는 설계비용, 설치 비용 포함해서 200언더 일테고.."

흠칫-

그 말에 김원식의 몸이 한 차례 떨렸다.

'어떻게...?'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도현의 추측이 거의 들어 맞았던 것이다.

"납품 수량, 몇 대입니까?"

김원식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화를 내지는 못했다.

도현에게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졌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김원식은 이내 입을 열었다.

"초품 100대 납품하고, 성능 괜찮으면 한 달에 50대 씩 작업 하기로 했어."

"그럼 한 달 안에 100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네요."

"그, 그렇지."

김원식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한 달에 100대. 그가 생각해도 무리한 물량이었던 것이다.

"30%."

".... 뭐?"

"인센티브는 결산 순이익에서 30%만 받겠습니다."

"이봐 이 대리, 지금 태도는 조금 지나친 거 같은데."

결국 김원식의 언성이 높아졌다.

사장과 직원.

상하 관계가 명확한데, 감히 딜을 보려는 듯한 도현의 태도가 고깝게 느껴진 것이다.

"이 대리, 이쯤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전현우 조차도 그런 도현을 걱정 어린 시선을 바라 보았다. 자신감은 좋지만, 그것도 근거가 있을때나 통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plc나 nc면 몰라도...'

게다가 시퀀스는 도현의 전공 분야도 아니지 않은가?

"자재 값, 45에 쇼부 볼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때.

도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45만원. 기존의 책정 값이었던 65만원에서 30%나 절감한 숫자였는데.

"...... 뭐라고?"

"그리고, 초품 100대는..."

도현은 떨리는 가슴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당당하게 말했다.

"2주 안에 끝내겠습니다. 대신, 30%를 인센티브로 주십시오."

김원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게 보였지만, 뱉은 말을 후회 하지는 않았다.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 돼'

그 간단한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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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다함께 차차차.(일부 수정) +26 24.09.01 25,328 527 19쪽
23 23. 리더의 자질. +37 24.08.31 25,352 556 19쪽
22 22. 릴레이 보드 제작(2) +16 24.08.30 25,479 527 17쪽
21 21. 릴레이 보드 제작(1) +19 24.08.29 26,198 529 19쪽
» 20. 밥 그릇. +16 24.08.28 26,982 537 19쪽
19 19. 별 미친 놈을 다 봤나. +16 24.08.27 27,340 515 18쪽
18 18. 누군가의 빌런(2) +22 24.08.26 26,811 529 18쪽
17 17. 누군가의 빌런(1) +14 24.08.25 27,023 493 18쪽
16 16. 주사위. +19 24.08.24 27,764 494 20쪽
15 15. 이자까지 쳐서. +40 24.08.23 28,155 512 17쪽
14 14. 이 대리 얼굴을 어떻게 보라는 겁니까. +22 24.08.22 28,118 542 14쪽
13 13. 성공의 비결. +29 24.08.22 28,859 519 18쪽
12 12. 개판이네요, 솔직히. +22 24.08.21 29,910 53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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